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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땅
열화당 | 부모님 | 201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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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1970년대, 오직 생존을 위해 헌신하는 농민계급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될 위기를 감지한 존 버거는 이에 저항할 대안을 찾아야 했다. 미술평론가나 작가로 불리기보다 ‘이야기꾼’이 되고자 했던 그에게, 사라져가는 이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 이야기를 전하는 일은 사명이었다. 이후 십오 년 동안 이 주제로 글쓰기에 매달렸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이번에 새로 번역 출간된 삼부작 소설 ‘그들의 노동에(Into Their Labours)’는 그 결과물로, 1974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1990년에 완성했다. 1부 『끈질긴 땅(Pig Earth)』(1979)은 산악 마을의 전통적인 삶을 묘사하고, 2부 『한때 유로파에서(Once in Europa)』(1987)는 그런 마을의 삶이 사라지고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실향을 그린다.

3부 『라일락과 깃발(Lilac and Flag)』(1990)은 자신들의 마을을 떠나 대도시에 영원히 정착한 농민들의 사랑 이야기다. 배경은 유럽 시골 마을과 도시이지만, 몇몇 세세한 면을 제외하고 보면 세계 여러 대륙에 있는 많은 국가들에 존재하는 보편적 장소들이다.

  출판사 리뷰

1970년대 중반, 나이 오십을 앞둔 존 버거는 알프스 자락 산악 마을로 삶의 거처를 옮긴다. 1972년 비비시 텔레비전 프로그램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와 동명의 책이 대중적으로 성공하고, 같은 해 소설 『G』로 부커상을 받으면서 미술평론가와 소설가로서 명성을 얻어가던 때였다. 전성기를 누리던 사십대의 작가가 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70년대 세계 역사의 흐름은 금융 자본주의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완전히 틀어져 있었고, 오직 생존을 위해 헌신하는 농민계급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게 될 위기를 감지한 존 버거는 이에 저항할 대안을 찾아야 했다. 스스로 ‘두번째 교육’, ‘나의 대학’이라 불렀던 프랑스 농민 공동체는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역사였다. 미술평론가나 작가로 불리기보다 ‘이야기꾼’이 되고자 했던 그에게, 사라져가는 이들의 삶을 체험하고 그 이야기를 전하는 일은 사명이었다. 이후 십오 년 동안 이 주제로 글쓰기에 매달렸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이번에 새로 번역 출간된 삼부작 소설 ‘그들의 노동에(Into Their Labours)’는 그 결과물로, 1974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1990년에 완성했다. 1부 『끈질긴 땅(Pig Earth)』(1979)은 산악 마을의 전통적인 삶을 묘사하고, 2부 『한때 유로파에서(Once in Europa)』(1987)는 그런 마을의 삶이 사라지고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실향을 그린다. 3부 『라일락과 깃발(Lilac and Flag)』(1990)은 자신들의 마을을 떠나 대도시에 영원히 정착한 농민들의 사랑 이야기다. 배경은 유럽 시골 마을과 도시이지만, 몇몇 세세한 면을 제외하고 보면 세계 여러 대륙에 있는 많은 국가들에 존재하는 보편적 장소들이다.

