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여기 사람이 있어요!”
나답게 살기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어떤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양지가 있다면 응달도 있다.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의 시선 밖에서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불야성을 이루던, 그래서 저걸 누가 치우나 싶은 거리는 아침 출근길에 보면 누군가에 의해 깨끗해져 있다. 가족이 인수를 거부한 무연고자의 시신을 거두어 고이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도 있다.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서울에서 강릉을 하루 만에 왕복하는 사람도 있고, 위험한 고강도 노동현장에서 자기 몸을 던져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의 저자이자 기자인 남형도는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우리 시선에서 벗어나 있지만, 우리가 알아야 하고 서로의 삶을 응원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2018년부터 ‘남기자의 체헐리즘’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다소 엉뚱한 기획이었다. 꼭 체험하지 않더라도 르포 형식의 취재 기사도 가능한데, 왜 직접 겪어보는지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하지만 저자는 당사자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해서 직접 그 일을 해보거나, 당사자의 입장이 되어보고 싶었다. 공감을 통한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말하기는 태산 같은 일이기에, 비록 괴짜로 보일지언정 직접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3만 명의 구독자,
그의 글에는 따뜻함이 있다현재는 3만 명에 이르는 구독자들이 그의 글을 응원하며 기다리고 있다. 더 나아가 특정 체험을 해달라고 요청하는 독자도 생겼다. 그는 첨예한 날을 세우지 않고도 여성의 이야기를, 가난의 이야기를, 노동의 이야기를, 취업의 이야기를 소리 높여 말한다.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의 고단함을 통해 육아의 강도를 이야기하고, 못 타는 오토바이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따라다니며 사망이 계속되는 집배원의 노동현실을 보여준다. 노인이 겪는 사회적 시선과 육체적인 불편함을 알고 싶어서 노인 분장을 한 채 홍대로, 탑골공원으로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고, 시각장애인의 고충을 제대로 전하고자 눈을 감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를 계속 놓치고 길에서 오들오들 떨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갖은 고생 끝에 그가 내놓는 ‘둥근 주장’에 우리는 시나브로 감화되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의 글 저변에 흐르는 ‘따뜻함’과 ‘존중’ 그리고 무거운 주제에 마치 양념처럼 글맛을 더하는 ‘위트’ 덕분이다.
‘아이 없는 남자가 육아를 해보았습니다’
‘홀로 죽은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보았습니다’
‘죽을 뻔한 강아지를 구조해보았습니다’《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은 3년간 연재한 기사 ‘남기자의 체헐리즘’ 가운데 30편의 글을 가려 뽑아 주제별로 정리했다.
1장 ‘우리는 위로받을 이유가 있다’에는 여성과 노인, 교육과 취업에 관련한 체험 이야기를 담았다. 여성 억압의 상징이 된 ‘브래지어’가 얼마나 불편한지 알고 싶어 몸에 맞는 ‘브래지어’를 찾는 험난한 여정을 펼치고, 몸을 브래지어에 욱여넣고 당당하게 사무실로 향한다. 하지만 남자인 저자에게 브라는 힘든 물건일 터, 하필 여름이라 더 했다.
식사 후 체할 것 같아 청계천으로 향했다. 그러자 더위가 고역이었다. 섭씨 32도, 체감온도는 더 높았다. 걸은 지 5분 만에 브라에 땀이 찼다. 15분이 지나니 브라 끈과 와이어 부분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가슴골 사이에선 땀이 흘렀다. 겨울이면 따뜻하기라도 할 텐데, 여름엔 대책이 없었다. 패드 밑을 잠깐 들었더니 시원했다. 땡볕에 브라가 불타는 느낌이었다.(16~17쪽)
사흘의 브라 체험 후 저자는 딸을 낳으면 “브라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거야. 그러니 네가 선택해도 돼. 그건 맞고 틀린 게 아니야. 그저 편한 대로 했으면 좋겠어”(21쪽)라고 이야기하리라 다짐한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누구냐고 묻는 아이에게 천연덕스럽게 ‘전학생’이라고 우긴다. 광명시에 있는 초등학교와 파주시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도시와 비도시 아이들의 조금 다른 환경을 비교 체험해보며 “적어도 ‘국민학교’ 다닐 땐, 이정도는 아니었다”(68쪽)고 한탄한다.
선생님은 “요즘 학교 숙제도 잘 안 내준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학교에 와서라도 마음껏 놀았으면 해서”라고 한다. 그 말처럼 애들은 학교에서 소중한 시간을 놓칠세라 열심히 놀았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을 먹은 뒤에도. 그리고 방과 후엔 학원에 간다. 먼 미래의 교육 과정까지 배운단다. 초등학교 5학년이 고등학교 수학까지 습득하는 게 현실이다.(68~69쪽)
2장 ‘시선 끝에 그들이 있었다’에는 유기견 구조, 폐지 수집 동행뿐만 아니라 집배원, 청소부, 소방관 등 삶의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빼곡히 담았다. 동네에서 우연히 폐지 줍는 할머니를 도우며 폐지 줍는 노인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저자는, 몸이 불편한 최진철씨와 함께 폐지를 주우며 경제적 약자의 삶에 대한 생각에 골몰한다.
