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묻기 전엔 몰랐다, 나도 당신도
몇 년 전 ‘콩고 왕자’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콩고 출신 라비 욤비와 그의 동생들을 인터뷰한 동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카메라 뒤편에서 PD가 아이들에게 묻는다.
“흑형이라는 말 있잖아. 그 말은 별로 안 좋은 느낌이야?”
그러자 중학생 조나단 욤비가 바로 답한다.
“어~, 약간. 약간 조센징?”
당시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케이블 방송 등에서 ‘흑형’이라는 단어가 유머러스하게 소비되고 있었다. 흑인에게 나름 호감과 친근함을 표현하려는 뜻에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듯했다. 그런데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흑인 청소년은 그 말이 한국 사람이 ‘조센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일 것이라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대답에 충격을 받았다.
선한 사람들의 심리, 우리의 맹점
“역시 여자분이 하니까 일 처리가 꼼꼼하네요.”
“아무래도 남자라 그런지 힘이 좋네.”
“달리기는 흑인이 최고지. 근육이 다르잖아.”
살다 보면 흔하게 듣게 되는 이런 말들을 심리학자들은 ‘온정적 차별’이라고 부른다. 대놓고 부정적인 말을 들었을 때보다 실제 상황에서 지적하기가 더 어렵다. 발화자가 ‘좋은 뜻’으로 한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특정 정체성에 고정된 배역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별이다.
부적절한 단어 사용이든 온정적 차별이든 ‘좋은 사람’들도 때로 실수를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괜찮은 것은 아니다. 그런 말은 사석에서든 농담으로든 오가는 순간 사회적 차별을 강화한다. 상황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면, 그럴듯한 변명보다는 ‘그렇게 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할 과학
돌리 추그는 선한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하는 사회 과학자다. 어느 날 그는 뉴욕대학에서 제자들이 주최한 ‘지지자 주간’에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편견에 대한 연구들을 읽고 있었다. 더 나은 지지자가 되는 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살펴보니 유용하고 놀랍고 의미 있는 연구가 학술지 안에 얼마나 많이 묻혀 있는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책이 너무 부족했다는 사실을.
살을 빼고 싶거나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위해 증거 중심의 연구로 무장한 책은 무수히 많았다. 반면 소외 집단을 향한 편견에 맞서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증거 중심의 연구를 소개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추그는 자신이 찾아낸 자료들과 지금껏 만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으면 사람들이 더 능숙하게 신념을 구축하는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힘을 실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를 집필했다.
‘빌리버’에서 ‘빌더’로, 성장 4스텝
총 4부 11장으로 구성된 <상처 줄 생각은 없었어>는 라즐로 복의 추천사로 시작된다. Humu의 공동설립자이자 CEO인 그는 <구글의 아침은 자유로 시작된다>의 저자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경영인이다. 그는 한 콘퍼런스에서 추그의 강연을 듣고 자신이 얼마나 놀라고 또 많은 가능성을 발견했는지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준 추그와 함께라면 우리가 좋은 가치를 ‘그저 믿는 사람(빌리버)에서 사회에 구축하는 사람(빌더)’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말한다.
1부 구축하는 사람은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동한다
추그는 편견에 맞서 싸우는 첫 번째 방법으로 성장형 사고방식을 뽑는다. ‘선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 오히려 독이 될 때를 예로 들며, ‘내가 틀렸다’가 아니라 ‘과거와 지금의 내 행동이 틀렸더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1장 ‘누구나 비틀거린다’에서는 그런 태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프로젝트 그린라이트> 제작자와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재능은 어디에서든 나올 수 있다’라는 믿음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지만 결국에는 또다시 백인 남성의 우승으로 끝난 4시즌에 대해 스태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여준다. 그러면서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순간들, 가장 곤란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는 상황에서 성장형 사고방식을 발휘하여 얻게 되는 이득을 밝힌다. 2장에서는 실리콘 밸리의 영향력 있는 인물이자 성평등을 지향하는 한 백인 남성이 자신이 바랐던 삶과 실제 삶과 차이를 극명하게 깨닫게 된 사건을 통해 선한 개인의 무의식적 편견이 불러오는 폐해를 알린다. 3장에서는 고단한 삶 효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풍과 역풍, 자수성가 서사와 선택적 애국심 등을 통해 존재하지도 않는 능력주의가 강화되는 과정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개인의 편견에서 시작한 논의를 시스템에 감춰진 집단적 특권까지로 넓혀서 전개한다.
