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서연비람 고전 문학 전집 다섯 번째 작품으로 연암 박지원의 한문 단편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아홉 편을 묶어 낸다. '허생전', '호질', '양반전' 세 편의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익숙한 작품들과 최근에 여러 선집에 수록되어 읽히고 있는 '광문자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김신선전', '마장전', '열녀함양박씨전' 등 나머지 여섯 편의 이야기도 수록했다.
박지원의 이야기가 가지는 기본적인 재미와 더불어 독특한 비판 정신, 풍자의 묘가 어우러진 이 작품들은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성찰적 읽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의 현실 인식과 문제의식은 상당 부분 현대의 실정에도 유효하며, 따라서 그의 작품은 현대 사회의 부조리나 모순을 타개할 만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고전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 리뷰
최성윤 교수의 재미있고 깊이 있는 해설로 만나는
연암 박지원의 한문 단편들
현대어로 쉽게 풀어써 친근하게 다가오면서도
연암의 비판 정신과 풍자의 묘가 어우러져
독자들에게 성찰적 읽기의 기회를 제공
서연비람 고전 문학 전집 다섯 번째 작품으로 연암 박지원의 한문 단편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아홉 편을 묶어 낸다. 허생전, 호질, 양반전 세 편의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익숙한 작품들과 최근에 여러 선집에 수록되어 읽히고 있는 광문자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김신선전, 마장전, 열녀함양박씨전 등 나머지 여섯 편의 이야기도 수록했다.
박지원의 이야기가 가지는 기본적인 재미와 더불어 독특한 비판 정신, 풍자의 묘가 어우러진 이 작품들은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성찰적 읽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의 현실 인식과 문제의식은 상당 부분 현대의 실정에도 유효하며, 따라서 그의 작품은 현대 사회의 부조리나 모순을 타개할 만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고전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들 중 허생전과 호질, 양반전은 나머지 작품들과 성격을 달리하고 있어 앞에 묶었다. 뒤의 여섯 작품이 실존 인물의 전기 혹은 실기의 성격을 짙게 드러내고 있다면, 앞의 세 작품은 허구적 창작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허생전, 호질, 양반전은 양반 사회와 그 사회의 기득권층인 양반을 전면에 내세워 그들을 은근히 비꼬거나 통렬하게 질타하는 작품이다. 그에 비하면 나머지 여섯 작품의 주인공들은 사회의 주류나 기득권층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데, 연암의 눈은 오히려 그들에게서 긍정적인 성격을 이끌어 내고 세상에 선보이려 하는 것이다.
박지원의 작품들은 한문으로 창작된 것들이어서 한글로 번역해 놓은 텍스트의 경우 문장의 성격과 느낌이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의 선집들이 가진 번역 문장의 한계를 모두 극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최성윤 교수와 함께 읽는 허생전/양반전』은 이야기의 원형을 훼손함이 없이 현대어로 쉽게 풀어쓰기 위해 노력했다. 할 수 있는 한 문장들이 길어지지 않도록 유의하였으며, 하나의 문장 안에 여러 의미 단위들이 집약되어 글 읽기를 방해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딱딱한 옛날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박지원의 작품들에 친근하게 다가갈 것이다.
삼십 년 전쯤에 있었던 일이라네요. 빈털터리나 다름없이 북경에 갔던 한 역관이 있었답니다. 그는 조선으로 귀국할 무렵이 되자 단골 가게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작별 인사를 하면서 몹시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지요. 단골 가게 주인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왜 그러느냐고 까닭을 물었습니다. 역관은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해 가며 하소연을 늘어놓았습니다.
“압록강을 건널 적에 남이 부탁한 은을 몰래 숨겨 갖고 오다가 그만 들켰지 뭡니까. 그 바람에 제 몫까지 관청에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제 빈손으로 돌아가면 무얼 먹고살지 막막하기 짝이 없습니다. 차라리 돌아가지 않고 여기서 죽는 게 낫겠습니다.”
역관은 갑자기 품속에서 칼을 뽑아 들고 자살을 하려고 했습니다.
상점 주인은 깜짝 놀라서 급히 그를 끌어안으며 칼을 빼앗고 물었습니다.
“빼앗긴 은이 얼마나 되기에 목숨을 끊으려고 그러오?”
