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종이 동물원』의 작가 켄 리우의 한국판 오리지널 SF 단편선
데뷔작을 포함하여 함께 엮인 적 없는 단편 중 12편을 선별하여 수록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SF 환상문학 작가 켄 리우의 두 번째 단편 선집이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권위의 휴고 상, 네뷸러 상, 세계환상문학상을 40년만에 첫 동시 수상한 대표작 「종이 동물원」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한 켄 리우의 미출간 단편 중 엄선하여 엮은 한국판 단편집이다. 『종이 동물원』으로 제13회 유영 번역상을 수상한 장성주 씨가 엮고, 저자 켄 리우가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머리말을 따로 수록하였다. 켄 리우의 데뷔작인 「카르타고의 장미」를 필두로, 스페인 권위의 상 이그노투스 상 수상작 「사랑의 알고리즘」, 한글에서 영감을 얻은 「매듭 묶기」, 저자가 특별히 아끼는 시리즈인 '싱귤래리티 3부작' 등 총 12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작품들은 모두 시간과 공간, 차원을 초월한 형태의 다양한 가족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각기 죽음과 영생, 인종과 문화의 충돌 등 동시대 현대인들이 가진 여러 관심사를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켄 리우의 한국판 단편집은 두 권이 더 준비 중이며,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와 『은낭전』이 내년 출간될 예정이다.
"제가 쓴 책을 펼쳐 주신 한국의 모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 언어, 문화를 넘어 쓰는 이와 읽는 이가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비로소 가장 인간다워진다고, 저는 느낍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짓는 종(種)이니까요." -저자 머리말 중
지난날의 지혜가 설득력을 잃은 시대에 인간으로 산다는 건 무엇인가?
표제작이 포함된 '싱귤래리티 3부작'은 인간의 정신을 데이터 세계로 보내고 육신을 버리게 된 인류의 변모 과정을 풍부한 저자의 상상력을 담아 그리고 있다. 이 '싱귤래리티'로 구현된 세계에서의 디지털 인류는 영생은 물론이고, 육신의 삶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생활과 가족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새로운 미래 세계를 펼쳐보인다. 인간의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를 하나의 포물선으로 묘사하는 첫 작품 「호」 역시 열여섯 살에 미혼모가 된 주인공이 영원한 젊음과 영생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저자인 켄 리우가 머리말을 통해 "지난날의 지혜가 설득력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전기, 인터넷, 스마트폰처럼 세상을 뒤바꿀 혁신적인 변화의 순간마다 갖가지 선택에 직면하게 되었던 개인의 모습을 투영함과 동시에, 그 안에서 그간 지켜왔던 전통과 정체성, 문화, 가족, 사랑 같은 것들의 가치는 어떻게 바뀌어 왔고 또 앞으로 새로운 변화의 순간마다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켄 리우는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맏아들을 낳았을 때 레나 오젠은 열여섯 살이었다. 그로부터 100년 후, 오젠의 막내딸이 태어났다." -본문 중
"수록작 가운데 굳이 나누자면 SF로 분류될 이야기들은 육체라는 존재 양식만이 아니라 시공마저도 초월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 초월을 이룬 후에도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종의 본성이라고, 아마도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옮긴이의 말 중
작품마다 녹아있는 가족에 대한, 부모와 자식에 대한 깊이있는 시선.
「종이 동물원」이 이민자 세대인 부모와 자식간의 이야기로 뭉클함을 전했다면, 이번 단편집에서는 본격적으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고민을 담고 있다. 열여섯 살에 자신의 자유를 위해 자식을 버린 부모가, 젊음을 유지한 채로 늙어버린 자식을 다시 만나는 「호」, 자신에게 남은 고작 2년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딸아이의 전 성장과정을 7년 주기로 지켜보는 「내 어머니의 기억」, 육체적 출산이 아닌 정신의 분배를 통해 아이가 탄생하고 성장하는 디지털 세계의 가족을 보여주는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간병인 대신 간병 로봇을 통해 화면으로 어머니를 간병하고 임종을 지켜보는 「곁」, 자식의 성장과 독립, 그리고 남겨지게 된 부모의 모습이 인상적인 「뒤에 남은 사람들」 등 켄 리우가 펼쳐보이는 가족의 이야기는 시간과 차원을 초월하여 저마다의 개성을 담아낸다. 특히 비슷한 문화권의 특성상 켄 리우의 작품은 한국 독자들에게 그 어느 SF 작가보다 정서적 공감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당신은 밤마다 어머니를 면회하러 간다. 로봇을 조종하는 솜씨가 갈수록 좋아져서 병원 측이 제어 권한을 더 많이 허락한다. 더 빠르고 더 자유로이 움직이도록. 당신은 기저귀 가는 법, 몸 닦는 법, 혹시 얼굴 근육이 움직일까 하는 마음에 침대 곁에 몇 시간씩 앉아 어머니 얼굴을 관찰하는 법 등을 배운다.
이 로봇은 죄책감을 덜어 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너무 멀리 살고 핑곗거리도 너무 많은 이들을 위하여. 어머니 곁의 당신이 본질적으로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기술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인종 차별과 문화 충돌, 이민자 세대의 아픔을 담다
「모든 맛을 한 그릇에」는 원래 켄 리우의 첫 단편집 『종이 동물원』에 수록되었으나, 국내 판본에서는 이번 단편집에 포함되었다. 미국의 19세기 말엽 골드러시 시기에 사금을 채취하는 중국인들과 이를 경멸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서부인을 담아낸 작품으로서, 당시 서부에 광풍처럼 불던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1882년 통과된 '중국인 배제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에필로그에 이 배경에 대해 상세히 기술함으로써 집필 의도를 명확히하고 있다. 「달을 향하여」 역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땅을 밟은 중국 이민자의 현실적 이야기에 손오공이라는 비현실적 속 존재를 엮어 풀어낸다. 특히 중국 현실에 대한 비판 내용을 담고 있어, 『종이 동물원』의 수록작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처럼 중국에서 번역 출간되지 못했다. 『매듭 묶기』는 고립된 동양의 한 순진한 마을을 무대로, 갑자기 찾아온 서구인에 의해 마을이 경제적 침탈을 당하는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으며, 『심신오행』은 스페이스 오페라의 형식을 띠지만, 과거의 관습을 그대로 이어 내려오는 이들과 첨단 의료 혜택을 받는 이들의 문화적 충돌을 다루고 있다. 네 작품 모두 외세침략과 이민자 세대 등을 겪어온 한국민에게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이며, 이러한 작품은 중국계 미국인인 켄 리우 본인의 정체성 때문에 더 특별해진다.
“너는 저 회화나무를 처음으로 올라온 인간이 아니야. 마지막도 아닐 테고. 자기 이야기를 남한테 들려주는 인간도 네가 처음은 아니지, 물론 마지막일 리도 없고. 자, 달에 온 걸 환영한다. 이곳은 사기꾼과 재담꾼, 협잡꾼, 몽상가, 거짓말쟁이들의 땅이야. 달이 이토록 멋진 곳이 된 건 바로 너 같은 자들 덕분이라고.”
사건 사고가 뜸한 여름 한복판의 나날, 기삿감이 떨어진 신참 기자들은 우리 집을 찾곤 한다.
이제 우리 인간들은 영원히 아는 사이로 지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