2부 구축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상적 특권을 바로 보고 활용한다
2부에서는 익숙한 단어의 조합이지만 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상적 특권’이라는 개념이 주요 키워드다. 일상적 특권이란 피부가 하얗거나 이성애자이거나 남자라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평생 누리게 되는 좋은 대우를 말한다. 이는 생활 전반에 평생토록 영향을 끼치지만 특권을 누리는 본인은 깨닫기 어려운 힘이다. 4장 ‘보이지 않을 때도 아는 법’에서는 어두운 피부색 때문에 여성 임원들의 모임에서 완전하게 무시당한 한 여성의 예시를 들며 우리가 애써 의식하지 않으면 평생 보지 못할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러고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제한된 인식과 이미 아는 이야기만 울리는 메아리 방에서 벗어나 더 많이, 정중하게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5장에서는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일상적 특권을 활용하는 법에 대해, 그것이 가질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력에 대해 다양한 연구 결과와 이야기를 통해 증명하고, 우리가 일터와 온라인상에서 어떻게 차별에 맞설 수 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3부 구축하는 사람은 의도적 인식을 택한다
3부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의도적 인식’은 ‘의도적 무지’의 반대편에 있는 개념이다. 의도적 무지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때 위협이 될 수 있는 정보는 모르는 척하겠다는 개인의 선택을 뜻하는 법률 용어에서 비롯되었다. 일상에서 사용될 경우에는 마음이 불편해지는 정보를 모르는 척하는 개인의 선택을 뜻한다. 6장에서는 베스트셀러 작가 조디가 스스로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생각이 너무나 편협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의도적 인식을 택하며 겪게 되는 변화를 볼 수 있다. ‘어쨌든 눈을 크게 떠라’라는 장 제목처럼 시작점은 모두 다르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눈을 감아선 안 된다고, 그 부단한 노력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자신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추그는 말한다. 7장에서는 선의로 하는 행동 중에서도 특히 위험한 결과를 불러오는 네 가지를 경고하는데 구원자 유형, 연민 유형, 다름 외면 유형, 배역 고정화 유형이 그것이다.
4부 구축하는 사람은 관여한다
4부는 제임스 볼드윈의 말을 빌려 시작한다. “당신이 하지 않았고, 나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는 사람이고 이 나라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당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8장에서는 추그 자신이 직접 경험한 포용의 모습을 예로 들며 진정한 포용이 어떤 모습인지, 삶의 순간순간에서 어떤 태도로 타인을 대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9장에서는 매체 선택, 양육 방식, 사회 모임, 소셜 미디어, 직장 등에서 드러나는 서사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얼마나 많은 규정을 만들어내는지 짚는다. 그러면서 우리가 매일 관여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의 순간들을 재조명한다. 10장 ‘나만의 방식으로 맞서라’는 기꺼이, 그리고 부지런히 개입하되 개입의 방식은 반드시 한 가지 방법은 아님을 강조한다. 또한 꼭 정면에서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님을, 각자의 방식으로 나아가되 스스로에게 위협이 될 상황은 피하는 요령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11장에서는 변화를 위해 가장 앞에 서 있는 이들에게 의미 있는 지지를 보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지지자로서 묻고 배우되 앞에 선 이들에게 강박을 주지 말기를 당부하고, 우리에게 그들이 필요한 만큼 그들에겐 우리가 필요함을 재차 강조한다. 지지자로서 우리가 하는 행동의 의미, 평생 지지자로 살기 위해 갖춰야 할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COVID-19 펜데믹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집단과 개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또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분열된 사회에 살고 있다. 확실해 보였던 것들이 불확실해졌고 어떤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지, 순식간에 휘청거리는 사회에서 내가 놓쳐 버린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촛불을 경험했다. 포기하지 않고 맞선다면 연대할 수 있고,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 책은 더 나아지고자 노력해 온 모두에 대한 증거이자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한 실용적인 참고서다. 세상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연구와 실험이 이루어지고, 콘퍼런스가 열리며, 매일같이 작지만 중요한 개인적인 도전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듣다 보면 발버둥치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또한 “배움과 자기 성장이 얼마나 첨예한 정치적인 이슈”인지 그리고 세상의 분열을 만드는 편견과 차별을 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배울 수 있다.
“그래, 좀 더 다양해 보이네. 이렇게 말하기는 정말 쉽습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브리트니가 의문했다.
브리트니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다. 일례로 나는 에드워드 창과 캐서린 밀크먼, 모듀프 아키놀라와 함께 기업 이사회의 성비 균형을 조사한 바 있다. 기업 이사회는 젠더 다양성을 높이라는 압박과 감시를 받는데, 분석 결과 놀랄 것도 없이 대다수 이사회에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공교롭게도 여성이 정확히 두 명씩 있는 이사회가 꽤 많았다는 것이다.
몇 번의 조사 끝에 이사회에서 형식적으로 여성을 한 명만 두던 관습이 이제 여성을 두 명씩 두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업 이사회는 실제 성비 균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 규범이라는 렌즈를 통해 젠더 다양성을 규정하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 이사회에 전과 달리 여성 두 명을 두는 것이 사회 규범과 어울리는 셈이다. 브리트니가 짐작했듯 ‘다양해 보인다’고 해서 다양성을 이루었다는 뜻은 아니다.
안타깝지만 무의식적 편견을 손쉽게 제거하는 방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나의 경우, 편견을 고치기 위해 수업 시간에 남학생들을 연이어 시키지 않기로 했다. 가끔 학생들에게 누가 손을 계속 들고 있었는데 내가 못 보고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묻는다. 내가 그렇게 지나친 학생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직장과 세계에 속한 개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무의식적 편견이 자신의 믿음과 반대되는 시스템을 어떻게 영속시키는지 살펴볼 수 있다.
많은 경우 무의식적 편견은 우리가 속한 문화와 법, 역사, 조직 안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드러난다. 흔히 우리는 시스템이 자기 자신보다 크며, 자신과 분리된 개별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스템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지 몰라도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적 편견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문제의 일부가 되는지 살펴보면서 해결책의 일부가 되기 위한 준비 단계로 넘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