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새로운 번역과 ‘거짓말과 감정’이 추가된 개정증보판
감정과 표정 연구의 대가 폴 에크먼의 대표작
감정과 표정의 관계를 추적한 선구자 폴 에크먼《표정의 심리학》은 감정과 표정 연구의 대가인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먼의 대표작이다. 1만 개 이상의 얼굴 움직임을 분석해 표정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최초로 개발했으며, 거짓 표정 아래 감춘 감정이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미표정’을 분석해 거짓말 탐지 기법을 발전시킨 에크먼은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중 한 명이다. ‘거짓말과 감정’의 관계에 관한 새로운 장이 추가된 이 개정증보판은 풍부한 사진과 사례를 통해 대표적 감정들(슬픔과 고통, 분노, 놀람과 두려움, 혐오와 경멸, 즐거움)의 전형적인 표정은 물론이고, 각 감정을 느끼기 시작할 때나 억누를 때의 미세한 표정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읽는 실질적이고 유용한 가이드를 제공한다.
표정은 타고나는가 학습되는가?폴 에크먼이 표정 연구에 뛰어든 1950년대 말, 문화인류학의 영향력이 절정이던 학계는 ‘표정은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문화마다 다르다’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에크먼은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일본, 미국 등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동일한 사진을 보여준 후 감정을 판정해달라고 부탁했다. 대다수가 동일한 판정을 내렸는데, 이것은 표정이 인류 보편적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피실험자들이 TV나 영화 등을 통해 서양인의 표정과 감정의 의미를 배웠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TV도 잡지도 없는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문화의 사람들에게 같은 실험을 해보았다.
1967년과 1968년 파푸아뉴기니 고원지대의 원시부족 포레족을 대상으로 한 그의 두 차례 실험은 표정은 보편적이라는 다윈의 주장과 일치했다. 만일 표정이 학습될 필요가 있다면, 선천적 맹인은 정상인과 다른 표정을 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같은 감정을 경험할 때 동일한 표정을 짓는다. 많은 인류학자들이 발견한 반례(“많은 문화권의 사람들이 불행할 때 웃는다.”)에 대해서 에크먼은 ‘표시규칙’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즉 감정과 표정은 보편적이지만, 표정 관리의 규칙은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문화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는 타고난 표정이 나타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있으면 관리된 표정이 나타날 수 있다.
표정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다감정과 표정의 보편성을 확인한 에크먼은 1970년대 들어 표정을 측정하는 도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얼굴에 침을 꽂고 전기자극을 주어 근육을 수축시키기도 했으며, 그렇게 1만 개 이상의 표정을 특정하고, 얼굴 움직임을 해부학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1978년 그가 발표한 FACS를 활용하여 오늘날 전 세계 컴퓨터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을 통해 감정인식 자동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이 책은 슬픔과 고통, 분노, 놀람과 두려움, 혐오와 경멸 그리고 즐거운 감정의 표정들을 다룬다. 한때 에크먼은 이 감정들을 ‘기본 감정’이라 부르기도 했으나 이 책에서는 더 이상 그러한 표현을 고집하지 않는다. 에크먼은 죄책감, 수치심, 당혹감, 부러움 같은 다른 감정들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이들 감정에는 서로 구별할 수 있는 고유의 표정이 없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에크먼은 또한 슬픔이나 분노, 두려움 등을 ‘부정적 감정’이라 부르며 무조건 제거하려는 경향에 대해서 반대한다. 이러한 태도는 감정들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며, 부정적 감정이라고 해서 반드시 불쾌하게만 느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난 논쟁, 공포영화, 슬픈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2015년 에크먼이 과학자문을 맡은 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이 책이 다루는 주요 감정들을 기쁨이(즐거움), 슬픔이(슬픔과 고통), 버럭이(분노), 까칠이(혐오와 경멸), 소심이(놀람과 두려움)로 의인화하여, 슬픔이라는 부정적 감정을 무조건 막으려 할 게 아니라 포용함으로써 오히려 감정적으로 성숙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전한다.
