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사계절 1318 문고 118권.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선 청소년들의 심리와 내면을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해 탁월하게 풀어낸 작품들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아동청소년문학 작가 최나미의 청소년소설이다. 이번에는 할머니라 불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개성 강한 할머니와 공감 능력 제로인 은둔형 외톨이 소년이 만났다. 갑작스럽게 엄마를 잃고 1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던 석균네 집에 조영분 여사가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누군지 알 수 없는 문자가 담긴 엄마의 휴대폰이 석균 앞으로 배달되고, 석균은 이 사건을 풀어야 한다. 작가 특유의 치밀한 전개와 신선하고 독특한 조합의 인물들이 펼쳐 놓는 이야기를 퍼즐 맞추듯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묵직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 때문에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이 질문은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때때로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자신만의 세계에서 석균이 세상 밖으로 첫 발을 내딛기까지의 여정을 함께하다 보면 우리는 그 질문에 조심스레 답할 준비를 하게 된다.
출판사 리뷰
은둔형 외톨이 소년과 이상한 할머니의 동거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그 충격으로 학교도 가지 않고 1년 동안 집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소년 석균. 아빠와 평소 말도 잘 하지 않고 지내던 석균이라 엄마의 죽음 이후 관계는 더 소원해지는데 고등학교 상담 교사인 아빠는 그런 석균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석균은 아빠가 만들어 주는 음식엔 손도 안 대고 아빠가 주는 용돈으로 늘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하루는 폭식을 하다 숨이 막힐 지경이 되는데 우연히 전직 간호사 출신 동네 할머니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그 할머니는 안 그래도 석균네 1층 화단에 눈독을 들이던 차였는데, 갑작스레 석균네 방 하나를 쓰며 몇 달간 석균네 집에 세들어 살게 된다. 짐이라곤 여행 가방 하나에 주체 못 할 정도로 큰 화분과 작은 화분들. 석균은 자기 공간을 침범한 이방인이 불편하기만 하고, 엄마의 화분들 틈새로 자리 잡은 낯선 화분들이 싫다. 하지만 석균네 아빠는 응급 상황에서 석균을 구한 할머니가 석균과 함께 있는 것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둘이 첫날부터 화분 위치 때문에 크게 싸운 것도 모른 채.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던 석균네 집에 까칠한 할머니가 들어오고부터 석균도 모르는 새 조그만 변화가 시작된다.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새 저 밉상 할머니를 따라 집 밖을 헤매고 있는 이 잡념 말이다. 내 방과 완전히 분리된 다른 세상엔 그동안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42쪽
사건의 시작, 낯선 이름으로 배달된 엄마의 휴대폰
어느 날, 최형은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석균에게 소포가 배달되고 그 안에는 그렇게 찾아 헤매던 엄마의 휴대폰이 들어 있다. ‘이번에도 너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겠지?’라는 문자가 임시 저장되어 있는 걸 확인하고서야 석균은 뭔가 사연이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사건을 해결하려면 집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 석균은 히키코모리로 모두와 단절된 상태로 지내지만, 유일하게 연락할 수 있는 친구 가람이와 할머니의 무심한 배려로 사건에 다가서게 된다. 최형은이 6학년 때 같은 반 아이였던 연욱의 누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석균. 모든 일에 무심하고 제대로 된 기억이나 추억을 갖고 있지 않아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늘 듣지만, 연욱에 관해서는 숨어 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당시 석균네 반에서는 ‘탐정놀이’가 유행했는데, 아이들끼리 몇 가지 단서만으로 사건을 추리해 내는 방식으로 장난치는 놀이였다. 그런데 학교 앞에서 한 학생이 납치될 뻔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애가 납치되는 걸 어떤 애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아이들은 그 아이 찾기 놀이에 빠진다. 몇 가지 단서로 석균이는 자기네 반 연욱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아이들은 연욱이를 은근히 비난하며 지낸다. 졸업식 날, 그 아이가 연욱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모두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었다.
