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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바다 (반양장)
우리같이 | 청소년 | 201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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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를 기리는 마음으로 바다 모험 잔치를 벌인다!

열두 살 소년 스키프에게 밀어닥친 문제는 한도 끝도 없다. 엄마 장례식 직후 텔레비전 소파에 ‘얼어붙은’ 아빠는 고난의 서두이고, 바닷물에 가라앉은 고기잡이배 로즈 호는 시련의 서설이다. 스키프는 몇 달 동안이나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 배 밑바닥에서 물을 퍼내어 배가 가라앉지 못하게 애썼다. 혹시라도 아빠가 술병을 치우고 일어나 고기를 잡으러 갈지도 몰라서. 하지만 한땐 최고의 작살잡이였던 아빠는 고깃배가 물에 잠긴 난리판에도 소파에서 떨어질 생각조차 안 한다.

1993년『마이티』로 청소년 문학 활동을 시작해 2010년 뉴베리 아너상 수상에 이르기까지 탁월한 문학성을 인정받은 필브릭이 헤밍웨이를 기리는 마음은 각별하다. 2004년 『노인과 바다』를 기리는 마음으로 『소년과 바다』를 쓴다. 꼼짝달싹 않는 아빠를 대신해 저 혼자 고기잡이배를 끌어 올리는 옹골찬 고집쟁이 소년을 낳는다. 그리하여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의 저 유명한 말?인간은 죽는 일은 있을망정 패배하는 것은 아니다?을 열두 살 난 소년이 우리에게 들려주기에 이른다.

스키프가 들려주는 ‘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 이야기’와 ‘물이 새는 배 이야기’에는 뉴잉글랜드 해안에서 성장해서 지금도 작가인 아내와 메인 주와 플로리다 주의 키스 제도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작가만이 써낼 수 있는 풍성한 바다 모험이 펼쳐진다. ‘거의 백만 살쯤 되어서 이제는 주로 잠을 자는 할아버지’와 환상의 짝꿍을 이뤄 가며 배를 고치고 가재 덫을 놓는 장면에는, 한때 항만 노동자로 배 만드는 일을 했던 작가만이 들려줄 수 있는 생생한 에피소드가 넘쳐 난다.

헤밍웨이에 견줘 전혀 손색없는 바다 체험이『소년과 바다』곳곳에서 흘러넘친다면, 문제는 산티아고 노인이 보여준 ‘운명과 대결해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다. 열두 살 소년 스키프에게도 그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과연 어떤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운명아 비켜라, 당기고, 당기고, 당긴다!

고깃배를 고치려는 궁리 끝에 자신의 쪽배로 돈벌이를 하러 나서지만, 스키프의 모든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어 버리는 부잣집 자식과의 덫 전쟁을 피할 수 없다. 패배 아닌 패배 끝에 어마어마한 값으로 팔려나가는 참다랑어를 보게 된다. “나한테 필요한 건 쥐꼬리만 한 다랑어라도 한 마리만 잡으면 다 되는데!” 결국 3미터짜리 쪽배를 타고 50킬로미터 먼 바다로 나아가는데…… 그 터무니없는 확률에도 승산이 있을까?

