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작 『봉주르, 뚜르』에 이은 감동과 충격!
극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인 작가 한윤섭이 선보이는 스케일 큰 동화제1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작 『봉주르, 뚜르』의 작가 한윤섭의 두 번째 장편동화가 나왔다. 『봉주르, 뚜르』는 ‘분단이나 통일이라는 말과 무관하게 살아가던 한 소년이 어떻게 우리 사회의 가장 첨예한 모순과 부딪치게 되는가를 섬세하게 보여준 수작’답게 짧은 시간 내에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이번 『해리엇』 역시 동화의 시공간을 확장한 스케일 큰 작품으로, 다양한 독자층을 확보할 것이다. 어린 원숭이 찰리와 그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늙은 거북 해리엇의 이야기를 접하는 순간, 우리는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다. 마치 웰메이드 연극 한 편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이는 극작가와 연극 연출가로 활동 중인 작가의 이력이 이번 작품에서도 십분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동물에 빗대어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우화나 알레고리를 훨씬 넘어서 감동과 충격을 준다. 그것은 역사성의 무게와 지혜로 다음 세대를 묵묵히 감싸는 해리엇과 같은 진정한 어른이 지금의 인간 현실 속에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아픔과 그리움을 느끼게도 한다._김진경(동화작가, 시인)
해리엇은 실제로 175년의 삶을 산 갈라파고스 거북이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의 거북으로 알려진 해리엇은 천국과 같은 갈라파고스에서 다윈을 만났고, 그 뒤 인간 세상으로 오게 된다. 그는 지난 2006년 긴 삶의 여정을 마감하기까지 호주의 한 동물원에서 생활해왔다.
해리엇의 마지막을 함께한 원숭이 찰리를 비롯해 다른 동물 친구들은 작가가 창조해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다. 숲이든 동물원이든 사람의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동물들의 이야기. 우리는 과연 그들의 자유를 빼앗아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지, 그들은 무슨 잘못으로 아프게 살아야만 하는지, 그 가슴 저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숲과 엄마의 품을 빼앗긴 아기 원숭이 ‘찰리’ 이야기
“네가 살았던 숲도 원숭이의 세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세상이야.
사람들을 이길 수는 없어. 살아남는 게 중요한 거야.”어느 날 갑자기, 아기 원숭이 찰리는 엄마와 숲을 잃고 만다. 사람들은 마취제를 쏘며 원숭이들을 잡아들인다. 찰리의 엄마 역시 긴 잠에 빠지고, 찰리는 상자에 갇혀 공원 관리소로 옮겨진다.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사람들의 무자비한 행동은 동물들의 눈물과 아우성에도 아랑곳없이 계속된다.
공원 관리소에 만난 흰 줄 원숭이는 찰리에게 사람의 세상에 대해 들려준다. 그리고 찰리가 살았던 숲도 결국은 사람의 세상이라는 것을 깨우쳐준다. 따라서 사람을 이기는 것보다 살아남는 게 중요한 것임을 일러준다. 그 뒤 찰리는 일곱 살배기 남자아이 손에 이끌려 사람의 집으로 향한다.
아이 엄마는 찰리가 누어 놓은 똥과 오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찰리, 여기다 누면 어떡해! 여기는 안 돼. 절대로.”
찰리가 그것들을 외면하자, 아이 엄마는 더 공격적인 얼굴을 하고 찰리의 고개를 돌려세웠다. (중략) 찰리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냥 배가 고프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_본문 중에서
낯선 세상에서 찰리는 살아남기 위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해나간다. 묵묵히 기다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몸으로 기억하고, 사람이 정해주는 것, 좋아하는 것만을 해야 사람이 공격적인 얼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또 바뀐다. 아이가 다른 도시로 떠나고, 주인 부부는 찰리를 동물원으로 보낸다. 찰리의 외롭고 슬프고 아픈 날들이 다시 시작되고 만다.
175년 동안 바다를 품고 산 갈라파고스 거북 ‘해리엇’ 이야기
“해리엇, 우리가 당신을 바다에 데려다 줄게요.
당신이 원하는 바다에 데려다 줄 거예요.”두려움과 외로움에 떠는 찰리에게 거북 해리엇이 다가간다. 해리엇은 이 동물원에서 나이가 가장 많다. 그는 찰리의 친구가 되어 곁을 지켜준다. 해리엇은 175년의 삶을 온몸으로 견디고 살아온 진정한 어른이다. 해리엇 덕분에 수많은 동물들이 동물원에서 버텼고, 지혜와 사랑을 배웠다. 찰리 역시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며 성장해나간다.
마침내 해리엇은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고, 찰리와 친구들은 큰 슬픔에 잠긴다. 해리엇이 들려주는 마지막 이야기에는 갈라파고스와 비글호에서 있었던 끔찍한 일들, 다윈과의 만남 등이 녹아들어 있다. 170년 동안 갈라파고스를 그리워했다는 해리엇의 이야기를 들으며 찰리는 큰 결심을 한다. 그리고 곧바로 우리 한쪽에 묻어두었던 사육사의 열쇠를 꺼내든다. 해리엇을 바다로 데려다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다른 친구들도 해리엇이 바다로 가면 갈라파고스로 돌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또한 서로가 서로의 곁을 지키며 삶의 희망을 품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깨닫는다.
“해리엇, 우리와 함께 바다로 가요.”
찰리의 말에 해리엇이 고개를 저었다.
“찰리, 난 힘을 잃어 간다.”
(중략)
“제가 길을 안내하고, 개코원숭이들이 당신을 끌고 밀어서 좀 더 빨리 움직이게 할 거예요. 그리고 올드가 당신의 생명을 지켜 줄 거예요.”
찰리의 말에 해리엇은 함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운 바다가 보고 싶었지만 모두에게 위험한 일이라 망설여졌다.
“해리엇, 마지막으로 물을게요. 갈라파고스로 돌아가고 싶어요?”
찰리가 물었다.
“그래, 내가 살았던 땅으로 돌아가고 싶어. 어쩌면 그 전에 생명이 다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바다로 가고 싶어. 아니, 난 바다로 갈 수 있을 거야.”_본문 중에서
인간의 잔인함에 희생된 수많은 동물들을 그리며…
‘인간은 진정으로 진화한 것인가’를 묻는다우리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그리고 바람직한 세상은 어떤 것일까. 해리엇과 찰리, 또 다른 동물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여러 질문을 자문자답할 필요가 있다. 배부르게 고기를 먹고, 비싼 가죽가방을 들고 가죽구두를 신고, 마치 장난감 다루듯 동물을 대하고……. 지금껏 인간은 수많은 동물들의 생명을 빼앗았다. 앞으로 우리 인간은 얼마나 더 잔인해져야 할까.
“우린 사람들이 먹이를 먹는 것을 봤어.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 먹이를 먹는 모습은 분명 달랐어. 그리고 어떤 사람이 어제 우리와 함께 나간 거북의 몸을 자르고 있는 것을 봤어. 여기 있는 거북들은 사람들의 먹이야.”
그 소리에 화물칸 안이 술렁거렸다. 하지만 거북 중에는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거북의 본래 습성처럼 상황에 대해 조용히 생각하고 있었다._본문 중에서
작품 속에는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도 등장한다. 그의 연구 덕분에 오랜 시간을 거쳐 진화론은 확장되었고 발전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문득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동물권은 무시한 채 야만적으로 대량 사육을 하며 육식을 즐기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진정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인가.
동화 한 편을 통해 이렇게 커다란 질문과 문제의식을 던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 한윤섭의 오랜 내공에서 비롯된 스케일에 가슴속 깊이 전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