대표적 감정들을 식별하는 법에크먼은 매 장마다 하나의 감정을 다루며 각 감정의 특성과 전형적 표정을 설명하고, 그 감정을 스스로 느껴볼 수 있는 연습방법을 제시하고, 타인의 얼굴에 나타날 경우 눈, 눈꺼풀, 눈썹, 입, 입술, 턱, 뺨 등에서 관찰할 수 있는 미세한 특징들을 딸 이브의 표정사진과 함께 분석한다. 그 표정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것이지만 어떤 감정이라고 판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 표정이 전형적(완전한) 표정이 아니라 ‘부분 표정’이거나 ‘약한 표정’이기 때문이다. 즉 감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거나 약하거나 억눌린 경우다. 에크먼은 ‘미표정’까지를 포함해 이 세 표정을 ‘미세 표정(subtle expression)’이라고 부르고 누구나 손쉽게 연습할 수 있는 SETT(미세표정훈련도구)를 홈페이지(www.paulekman.com)에서 제공하고 있다.
에크먼은 즐거운 감정을 이야기하며 ‘피에로(fiero)’ ‘나헤스(naches)’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 예로 드는데, 피에로는 자신의 성취에 느끼는 뿌듯함을 가리키는 이탈리아어이고, 나헤스는 자녀가 주는 기쁨이나 자랑스러움을 가리키는 이디시어이고, 샤덴프로이데는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독일어다. 에크먼은 감정이란 보편적이지만 그것을 가리키는 최적의 단어가 특정 언어에 없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며, 어떤 언어에 해당 단어가 없다면 감정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편협한 견해를 반박한다. 말이란 감정이 아니며, 단지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타인에 감정에 대응하는 법에크먼은 파푸아뉴기니 원주민들과 같이 생활하던 시절 겪었던 인상 깊은 일화를 소개한다. 어느 날 원주민 여인이 아픈 아기를 안고 도시 병원을 찾았지만 아기는 안타깝게도 죽고 말았다. 의사와 에크먼은 그녀를 원주민 마을까지 태워다주었다. 뒷좌석에서 내내 아기를 안고 조용히 무표정으로 앉아 있던 여인은 마을에 도착해서 친척과 친구들을 보자마자 마구 울며 괴로워했다. 의사는 차 안에서는 아무런 감정을 보이지 않다가 마을사람들을 만나자 의례적 슬픔을 드러낸 그녀를 가식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에크먼의 생각은 다르다. 그녀는 서양식 병원이라는 UFO와도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아기를 잃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내내 낯선 백인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에게 마을로 돌아온 것은 마치 화성에서 지구로 귀환한 것과 같았고, 아는 얼굴들을 보자 비로소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했다. “그 의사는 우리가 자신의 상실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고통을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에크먼은 타인의 미세한 슬픔, 분노, 두려움, 혐오와 경멸의 표정을 알아보는 법을 알려줄 뿐 아니라 거기에 대응하는 법, 그 정보를 이용하는 법도 알려준다. 가장 명심할 점은 함부로 내색하지 않는 것이다. 대화 상대에게 분노의 기미를 읽고서 “왜 화를 내지?”라고 직설적으로 묻는 것만큼 어리석은 반응은 없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공감해주길 바라는 만큼이나 자신의 감정이 들키기를 바라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것은 ‘오셀로의 오류’를 저지르기 쉽다. 오셀로가 부정을 의심하며 추궁하자 데스데모나는 슬픔과 두려움을 느낀다. 오셀로는 아내가 정부 카시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자신의 배신이 들켜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정작 그녀의 두려움은 질투심에 눈먼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 하기 때문이었고, 그녀의 슬픔은 카시오가 죽어버려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길이 사라진 데 대한 절망 때문이었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섣부른 예단을 경계해야 한다.