돌아오는 길에 든 생각들. 그가 폐지를 줍는 건, 그의 잘못이 아니라 정말 우연히 그렇게 됐다는 것. 인생이란 게 얄궂어서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이들을 외계에 사는, 별나라 사람쯤으로 볼 게 아니라 이웃으로 보면 좋겠다는 것. 관심을 두는 것만으로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145쪽)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에는 소방관 체험을 하러 나서고, 한겨울에는 홀로 죽은 무연고자의 공영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도 안산에 간다.
어설프게나마 소방관이 돼보고 싶었다. 그들 가장 가까이에서 똑같은 하루를 보내려 했다. 취객에게 맞아 숨지고, 화재 현장에서 끝내 나오지 못하고, 훈련을 받고 집에 가 영영 잠들어버리는 이들. 오죽하면 ‘소방관’이라고 검색하면 ‘순직’이 자동으로 완성될까. 그럼에도 숭고한 삶이라며 치켜세울 뿐 바뀌는 것 하나 없는 현실에서 동분서주하는 이들이 안타까웠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 속에서 화염에 뛰어드는 건 어떤 힘듦일까.(187쪽)
이름은 ‘이순식’이라고 했다. 고향은 전남 완도이고, 서울에 올라와 살다가 지난달 13일, 사고로 숨졌다고 했다. ‘추락사’였다. 다리가 부러졌다고 했다. (…) 어떤 삶을 살았는진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했다. 고단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혹은 꿈을 위해 고향을 떠났으리라. 그리고 험한 삶을 살다가 타지에서 이렇게 홀로 죽음을 맞았을 거라고. 고향엔 가족도 없다고 했다.(201쪽)
장례를 마치고 나오면서도 저자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피붙이의 죽음을 외면하는 가족도 탓하지 않는다. 다만 “죽음은,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권리라고. 그건 그가 누구이든 최소한은 지켜줘야 한다고”(212쪽) 말하며 타인의 큰 고통보다 자기 손톱 밑 가시를 더 아파하는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한다.
3장 ‘나답게 살고 있습니까’에서는 시선을 외부에서 나에게로 돌린다. 타인을 진정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를 사랑해야 하고, 타인을 알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야 할 터. 지금이 행복해야 오늘이 행복하고, 오늘이 행복해야 평생이 행복하다. 오늘 하루 행복하기 위해 저자는 수많은 ‘처음’을 시도해본다. 첫 시도는 일부러 거절당하기다. 유리멘탈을 극복하고 거절에 무디어지는 순간까지, 50번 거절당하기를 연습해본다.
거절당하기 초반엔 멘탈(정신)이 비스킷처럼 부서졌다.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힘차게, 또 멘트를 단단히 준비해 부탁을 했다. 하지만 거절 한마디에 그대로 무너졌다. ‘당연히 그렇지’란 생각을 하다가도, 거절 한 번이 마음을 후벼팠다. 상처도 받았다. (…) 하지만 포기하기 싫었다. 계속해서 시도했다. 빨리 50번을 채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러다 보니, 거절이 점차 익숙해졌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부탁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점차 줄었다.(244~245쪽)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해서 회사도 땡땡이치고 평일 한낮의 여유를 맘껏 즐긴다. 심지어 부장에게 거짓말까지 하고. 샤워를 정성스럽게 하고 집을 나서 장모님 댁의 반려견 똘이와 동네 고양이도 만나고, 백반집에서 아침도 맛있게 먹고 영화도 보고, 모교 캠퍼스에서 글도 쓰고 한낮 정자에서 책도 읽는다. 직장인들의 로망인 ‘평일 한낮의 일탈’이 꿀맛이다.
마지막 체험으로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어 ‘사랑한다’고 말한다. 마흔이 코앞인 한국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이 얼마나 꺼내기 어려운 말인지 알기에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을 함께하게 된다.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부터 30년 지기 친구까지.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한 번의 경험으로 모든 것을 제대로 경험했다고 할 순 없다. 많은 것을 알았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저자는 진심을 다해서 체험해보고 본인이 알게 된 만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산이 높으면 산에 가려 그림자도 길다. 우리 사회가 경제, 정치, 문화 등 여러 면에서 괄목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초고속 성장 속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잊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남기자의 체험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남기자의 체헐리즘’은 계속된다.
체험한 지 사흘 만에, 브라를 결국 벗었다. 육체적인 불편함보다 더 힘든 건, 버거운 시선이었다. 누가 뭐라 안 했어도 그것만으로 무언의 족쇄였다. 그래서 여성들도 쉬이 벗을 수 없었겠구나, 절실히 깨닫게 됐다.
배달 온 짜장면을 먹으며 전씨 이야길 들었다. ‘엄마로 사는 삶’이 뭔지. 혼자 뭔가 결정해야 하고, 이 선택을 잘한 걸까 고민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항상 불안하고 마음 졸이는 삶. 짧게나마 경험한 시간 덕분에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육아에서 가장 편한 날은 어제”란 명언도 들려줬다.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눈 뜨면 더 힘든 게 기다리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