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동유럽의 작은 나라 헝가리에서 날아온 판타지 동화. 한 소년이 어린 시절과 작별하고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신비롭고 아름답게 그렸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년 페르코가 우연히 ‘참하늘빛’이라는 마법 물감을 손에 넣으면서 벌어지는 모험담으로, 동유럽 특유의 매력적인 상상력과 강렬한 색채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린이가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를 찬찬히 되돌아보게 하는 성장 동화로, ‘사계절 중학년문고’의 스물한 번째 책이다.
동유럽의 작은 나라 헝가리에서 날아온 성장 동화의 전범‘성장’은 아동문학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보편적인 주제이자 중요한 키워드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는 아이들에게 있어 성장은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낯선 세계로 진입하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이가 자라 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는 이야기는 문학 장르 중에서도 ‘동화’가 지닌 본연의 의미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내러티브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성장 이야기에는 중요한 모티프가 하나 존재한다. ‘길 찾기’가 바로 그것이다. 동화에서 길 찾기는 주로 판타지나 모험의 형식을 통해 나타나는데, 주인공은 갖가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조력자나 초월적인 힘을 지닌 물건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결국 주인공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 길 위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낯선 길로 들어설 것인가.
‘사계절 중학년문고’의 스물한 번째 책 『페르코의 마법 물감』(Az igazi egszinkek, 참하늘빛)은 한 아이가 어린 시절과 작별하고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판타지 동화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그림 그리기를 무엇보다 좋아하는 페르코가 우연히 마법 물감을 손에 넣으면서 벌어지는 모험담으로, 책장을 열면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마법 같은 상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우리에겐 다소 낯선 헝가리 동화이지만,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성장 동화의 전범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어린 시절 읽은 책 가운데 아이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으로 꼽힐 만큼 오랫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유명한 동화 작가이자 평론가인 우에노 료 역시 어린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잘 그려낸 훌륭한 동화라고 극찬한 바 있다. 세상에 나온 지 90년 가까이 된 고전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이번에 처음 소개되었다.
‘참하늘빛’ 마법 물감을 칠하는 순간,
그림 속 하늘에서 별이 반짝이고 선생님 모자 속에 번개가 친다페르코는 가난한 어머니를 도와 세탁물 배달을 하느라 숙제를 할 짬이 없다. 그래서 수업시간마다 교실 맨 뒤 ‘게으름뱅이 자리’로 쫓겨나기 일쑤다. 하지만 그림 솜씨만큼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그러던 어느 날, 페르코는 그림을 대신 그려 주는 대가로 부잣집 아이인 칼리에게 물감과 도화지를 빌린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물감 같은 건 꿈도 못 꾸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르코가 세탁물을 배달하러 나간 사이에 파란색 물감이 없어지고 만다. 페르코는 고양이 친츠의 짓일 거라 여기지만, 친츠는 자신은 결백하다며 극구 부인한다. 결국 페르코는 칼리에게 하늘색 물감을 돌려주지 못하고, 칼리는 선생님한테 이르겠다며 길길이 날뛴다.
페르코는 학교도 가지 못한 채 길거리를 방황하다가 이상한 수위 아저씨가 가르쳐 준, 딱 일 분 동안만 꽃이 핀다는 푸른 꽃밭을 발견한다. 이 신비한 꽃의 이름은 참하늘빛. 페르코는 그 꽃을 꺾어 즙을 짜서 병 속에 담는다. 그렇게 페르코만의 참하늘빛 물감이 완성된다.
하지만 참하늘빛 꽃에서 얻어 낸 물감은 보통 물감과는 다른 마법 물감이다. 도화지에 하늘을 그리면 그림 속 하늘에서 해와 달이 뜨고 지고, 심지어 별까지 빛난다. 진짜 하늘과 똑같은 하늘이 그림 속에 생기는 것이다.
‘반딧불이들이 내 그림 위를 기어 다니고 있는 걸까?’
페르코는 그렇게 생각하며 연장 궤짝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허리를 구부리고 그림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페르코의 눈앞에 너무나도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그것은 반딧불이 아니었다. 수많은 작은 별이었다. 좀 전에 페르코가 참하늘빛을 칠한 하늘에 해가 져서 깜깜해지자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림 오른쪽의 울타리 위로 큰곰자리가 보였다. 크기는 아주 작았지만 달도 지붕 위로 솟은 두 개의 굴뚝 사이로 막 떠오르고 있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진짜 달이었다. 그림 속 조그만 집의 유리창이 그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본문 36쪽에서
페르코는 짝사랑하는 소녀 주지에게 마법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선물한다. 주지는 페르코의 그림을 받고 감동한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주지가 책상 위에 그림을 올려놓자 그림 속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더니 천둥이 치고 번개가 떨어진다. 번개는 그림 속의 집을 태우고 급기야 도화지마저 태워 버린다. 페르코의 물감이 마법 물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칼리는 잃어버린 파란색 물감 대신 참하늘빛을 달라며 억지로 반을 빼앗는다.