거짓말과 미표정에크먼은 FACS를 개발하던 중, 우울증 환자의 거짓말 사례를 듣게 된다. 환자는 퇴원 전 다 나았다며 밝게 인터뷰했지만 실은 집에 돌아가 자살할 생각이었다. 에크먼은 환자의 인터뷰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면밀히 검토하다가, 장래계획을 묻는 의사의 질문에 순간 멈칫하며 엄청난 고통의 표정이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에크먼은 거짓말을 할 때 1/25초에서 1/5초 사이에 지나가는 이런 매우 빠른 순간적 얼굴 움직임을 ‘미표정(微表情, micro expression)’이라고 명명하고, 그것이 억압된 감정이나 억제된 감정을 ‘누설’하는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한다.
에크먼은 이 개정증보판에 새로 추가한 ‘거짓말과 감정’의 장에서 은폐된 감정과 꾸며낸 표정을 탐지하는 다양한 기법을 소개하는데, 얼굴의 부자연스러운 비대칭과 불수의근의 운동 부재가 대표적이다. 후자의 유명한 예가 ‘뒤센 웃음’이다(100여 년 전 프랑스의 신경학자 뒤센 드 불로뉴가 발견했다). 진심으로 즐거워 웃을 때는 눈둘레근의 외측 부분이 움직이지만(따라서 눈가 주름이 생기고 눈이 가늘어지며 빰이 올라간다), 거짓 웃음에서는 눈썹과 눈두덩이가 밑으로 당겨지는 것 같은 미세한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는다.
에크먼은 이후 미표정 연구성과를 국가 안보를 위해 활용하는 방안에 주력해왔고, 그가 개발한 ‘진실성 평가 훈련 프로그램’이 FBI, CIA 등 여러 법집행기관들의 실무에서 이용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여행객들의 비자 발급 인터뷰를 담당하는 미 국무부 영사담당국(FSI)의 직원 교육, 공항 대기줄에서 수상한 거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불법 이민자, 밀수 범죄자, 테러리스트를 색출하는 미국 교통안전청(TSA)의 ‘관찰기술에 의한 승객검색(SPOT)’ 등이 대표적이다. 표정을 통한 거짓말 탐지 전문가로서 명성이 높아지자 그를 모델로 한 드라마 〈라이 투 미(Lie To Me)〉가 만들어져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
감정의 메커니즘과 주의 집중에크먼에 따르면, 감정은 우리의 안녕을 위협하는 사태를 24시간 감지하는 '자동평가기제'로, 갑작스런 교통사고의 순간처럼 우리의 생명이 걸린 중요한 사태에 신속하게 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자동평가기제는 두 가지 종류의 감정 유발요인(유인)을 경계하는데, 하나는 진화에 의해 각인된 보편적 ‘테마’이고 다른 하나는 후천적 학습에 의한 특수한 ‘변형’이다. (가령, 가해 위협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테마’고, 뉴기니 원주민이 멧돼지의 습격에, 현대 도시인이 강도의 습격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변형’이다.) 변형이 테마에서 멀어질수록 우리는 시간을 들여 일어난 사태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평가 과정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을 '반성적 평가'라 한다.
누구나 감정에 휘둘려 행동했다가 후회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감정적 행동을 어떻게 완화하거나 조절할 수 있을까? 에크먼은 2000년 달라이 라마를 만나 감정에 대해 토론하며 많은 통찰을 얻었다고 말한다. 불교의 수행은 파괴적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자동평가를 반성적 평가로 대체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동평가가 일어나는 찰나의 순간을 자각해야 하는데, 이를 불교에서는 ‘알아차림(正念, mindfulness)’이라 한다. 오랜 명상수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이런 자각과 대비하여 에크먼은 일반인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이 감정을 느끼고 있음을 자각하는 일종의 메타의식인 ‘주의 집중(attentiveness)’이다. 즉 감정이 일어난 직후 자신이 감정적임을 알아차리고 사건과 자신의 반응을 재평가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여러 감정들의 유인을 숙지하고 타인의 표정에 나타나는 대표적 신호들을 잘 관찰한다면 이러한 주의 집중이 비록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그는 말한다.
나는 지난 40년 동안 감정에 대해 연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