출판사 리뷰
2005~2011
대한민국 100만 독자가 읽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이제 어린이를 만나러 갑니다!
우리 시대의 멘토 한비야, 어린이를 만나다!네티즌이 만나고 싶은 사람 1위, 외국인에게 자랑하고 싶은 젊은 한국인 1위, 환경재단 선정 세상을 밝게 만드는 100인, 평화를 만드는 100인……. 한비야를 나타내는 수식어는 이외에도 굉장히 많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역할 모델을 물으면 3분의 1 이상이 한비야를 꼽는다고 한다. 대체 그녀 안의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마도 남의 눈에 그럴듯하게 보이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끊임없이 ‘도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오지 여행가로 널리 알려져 있던 한비야가, 어느 날 ‘긴급 구호 팀장’이라는 낯선 직함이 적힌 명함을 내밀었을 때 그 누구도 지금 우리들 가슴속에 새겨진 한비야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세계 여행이나 계속하지 무슨 긴급 구호 활동이냐?”라며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한비야가 세계 곳곳의 긴급 구호 현장을 누비고 다닌 지 벌써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10년간, 한비야는 긴급 구호의 세계에서 초보 딱지를 떼고 자신만의 영역을 맡아 훌륭히 임무를 완수해 냈다. 그리고 마침내 피교육자에서 교육자로 거듭났다.
2005년에 펴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는 한비야가 지난 10년간 밟아 온 세계 긴급 구호 현장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바람의 딸’에서 ‘세계의 딸’로 다시 태어난 그녀의 무한 에너지와 가능성이 행간마다 깨알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그《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얼마 전 100만 부 돌파라는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다. 푸른숲주니어에서는 지난 6년간 어른과 청소년들이 함께 느꼈던 감동과 희망을 어린이들에게도 선물하기 위해 《어린이를 위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기획하였다.
한비야와 함께 더 넓고 큰 세상으로! 이 책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내용 중에서 우리 어린이들이 꼭 알아야 할 것과 공감할 만한 것을 충실하게 가려 뽑았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가 출간되고 세월이 흘러서 달라진 부분은 그에 맞게 고쳐 썼다. 어린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멋진 그림과 생생한 사진도 많이 넣었다. 어린이들의 독서 수준과 호흡을 감안하여 두 권으로 구성하였다.
2권에서는 한탕주의에 빠져 몇 년째 다이아몬드 캐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시에라리온 사람들과 어린 나이에 전쟁터에 끌려가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이는 소년병, 21세기의 화약고로 불리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골 깊은 사연, 수년 전 남아시아를 덮쳐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갔던 쓰나미, 무장 세력 때문에 시시때때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구호 활동을 펼쳤던 이라크, 그리고 그토록 가고 싶었던 우리의 반쪽 북한에 첫발을 내딛고 감자 재배를 도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어만 가르치는 것이 세계화 교육이 아니다! 우리 어린이들에게 지구촌 아이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 주고 들려줌으로써 단순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닫는 차원을 넘어서 ‘나’ 아닌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나아가,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세계 시민으로서의 마인드를 심어 준다.
너나없이 귀한 자식으로 자라서 풍요로움 속에 있어도 풍요로운 줄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영어만 가르치는 것이 세계화 교육이 아니다. 먼저 삶의 목적을 정하고 세계 속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인권, 그중에서도 어린이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이 책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세계 어린이 인권 보고서로서도 가치가 있다.
‘우리’의 범위를 조금만 더 넓히자!한비야가 들여다보고 있는 곳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피하고만 싶어 하는 세계 곳곳의 긴급 구호 현장들이다. 고통받고 외면당하고 끝없이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곳…….