나는 연욱이 울음소리를 들으며 교실을 나와 버렸다.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연욱이 저 자식은, 억울한 말이 오고가는 것 같으면 아니라고 하면 되잖아! 첫날은 말하기 힘들었다고 쳐. 그 뒤에는 왜 가만히 있었는데! 그리고 어쩌냐니! 연욱이를 괴롭혔던 건 자기들이면서 왜 이제 와서 나한테 책임을 떠미느냐고! -139쪽
석균은 별일 아니라 생각했던 일이 연욱이한테는 엄청난 고통을 주었고, 결국 연욱은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대안학교로 전학 갔다 자퇴를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형은은 연욱의 안타까운 사연을 풀어 주고자 석균 아빠를 찾아갔었는데 아빠는 석균이가 그럴 리가 없다며 그냥 넘어갔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석균 엄마는 형은과 연욱에게 찾아가 사과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할머니의 비밀
좀처럼 남의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할머니지만 연욱이 일에 극도로 흥분하는 모습을 보며 석균은 의아하게 생각한다. 사실 할머니도 이상한 점이 많다. 4층 자기 집을 놔두고 굳이 1층 석균네로 세들어 와 사는 것도 그렇고, 등산은 잘 다니면서 높은 층에 있는 요가 학원은 극도로 꺼린다. 하지만 사건이 전개되면서 할머니의 비밀도 서서히 풀린다. 할머니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고 자살을 시도한 환자한테 선의를 베풀었는데 그 학생이 할머니 집에서 투신한 충격으로 병원도 그만두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에 그러지 않았다면’으로 자책하는 석균 아빠에게 할머니는 단호하게 말한다. 만약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건 이미 할머니 스스로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혀 온 후회의 말이기도 하다.
“그럼 끝까지 모르게 하려고 했어요? 김 선생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까지라도 애를 아버지 무균실에서 보호할 수 있다고 여겼나 보죠? 아니, 처음부터 결과를 알고 행동하는 사람 있어요?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을지 5층에서 떨어져 죽을지 누가 알겠느냐고요! 사고였잖아요! 그건 연욱이 일이 아니어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다고요! 석균이한테는 그걸 말해 줬어야지요! 그래야 석균이도 자기가 수습해야 할 일이 뭔지 알지, 도망친다고 없던 일이 되냔 말이에요!”-161쪽
이제 석균은 두 가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 이모가 있는 뉴질랜드로 도망칠 것인지, 연욱이에게 사과를 할 것인지. 물론 그 어느 선택도 쉽지 않을 것이고, 여정도 험난할 것이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과 용기
작가는 뭐가 옳고 그른지 확실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인물들 역시 완벽한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작가가「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누구라도 틀린 답을 고를 수 있고, 틀리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인정하고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독자들은 상처 입은 영혼들인 할머니와 석균, 석균과 아빠가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 보이며 서로를 자기 안에 들이는 과정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 작가는 주체적이고 개성 강한 여성 캐릭터 가람이와 조영분 여사를 만들어 냈다. 이 매력적인 인물들은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석균이의 든든한 조력자들이다. 특히나 궁금한 건 못 참고 할머니란 말에 극도로 예민하게 구는 까칠한 할머니와 주인공 소년이 세대를 초월해 쌓아 가는 우정이 작품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욱!"
아빠가 방에서 나오는 기척이 들리자 억지로 쑤셔 넣은 것들이 일제히 올라왔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최나미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아동학을 공부했다. 한겨레 작가학교를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경계에 선 청소년의 심리와 내면을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해 탁월하게 풀어낸 작품들로 호평을 받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걱정쟁이 열세 살』, 『셋 둘 하나』, 『단어장』, 『진실 게임』,『바람이 울다 잠든 숲』, 『고래가 뛰는 이유』, 『진휘 바이러스』, 『학교 영웅 전설』 등이 있다.
목차
1. 나도 어쩔 수 없는 일
2. 하필 그 시간에
3. 할머니 입성기
4. 협상의 달인
5. 수상한 소포
6. 삼자 구도
7. 우정이 아니라서 편한 거래
8. 할머니의 손님
9. 기억의 단서
10. 탐정놀이
11. 추리의 끝
12.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13. 만약은 없다
14. 내뱉은 말과 삼켜진 말의 거리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