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소설 《사탄탱고》에 이어 선보이는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두 번째 소설. 작가 특유의 묵시화를 한층 장대한 차원으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을 두고 “서구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암울한 역사에 대한 통찰”이라고 평가했다.
많은 포스트모던 작가들이 광기의 시선으로 파헤친 현실을 다루지만,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이 중 ‘가장 이상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서술은 한 문장으로 한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 허다하다. 《저항의 멜랑콜리》의 영문판 번역가이자 시인인 조지 시르테스(George Szirtes)는 이를 “느리게 흐르는 용암 같은 서사”라고 비유했다. 헝가리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서사에는 일련의 생생한 캐릭터들이 서로 치밀하게 얽혀 있다.
헝가리의 어느 작은 마을, 살을 에는 추위가 계속되고 가로등은 이유 없이 켜지지 않으며 거대한 나무가 하루아침에 뿌리째 뽑혀 드러눕더니 수십 년간 멈춰 있던 교회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때마침 한 유랑 서커스단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를 보여준다며 도시에 들어서고, 온갖 소문과 편집증이 난무한다.
출판사 리뷰
<사탄탱고>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이번엔 ‘리바이어던’을 불러내다!
헝가리의 어느 작은 마을, 살을 에는 추위가 계속되고 가로등은 이유 없이 켜지지 않으며 거대한 나무가 하루아침에 뿌리째 뽑혀 드러눕더니 수십 년간 멈춰 있던 교회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때마침 한 유랑 서커스단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를 보여준다며 도시에 들어서고, 온갖 소문과 편집증이 난무한다. 데뷔작 《사탄탱고》에서 체제에 유린당한 사람들이 고통의 쳇바퀴에 포박되는 과정을 탱고의 스텝-앞으로 여섯 스텝, 뒤로 여섯 스텝-이라는 형식으로 구현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저항의 멜랑콜리》에서 다시 한번 ‘세상의 끝과 그 너머’를 그리기 위해 이번에는 ‘고래’를 선택했다.
이 ‘한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어마어마한 거수(巨獸)’는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과 포개진다. 동시에, 이 고래를 운반하는 불길한 트럭은 사실상 마을에 어떤 직접적인 해도 입히지 않고 그저 광장 한가운데 조용히 세워져 있는 것만으로 마을 전체를 광기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트로이 목마가 함의하는 방대한 예술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W. G. 제발트의 말처럼 이 소설이 보여주는 통찰의 보편성은 ‘모든 현대 저작의 자잘한 관심사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단락 구분 하나 없는 광대한 검은 강 같은 활자들에는 녹아든 메시지는 어느 하나로 압축되기 어렵다. 그것은 작가가 건너지른 동유럽의 격변사이기도, 각 계급의 사회적 의식 형성에 대한 냉혹한 성찰이기도, ‘한낮의 악마’라고도 했던 멜랑콜리의 진창에 붙박인 인간의 운명이기도, 키치와 블랙코미디에서 그리스비극을 이끌어내려는 시도이기도, 또는 그 모두이기도 하다.
헝가리의 은둔자, 예술가들의 예술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 작가가 선사하는 황홀한 문학 체험
지난해 알마는 소설 《사탄탱고》를 출간해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를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 소개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는 벨라 타르 감독의 전설적인 촬영 기법과 7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화제를 모으며 먼저 한국에 소개된 바 있다. 수전 손택이 “남은 생애 동안 매년 한 번씩은 반드시 보겠다”는 말로 상찬했던 영화의 압도적 스케일에 매혹된 관객들은 원작을 만나길 기다려왔고, 소설 《사탄탱고》의 출간은 그 오랜 갈증에 단비를 내렸다. ‘헝가리의 은둔자’ ‘예술가들의 예술가’로만 알려진 크러스너호르커이는 기존에 소개된 세계 문학들이 가닿았던 지평 너머의 경험을 선사하며 ‘낯선 황홀함’을 찾아 헤매던 독자들의 영토에 착지했다.