“안개가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물고기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 물고기를 찾아낸다 하더라도 찌를 수 없으면 어떻게 할지 머릿속으로 한번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먼 바다로 향한 스키프에게 불어 닥치는 역경은 어느 정도 예측된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한테 작살을 찔러 넣은 스키프에게 파도처럼 잇따라 덮쳐 오는 고난은 독자들의 상상을 불허한다. 광막한 대서양 한복판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스키프의 사투를 따라가다 보면, 감히 단언컨대, 산티아고 노인이 청새치와 상어하고 벌이는 격투는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켜보고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게 만드는 바다와 안개와 참다랑어와의 사투는 시작일 뿐이다. 보트의 연료가 떨어져 노를 당기고 또 당기지 않으면 안 되는 대대적인 사투가 숨 가쁘게 연이어진다. 시시각각 죄어들어 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노를 당기고 또 당기는 수밖에 없다. 술병이나 끼고 사는 아빠를 싣고, 새로 싹 고쳐 줘야 하는 로즈 호를 싣고, 재미로 덫을 망가뜨리는 부잣집 자식을 싣고. 좋았던 시절의 아빠의 가르침과 스키프 비어먼의 세 가지 규칙과 엄마와의 약속을 싣고 스키프가 당기고 또 당길 때, 독자들도 자신도 모르게 스키프의 노를 함께 당기고 또 당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옹골찬 고집쟁이 소년이 양손을 노에 꽁꽁 묶은 채로 노를 당기는 사이사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슴 졸이고 눈물을 자아내다 보면, ‘운명과 대결해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결국은 한 소년이 눈부시게 성장해 가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소년과 바다』도 80번이나 되풀이해 읽었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수도 있었던 참다랑어의 꼬리를 만나기까지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스키프의 노 젓기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젓는 가운데 엄마 아빠가 존재한다. 필사적으로 노를 당기는 가운데 희망이 보이고 지켜야 할 약속이 살아난다. 그러므로 소년이 광막한 바다에서 당기고 또 당기는 건 단지 노만이 아니다. 엄마의 죽음에서 비롯된 아빠의 절망을 당기고, 동시에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당기는 것이다.

과거의 아픔과 절망을 현재의 노 젓기로 극복해 나가는 스키프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더없이 생생하게 감동적으로 다가온다면, 현재형 서술 특성에도 힘입은 바 크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80번이나 되풀이해 읽어 보았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필브릭이 선택한 서술전략이 바로 현재형 서술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경을 현재의 삶으로, 곧 현재 진행되는 뱃일― 참다랑어와의 사투―노 젓기 등으로 실감나게 극복해 보이려는 작가의 서술전략이 다른 작가들은 좀처럼 쓰지 않는 현재형 서술에 들어 있다.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점점 더 그 진가를 발휘하는 문체는, 미스터리와 탐정소설을 쓴 작가가 공들여 짠 작품 구성과도 환상의 조화를 이루며 이야기의 재미와 감동을 증폭시켜 나간다.

