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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마해송
1905년 1월 8일 개성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상규(湘圭). 개성학당을 거쳐 경성중앙고보와 보성고보에 다니다가 동맹휴학으로 퇴학당한 뒤 1921년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유학생 극단 ‘동우회’를 조직하여 국내 각지를 순회하며 신극 운동을 벌였다.1920년대 초반부터 아동문학에 힘을 기울여 창작동화 개척에 헌신했는데, 이 무렵에 발표한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한국 최초의 창작동화로 평가받고 있다. 아동문학과 병행하여 수필문학에서도 일가를 이루었는데, 특히 그의 자서전적 수필은 진솔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대학 졸업 후 일본의 종합 잡지 『문예춘추』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32년에는 잡지 『모던니혼』을 인수하여 경영인으로 활약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는 데 일조했다. 광복 직전에 귀국하여 작품 집필에만 전념하면서, 1957년 강소천 등과 단체를 만들어 ‘대한민국어린이헌장’을 기초하는 등 아동 인권회복 운동에 기여했다. 자유문학상, 한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해송동화집』 『토끼와 원숭이』 『떡배 단배』 『모래알 고금』 『앙그리께』 『멍멍 나그네』 『마해송아동문학독본』 등의 동화집과, 『역군은』 『편편상』 『속 편편상』 『전진과 인생』 『사회와 인생』 『요설록』 『아름다운 새벽』 『오후의 좌석』 등의 수필집이 있다. 1966년 11월 6일, 만 61세로 서울에서 작고했다.
저자 : 방정환
1909년 매동보통학교에 입학, 이듬해 미동보통학교로 전학하여 1913년에 졸업하였다. 그 해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가정 사정으로 중퇴하였다. 1917년손병희(孫秉熙)의 딸 손용화(孫溶嬅)와 결혼하였다. 그 해에 청년운동단체인 ‘청년구락부(靑年俱樂部)’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191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 이듬해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1주일 만에 석방되었다. 1920년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철학과에 입학하여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하였다. 1921년김기전(金起田)·이정호(李定鎬)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을 전개하였다.1922년 5월 1일 처음으로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고, 1923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다. 이 잡지는 월간으로서 일본 동경에서 편집하고 서울개벽사(開闢社)에서 발행을 대행하였다. 같은 해 5월 1일에 ‘어린이날’ 기념식을 거행하고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전단 12만장을 배포하였다. 1925년에는 제3회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동화구연대회(童話口演大會)를 개최하였다.1928년에 세계 20여 개 나라 어린이가 참가하는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하였다. 방정환이 남긴 작품은 번안물이 대부분이다. 원문의 뜻과 흐름을 손상시키지 않고 외국어의 장벽을 무난히 돌파하여 동화 번안작가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다. 그가 번안 내지 개작한 동화들이 지닌 일관된 특징은 풍자와 해학의 정신과 교훈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다시 말하자면 종래의 유교도덕에 얽매어 있던 어린이들을 어린이다운 감성으로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감성 해방은 시대적 상황과 결부되어 그들을 웃기기보다는 울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웬일인지 별 하나/보이지 않고/남은 별이 둘이서/눈물 흘린다.”(형제별)와 같은 동요에서 이러한 모습은 잘 나타나고 있다.생전에 실천하고 남긴 업적을 간추려보면, 첫째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최초의 아동문화운동가요, 사회운동가였다. ‘소년입지회(少年立志會)’의 조직과 3·1독립운동 참가, ‘천도교소년회’결성 및 육성이나, 아동을 ‘어린이’라는 용어로 ‘늙은이’·‘젊은이’와 대등하게 격상시킨 일 및 아동문제연구단체인 ‘색동회’ 조직, ‘어린이의 날’ 제정 등이 그것을 입증한다.둘째로 번안 및 개작작가·동화작가·동화구연가·아동잡지 편집인으로서의 업적이다. 『사랑의 선물』(개벽사, 1922)을 비롯한 본격적인 개작 번안, 창작동화를 남기며 최초의 대표적인 구연동화가로 활약하고 『어린이』지를 통하여 윤석중(尹石重)·이원수(李元壽)·서덕촌 등 아동문학가의 발굴, 육성에 힘썼다.셋째로 아동들을 소박하고 천진난만하며 순진무구하게 보고 감상적·관념적·권선징악적인 작품을 통해서 그들이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린이의 현실적·경제적 어려움을 이해하고 종래의 전통적인 부당한 대우를 시정하여 감성 해방(동심 회복)을 하려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그러므로 그는 금세기 우리나라의 지사(志士)요, 선구적 언론인이요, 교육자요, 문학가로 불려야 마땅한 인물이다.
.노래 주머니...11
.토끼의 재판...41
.꾀바른 토끼...59
.두꺼비의 배...67
.도적과 현인...77
.달 속의 토끼...93
.말하는 미륵님...101
.지은이에 대하여...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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