그러나 한비야 특유의 따뜻함과 적극적인 삶의 태도는, 우리에게 세상은 더 이상 먹고 먹히는 정글의 법칙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러 준다. 그보다는 우리 서로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 가진 것을 나누는 대상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리고 잊혀진 현장, 버려진 사람들까지 보듬어 안을 수 있을 때, 유난히 ‘우리’를 좋아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우리’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 ‘우리 아시아’ ‘우리 세계’의 다른 가족들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어 줄 수 있을 때,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전 세계와 진정으로 ‘지구촌 한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내용 소개]
별을 꿈꾸는 아이들서부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의 조그만 나라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10년 동안의 내전이 끝나고 유엔 평화 유지군과 정부군과 반군에게 무장 해제를 하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십대 후반의 아이들 대부분은 소년병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만난 모하메드도 그랬다. 한 열다섯쯤 되었을까. 여느 사춘기 남자아이처럼 수줍어서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전쟁 중에 부모를 잃고 갈 곳이 없어 반군에 들어갔단다. 사람을 죽여 보았냐니까 너무나 당연히 그렇단다. 성폭행도 방화도 수없이 했고, 사람들의 팔다리도 셀 수 없이 잘랐단다. 그 사람들에게 미안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반군 지도부가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죽인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전쟁이 또 나면 다시 군인이 될 거니?”
아이가 절대 아니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러나 대답은 뜻밖이었다.
“네, 다시 총을 들 거예요. 전쟁 때문에 학교도 못 다닌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요? 힘 있는 곳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다. 소년병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싸우는지 알 필요도 없다. 그저 먹여 주는 세력을 위해 싸우겠다는 거다. 이렇게 먹고살기 위해, 혹은 강제로 전쟁에 말려든 십대 소년병의 수가 약 4만 5천 명이다. -17~18쪽에서
세계의 화약고팔레스타인은 크게 예루살렘, 서안 지구, 가자 지구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 이 땅에는 수천 년 동안 유대 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평화롭게 어우러져 살고 있었다. 그런데 약 60년 전, 이스라엘이 영국과 미국의 도움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가 국가 수립을 선포하면서 비극이 생겨났다.
분리 장벽은 정착민촌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이다. 2002년 6월부터 짓기 시작해 2005년 말에 완공할 예정이라는데, 높이 5~8미터, 총 연장 길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왕복 거리인 832킬로미터다.
‘중동의 베를린 장벽’인 육중한 벽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살 폭탄 등의 테러를 막는 안전벽이라고 한다. 그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스라엘로의 출입을 완전히 봉쇄하는 국경 분리선이다.
이스라엘은 정착촌을 세우기 위해 팔레스타인 인들의 터전을 없앤 것처럼 분리 장벽을 세울 땅을 확보한다는 명분 아래 팔레스타인 마을의 집을 부수고 농토를 훼손하고 있다. 이렇게 훼손된 농토는 이 지역 내에서도 가장 비옥한 땅으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분리장벽이 완성되면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독 안에 든 쥐가 된다. 장벽 서쪽에 있는 약 24만 명이 장벽 안에 갇히게 되고, 장벽 동쪽 거주민 40만 명도 반대쪽에 있는 농장과 일터 및 학교, 시장, 병원 등을 왕래하기가 어려워진다. 심지어 사방이 장벽으로 막혀 섬처럼 완전히 고립된 지역 주민만도 15만 명이 넘을 거라고 한다. -44~45쪽에서
쓰나미는 과연 천재지변이었을까남아시아에 쓰나미 발생 3일째. 미처 수습하지 못한 시신이 해변에 방치돼 있고 굶주린 개들이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그 위로는 까마귀 떼가 깍깍거리며 하늘을 뒤덮고 있다. 마치 공포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하다. 재난 현장을 많이 다녔지만 이렇게 처참하고 끔찍한 상황은 처음이다.
거기서 만난 열두 살 난 꼬마 무스타파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저쪽 해안 끝에서 이쪽 끝까지 시커먼 초대형 코브라가 고개를 치켜세운 채 육지까지 달려왔어요. 그리고는 엄마, 아빠, 여동생을 삼켜 버렸어요.”
무스타파는 해일이 몰려올 때 여덟 살 난 여동생을 안고 있었는데 파도에 휩쓸려 그만 놓치고 말았단다. 아직도 동생이 떠내려가면서 외치던 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단다.
“무스타파, 톨롱 톨롱.(오빠, 살려 줘.)”
“그때 더 꽉 잡고 있어야 했는데…….”
