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제2의 『전태일 평전』이라고 평가받은 『말해요, 찬드라』 저자 이란주의 특별한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로지나 노, 지나』 는 대한민국에서 ‘투명인간’, ‘불법인간’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미등록이주민들의 역사를 기록한 르포소설이다. 부모님을 따라 다섯 살에 한국에 온 방글라데시 소녀 로지나가 성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아름답고도 눈물겹게 펼쳐진다.
이 소설을 통해 당신 주변에도 가난한 담장 안에 따뜻한 숨을 쉬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버거운 노동을 견디고 있는 이주민 이웃들이 있음을 늘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로지나와 라주, 나라와 뭉크, 린과 수니 아줌마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길 바란다.
출판사 리뷰
인권 필독서 『말해요, 찬드라』의 저자 이란주가 쓴
아름답고도 눈물겨운 르포소설
저자 이란주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이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곁에서 보고 듣고 함께 겪으며 그 이야기를 기록해왔다. 『말해요, 찬드라』와 『아빠, 제발 잡히지 마』가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과 그들이 겪는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사건과 에피소드 중심의 짤막한 에세이로 기록했다면, 『로지나 노, 지나』는 대한민국에서 ‘투명인간’, ‘불법인간’으로 살아가야만 했던 미등록이주민들의 역사를 기록한 르포소설이다. 이주민이라서, 체류 자격이 불안정해서, 방글라데시 사람이라서, 무슬림이라서 차별을 겪어야 했던 로지나 가족과 행복동 이웃들의 20년은 이주민의 역사이자, 이주민을 맞이한 우리 사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제2의 전태일 평전이라 생각했던 이주노동자 르포집 『말해요, 찬드라』를 쓴 이후로도 변치 않는 이란주를 통해 나는 인간답다는 게 어떤 삶을 일컫는 것인지를 비로소 배우고 있다. 그는 끝내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의 주인공은 여전히 『로지나 노, 지나』 ‘들’이다. 이란주는 『로지나 노, 지나』 ‘들’의 진정한 자유와 존엄의 회복을 통해서만이 우리 모두가 또 다른 고귀한 세계의 입구에 비로소 다다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진정한 구원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도 눈물겨운 이 소중한 책을 자신 있게 권해 드린다.
- 송경동(시인. 희망버스 기획자)
송경동 시인의 추천사 초고는 사실 책 뒤표지에 실린 것과 조금은 달랐다. 송경동 시인은 이란주의 행보에 대해 “헬렌 켈러나 마더 테레사 같은 이들의 희미한 실루엣”을 느낀다고 하면서 “그는 정색하고 나를 또 나무라겠지만”이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인연이 30여 년을 훌쩍 넘긴 것을 생각하면 송경동 시인은 이란주를 너무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란주는 추천사에서 이 내용을 삭제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이주민들과 연대하는 삶을 사는 이유를 묻자 “그냥 곁에 있는 시간이 긴 것이지, 딱히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공동체성이 거의 사라져 차갑고 삭막해진 우리 사회와는 달리, 서로 형편을 살피고 돕는 이주민 사회의 따뜻함에 이끌려 곁불을 쬐다 시간 가는 줄 몰랐네요.”라고 이야기하는 이란주이기에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기꺼이 곁을 내어 준 이웃, ‘로지나 노, 지나’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함께 겪으며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주민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그리고 여기를 살아가는
‘난장이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로지나 노, 지나』 속 이웃들이 깃든 행복동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에 나오는 그 행복동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소외계층의 어두운 삶의 부분과 재개발 철거민과 공장노동자의 참담한 현실을 그린 소설이다. 철거민, 공장노동자들이 떠나간 자리에 지금은 이주민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 곳곳, 이주민이 깃들어 사는 모든 지역은 행복동인 것이다.
값싼 노동력이 필요해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제도’-‘고용허가제’라는 이름으로 이주민들을 받아들인 지 30년이 되었다. 그들은 한국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소통하며 살아왔지만, 여전히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작은 행복도 절대 거저 주어지는 법이 없는 행복동 이웃들은 고난을 딛고 일어서고자 애쓰고 있으며, 끊임없는 노동과 협력으로 작은 행복을 하나씩 일구어 가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당신 주변에도 가난한 담장 안에 따뜻한 숨을 쉬고,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버거운 노동을 견디고 있는 이주민 이웃들이 있음을 늘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로지나와 라주, 나라와 뭉크, 린과 수니 아줌마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길 바란다.
꿈조차 빼앗긴 채 불안한 삶을 견디고 있는
‘미등록이주아동·청소년’
방글라데시 소녀 ‘로지나 이슬람’은 다섯 살에 엄마를 따라 한국에 왔다. 아빠는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제도’로 이미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세 가족이 함께 살게 된 것이다. 한국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은 로지나를 ‘지나’라고 부른다. 졸지에 한국 성 ‘노’ 씨가 된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학교를 그만두면서 부모님들이 경험한 매서운 미등록이주민의 삶을 경험한다. ‘노, 지나’는 한국사회에서 거부당하는 로지나의 서글픈 삶을 의미한다.
