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외과중환자실 간호사 21년,
전국을 울린 ‘간호사 편지’의 주인공
김현아가 고백하는 아름답고도 슬픈
이 땅의 간호사들 이야기10명 가운데 7명꼴로 인권침해 경험(69.5%) / 원하지 않는 근로 또는 강제 연장근로 경험 35% / 시간외근로수당을 지급받지 못했거나 합리적 이유 없이 연차유급휴가를 제한당한 사례 28% / 생리휴가나 육아휴직, 임신부 보호 등 모성보호 관련 인권침해 경험 22% / 우리나라 근로자 산업별 이직률 평균보다 최대 8.2배 높음(2011년 30.3%에서 2016년 35.3%로 오히려 증가) / 열악한 근로실태, 턱없이 부족한 인력 /“12시간 근무면 행복.”(* 2017년 12월 간호협회와 복지부가 실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한겨레> 등의 언론 보도 참조.)
이런 처참한 환경 속에서 오롯이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백의(白衣)의 천사(天使)’라고 불리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100가지 일을 해야 해서 ‘백(百) 일의 전사(戰士)’라 불리는 사람들, 단 한 번의 실수도 스스로 허락하지 않고 허락받을 수도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 바로 대한민국 간호사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는 21년 2개월 동안 외과중환자실에서 수많은 환자를 돌보며 쉼 없이 달려온 한 간호사의 절절한 고백이자 용기 있는 외침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성년이 되기까지 걸리는 20여 년 시간 동안 간호사라는 이름으로 직업적 신념을 꿋꿋이 지키며 살아온 한 사람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수도 없이 부딪쳤을 고뇌와 좌절은 또 어떻게 이겨냈을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삶과 죽음이 전쟁 같은 사투를 벌이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저승사자와 싸우는’ 간호사의 업무 현장,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이라는 중요한 축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늘 처친 어깨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간호사들의 열악한 환경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환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늘 강해져야 했지만
언제나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간호사들
그들의 조그만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저자는 지난 2015년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한 메르스 사태 당시 ‘간호사의 편지’로 전 국민을 감동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저승사자 물고 늘어지겠습니다. 내 환자에게는 메르스 못 오게”(2015년 6월 12일 <중앙일보> 1면)라는 제목으로 실린 김현아 간호사의 글은 메르스와의 싸움에서 패한 의료인의 회한과 절규, 그럼에도 내 환자를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담아낸 것이었다. 그 편지는 의료진을 향한 불신을 거두고 전 국민에게 용기를 불어넣음으로써 메르스 조기 종식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저자는 2016년 ‘올해의 간호인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저자가 얻은 개인적 영예와는 별개로 이 나라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인권과 처우는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다. 업무 시간이 끝나고도 병원 행사에 강제로 동원되고 선정적인 장기자랑을 강요당하거나 피 말리는 3교대 근무, 인력 부족, 각종 폭언에서 비롯된 감정소모 등의 삼중고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한 대형병원의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여성이 다수인 간호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한몫한다. “틀어놓은 TV 속 드라마에서는 간호사가 몸에 꽉 달라붙는 유니폼을 입고 아이스커피를 손에 든 채 한가로이 병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남자 의사가 간절히 환자를 살리려고 고군분투하는 사이, 화장을 짙게 하고 액세서리를 주렁주렁 단 간호사들은 수다스럽게 몰려다니며 남 얘기를 주고받거나 여기저기 참견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위염과 방광염에 시달리다 결국 병원을 떠났던 선배들이 떠올라 TV를 꺼버렸다.”(29쪽)
