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장편동화 <할아버지의 뒤주>로 ‘한국적 판타지’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이준호 작가의 첫 청소년소설이다. 친구들의 모함과 주변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큰 상처를 입은 중학교 ‘일진’ 주인공이 세계 명작 속 세계를 모험하면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용서와 이해의 과정을 거치며 성장의 문턱에 한발 다가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계절 1318 문고 시리즈 71권.
주인공이 모험을 통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자연스럽게 타인과 세상까지 감싸 안게 되는 이야기로, 주제의 진지함은 잃지 않으면서도 ‘판타지’와 ‘세계 명작’이라는 익숙한 코드로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중학교 ‘일진’인 최담은 생일 선물을 이유로 친구들에게 돈을 걷었다는 모함을 받는다. 아무도 자신의 결백을 믿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큰 상처를 입은 담이는 무작정 할아버지 댁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낯설고 기이한 세계가 담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출판사 리뷰
중학교 ‘일진’인 최담은 생일 선물을 이유로 친구들에게 돈을 걷었다는 모함을 받는다. 아무도 자신의 결백을 믿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큰 상처를 입은 담이는 무작정 할아버지 댁으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낯설고 기이한 세계가 담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장편동화 『할아버지의 뒤주』로 ‘한국적 판타지’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이준호의 첫 청소년소설로, 우리에게 친숙한 세계 명작들을 가져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상상하는 경지를 보여 준다.
한국적 판타지 안에 녹여낸 어느 ‘일진’ 청소년의 성장담
세상을 살면서 누군가의 이해를 얻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자신을 진심으로 믿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존재한다면, 세상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해 여름, 닷새』(사계절1318문고 71)는 친구들의 모함과 주변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큰 상처를 입은 중학교 ‘일진’ 주인공이 세계 명작 속 세계를 모험하면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용서와 이해의 과정을 거치며 성장의 문턱에 한발 다가서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판타지’라는 매력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하고 깊이 있는 시선에 있다. 사실 ‘문제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련의 청소년소설의 분위기는 대개 어둡거나 교훈적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 인물이 겪는 변화에는 어른들이 요구하는 죄책감이나 반성의 감정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허나 그것은 나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이 아닌 타인에게 용서받기 위한 과정에 가깝다. 『그해 여름, 닷새』는 주인공이 모험을 통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자연스럽게 타인과 세상까지 감싸 안게 되는 이야기로, 주제의 진지함은 잃지 않으면서도 ‘판타지’와 ‘세계 명작’이라는 익숙한 코드로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그해 여름, 닷새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중학교 1학년 최담은 학교에서 ‘일진’으로 통한다. 학교 아이들은 그런 담이를 비롯해 함께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담이는 일진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일진이 아닌 것보다는 일진인 게 훨씬 낫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발단은 담이의 생일을 맞이해 친구들이 선물한 최신 청바지와 엠피스리 플레이어. 담이는 부담을 느끼면서도 평소 갖고 싶던 것들이기에 별 고민 없이 선물을 받는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만다. 상담실로 불려간 담이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의 돈을 뺏었냐는 추궁을 받는다. 담이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지만, 곧 일진 친구들이 자신의 생일을 이유로로 학교 아이들에게 돈을 걷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일 때문에 담이는 졸지에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히고, 가족에게도 큰 실망을 안겨 준다. 담이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지만, 친구들은 처벌이 두려워 담이가 시킨 일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담이는 친구들의 배신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내가 시킨 게 아니라는 건 곧 밝혀졌다. 그렇다고 내 무죄가 증명된 건 아니었다. 돈을 걷게끔 내가 일진 아이들과 어떤 식으로든 공모했을 거라는 게 담임과 일진 아이들 부모의 생각이었다. 아니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우현이 엄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일을 책임지라고 항의까지 했다.
내 말을 묵살했던 담임은 나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주도해서 돈을 걷었던 일진 아이들도 사과하기는커녕 나를 슬금슬금 피하기만 했다. 다른 아이들도 여전히 내가 시킨 거라고 믿는 눈치였다. 억울하고 분한 건 둘째 치고 내 말을 믿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무서웠다.
나는 혼자였다.
- 본문 45쪽
담이는 두려운 마음에 도망치듯 무작정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할아버지 댁이다. 부모님과 함께 내려간 적은 있어도 혼자는 처음이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할아버지가 사는 곳에 도착한 담이.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할아버지가 버스 터미널까지 마중을 나와 있는 게 아닌가. 담이는 억울한 심정을 털어 놓으려 하지만, 할아버지는 시간이 지나면 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 뿐, 그 일에 대해선 입을 굳게 다문다.
할아버지 댁에서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담이는 집에서 기르는 개 미순이와 산책을 하다가 애꿎은 청설모에게 괜히 분풀이를 하고, 할아버지가 가르쳐 주는 생소한 약초 이름도 익히면서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또 다락을 청소하다가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들을 발견하고는 난생 처음 독서 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잔잔한 일상 속에서 불쑥 불쑥 고개를 쳐드는 분노의 감정은 어찌할 수 없다.
하루는 할아버지와 함께 풀숲을 지나다 그만 뱀에게 왼쪽 발목을 물리고 만다. 담이는 풀숲 바닥에 드러누워 온 몸에 독이 퍼지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는다.
물렸다!
뱀에게 물리면 심장으로 통하는 부분을 묶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발목 위를 두 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겁에 질린 내 목소리는 잔뜩 억눌려 나왔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별별 생각이 다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다리를 자르고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는 게 아닐까. 다리 하나로는 축구를 못할 텐데. 나중에 취직이나 제대로 할까. 나는 발목에 움켜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왜 그러느냐?”