이번에 알마가 두 번째로 선보이는 《저항의 멜랑콜리》는 작가 특유의 묵시화(?示畵)를 한층 장대한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단은 이 작품을 두고 “서구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암울한 역사에 대한 통찰”이라고 평가했다. 이 소설 또한 벨라 타르 감독의 영화 <베르크마이스터 하모니(Werckmeister Harmonies)>로 만들어졌다. 아직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BBC가 선정한 2000년 이후 100대 영화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알마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또 다른 대표작 《저 아래 서왕모(Seiobo There Below)》 《세상은 계속된다(The World Goes On)》 《마지막 늑대The Last Wolf》 등도 순차적으로 소개한다. 문학이 밀어 올릴 수 있는 세계의 한계를 의심하지 않는 독자라면 이 컬렉션을 통해 무엇으로 수식해도 미지(未知)로 남을 한 거장에 대한 평가를 저마다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용암처럼 퍼붓는 문장,
몰락하고 또 저항하는 캐릭터,
소설 밖에서 소설을 지배하는 멜랑콜리
많은 포스트모던 작가들이 광기의 시선으로 파헤친 현실을 다루지만,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이 중 ‘가장 이상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서술은 한 문장으로 한 페이지를 넘기는 일이 허다하다. 《저항의 멜랑콜리》의 영문판 번역가이자 시인인 조지 시르테스(George Szirtes)는 이를 “느리게 흐르는 용암 같은 서사”라고 비유했다. 헝가리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서사에는 일련의 생생한 캐릭터들이 서로 치밀하게 얽혀 있다.
서커스단이 몰고 온 ‘고래’에 겁먹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혼란을 키우는 사이,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는 에스테르 부인은 마을을 장악하겠다는 계략을 짠다. 그녀의 남편 에스테르 죄르지는 과거 뭇 이웃의 존경을 받는 음악학교 학장이었으나 수년 전 스스로 세상에서 격리되기로 결심한 이후 온종일 침대에 누워 지내는, 늙고 병약하며 ‘애매모호한 명망가’이다. 그가 아직 가느다랗게 세상과 연결되는 순간은 서른다섯 살의 청년 벌루시커가 식사를 챙겨주기 위해 그 ‘우울한 침실’에 방문할 때다. 밤낮으로 자신만의 ‘코스모스’에 사로잡혀 별과 달과 태양을 떠들며 마을을 배회하는 벌루시커는 비록 속세의 눈에는 그 나이 먹도록 사람 구실 못하고 술과 몽상에 찌든 마을의 백치이지만, 에스테르에게는 바깥의 난장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구도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세계에 ‘저항’하는 이 둘의 기묘한 우정은 에스테르 부인을 통해 현현되는 파시즘과 충돌하며 마을을 잠식한 공포와 불안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제목에 들어간 단어 ‘멜랑콜리’는 정작 책 속에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번역자 구소영의 말대로라면 ‘표지 밖’에서 활동하며 독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 증상의 근본적인 두 개념은 ‘두려움(공포)’과 ‘슬픔(실의)’이다. 또한 <뉴요커>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자신의 사적인 낙원(Edens)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들의 내면을 덜 아름다운 동시에 더 아름답게” 만든다. 이 같은 아이러니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라고 스스로를 수식했던 크러스너호르커이만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지난 몇 달 동안 날로 섬뜩섬뜩 놀래는 사건들 사이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는 일은 불가능했다. 뉴스, 험담, 뜬소문, 개인적인 경험을 뒤섞고 엇갈려 보면 일관성이라곤 거의 없기도 하거니와(이를테면 십일월 초 너무 일찍 불시에 찾아든 된서리, 의문투성이의 가족 단위 참사들, 유달리 잇따르는 철도 사고들, 비행 청소년 떼거리들이 먼 수도에서 공공 기념물을 훼손하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소문들 사이에 어떤 이성적인 연결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이런 뉴스 항목은 어느 하나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게 아니라,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입에 올리는 말처럼 단순히 모두 ‘다가오는 대재앙’의 징조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무언의 승인인가? 아니면 다시 내가 꿈이라도 꾸는 건가?’ 플라우프 부인은 앞만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이내 자신의 상상이 빚어낸 일일 가능성은 제쳤다. 그녀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두고 보건대, 저 남자가 노파를 쳤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노파의 끊임없는 수다에 물릴 대로 물렸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한마디 말도 없이 그녀의 면상을 쳤다, 아니다, 가슴팍을 퍽 하고 쳤겠다, 그렇다, 다른 식일 리가 없다, 그런 생각에 그녀는 충격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고, 섬뜩한 공포로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불거져 나왔다. 노파는 저기 의식을 잃고 꼬꾸라져 있고, 털모자를 쓴 남자는 아무 움직임이 없다. 땀이 이마에서 다시 솟구쳤다. 대체 어쩌다가 내가 이런 수치스럽고 쓰레기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걸까?