“삼천 냥이랍니다.”
주인은 역관을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대장부가 그래서야 쓰겠소? 몸이 없어질까 걱정이지, 어찌 돈 없어지는 것을 걱정한단 말이오? 만약 그대가 여기서 죽는다면 집에서 눈 빠지게 기다리는 처자식은 어떡하라고 그러시오? 자, 그러지 말고 내가 만 냥을 빌려 줄 테니 잘 늘려 보시오. 다섯 해 동안이면 만 냥은 벌 수 있을 거요. 그러면 그때 가서 본전만 갚으시오.”
역관은 수없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주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얻은 돈 만 냥으로 이것저것 물품을 사서 조선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사정을 알 턱이 없지요. 모두들 그의 재주가 신통하여 중국에서 돈을 벌었거니 생각했답니다.
상점 주인의 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과연 역관은 다섯 해 만에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본전만 갚으라는 주인의 말이 있었지만, 이자를 후하게 쳐서 갚아도 남을 만큼 막대한 재물을 모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고 보니 엉큼한 본심이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아니, 그의 생각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처음부터 은혜를 갚을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순진한 중국인을 속여서 제 욕심을 채우겠다는 것이었겠지요.
그는 역관들을 관리하는 관청인 사역원에 찾아가 명부에서 제 이름을 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북경에 가지 않았습니다.
무심한 시간이 여러 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역관은 북경으로 출장 가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역관은 친구에게 넌지시 부탁했습니다.
“북경의 시장에 가면 아무개라는 상점 주인을 만나게 될 걸세. 주인은 틀림없이 내 소식과 안부를 물어볼 거야. 그러면 시치미를 딱 떼고 우리 가족이 모두 염병에 걸려 죽었다고만 말해 주게.”
친구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럼 날더러 거짓말을 하라는 건가?”
친구는 곤란한 기색을 보이며 주저하였습니다. 그러자 역관은 친구의 손을 은근히 잡으며 다시 한번 꾀었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둘러대 주기만 한다면 백 냥을 주겠네.”
친구는 찜찜한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북경 가는 길에 올랐습니다.
동리자의 아들들은 북곽 선생과 동리자의 위선적인 모습을 목격했으면서도 그 상황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다. 자신들의 어머니가 과연 열녀인지 의심할 줄도 모르고 눈앞의 북곽 선생을 천 년 묵은 여우일 것이라고 믿는 등 허상에 빠져 있다.
어찌 보면 순진한 모습일 수도 있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어리석은 모습이기도 하다. 이들의 순진한 모습에 주목하여 이 부분을 읽는다면 다섯 아들은 북곽 선생을 곤경에 빠뜨리고 결과적으로 그의 허위를 폭로하는 역할을 하는 주변 인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어리석은 모습에 주목한다면 이는 양반들의 이중성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현실 사회의 모순에 대해 의문을 갖지 못하는 우매한 백성들을 풍자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북곽 선생은 옷을 털고 일어나 얼른 자리를 떠나려 하였습니다. 자신의 꼴을 누구에겐가 들킬까 걱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좋죠? 마침 이른 새벽 밭 갈러 나온 농부가 북곽 선생이 엎드려 있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보고 말았습니다. 농부는 의아하여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 꼭두새벽에 벌판에 대고 웬 절을 그렇게 하고 계십니까?”
북곽 선생은 시치미를 뚝 떼며 말했답니다.
“옛 성인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높다 해도 머리를 아니 숙일 수 없고, 땅이 두텁다 해도 조심스럽게 딛지 않을 수 없다’ 하셨느니라.”
양반 사회의 본질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이야기 후반부에 등장하는 농부도 마찬가지이다. 똥을 뒤집어쓰고 비굴한 자세로 엎드려 있는 북곽 선생을 발견하고도 그에 대한 고정 관념 때문에 눈앞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달리 보면 불륜이 들통나서 도망치다가 범에게 봉변을 당한 선비와 누구보다 먼저 밭을 갈러 나온 부지런한 농부의 새벽을 겹쳐 놓음으로써 모두가 잠든 시간을 활용하는 두 사람의 방법을 절묘하게 대조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어느 춥고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날이었습니다. 거지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구걸을 하러 거리로 나가고 광문은 병을 앓고 있는 아이와 단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아픈 아이를 돌보고 있던 광문은 아이가 점점 병이 심해져서 오들오들 떨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게 여간 딱하지 않았습니다.