이 삼부작의 역사적 의미
그렇다면 왜 농민인가. 오늘날 농민과 경제 체계는 어떤 관계인가. 농민들의 경험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어떤 의미인가. 존 버거는 1부 머리말에서 옛 농민들이 지녀 온 시간관, 경제관, 그리고 정치적 입장과 종교적 태도는 다른 계급이나 집단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음을 심도있게 분석한다. 그들에게 미래에 대한 유일한 희망은 살아남는 일이었다. 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노동해야 하는 농민들은 자신의 삶을 미래와 과거 사이에 놓인 하나의 ‘막간’에 불과한 것으로 본다. 이는 그들이 매일 익숙하게 마주하는 탄생, 삶, 죽음의 연속에서 깨달은 이치다. 이점 때문에 농민들은 종교에 의지하지만 그 믿음의 기원은 정작 종교가 아니며, 지배자나 성직자의 종교와도 일치했던 적이 없다. 또 내일의 생존이 가장 큰 관심사인 만큼, (지주들이 생산물을 착취해 가는 부분 외에는)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경제적 잉여로 간주하지 않는다. 임금 노동자들은 자신이 생산한 것의 가치에 속아 넘어가기 쉬운 반면, 농민들이 맺는 경제적 관계는 언제나 투명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종종 보이는 농민들의 보수주의는 지배층이나 아첨하는 프티부르주아의 그것과는 아무 공통점이 없다. 권력이 아닌 수단의 보수주의이고, 예측 불가한 변화의 위협에 맞서 온 삶, 대를 이어 내려온 가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흔들림 없이 살아남은 농민의 세계관은 19세기 들어 변화하기 시작한다. 자본과 시장경제에 노출되면서 그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수확물을 사 가는 이윤 체계에 종속되었다. 농민들의 도시 이주가 시작되고 버려진 마을이 생겼다. 농업의 대규모 상업화와 식민지화로 농민들의 자손은 도시 임금노동자가 되어 다른 계급에 흡수되었다.
이제 농민들의 꿈은 불리한 조건이 없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되었다. 부당함이 생기기 전, 존재의 근원적인 상태로 말이다. 물론 농업이 꼭 농민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경험으로 확인된 연속적 세계관은 자본주의의 덧없고 모순된 희망보다는 지금 우리에게 더 현실적이다. 진보를 향한 농민들의 의심은, 오늘날 자본주의가 대안을 찾느라 똑같은 의심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거 없는 게 아니었다. 이 삼부작은 이같은 진실을 가르쳐 준, 여전히 시골 마을에 살거나 대도시로 떠나야만 했던 사람들과의 연대를 위해 씌어졌다.

끈질긴 땅 - 마을 공동의 초상
1부 『끈질긴 땅』은 산악 마을에 떠도는 그날의 소문, 소소한 이야기, 먼 옛날과 오늘의 사건을 농민들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여덟 편의 이야기들은(중간에 삽입된 여덟 편의 시는 제외하고) 1974년에서 1978년 사이에 씌어진 순서대로 배치되었다. 그 기간 동안 서술 방식이 변했는데, 초반에는 눈에 띄는 것들을 아주 예리하게 관찰하는 시선이었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이야기들은 더 길어지고 인물들의 내면 역시 더욱 깊이 들여다본다. 존 버거는 독자들이 자신과 나란히 서서 함께 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이 순서로 배치했다고 밝히고 있다.
엘렌은 하얀 눈발이 날리는 추운 겨울날 고집 센 염소에게 짝짓기를 재촉하고, 조제프와 마르틴은 언덕으로 굴러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암소 루사의 마지막 밤을 함께한다. 한때 파리에서 하녀로 일했던 당찬 카트린은 이웃 남자 둘이 귀한 물을 찾기 위해 땅을 파는 광경을 지켜보고, 소년은 할아버지에게 돼지 잡는 법과 공동체의 역사를 배운다. 고집 센 마르셀은 사과나무를 새로 심고 증류주 제조를 단속하는 세금징수원의 ‘미래’를 거부한다. 고향 마을에 돌아온 나이든 장은 마을에서 쫓겨난 코카드리유(루시 카브롤)의 죽음을 지켜보고 그녀의 사랑을 확인한다.
당시 시골 마을에 막 도착한 이방인이었던 존 버거의 눈에는 새롭게 경험한 시골의 삶이 깊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그는 1부에서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작은 사건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도시인들처럼 역할을 연기하지 않고, 실제 삶과 말해지는 삶의 간극이 거의 없는 농민들의 사연은 하나씩 모여 마을 전체의 살아 있는 초상이 된다. 그는 신참이자 독립적인 목격자로서 농민들과 일종의 상호의존관계를 유지하고, 동등한 이야기꾼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일상의 묘사가 주를 이루다 보니 대체로 2, 3부에 비해 차분하고 정돈된 느낌이다가 뒤쪽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고조된다. 세 편이면서 하나로 연결된 마지막 이야기에서는 루시 카브롤이라는 여인의 세 가지 삶을 다룬다. 왜소한 몸집과 거친 말투로 오해를 사지만, 정의와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고 분투하는 그녀는, 가족과 이웃들에게 버림받고 끝내 끔직한 죽음을 맞는다. 돈으로 인한 오해와 갈등, 약자에게 범하는 잔인함은 이차대전 전후의 농촌마을로도 서서히 침범해 들어온다. 끝에서는 존 버거 특유의 환상적 리얼리즘이 발휘된다. 마을의 죽은 이들이 무덤에서 모두 일어나 모여들고, 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자인 장은 죽은 이들이 살아 있을 때는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정의가 이루어질 겁니다.” “언제?” “살아 있는 이들이 죽은 이들의 고통을 알게 될 때요.” 루시 동생들의 밀고로 죽은 지하조직원 생 쥐스트는 세상의 모든 인내심보다 더 큰 인내심을 지닌 듯 담담하게 말한다.