굵은 눈물을 떨어뜨린다. 깊은 자책감에 시달리는 무스타파! 그 엄청난 파도를 막지 못한 것이 어찌 이 열두 살짜리 꼬마의 죄이랴.
-65쪽에서
당신에게 내 평화를 두고 갑니다이라크의 모술 시내는 마치 이태원 같았다. 미군 반, 민간인 반이다. 어딜 보아도 순찰 중인 미군 지프, 정찰 중인 총 든 미군 보병, 앞에 기관총을 매단 미군 탱크가 눈에 띈다. 보초 서는 미군에게 얘기를 건네는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저리 가라는 손짓을 하는 어린 병사들의 짜증스런 표정까지 어디선가 많이 본 풍경이다.
이곳의 물 사정은 생각보다 훨씬 나빴다. 수돗물이라고는 5일에 한 번도 구경하기 힘든 동네가 태반이다. 주민들은 물탱크 차에서 물을 사 써야 하는데, 그 물값이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다. 1천 리터에 노동자 일당의 절반을 주어야 한다. 사정이 이러니 한낮 기온이 50도가 넘는 살인적인 더위에도 씻기는커녕 먹을 물도 아껴야 할 형편이다.
의사 말로는, 이곳 병원 환자의 절반이 아이들이고, 그 가운데 70퍼센트가 더러운 물 때문이라고 한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 조사 나간 학교에는 식수대는커녕 화장실이 하나도 없다. 볼일이 급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선생님들은 바로 옆의 교장 사택으로 달려가고, 학생들은 하루 종일 참거나 급하면 아무 데서나 일을 본단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학교에 오는 걸 싫어해 고학년 여자아이들의 자퇴율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적어도 학교에 와서는 깨끗한 물을 실컷 마실 수 있고, 지역 주민들도 학교에 와서 물을 길어 갈 수 있도록 학교를 통한 식수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끊어진 수도관을 연결하여 식수대를 마련하고, 화장실에서 항상 물을 쓸 수 있도록 넉넉한 크기의 물탱크를 배치하는 사업으로, 170개 초·중학교 약 7만 명의 아이들과 이라크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게 되는 것이다.
9월에 개학을 한 아이들이 학교에 왔을 때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오는 식수대와 새로 생긴 화장실을 보면 얼마나 놀라고 또 좋아할까?
-83~85쪽에서
감자꽃이 활짝 피었습니다93번째로 찾은 북한의 공항은 출입국 관리소에 휴대폰을 맡겨 놓아야 하는 것만 빼고는 우리나라의 지방 공항과 비슷했다. 주체탑과 인민 문화 궁전 등 평양의 거리 풍경도 TV에서 하도 많이 봐서인지 여러 번 와 봤던 곳같이 익숙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북의 창] 같은 프로그램 좀 작작 볼 걸 그랬다.
나는 여태껏 북한의 식량난 해결은 불가능한 일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남쪽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쌀이건 밀가루건 비료건 한도 끝도 없이 올려 보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한 사람들은 꼼짝달싹하지 않는데 우리만 애가 달아 달라는 대로 뭐든지 퍼준다고도 생각했다. 심지어는 북한 사람들은 우리의 이런 노력을 고맙게 생각하지도 않을 거라고 의심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일주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나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식량난 해결을 위해 이들이 죽을힘을 다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을. 왜 그렇지 않겠는가.
다른 것도 아니고 먹고 사는 문제인데, 십 년 넘게 남한이나 국제 사회에게 먹을 것이 모자라니 도와 달라고 할 때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는가. 어떻게든 자신들의 식량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싶지 않을 리가 없다.
같이 일하는 젊은, 혹은 노련한 과학자들은 식량 자급자족을 달성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불사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불타올랐고, 현장의 농부들 역시 이 일을 어떻게든 자신들의 손으로 이루어 내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한 그들의 진지하고 간절하고 뜨거운 눈빛을 느낄 때마다 감자꽃을 보는 것만큼 반갑고 안심이 된다. 그런 한편, 그동안 북한 사람들은 달라기만 하고 받기만 하는 염치없는 사람들로 여겼던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120~122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