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이번엔 식물학 로맨스다!
서점대상·누계 140만 부 판매 《배를 엮다》
나오키상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미우라 시온의 최신작
2019 일본 서점대상 본상 | 일본식물학회 특별상
일과 사랑에 열정을 다하는 이들의
따사로운 성장의 기록 사전편집부의 성실한 여정을 그린 《배를 엮다》로 서점대상을 수상, 누계 140만 부 판매를 기록하며 일본 출판계에 돌풍을 일으킨 작가 미우라 시온. 나오키상, 오다사쿠노스케상, 시마세연애문학상 등 유수의 상을 수상하며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그가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신작 《사랑 없는 세계》로 돌아왔다. 한 가지 일에 순수하게 몰두하는 이들의 인생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작가는 한층 깊어진 전문성과 유려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낯설고도 신비로운 식물학의 세계로 이끈다.
소설은 식물에 매료된 대학원생과 그를 좋아하는 요리사를 중심으로 일과 사랑에 열정을 쏟는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다. 일류 요리사를 꿈꾸는 후지마루와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는 모토무라는 개성 넘치는 주변인들과 유쾌한 나날을 보내며 각자의 꿈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실수하고 좌절하면서도 성장하는 그들의 모습은 성실의 의미가 점차 퇴색되어가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순수한 열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사랑 없는 세계》는 2019년 일본 서점대상 본상에 올랐으며, 작가 미우라 시온은 일본 식물학의 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일본식물학회 특별상을 수상했다. “식물 연구 활동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통해 일반 사회에 식물학을 잘 알렸다”는 수상 이유에서 알 수 있듯이, 꼼꼼한 답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완성된 이 소설은 문학적 상상력에 과학적 사실까지 더해져 완성도 높은 서사를 자랑한다.
“사랑의 라이벌은 인간이 아니라 풀이었습니다.”경쾌하게 울리는 놋쇠 종, 탁자마다 놓인 노란 꽃, 따스한 햇빛이 비치는 창가. 작지만 정겨운 양식당 ‘엔푸쿠테이’에서는 칠십대의 주인 쓰부라야와 이십대의 종업원 후지마루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자신의 요리로 손님을 행복하게 하고 싶다는 꿈을 꾸는 후지마루는 매일 채소를 썰며 쓰부라야의 밑에서 수련을 하고, 쓰부라야는 그런 후지마루를 엄하지만 다정하게 챙기며 가게를 운영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요리밖에 없을 것 같았던 후지마루의 인생에 갑자기 새로운 사랑이 찾아온다. 배달하러 간 T대의 자연과학부에서 식물학을 전공하는 모토무라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연구에 열정을 쏟는 모토무라의 모습을 본 후지마루는 점차 모토무라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고, 모토무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사랑의 라이벌’을 물리쳐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식물에는 뇌도 신경도 없어요. 그러니 사고도 감정도 없어요.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도 왕성하게 번식하고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환경에 적응해서 지구 여기저기에서 살고 있어요. 신기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 그래서 저는 식물을 선택했어요.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_96쪽
그 라이벌은 ‘잘생겼는데 성격도 좋고 돈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부자인 남자’가 아니라, 바로 모토무라가 연구하는 식물이었다. 식물 연구에 일생을 바치겠다는 확고한 모토무라의 의지에 후지마루는 풀이 죽지만, 그래도 후지마루는 모토무라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모토무라를 사로잡은 ‘사랑 없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를,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게 된 모토무라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니,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모토무라 씨를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후지마루는 그렇게 생각한다. 모토무라 씨가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까지 말하는 식물 연구에 대해 후지마루 또한 신기하고 수수께끼 같다는 생각이 들고 있으니까. 식물의 무엇이 그토록 모토무라 씨를 사로잡고 있는지 점점 더 알고 싶어진다. _100쪽
한편 모토무라는 ‘마쓰다 연구실’에서 바쁘지만 유쾌한 나날을 보낸다. 늘 검은 양복에 흰 셔츠를 입고 다니는 마쓰다 교수와 든든한 선배 연구원 가와이, 어른스러운 성격의 이와마와 선인장 마니아인 후배 가토가 있는 마쓰다 연구실에서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는다. 후지마루는 타고난 친화력을 발휘하여 연구실의 일상에도 자연스레 녹아들고, 모토무라가 고민에 부딪힐 때면 명쾌한 대답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모토무라는 그런 후지마루의 선한 마음씨에 감동받고, 인간과 식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되짚어본다.
식물을 사랑하는 모토무라와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후지마루. 과연 두 사람의 연애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사랑 없는 세계를 가득 채운
사랑의 연대, 그 빛나는 이야기들제목 ‘사랑 없는 세계’는 모토무라가 말한 것처럼 식물의 세계를 의미한다. 인간과 같은 감정이 없는 식물은 단어 그대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살아가며, 이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삭막한 느낌의 제목과는 달리 이야기에는 오히려 인간적인 사랑이 넘쳐흐른다. 가슴속 깊이 식물을 사랑하는 이들의 진심, 동료에 대한 애정, 부모님의 사랑, 좋아하는 상대를 향한 마음.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의 화학작용은 서로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식물에게도 온전히 전달된다. 결국 식물도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인간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작가는 후지마루의 입을 빌려 그러한 사랑의 연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 열정을, 알고 싶은 마음을, ‘사랑’이라고 하지 않나요? 식물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모토무라 씨도, 이 강의실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대상인 식물도, 모두 같아요.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를 살고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_457쪽
또한 작가는 인간도 식물과 마찬가지로 빛을 먹으며 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생물은 결국 빛을 먹고 살며, 그 점에서는 다 같은 생물의 연장선상에 있다. 모토무라가 생각한 것처럼 ‘식물과 인간 사이에 패어 있는 깊은 틈’이 존재할 때도 있지만, 종(種)을 뛰어넘는 공통점 역시 실재한다. 식물이 햇빛을 받으며 성장하는 일도, 인간이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일도, ‘무의미’에서 ‘의미’로 나아가는 여정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가끔 생각해요. 식물은 광합성을 하며 살고, 동물은 그 식물을 먹고 살고, 그 동물을 먹고 사는 동물도 있고……. 결국, 지구상의 생물은 모두 빛을 먹고 살고 있구나 하고요.”
“빛을 먹고…….”
“네. 후지마루 씨도, 저도, 식물도, 다 똑같이.” 웃음 짓는 모토무라의 눈에는 희망을 닮은 빛이 비쳤다. “고맙습니다, 후지마루 씨.” _458쪽
먹기 위해 매일 요리를 하고, 호기심으로 과학의 진리를 탐구한다. 유한한 삶 속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와 진리 탐구는 어쩌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를 위해 인생을 바친다. 사랑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희망의 빛을 먹고 사는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아름답고 빛이 난다.
눈꺼풀 속에 은색 별들이 떠오른다. 어둠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빛.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름답다는 것과 쓸쓸하다는 건, 왜 이렇게 닮았을까.
후지마루는 눈을 감은 채 그저 은하를 응시하고 있었다.
설령 끝이 없고 덧없는 행위였다 하더라도, 그러니까 쓸데없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모토무라는 그렇게 고쳐 생각한다. 식물이 우직하게 빛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 것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면, 태어난 이상은 뭔가의 일을, 연구를, 사랑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을 향하여 그건 모두 쓸데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