환자의 머리맡에 앉아 있던 광문은 보다 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아이에게 밥이라도 한 그릇 얻어다 먹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아이가 힘을 차리고 일어나 앉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거지 소굴 밖의 찬바람이 할퀴듯 광문의 몸을 파고들었습니다. 광문은 걸음을 재촉하여 가까운 곳의 인심 좋은 집 쪽으로 내달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밥을 얻어 돌아온 광문은 그만 맥이 쭉 빠져 버렸습니다. 앓던 아이가 이미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광문은 아이를 붙잡고 넋이 나간 듯 구슬프게 흐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구걸을 나갔던 아이들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이들은 광문이 앓던 아이를 죽인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우르르 달려들어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광문은 그만 기가 막혔습니다. 억울한 것은 둘째 치고 계속 맞다 보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바깥으로 광문은 쫓겨나듯 달려 나와 정처 없이 도망쳤습니다.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광문은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어느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낯선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본 개가 사납게 짖기 시작했습니다. 개 짖는 소리에 밖으로 나온 집주인은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광문을 잡아서 꽁꽁 묶었습니다.
광문은 울면서 소리쳤습니다.
“저는 도둑이 아닙니다. 저를 죽이려는 아이들을 피해서 도망 온 것이에요. 정 믿지 못하시겠다면 날이 밝는 대로 거리에 나가서 무슨 사정인지 한번 알아보십시오.”
집주인은 광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습니다. 표정이나 목소리가 퍽 순진하고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광문을 묶은 줄을 다시 풀어 주었습니다.
몸이 자유로워진 광문은 꾸벅,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가려다가 다시 돌아서서 집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나리, 저에게 필요한 데가 있어 그러니 거적 한 장만 주시면 안 될까요?”
주인은 광문의 부탁을 선선히 들어 주었습니다. 광문은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서 걸어갔습니다.
광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집주인은 문득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몰래 광문의 뒤를 밟아 보았습니다. 광문은 거적을 들고 터덜터덜 한참을 걸었습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지원
조선 후기 정조 때의 실학자로,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박제가, 홍대용, 유득공 등과 사귀면서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여 백성들의 살림을 윤택하게 하고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용후생의 북학사상을 주창했다. 정조 즉위 초에 홍국영에게 노론 벽파로 몰려 신변이 위험에 처하자 황해도 연암 골짜기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살기도 했다.44세 때인 정조 4년(1780)에 청나라 황제의 진하사절인 삼종형 박명원을 따라 연경(북경), 열하 등지를 여행했다. 이때 보고 들은 것들과 느낀 것들을 독특한 형식에 담은 기행문 〈열하일기〉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으며, 사대부들 사이에서 열렬한 호응과 격렬한 반발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늦은 나이에 벼슬을 얻어 지방 관리로 지내기도 했으나 순조가 즉위하자 병을 핑계로 초야로 들어가 생을 마쳤다. 문학 작품으로는 〈허생전〉,〈양반전〉,〈호질〉,〈광문자전〉 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허생전/양반전 』를 읽기 전에
허생전
옥갑야화 하나, 배은망덕한 역관의 최후
옥갑야화 둘, 역관의 은혜에 보답한 여인
옥갑야화 셋, 옛 주인의 손자를 거둔 임씨
옥갑야화 넷, 역관 변승업이 재산을 흩어 버린 이유
옥갑야화 다섯, 허생전
옥갑야화 여섯, 조 감사가 만난 중들
「허생전」을 쓰고 나서
허생전 꼼꼼히 읽기
호질
우연히 읽게 된 재미있는 이야기
선비라는 고기
과부의 방을 찾아간 선비
범의 꾸중
뒷이야기
호질 꼼꼼히 읽기
양반전
양반 사고팔기
양반이 이런 거라면
양반전 꼼꼼히 읽기
이름 없는 사람들을 기리는 이야기
광문자전
예덕선생전
민옹전
김신선전
마장전
열녀함양박씨전
해설 박지원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