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가장 빛나는 한때와 마지막 포즈
청년부터 노년까지 다채로운 생의 모습들보스토크 매거진 이번호에는 청년부터 노년까지 삶의 다양한 순간들이 깃든 초상들이 펼쳐진다. 사진은 언제나 ‘젊음과 늙음’이라는 주제를 관심을 가지고 다뤄왔다. 사람들 또한 사진 안에 담긴 ‘젊음과 늙음’을 탐내고 궁금해 했다. 사진도 사람도 가장 빛나는 한때를 놓치고 싶지 않고, 생의 마지막 포즈에 미련을 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진은 우리의 생애주기마다 깃들고, 우리는 그 사진을 닮아간다.
당신만의 생기어린 눈빛과 메마른 주름
사진이 ‘젊음과 늙음’을 계속 탐색하는 이유 이번호를 펼치면 우리 삶의 한때를 인상적으로 포착한 초상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연령과 성별, 국적과 인종, 계급과 세대 등 다채로운 초상 사진들을 모아 젊음 또는 늙음의 어떤 공통점이나 평균적인 이미지를 구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러한 사진들 앞에서 보스토크가 주목하는 것은 젊음과 늙음의 보편적 정의나 규정보다는 한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하나하나 개별적인 얼굴의 이미지 그 자체이다. 사진이 기록할 수 있는 건, 일반적인 시간이기보다는 특수한 순간이며, 보편적인 인류이기보다는 선별적인 개인이기 때문이다. 젊음과 늙음 또한 사진에 담기는 것은 개인마다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된 장면들이다. 사진은 인류의 보편적인 현상보다, 먼저 당신만의 생기어린 눈빛과, 또 다른 당신만의 메마른 주름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진이 계속 ‘젊음과 늙음’을 새롭게 탐색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진을 거울처럼 바라보자 비춰지는 우리의 얼굴들 사진가 열일곱 명의 화보를 담은 이번호는 크게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에서는 젊은 얼굴에 새겨진 미세한 감정과 열기를 포착한 작업이 차례로 소개된다. 처음 등장하는 최희의 사진에는 무표정하지만 미열을 앓고 있는 듯한 젊은이들의 얼굴이 포착되었다. 마르고 오브차렌코는 어린 시절부터 자기 몸을 단련하는 문화에 노출된 여성에 주목한 작업을 선보인다. 니콜라이 호발트는 어린 복싱 선수가 링에 오르기 전과 후를 비교할 수 있는 이미지를 제시한다. 각기 다른 온도를 지닌 얼굴들을 보여주는 이미지는 선명한 답 대신 이런 질문을 던진다. 각자의 얼굴마다 새겨진 차갑고도 뜨거운 열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 열기로 무엇이 변하고, 변하지 않았는가.
두 번째 장에서는 좀 더 자유분방한 젊음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각자 생활하는 곳의 현실감이 묻어난 작업들을 소개한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기만의 놀이터로 찾아드는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세대를 찍은 다니엘 킹의 사진, 세계 여러 곳에서 젊은 세대의 초상과 그들이 머무는 공간을 함께 기록한 토비아스 칠로니의 사진, 구소련의 어두운 기억을 지닌 공간에서 춤에 들뜬 이들을 촬영한 앤드류 믹시스의 사진. 그 이미지들은 젊은 세대의 초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들이 발 딛고 서 있는 곳은 어디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곳에서 부는 바람은 그들을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궁금해진다.
세 번째 장에서는 좀 더 청년이 처한 현실에 밀착해 관찰하는 작업들을 모아봤다. 성의석은 ‘힙스터’에 대한 물음을 핑계로 청년들의 삶과 현실에 접근하려 한다. 룰루 다키는 전쟁이 일상이 된 중동 지역의 청년들이 어떻게 자신의 열망을 지키는지 관찰하고 싶다. 타데 코마르가 기록한 홍콩시위 사진에서는 서로 다른 곳을 향해 충돌하는 젊은 눈빛들을 엿볼 수 있다. 저마다 청년들이 처한 상황이 직간접으로 드러나는 사진은 그들이 결핍된 현실 속에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각자 지키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지 묻고 탐색한다.