고래를 보는 것, 한편으로 보고 있는 전체를 전반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같은 뜻이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꼬리지느러미, 마르고 갈라진 철회색 껍질과, 중간쯤 아래 기이하게 부풀어 오른 몸체, 하나로도 족히 수 미터에 이르는 등지느러미를 가늠해보는 일은 대단히 가망 없는 과업 같았다. 그냥 너무 크고 너무 길었다. 눈에 전체가 한꺼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고, 죽은 눈은 제대로 쳐다볼 기회도 없었다. 벌루시커는 어기적어기적 걷고 있는 줄에 간신히 몸을 끼워 넣고서, 마침내 기발하게 받쳐서 활짝 벌려놓은 턱까지 이르렀는데, 그는 어두운 목 안을 들여다보거나, 시선을 멀리 떼어 바깥 몸의 양쪽 깊은 구멍에 쑤욱 잠긴 두 개의 작은 눈을 찾아보거나, 눈 위로 낮은 쪽 이마에 있는 두 개의 분수공을 알아보거나, 이들 부위를 따로따로 떼어 보고 있어서, 다 같이, 어마어마한 머리를 그냥 통합된 전체로 보는 일은 불가능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났다.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유학했다. 이후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중국, 몽골, 일본,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체류하며 작품을 써왔다.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며 고골, 멜빌과 자주 비견된다. 수전 손택은 그를 “현존하는 묵시록 문학의 최고 거장”으로 일컫기도 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는 자신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종말론적 성향에 대해 “아마도 나는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인 것 같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감독 벨라 타르, 미술가 막스 뉴만과의 협업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주요 작품으로 《사탄탱고》(1985), 《저항의 멜랑콜리》(1989), 《전쟁과 전쟁War and War》(1999), 《저 아래 서왕모Seiobo There Below》(2008), 《마지막 늑대The Last Wolf》(2009), 《세상은 계속된다The World Goes On》(2013) 등이 있다.그의 소설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다양한 국내 및 국제 문학상을 수상했다. 헝가리 최고 권위 문학상인 코슈트Kossuth상과 대문호 산도르 마라이S?ndor M?rai의 이름을 따 제정한 산도르 마라이 문학상을 비롯해, 독일의 베스텐리스테SWR-Bestenliste 문학상과 브뤼케 베를린Br?cke Berlin 문학상, 스위스의 슈피허Spycher 문학상 등을 받았고, 2015년에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했다. 2018년 《세상은 계속된다》로 같은 상 최종 후보에 또 한 번 이름을 올렸다.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론된다.*국내에 알려진 이름은 ‘라슬로 크라스나호르카이’였으나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 규정과 헝가리어의 성-이름순 표기 방식에 따라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로 표기했다.
목차
도입: 이례적인 상황들
협상: 베르크마이스터 하모니
결론: 추도사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