‘운명과 대결해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눈부시게 성장해 나가는 소년의 모습에서 어떻게 풍요로워지고 있는지 우리같이 청소년문고 네 번째 작품『소년과 바다』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세상에서 가장 큰 물고기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러니까 그 엄청난 놈이 어떻게 나를 죽이려고 했고 결국 내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말하기 전에 먼저 물이 새는 배 이야기부터 들려주겠다. 모든 일이 바로 그 배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배 수리와 덫 전쟁 그리고 안개 속의 천사 같은 그 모든 일은, 물이 새는 그 배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야기는 방학하는 날 시작된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싸구려 고물 자전거를 타고 스포터 힐 언덕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새들은 지저거리고, 나는 핸들에서 손을 뗀 채 불어오는 바람을 얼굴에 맞고 있다. 여름 기운이 물씬 묻어나는 날이다. 막 베어 낸 풀 향내며 항구에서 날아오는 소금기가 코를 찌른다. 뒤미처 초라한 우리 집이 눈으로 들어오는 순간,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두려워하던 일이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다는 것을 안다.
우리 배 메리 로즈 호가 가라앉아 버렸다.
로즈 호는 선실 꼭대기만 겨우 드러나 있고, 번들거리는 기름이 수면 위에 피처럼 번져 있다. 어찌나 불쌍해 보이는지 내 가슴이 다 아프다. 가라앉은 배는 비참하기 짝이 없다. 그대로 눈물이 펑펑 쏟아져도 모자랄 판이지만, 난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울지 않는다. 그 재수 없는 부잣집 자식 타일러 크로프트가 뭐라고 지껄이든 그건 사실이 아니다.
난 지난 몇 달 동안이나 로즈 호에서 물을 퍼냈다.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일어나서 배 밑바닥에 고인 물을 퍼내어 배가 가라앉지 못하게 했다. 혹시라도 아빠가 마음을 고쳐먹고 그 무거운 엉덩이를 텔레비전 앞 소파에서 들고 일어나 고기를 잡으러 나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장례식 이후 아빠가 먹고 자는 데가 바로 거기 텔레비전 앞 소파다. 허구한 날을 소파에서 빈 자루처럼 퍼져 지내면서도 아빠는 정작 텔레비전은 켜 놓지도 않는다. 맥주나 계속 마셔 대면서 천장의 거미줄이나 하릴없이 바라본다.
우리 아빠는 진짜 술주정뱅이도 못 된다. 나를 두들겨 패거나 나한테 욕을 퍼붓거나 하는 짓 같은 건 아예 하지 않는다. 그냥 기운을 잃고 축 널브러져 신세 한탄이나 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언젠가 그런 아빠한테 내리 10분이나 욕을 퍼부은 적이 있다. 아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데다가 세상에 살 가치도 없는 술꾼이라고, 소파에나 늘어져 있을 바엔 차라리 죽어 버리라고, 엄마가 보면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그렇게 마구 해 대도 아빠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그저 한숨이나 푹 내쉬며 이렇게 말할 뿐이다.
“스키피, 그래 다 진짜 미안하다.”
그러고는 베개 밑에 머리를 파묻어 버리고 만다.
그런 경우 아빠가 나한테 말하는 건지 아니면 아빠 자신한테 말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아빠와 내 이름이 똑같기 때문이다. 새뮤얼 ‘스키프’ 비어먼. 아랫마을 부두 사람들은 우리 아빠를 빅 스키프, 나를 리틀 스키프라고 구별해서 불러 주었다. 하지만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부두에도 내려가지 않는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내가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가 로즈 호가 가라앉았다고 말할 때조차도 말이다.
“아빠!”
내가 이어 말한다.
“배가 가라앉았어!”
아빠는 몸을 한쪽만 돌리고 흐릿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몇 달간 빗질 한 번 하지 않은 턱수염이 온통 헝클어져 있어 아빠가 더없이 늙고 초라해 보인다.
“학교는 끝나고, 어?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떻게 하냐?”
“배가 가라앉았다니까! 우리 어떻게 해?”
“어떻게 하냐고?”
아빠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다시 한숨을 내쉰다.
“뭐, 배를 끌어 올릴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래 봤자 다시 가라앉을 거야. 그냥 놔두는 게 상책이야.”
“배를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아빠는 고개를 소파 뒤쪽으로 돌려 버리고 내 말을 더 듣지 않으려 한다. 난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달려 나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구닥다리 우리 독(dock, 배를 만들고 수리하거나 짐을 싣고 부리기 위한 설비: 옮긴이)을 향해 층계를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아무리 봐도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일단 배가 가라앉고 나면 더 이상 물을 퍼낼 수도 없다. 그냥 썰물이 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배가 가라앉기 전에 어떻게든 윈치(winch, 밧줄이나 쇠사슬로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거나 내리는 기계: 옮긴이)를 이용해 선가대(cradle, 배를 수선하기 위해 땅 위로 끌어 올리거나 끌어 올려서 싣는 데 쓰는 설비: 옮긴이) 위로 끌어 올려야 한다. 그러고 나면 내 힘으로 물이 새는 곳을 찾아내서 때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덫을 두는 창고에 윈치가 있다. 그래서 그곳으로 향하는데, 타일러 크로프트가 1,000달러짜리 산악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저 녀석이 바로 내가 우는 걸 봤다고 우기는 놈이다. 실은 보지도 못했으면서.
“야 스키프!”
녀석이 자전거를 뒷바퀴로만 타면서 한껏 으스댄다.
“너네 낡아빠진 난파선이 드디어 가라앉았다며? 속이 다 시원하다! 꼴 같지 않은 게 부둣가에 구린내나 풍기더니. 그건 배도 아니었어. 뒷간이지!”
“입 닥쳐!”
“어이구, 스키프가 우네!”
“누가 울어!”
그렇게 대꾸하고 나서 녀석에게 집어 던질 게 없나 주위를 둘러본다. 녀석의 썩어 빠진 머리통엔 썩은 사과가 제격이다.
“스키프가 운다네, 거짓말이 아니네! 꼬맹이 스키프 비어먼은 판잣집에 살면서 오줌은 양동이에 갈기고 된똥은 뒷간에서 싼다네! 야 가재잡이! 네 엄마는 죽었어. 네 아빠는 취했고! 늪지대로 돌아가 버려, 이 더러운 새끼야!”
저런 식의 지긋지긋한 레퍼토리를 녀석이 말을 배울 때부터 들어 와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다만 녀석의 머리통을 단단한 풋사과로 박살내고 싶을 뿐이다. 그래야 저 녀석을 울릴 수 있을 테니까. 당장 손에 잡히는 게 삭은 나무토막밖에 없다. 그거라도 던져 보지만, 빗나가고 만다. 타일러가 낄낄 웃어 대다가 이렇게 소리치면서 자전거를 타고 쌩하니 지나가 버린다.
“꼬맹이 스키프 비어먼이 어린애처럼 징징 울었다네!”
타일러가 고개를 돌리고 어깨 너머로 소리친다.
“세상 사람들한테 다 알려야지!”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다. 그렇다고 문제될 건 없다. 삶이 통째로 물에 빠져 버렸는데, 거기서 더 나빠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데, 누가 뭐라고 한들 무슨 문제가 될까.
그래도 단단한 풋사과가 있으면 좋겠다.