최근 우리 사회는 ‘갑질’, ‘여성혐오’, ‘성폭력’에 대항하는 ‘#미투’, ‘#위드유’ 캠페인 등으로 권위주의와 폭력, 차별과 불평등을 넘어서기 위한 거대한 변화의 움직임을 목격하는 중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강자에게 당하기만 하던 사람들이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조그마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모습에 감회가 새로웠다. 환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늘 강해져야 했지만 여전히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간호사의 이 조그만 목소리에도 부디 귀 기울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17쪽)
간호사가 포기하고 주저앉는 순간
환자들도 같이 주저앉는다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환자의 밥을 먹은 신규 간호사, 생리대를 갈 시간조차 없어 피가 흠뻑 번져 나오던 선배 간호사의 유니폼, 병원 행사에 빈 자리를 메우라는 지시에 퇴근도 못 하고 강연장으로 끌려간 간호사들…. 저자는 이 책을 쓰면서 자주 울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려는 생명을 붙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자부심보다는 축 처져 있을 간호사들의 어깨가 서러웠기 때문이고, 자신의 환자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저승사자와 싸우는 ‘전사’가 되어야 하는 그 고단한 시간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한 신규 간호사를 죽음으로 몰아간 ‘태움’이라는 단어가 병원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 간호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외면한 채 이미 힘을 잃고 쓰러질 듯 간신히 서 있는 간호사들만의 문제로 돌리는 시선들에 맞서고 싶었기 때문이다.”(16~17쪽)
병원이 인력보다 시설 투자 경쟁에 열을 올리는 사이 간호사들은 청소 용역비용을 충당하는 미화원 역할까지 도맡아 하게 됐다. 간호사가 주저앉으면 환자도 주저앉는다. 간호사가 자신의 환자들을 끝까지 보살피고 지키려면 간호사에게도 애정 어린 보호와 보살핌이 절실하다는 투명한 진실을 이 책은 보여준다.
1장(‘저승사자와 싸우는 간호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신규) 간호사들의 험난하고 치열한 삶, 이익 창출 중심으로 돌아가는 병원 시스템 속에서 무참히 짓밟히는 간호사의 인권과 처우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2장(‘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2015년 메르스 사태의 한가운데서 보낸 생생한 경험을 들려준다. “낙타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는 정부의 경고에 뜨악해하던 초기 분위기부터 본격적으로 감염자와 첫 사망자가 나오면서 급변해갔던 중환자실의 하루하루가 눈앞에 있는 듯 펼쳐진다. 특히 메르스 사태 당시에 전국을 감동시킨 ‘간호사의 편지’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서 탄생했는지, 그 숨은 이야기를 저자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다.
마지막 3장(‘간호사, 그 아름답고도 슬픈 직업에 대하여’)은 간호사와 환자 사이에서 싹트는 깊은 애정과 유대 관계를 따스하게 그려냄으로써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왜 간호사라는 직업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인지를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극적으로 보여준다.
남자친구의 방화로 두 다리를 잃었지만 웃음과 희망까지 잃지는 않았던 20대 여성, 강제 입양된 아기의 사진에 남몰래 밥풀을 붙여가며 어미의 몫을 하고 있던 정신지체 노숙자,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는 50대 남편에게서 도망치려고 뜨거운 철판 위를 내달리다 두 발바닥이 새카맣게 타버린 20대 베트남 여성…. 공교롭게도 저자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은 환자들은 일용직 노동자, 노숙자, 홀로 살아가는 노인, 조선족,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간호사였던 저자에게 모든 환자들은 죽음의 그림자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지키고 돌봐줘야 할 하나의 평등한 생명이었다. 그 과정에서 영영 혹은 멀리 떠나버린 삶들은 저마다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하나씩 남겼다.