로지나의 동생 ‘라주’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방글라데시인 부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영락없는 방글라데시인이지만 뱅골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한국 말을 하고,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밥을 먹고, 검정띠 태권소년이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혼란스럽다.
‘미등록이주민’은 ‘유효한 체류 자격이 없어 정부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외국인의 상태’를 말한다. 미등록이주아동·청소년의 정확한 수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로지나’처럼 국경을 넘으며 출입국에 기록이 남아 있는 아동·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나라’와 같이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국경을 통과하여 기록이 전혀 없는 경우도 있고, ‘라주’처럼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외국인등록을 하지 못해 공식적으로 기록된 적이 없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주민과 연대하는 민간단체들은 ‘18세 미만 미등록이주아동·청소년이 약 1~2만 명 정도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미등록이주아동·청소년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도,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사회적 지원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있을 미등록이주아동·청소년들이 안정적인 체류 자격을 가지고 인권을 보장받으며 성장하도록 지원해야 할 책임이 우리 사회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쟤지?”
“그 신문? 어, 맞네.”
“어우, 저 깜씨! 제 나라에나 가지 왜 여기서 저러고 다니냐.”
“네가 가라고 해, 그럼.”
“쟤 분명히 불법일 거야. 불법체류자. 우리 아빠가 그랬어.”
교문을 나서는데 모르는 오빠들이 뒤에서 내 귀에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분명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어서 뛰어가야지, 하는 마음과 달리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야, 야, 아프리카. 너희 나라로 가. 야, 아프리카! 너희 나라로 꺼지라고!”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못 들은 척 뛰었다.
- 붉은 악마 중에서
나무 아래쪽에 창문이 하나 있었다. 반지하 방에 난 그 창문은 마당 바닥에 거의 붙어 있는데, 내 기억에 그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창문을 열어 두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방 안을 다 들여다볼 것이다.
라일락이 작은 연보랏빛 꽃을 피우던 어느 날, 나는 그 창틀에 두 팔을 얹고 물끄러미 꽃을 바라보는 얼굴을 보았다. 표정 없는, 아이 얼굴이었다. 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 아이도 나를 바라보았다. 내 또래로 보였다. 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나는 학교 가는 길이었다는 것도 잊고 아이를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나라를 만났다.
“안녕. 나는 로지나야. 로, 지, 나. 로, 지, 나. 5학년이야.”
- 만남 중에서
아빠가 우리를 가리켜 자꾸 ‘불법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들어 주기 힘들었다. 엄마도 이 말을 배워서 자주 썼는데, 나는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빠, 세상에 불법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내가 태어나면 합법 사람입니까 불법 사람입니까, 물어보고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내가 볼멘소리를 하면 아빠는 그랬다.
“불법체류자라는 말이지. 왜, 그 말이 틀린 말이냐?”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지만, 듣기에는 별로 안 좋아요. 그리고 ‘불법체류자’랑 ‘불법 사람’은 또 다르잖아요. 세상에 자기 자신한테 불법 사람, 불법 사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 또한 자세히 알지 못하니까 무어라 설명하기 힘들었지만, 나는 우리에게 붙여진 ‘불법’이라는 딱지가 너무 무서웠다. 마치 내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람, 밟히고 무시당해도 되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느낌이었다.
- 귀환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이란주
1995년부터 지금까지 이주노동자, 이주민과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곁에서 보고 듣고 함께 겪으며 그 이야기를 기록해 왔다. 이주민을 포함한 모든 시민이 서로 존중하며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저자는 현재 부천 강남시장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아시아인권문화연대’에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말해요, 찬드라』 『아빠, 제발 잡히지 마』 『나의 미누 삼촌』 등이 있다.
목차
프롤로그 … 9
한국이라는 나라 … 14
엄마의 취업 … 23
자장면이 궁금해 … 27
911 사건 … 42
월드컵 비자 … 45
입학 … 52
붉은 악마 … 58
라주 … 62
단속 … 135
바다 여행 … 165
이슬람 교회 … 43
라마단 … 71
전화 결혼식 … 105
이별 … 135
만남 … 165
독립 기념일 행사 … 43
스키니진 … 71
귀환 … 105
나라 … 135
이크발 삼촌 … 165
훈디 사건 … 43
더러운 새끼 … 71
한국인 타령 … 105
취학 통지서 … 135
폭탄선언 … 165
라흐만 아저씨 … 43
사고 … 71
취업 … 105
엄마 … 135
장사 … 165
좌절 … 43
악바리 스무 살 … 71
나라의 연애 … 105
나쁜 년 … 135
수니 아줌마 … 165
실명 인증 … 43
투명 인간 … 71
결심 … 105
행복의 나라로 … 135
에필로그 … 165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