모자 안에서 또 한 번 쿠르릉! 하고 천둥이 쳤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좀 더 소리가 컸다.
노박 선생님이 너무 당황해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은 코안경을 벗고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남학생들이 웅성거렸다. 여학생들은 겁먹은 얼굴로 서로서로 마주보았다. 그때 갑자기 노박 선생님의 신사 모자 속에서 총소리처럼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물줄기가 노박 선생님의 얼굴을 타고 주룩주룩 흘러내려 옷깃 속으로 떨어졌다.
노박 선생님이 소스라치게 놀라 당장에 신사 모자를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 본문 69쪽에서
그때부터 마법 물감을 둘러싼 신기하고 재미있는 사건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한다. 몰래 마법 물감을 칠해 둔 모자를 쓴 선생님이 소나기에 흠뻑 젖기도 하고, 궤짝 뚜껑에 하늘을 그린 뒤 그 위에 앉아 강을 내려가다가 이웃마을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보낸 성자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마법 물감도 바닥이 나 버린다. 이제 남은 참하늘빛은 페르코의 반바지에 떨어진 단 한 방울뿐이다. 참하늘빛 한 방울은 페르코의 반바지에 작은 하늘 조각으로 남는다. 페르코는 앞으로 영원히 반바지를 벗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처음에 페르코는 그것이 등불에 반사된 눈물방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가락으로 만져 보았지만 조금도 젖어 있지 않았다. 페르코는 눈을 비비고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았다.
‘앗, 이건 조그만 푸른 별이잖아?’
그것은 작디작은 참하늘빛 하늘 조각이었다. 지난번 참하늘빛 꽃 즙을 짤 때 바지에 한 방울 튄 적이 있다. 그 하늘에서 작디작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 본문 119쪽에서
그로부터 삼 년의 시간이 흐른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긴 바지로 갈아입은 지 오래다. 반바지 차림은 페르코 뿐이다. 주지는 페르코에게 말한다. 나랑 같이 산책할 마음이 있다면 그 어린애 같은 바지는 이제 그만 벗으라고. 페르코는 망설인다. 그러다가 주지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거기에 바로 참하늘빛을 꼭 닮은 아름다움이 있음을 깨닫는다. 페르코는 주지의 눈에서 빛나는 참하늘빛을 위해 반바지를 벗는다.
마법보다 신비로운 아이들의 삶과 사랑『페르코의 마법 물감』이 구현하는 세계는 오롯이 아이들만의 세계이다. 그것도 신 나고 즐거운 판타지의 세계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가슴 뛰는 모험의 길, 그 끝에 있다. 작가는 페르코가 반바지에 얼룩진 참하늘빛보다 아름다운 가치를 주지에게서 발견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반바지를 벗는 이유가 다름 아닌 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눈빛 때문이라는 것. 페르코를 어른의 세계로 자연스럽게 이끈 것은 결국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라는, 이 짧지만 강렬한 결말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도 아름답게 다가온다. 또한 페르코와 같은 독립적인 캐릭터를 통해 ‘성장 동화의 주체는 말 그대로 성장하는 어린이’라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우에노 료는 자신의 저서 『현대 어린이문학』에서 ‘어린이를 그리는 것은 인간을 그리는 것이다. 인간을 그리는 것은 삶의 기쁨 또는 슬픔을 그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 작품에는 어린이가 ‘동심’ 속에 매몰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사랑하는 인간,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가치를 기꺼이 포기할 줄 아는 능동적인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것이 바로 마치 참하늘빛 마법 물감을 칠한 듯, 이 작품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이유이다.
동유럽 특유의 상상력과 영화적 이미지가 빚어낸 독특한 판타지이 책을 쓴 벨라 발라즈(Bela Balazs, 1884~1949)는 헝가리 태생의 작가로, 20세기 헝가리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사상가이다. 영화감독, 각본가, 시인, 소설가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무엇보다 초창기 영화 이론과 제작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영화 이론가로 유명하다. 특히 『가시적 인간』이나 『영화의 이론』 같은 그의 저서들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영화학도들의 교과서로 불릴 만큼 훌륭한 이론서로 평가받는다.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색채감과 이미지는 상당히 강렬하다. 특히 참하늘빛으로 대표되는 푸른빛의 이미지는 마치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처럼 신비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페르코가 다락방 궤짝 안에 들어가 누워 참하늘빛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나, 몰래 물감을 칠해 놓은 모자를 쓴 선생님이 모자 속에 내리는 소나기에 흠뻑 젖는 장면은 작가의 영화적 상상력이 고스란히 투영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발표된 지 90년 가까이 된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감각적이다.
『페르코의 마법 물감』은 우리에게 익숙한 영미권 판타지 동화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아이들은 물론 그 시기를 지나온 어른들에게도 오랜만에 좋은 동화를 읽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