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한국 SF의 새로운 장을 여는 배명훈 작가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출간2009년 『타워』를 첫 책으로 출간하며 한국 SF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들었던 젊은 작가 배명훈은 어느덧 데뷔 15년 차에 접어든 중견 작가로 거듭났다. 그동안 그는 왕성한 활동을 이어감으로써 자신이 펼쳐놓은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며 자신을 향한 기대에 화답했다. 이제 배명훈의 존재는 한국 SF문학의 이정표나 다름없다. 많은 독자가 배명훈을 시작으로 한국 SF문학에 입문하며, 또 작가 지망생들은 배명훈을 읽으며 작품을 쓴다.
배명훈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팽창과 성장을 거듭하며, 언제나 예상을 뒤엎는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왔다. 지상 최대의 타워형 도시 국가 빈스토크를 통해 사회의 모습을 풍자한 『타워』를 시작으로, 우주에서 띄워보내는 사랑의 말을 담았던 『청혼』, 우주 시민들의 휴머니즘적 연대를 보여주었던 『첫숨』, ‘고고심령학’이란 학문을 창조하며 독자들에게 서늘한 브레인 게임을 걸어왔던 『고고심령학자』 등, 배명훈은 늘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거침없이 나아갔고, 그때마다 뛰어난 문학성 성취를 거두며 한국 SF의 영역을 확장해놓았다.
그리고 2020년, 그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빙글빙글 우주군』이 우리에게 도착했다. 배명훈의 작품이 언제나 그랬듯,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축조된 새로운 세계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르고, 화성으로 이동과 이주가 가능해진 소설 속 세계에는 바로 “우주군”이 존재한다.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른 세계에는 지구궤도를 수호하는 우주군이 존재한다! “한 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지만,
그해 여름 하늘에는 태양이 두 개였다.
게다가 그중 하나는 팩맨 모양을 하고 있었다.”
10월 중순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2도까지 올라가는 이상기후가 계속되는 지구. 그것은 한 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태양 때문이다. 우리가 원래 알고 있는 태양이 하나, 그리고 팩맨 혹은 한 조각이 빈 피자 모양의 태양이 또 하나. 문제는 바로 그 두 번째 태양이었다. 우주 공간으로 흩어지던 오리지널 태양광의 극히 일부를 그 두 번째 태양이 지구 쪽으로 반사하면서 여름이 이토록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그 크기를 점점 키워가고 있는 그 두 번째 태양은 전 세계적인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땅도 바다도 하늘도 아닌, 대기권 밖의 일은 우주군의 영역이다.
물론 두 번째 태양을 향한 공격은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우주군의 몫이지만, 한국우주군은 이 기회에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길 기대한다. 그때, 청와대에서 그 계기를 마련할 하나의 방법으로 우주 공간으로 아무거나 뭐라도 쏘라는 제안을 한다. 실제로 팩맨의 근처에도 가 닿지 못하겠지만, 한국우주군이 팩맨을 공격하기 위해 연합우주군을 도와 미사일을 발사한 것처럼 보이게 말이다. 다소 황당한 이 제안에 우주군의 참모총장 구예민은 당황하지 않고 미리 준비해둔 것이라도 있는 듯 아무도 짐작 못 할 무언가를 쏘아올린다.
이렇게 팩맨 태양으로 우주군이 떠들썩할 때, 한편에서는 화성 정착지의 분위기가 뭔가 불안하다. 비밀리에 화성에서 지구로 귀순 요청을 해오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란군 잔당이 척결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야심 가득한 화성총독 이종로 장군의 지구 귀환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구의 우주군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갖게 한다.