네 번째 장과 다섯 번째 장은 젊음 이후의 중년과 노년의 초상을 소개한다. 그중에서 네 번째 장은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치열한 내적 갈등을 겪는 이들과 만나본다. 엘리노어 카루치의 ‘Midlife’는 중년 여성으로서의 어떤 미래를 도모하고 궁리한다. 민주의 ‘이몽’은 시대의 폭압을 겪어낸 중년의 아버지를 관찰한다. 미야 다니엘스의 ‘Mady and Monett’는 일란성 쌍둥이인 자매를 통해 나이듦에 관한 편견을 다시 바라본다. 미국 서부의 작은 탄광 마을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유려하게 그려낸 브라이언 슈트마트의 ‘Grays the Mountain Sends’는 깊은 회한에 잠긴 듯한 중년 남성의 초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젊음 이후에는 계속되는 실패와 모색, 기대와 후회 등이 담긴 이미지들은 나이에서 삶의 안온함을 찾으리라는 착각을 깨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장에는 노년 이후에 다가오는 마지막 순간들을 환기하는 작업들이 담겨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관찰하며 기록한 사진과 글이 담긴 신정식의 ‘함께한 계절’,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오가며 촬영한 풍경과 할머니의 초상으로 이뤄진 현다혜의 ‘나의’, 마지막 여행을 떠난 게르트너 부부와 동행한 지뷜레 펜트의 사진 작업 ‘Ga?rtners Reise’, 고향집에서 작별 인사와 함께 손을 흐드는 부모님의 모습을 27년간 기록한 디에나 다이크먼의 ‘Living and Waving’. 저마다 소중한 이들이 기억을 잃어가거나 곧 떠날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은 단지 자신의 죽음만 상기시키지 않는다. 가까운 이들이 떠날 때, 또 소중한 이들을 떠날 때, 그 마지막 배웅에서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된다.
이밖에도, 각 시대마다의 유스컬처를 다룬 사진책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글을 함께 수록했다. 김현호의 ‘아이들은 모두 괜찮아’와 김인정의 ‘소녀들은 카메라의 앞과 뒤에서’ 두 편의 글을 따라가면 ‘젊음’이 담긴 사진에 투영된 우리의 욕망과 세대의 변화상을 읽을 수 있다.
지도에 따라 동작 하나하나를 익히는 어린 여성의 모습에서 미소란 찾아볼 수 없다. 사진 곳곳엔 자신의 몸을 만지는 외부에 대한 경계심도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그릇된 훈육을 명쾌히 지적한다고 단정짓기엔 작업의 절차를 챙겨봐야 한다. 좀 더 작업을 쪼개어보자면 마르고에게 사진은 몸에서 몸짓이란 단계로 나아가 몸짓의 유형을 기록하는 실천이다. 그다음 몸짓과 성정체성의 연계를 통해 사회적 압박에 시달려온 이들의 두려움을 조심스레 가시화하는 시도다.
- 김신식,〈아로새긴다는 것〉
수많은 사진가들이 복싱과 복서들을 사진으로 찍어왔다. 그것들은 대개 단련된 육체를 지닌 알파 메일에 대한 호기심이나, 혹은 링이라는 일종의 예외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투에 대한 흥분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사진가 니콜라이 호발트(Nicolai Howalt)의〈복서(Boxer)〉는 사뭇 다르다. 이 연작은 경기를 치르기 전과 경기 후에 각각 찍은 어린 덴마크 복서들의 포트레이트를 모은 것이다. 여기에는 박진감 넘치는 링 위의 격돌이나, 수컷 공작새처럼 꼬리 깃을 세운 알파 메일들의 자신만만한 모습 같은 것은 없다. 즉, 이것들은 무언가가 결여된, 일종의 텅 빈 사진들이다.
- 김현호,〈링에 오르기 전과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