그들의 노동에 - 공동체적 연대
삼부작의 제목은 『요한복음』 4장 38절의 구절인 “다른 사람들이 노동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동에 들었느니라”에서 비롯되었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다른 이들이 해 놓은 것을 거두어 오라고 하면서, 자신이 하지 않은 일로 혜택을 누린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하는 말이다.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존 버거가 이를 제목으로 가져온 까닭은 오랜 인류 역사 속에서 농부들이 살아온 연속된 시간관, 공동체적 삶의 형태를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단절되지 않고 앞 세대의 결실이 다음 세대에게 이어지는, 이웃 간의 손길이 경계 없이 오가는 삶의 방식 말이다. 그렇다면 이 삼부작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 대안은 무엇일까.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가기만 하면 해결되는 일일까. 그건 너무 낭만적이고 순진한 생각이 아닌가. 그들이 대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과연 이런 비참한 최후를 맞지는 않았을까.
근대는 성장과 진보가 역사의 목적이자 추진력이 된 시대이다. 이 원칙은 부르주아가 부상하는 계급으로 등장하면서 탄생했고, 현대의 모든 혁명 이론들을 통해 계승되었다. 이십세기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은,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러한 진보의 내용에 대한 대결일 뿐이었다. 자본은 좌파와 우파를 불문하고 그렇게 자신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한에서만 인정받는다. 김종철은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에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성장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근대적 방식에 대한 ‘적응’을 말할 게 아니라, 성장논리와는 무관한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삶, 즉 ‘비근대적’ 방식으로 방향전환하려는 급진적 노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소농 공동체를 제안한다. 농민들의 자립적 생존이라는 근원적 밑바탕이 소멸된다면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끝없이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존 버거의 제안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며, 농경적 삶으로 돌아가자는 막연한 몽상이나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마지막 방편인 것이다.
그가 세계의 위기를 감지하고 삼부작을 썼던 삼사십 년전보다 현실은 더 악화되었다. 인권이나 평등의 차원을 뛰어넘어, 기후위기, 수질오염, 쓰레기, 기업식 대규모 축산업에 의한 구제역과 살처분 등, 전 인류와 지구 생명이 위협적 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모든 환경문제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직결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당연시 하고 있는 이 체제는 사실 장구한 역사 속에서 대단히 예외적인 시스템이다. 이제 최면에서 깨어나 성장을 향한 질주에 제동을 걸고 운전대를 돌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삼부작은 그 용기들에 힘을 보태는 연대의 손길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존 버거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처음 미술평론으로 시작해 점차 관심과 활동 영역을 넓혀 예술과 인문, 사회 전반에 걸쳐 깊고 명쾌한 관점을 제시했다. 중년 이후 프랑스 동부의 알프스 산록에 위치한 시골 농촌 마을로 옮겨 가 살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농사일과 글쓰기를 함께했다. 저서로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예술과 혁명』 『다른 방식으로 보기』 『본다는 것의 의미』 『말하기의 다른 방법』 『센스 오브 사이트』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 『모든 것을 소중히하라』 『백내장』 『벤투의 스케치북』 『아내의 빈 방』 『사진의 이해』 『스모크』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초상들』 『풍경들』 등이 있고, 소설로 『우리 시대의 화가』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G』 『A가 X에게』 『킹』, 삼부작 ‘그들의 노동에’ 『끈질긴 땅』 『한때 유로파에서』 『라일락과 깃발』이 있다.

  목차

머리말 / 자리의 문제 / 하나의 설명 / 라 난 엠(La Nan M.)의 죽음 / 기억 속의 송아지 / 국자 / 위대한 흰색 / 부활절 / 독립심 강한 여자 / 사다리 / 바람도 울부짖는다 / 마을의 출산 / 살아남은 자에게 바치는 노래 / 석양 / 돈값 / 건초 / 루시 카브롤의 세 가지 삶 /
루시 카브롤의 두번째 삶 / 루시 카브롤의 세번째 삶 /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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