문명의 상식이 아닌 정글의 상식이 지배하는 화성,
그곳의 분위기가 수상하다!소설 속 화성은 이제 원한다면 언제고 이주할 수 있고 지구와 화상통화로 얼마든지 통신할 수 있으며, 특급연락선을 통해 오고 가는 일도 가능한 곳이다. 그러나 지구와 직접 통신할 때면 최소 6분에서 최대 47분의 통신 딜레이가 발생하고 있어, 일상적인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의 어려움은, 어쩌면 두 행성을 영영 화합할 수 없는 세계로 만들지 모른다.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서, 그러한 지구와 화성의 이질성은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난다. 과거 지구의 통신이 끊기는 외합절 기간에 화성에서 일어났던 반란 사건의 진상이 하나둘 밝혀지고, 여기에 관계된 사람들이 등장하며 지구와 화성의 대립 구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소설은 결말에 이르러 ‘정글의 상식’이 통용된다고 하는 화성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과, ‘문명의 상식’을 지키며 세계를 수호하려는 사람들 간의 강렬한 대비를 보여주며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긴다. SF다우면서도 동시에 휴머니즘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독립적이고 다채로운 캐릭터들의 힘,
데뷔 15년 차 배명훈의 새로운 시도! “뭐 같아 보여요, 우주군?”
“엄청 똑똑한 사람들과 멍청한 시스템. 그래서 매일매일이 시트콤인 군대?”
『빙글빙글 우주군』은 “우주군”이라는 군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을 다루다 보니, 그만큼 등장인물도 많다. 주요하게 다루어지는 등장인물만 무려 아홉 명이며, 이들 이외에도 수십 명의 인물이 등장해 우주군 조직의 면면을 보여준다. 특기할 점은 군대를 다루었던 기존의 소설들과 달리, 『빙글빙글 우주군』의 서사를 이끄는 강하고 독립적인 캐릭터들은 대부분 여성이란 점이다. 우주군의 최고 지휘자인 참모총장 구예민과 에이스 조종사 한섬민 등 기존의 서사에서 주로 남성들이 담당하던 역할을 여성 캐릭터들이 담당하며, 화성과의 연락을 담당하는 김은경, 발사기지에서 탐정 역할을 떠맡게 되는 박수진, 우주군의 감초 역할을 하는 서가을 등도 모두 여성 캐릭터다. 또한 여기에 인공위성의 생김새를 분석하는 엄종현, 때로는 변사로 변신하는 박국영, 아이돌 가수였다가 우주군으로 입대한 신병 이자운, 냉정한 화성총독 이종로 등의 남성 캐릭터들이 등장해 소설을 다채롭게 만든다. 그리고 이들의 케미스트리는 소설의 읽는 주요한 재미다.
배명훈 작가는 특유의 위트와 정감 있는 문장으로 이들의 일상을 그려낸다.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서술자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문체를 고수하는데, 작가는 이 같은 문체를 다듬는 데에만 무려 2년이란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자연히 알게 된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인물들에게 친밀감을 갖게 하는 데에 더할 나위 없기 때문이다. 서술자가 물러난 만큼 독자들이 자유롭게 소설을 이해할 여지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다.
하늘 높이 떠오른 두 개의 태양, 화성과 지구의 대립, 지구에 닥쳐온 뜻밖의 위협 등이 소설을 전진시키는 큰 줄기라면, 그 마디마디에는 이들의 사소하고 엉뚱하고 정감 넘치는, 소설 속 표현에 따르면 “매일매일이 시트콤인 군대”인 우주군의 사랑스러운 일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상을 지켜보다 보면,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온갖 것들로부터 인류를 지켜내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우주군의 고군분투를 응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팩맨이냐 피자냐가 아니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 두 번째 태양이, 우주로 흩어지던 오리지널 태양광의 극히 일부를 잡아채서 지구 쪽으로 반사해버린다는 사실이었다. 그 일의 효과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하나를 꼽자면 이런 것이었다. 10월 23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2도라는 것.
그다음 순간, 은박지가 확 구겨졌다. 임계점을 넘은 듯한 힘에 의해 움찔움찔하던 은박지가 한순간 갑자기 접혀버렸다. 복잡한 모양은 아니었지만, 네 개의 모서리가 다리 같은 모양으로 뾰족하게 접힌 채 아래를 향했다. 단순하지만 작은 거미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