- 1장 가재잡이 소년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타일러 크로프트가 떠들어 대는 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콧구멍만 한 우리 집은 판잣집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고 나서 그 집을 고치자고 했다. 물론 나는 그때 없었지만 사진으로 봤다. 지금 우리 집은 수도 설비도 갖추고 실내 배관도 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때도 아빠는 문에 반달 모양이 새겨진 오래된 옥외 변소만큼은 허물어뜨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아빠는 그걸 보고 있으면 옛날이 생각난다면서 겨울밤이 어찌나 춥던지 변소에 볼일을 보러 갈 때면 모자를 쓰고 부츠까지 챙겨 신어야 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만 해도 엄마는 아빠에게 그 추레하고 낡은 변소를 그만 허물어 버리자고 했었다. 그러던 엄마도 차츰 거기에 익숙해져서 변소 주변에 꽃을 심고 페인트칠을 해서 가꿨다. 그리고 사람들이 변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을 하러 와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우리 집 변소는 스피니 코브를 통틀어 마지막 남은 옥외 변소다. 역사적인 유물이라고나 할까.
우리 아빠네 비어먼 일가는 늪지대 사람들이었다. 늪지대 사람들이란 말은 가난한 백인을 가리키는 이 지역 사람들 말이다. 옛날에 늪지대 사람들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염습지라든가 작은 만 근처의 판잣집에 살면서, 조개를 캐고 게나 가재를 잡고 소금에 절여 말린 풀을 농부들에게 팔아서 먹고살았다. 가을이 오면 오리나 거위를 총으로 잡아서 소금에 절인 것을 보스턴에 있는 식당에 통으로 내다 팔았다. 그렇게 습지와 만에서 나는 것으로 먹고살았다고 해서 늪지대 사람들이라는 말이 붙은 거다. 그런 일은 아빠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 아빠를 늪지대 사람이라고 부른다. 아빠의 성이 비어먼이고, 비어먼 일가가 한때 늪지대에 살았었다는 그런 단순한 이유로 말이다.
우리 엄마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늪지대 사람이 아니었다. 그 근처에 살지도 않았다. 엄마네 가족은 이곳에 정착한 스피니 일가였는데, 자신들의 성을 따서 마을 이름을 지었다. 어쩌면 마을 이름을 따서 성을 지었는지도 모르지만 둘러치나 메어치나 그게 그거다. 엄마 친척 중에는 부자 스피니도 있고 가난한 스피니도 있고 보통 스피니도 있지만 늪지대 스피니는 없다. 엄마 가족들은 틈만 나면 아빠한테 그 점을 상기시켰다. 정말이다. 엄마는 그걸 아주 재미없어해서 항상 아빠 편에 섰다. 엄마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아주 옛날 옛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모두 같은 곳에서 왔을 텐데, 사람들이 묘비에 어떤 이름을 적어 넣든 무슨 문제가 될까?
우리 엄마 묘비에 쓴 이름은 메리 로즈린 스피니 비어먼이다. 엄마는 두 가지 이름을 모두 다 가진 셈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늪지대 사람들에 대해 한 가지만 말하자면, 배에 대해 꽤 잘 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렇게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아홉 살 때 아빠가 베니어판에 뚝딱뚝딱 못질을 해서 소형 보트를 하나 만들었다. 그 보트에 5마력짜리 구식 에빈루드(Evinrude, 상표 이름: 옮긴이) 모터를 달아서 내 생일 선물로 줬는데 말 그대로 끝내줬다.
난 지금 열두 살이다. 그런데도 그 보트는 아직까지 나하고 아주 잘 맞는다. 물도 한 방울 새지 않는다.
“물이 안 스며드는 배가 좋은 배야.”
그렇게 말했던 아빠였는데, 지금은 메리 로즈 호가 가라앉았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이제 배를 끌어 올리는 건 전적으로 나한테 달린 일이다.
하나 걱정되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내가 쥐뿔도 모른다는 거다. 가라앉은 배 같은 건 한 번도 끌어 올려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단은 내 소형 보트를 타고 로즈 호가 잠긴 곳에서 노를 저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로즈 호 아래쪽이 진흙에 박혀 있는 게 보이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도무지 모르겠다. 결국 들여다보고 있기도 지쳐서 우드웰 할아버지 집이 있는 작은 만으로 노를 저어 가기로 했다. 할아버지라면 뾰족한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할아버지한테는 좋은 수가 있다.