멀리서 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예요! 뱀, 뱀한테 물렸어요.”
- 본문 55~56쪽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담이 앞에 할아버지가 아닌 청설모 한 마리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청설모는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 담이에게 말까지 건넨다. 낯이 익어 가만히 살펴보니 자신이 이유 없이 괴롭혔던 바로 그 청설모였다. 교관 차림을 한 청설모는 담이를 이끌고 낯선 세계로 들어간다.
청설모를 따라 들어선 세계는 다름 아닌 할아버지의 다락방에서 읽은 책들의 세계. 담이는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돼지들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고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과 우정을 쌓기도 한다. 또 『신드바드의 모험』에 나오는 노인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놓였다가 가까스로 탈출하기도 한다. 담이는 기상천외한 모험을 하는 동안 남을 괴롭혔다는 이유로 위험에 처하지만 그때그때의 기지와 재치로 모면한다. 그렇게 담이 앞에 다양한 세계 명작과 고전 소설의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이상한 사건들이 줄줄이 터진다.
“저, 저는 이, 돼지들을 모릅니다. 그, 그리고 책에는 돼지들이 재판받을 때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걸로 나와 있습니다. 저, 저는 죄가 없습니다.”
나는 몹시 더듬거렸다.
“지금 저 인간은 죄를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스퀼러가 입꼬리를 올리며 심술궂게 웃었다.
“예?”
“죄지은 자는 스스로 죄를 지었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 인간이 지금 한 말은 자기 죄를 고백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재판이 어디 있어요?”
나는 항의했다.
- 본문 82쪽
천신만고 끝에 이상한 세계에서 벗어난 담이는 다시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눈을 뜨니 이번에는 몸이 벌레로 변해 있는 게 아닌가! 할아버지의 다락에서 처음 접한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리 잠자로 변한 것이다. 담이의 가족은 흉측하게 생긴 벌레가 담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어떻게든 도우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아파트 소독을 나온 청년이 뿌린 살충제를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데…….
내 몸이 바퀴벌레처럼 딱딱하고 윤기 나는 껍데기로 뒤덮여 있었다. 이건 또 어찌된 거지?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침대 바깥으로 늘어진 내 몸 아랫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양쪽으로 난 여러 쌍의 다리가 제각기 움직였다. 흉측하고 끔찍한 모습이었다. 이게 꿈인가 싶어 벽에 걸린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도 시커멓고 번들거리는 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렸다.
-본문 151쪽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담이가 정신을 차린 곳은 병원이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를 보며 담이는 모든 게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음을 느낀다. 그런데 꿈이라고 하기엔 그곳에서의 모험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기만 하다. 담이는 엄마에게 날짜와 시간을 묻고는 깜짝 놀란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불과 몇 시간밖에 흐르지 않은 것이다. 담이는 모험을 하며 만난 인물들을 하나둘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담이는 다시 서울로 올라가자는 엄마를 먼저 보낸 뒤, 할아버지 댁에서 조금 더 머물기로 한다. 도망쳐 온 이곳에서 다시 새로 출발하기로 한다.
“명준이한테 전화 왔더라. 사과하고 싶다고.”
나는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흠칫 놀랐다. 그렇지. 청설모를 따라가다 명준이를 만났었지. 모처럼 문을 연 내 가슴에 다시 빗장이 걸리는 느낌이었다.
눈길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 엄마와 딱 마주쳤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의 눈에 슬픔인지 안타까움인지 모를 빛이 어려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 눈길을 피했다.
“약속 잊지 마. 집에 올 땐 전부 버리고 오기!”
내 마음을 읽은 엄마가 쾌활하게 말했다.
- 본문 180쪽
낯선 판타지 세계를 구축한 서사의 힘
『그해 여름, 닷새』는 장편동화 『할아버지의 뒤주』로 ‘한국적 판타지’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이준호의 첫 청소년소설이다. 작가의 특장은 이 작품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그는 특별한 장치나 장르적 기술 없이 오직 서사의 힘으로 판타지의 세계를 구축하고 이끌어 간다. 그리고 소설의 결말에서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면서 그만의 판타지적 특징을 극대화한다. 그럼으로써 주인공 담이의 파란만장한 모험담이 결국 생의 비밀을 찾아가는 인간의 지난한 여정과 다르지 않음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소설가 김미월이 “『그해 여름, 닷새』의 진짜 매력은 명작들의 세계에 들어간 담이가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주어진 상황에 대처할 때 그가 내보이는 진정성에 있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단정하면서도 깊이 있는 문체 또한 이 낯선 판타지 읽기의 즐거움을 보탠다.
이 책이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현실과 가상 세계를 이어주는 ‘책’이라는 매개체이다. 담이가 할아버지의 다락에서 발견한 책들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펼쳐 보이며 담이의 성장을 돕는다. 문학 작품이 한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 주는 장치인 것이다.
이 낯설고 독특한 담이의 성장담 혹은 모험담은 청소년들에게 눈이 아닌 마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일러줄 것이다. 또한 독자들은 담이의 마음에 난 길을 따라 함께 모험하며 ‘사람을 자라게 하는 힘은 믿음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은 물론, 이제 막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딛는 예비 중학생 아이들에게도 청소년문학에 입문하는 더없이 좋은 작품이다.
작가 소개
저자 : 이준호
경북 영일에서 태어나 지금은 전북 군산에 살고 있다.계간 '작가세계'에 소설이, MBC창작동화대상에 장편동화가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재미있는 판타지와 SF 쓰기, 글만 써서 먹고살기, 두 딸에게 인정받는 글 쓰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할아버지의 뒤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