“삶과 죽음 사이에 위태롭게 서 있던 내 환자들은 매 순간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을 자신들의 삶을 통해 가르쳐주었다. 앞으로 가야 할 삶의 방향을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키던 그들 한 명 한 명이 모두 내 스승이었고, 그들만이 내가 간호사라는 사실에 항상 감사하도록 해주었다.”(16쪽)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하지 않는 삶을 사는
이 땅의 간호사들에게 희망과 응원을 보내다21년 2개월, 외과중환자실 간호사가 온몸으로 써낸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는 우리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간호사들의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이자 ‘인간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를 잊은 채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우울한 단면이기도 하다. 간호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이 좀 더 나아지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24시간 내내 곁을 지키고 진심을 다해야만 호전되는 환자들에게 꼼수는 결코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된 간호사들은 수많은 일을 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환자들을 묵묵히 지켜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세상은 더 많은 부당한 일들을 강요하는 듯했다.”(286쪽)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의 정형준 정책국장은 이 책에 보낸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병원의 현실은 훨씬 험난하고, 수많은 환자들의 목숨과 쾌유가 간호사들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병원의 민낯, 그것도 간호사들의 실제 생활과 현실이 밝혀진다는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의 산물처럼 이 책은 진짜 병원 이야기를 보여준다. 화사하게 포장되어 있는 해피엔딩보다 현실은 쓰지만, 훨씬 교훈적이며 미래 지향적이다. 병원에는 의사들만 있는 게 아니라 간호사도 있다. 그 진실을, 이 책은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간호사는 ‘백의(白衣)의 천사(天使)’라고 불리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백 가지 일을 해야 하는 ‘백(百) 일의 전사(戰士)’가 되어야 했다. 응급환자를 옮겨줄 사람이 없어 직접 그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치고도 대체 인력이 없어 다친 허리를 복대로 감아가며 환자들을 돌봤다. 너무나 허기진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환자의 밥을 입으로 가져간 간호사도 있었다. 근무 틈틈이 병원의 지시에 따라 병원 수익 창출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야 했으며, 며칠 밤을 새며 그 아이디어를 돋보이게 해줄 발표 자료를 직접 만든 간호사도 있었다. 근무시간이 끝나도 돌보던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를 닦아야 했고, 급작스러운 심폐소생술이 끝난 뒤 환자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져도 정신없던 순간에 분실된 응급 비품은 간호사들의 사비로 채워놓아야 했다. 병원이 주최한 건강 강좌에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참석했고, 병원 행사가 있으면 휴일을 반납해가며 적성에도 맞지 않는 장기자랑을 준비해야 했다. 환자를 돌보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점점 줄어가자 몸과 마음도 덩달아 지쳐갔다. 그럼에도 그 옛날 언젠가 촛불을 들고 읽어내려갔던 선언문처럼 ‘간호사로서’ 내 환자들을 끝까지 지켜내고 싶었다.
_머리말할 일이 태산 같아 마음은 조급했지만 그와 달리 내 몸은 눈치 없게도 배가 고프다며 아우성이었다. 아침도 거르고 온 터였다. 중환자실 책임자는 중환자실 내에서는 냄새 때문에 커피도 마시지 못하게 했다. 환자를 배려한 결정이었지만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곤욕이었다. 커피나 간식은 근무시간이 끝난 후나 잠시 쉴 수 있을 때 의료 장비로 가득한 환자 없는 공간에서만 가능했다. 근무가 끝나려면 아직 4시간이나 남아 있었고 내 환자 곁을 떠날 잠시의 짬도 없었다. (...)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공복감이 밀려왔다. 혈전 용해제가 보관된 냉장고 안에 지난 밤 근무번이 두고 간 삶은 달걀이 하나 남아 있던 게 문득 떠올랐다. 중환자실을 수시로 둘러보는 책임자 생각에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나는 그 계란을 한 손에 꼭 쥐었다. 급히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사람들이 오가는 중환자실 문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고는 피 묻은 폐기물 박스 앞에서 마음을 졸이며 껍질을 벗겨 누가 볼 새라 황급히 계란 한 알을 통째로 입 안에 쑤셔 넣었다.
마스크 안으로 다급하게 입을 오물거리고 있던 내 눈에 창가의 따스한 봄볕이 들어왔다. 제대로 씹지도 못한 계란을 급히 삼키며 잠시 내려다본 바깥엔 내가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친 사람들의 손에는 커피가 한 잔씩 들려 있었다. 그들은 맑고 따스한 봄볕 아래 한가로이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유도 없이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나는 나이 39살의 평간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