우드웰 할아버지는 거의 백만 살쯤 되어서 이제는 주로 잠을 자지만, 옛날에는 스피니 코브에 있는 선박 중의 절반가량을 할아버지 작업장에서 생산해 냈다. 우리 메리 로즈 호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 낸 분이 바로 우드웰 할아버지다. 메리 로즈 호를 맨 처음 물에 띄울 때 우드웰 할아버지가 노에 기대고 서서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사진 속인데도 할아버지는 말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후로 말수가 더 줄어들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할아버지는 말하는 걸 아주 꺼려서 몇 주 동안 한마디 할까 말까 하는 정도라고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나한텐 언제나 인사말을 건넨다.
“안녕, 새뮤얼.”

- 2장 늪지대 사람들

  작가 소개

저자 : 로드먼 필브릭
“생각해 보니 열두 살 무렵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로드먼 필브릭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글쓰기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3년 각종 청소년 문학상을 받고 영화로도 큰 반향을 일으킨 <마이티>를 필두로 이후 발표한 소설마다 크게 주목을 받았다. 2000년에 나온 <우주에 남은 마지막 책>은 미국도서관협회가 선정한 청소년 부문 최고의 책으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화제작이다. 2004년 헤밍웨이를 기리는 마음으로 쓴 <소년과 바다>에는 미국 뉴잉글랜드 해안에서 성장해서 본격적인 전업 작가로 들어서기 전까지 부두 노동자로 일한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청소년 명작의 결정판을 이룬다. 2010년 <거짓말쟁이 호머 피그의 진짜 남북전쟁 모험」으로 뉴베리 아너상을 비롯한 주요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 꾸준한 문학 활동으로 청소년 문학의 새로운 장을 펼쳐 보이고 있는 작가를 www.rodmanphilbrick.com에서 만나 보기 바란다.

  목차

1장 가재잡이 소년 9
2장 늪지대 사람들 15
3장 드럼통으로 끌어 올리다 22
4장 용골까지 썩다 29
5장 흡혈 진흙 벌레의 공격 38
6장 환상의 짝꿍 46
7장 망치 두드리는 소리 53
8장 수리공의 말 59
9장 도대체 몇 마리를 잡아야 하지? 66
10장 응접실에 갇힌 바닷가재 74
11장 덫 전쟁 81
12장 칠흑 어둠 속의 그놈 89
13장 잠에서 깨어날 때 97
14장 무슨 수를 써서라도 109
15장 커다란 물고기를 찾아서 119
16장 새빨간 도둑 125
17장 스키프 비어먼의 세 가지 규칙 131
18장 별들에게 무슨 일이? 137
19장 안개로 세상을 만든다면 146
20장 숨을 채 가다 154
21장 쉬익 쉭 하는 소리가 다가오다 163
22장 물 위에 둥둥 떠서 172
23장 낸터킷 썰매를 타고 180
24장 안개 속의 천사 189
25장 문에 남은 꼬리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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