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단연코 지금껏 본 적 없는 동시집, 신민규의 『Z교시』식물은 뿌리, 줄기, 잎, 꽃, 열매로 이뤄져 있다
뿌리는 식물체를 지지하고 물과 양분을 꾸벅한다
줄기는 꾸벅을 지탱하고 물과 꾸벅이 이동하는 꾸벅
잎은 꾸벅을 이용하여 꾸벅을 꾸벅
꾸벅은 꾸벅과 꾸벅이 꾸벅
꾸벅 꾸벅 꾸벅 꾸벅 신민규 뒤로 나가! 번쩍
_「Z교시」 전문
소리 내어 읽으면 저절로 그려진다. 선생님은 식물의 구조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는데 아무리 기를 쓰고 눈을 부릅떠 보아도 속절없이 꾸벅에 잠식되어 가는 정신. ZZZ... Z교시의 풍경이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동시집 신민규의 『Z교시』는 완전히 새로운 동시들로 가득 차 있다. 「숨은글씨찾기」 속에 숨어 있는 낱말 퍼즐은 도전 욕구를 자극하고, “허거거걱!/ 이럴수가!”로 시작하는 「운명 교향곡」의 시행은 베토벤의 선율에 얹을 때 생생히 살아난다. 「넘어 선, 안 될 선」 「초2병」 「이런 신발」을 비롯한 랩 동시들은 비교 불가의 완성도를 보여 준다. 시인의 재기는 ‘작가의 말’에서 제안하는 독서 에티켓에서부터 폭발한다. “독서 시작 전에 휴대폰은 진동으로 바꿔 주세요./ 앞좌석을 발로 차지 말아 주세요./ 다리 떨지 말아 주세요./ 책 넘길 때 침은 손가락 두 마디 이상 묻히지 마세요./ 책에 코딱지 묻히지 마세요./ 읽으면서 상상을 많이 해 주세요./ 이제 곧 동시가 시작됩니다./ 종이 오른쪽 아래 귀퉁이를 잡고 페이지를 넘겨 주세요.”
하드보일드, 신(新)문체 세대의 첫 등장시인 이안은 신민규 시인의 『Z교시』를 “하드보일드. 신(新)문체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첫 동시집”이라고 평하였다. 우선 이 동시집에는 지금까지의 거의 모든 동시집에 단골로 등장하다시피 한 ‘자연’이 없다. 어쩌다 나오더라도 단어 차원을 넘어 중심 소재로 다루어진 경우는 하나도 없다.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TV, PC방, 동물원이나 병원 같은 도시적 사물과 공간, 그리고 바이러스, 백신(vaccine), 리모컨, 터치패드, 검색창, 이어폰, 헤드폰, USB 같은 현대문명의 각종 기기들과 그에 관계된 이름들이다.
졸려 죽겠는데
오줌 마렵다
일어나기 싫은데
오줌 마렵다
아랫배에 주삿바늘 꽂고
오줌을 뽑아내고 싶다
배꼽에 USB 꽂고
오줌을 옮겨 담고 싶다
찬 바닥에 배를 대고
오줌을 얼려 버리고 싶다
졸려 죽겠는데
일어나기 싫은데
오줌은 점점
또렷해진다
_「오줌 마렵다」 전문
이안 시인은 해설에서 「오줌 마렵다」의 이러한 표현에 대해 “이전 세대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인식이고 말하기”라고 짚었다. 어머니의 몸과 연결되었던 탯줄을 자른 곳, 배꼽을 USB를 꽂는 포트로 인식하는 것은 “싱싱한 복숭아뼈”(「삠」)라는 표현보다도 더 낯설고 이질적인 접합이라는 것이다. 정서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측면에 기반한 인식, 수식이 거의 없는 문체, 건조한 종결어미, 빠르고 쉽게 읽히는 신민규의 문체를 그는 “살과 피의 볼륨감을 최대한 덜어 낸, 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 버린 뼈의 문체, 굳이 이름 붙이자면 하드보일드 문체(hard-boiled style)”라 칭한다.
동시대 어린이 독자의 환호와 작약을 불러일으킬, 비장의 펀치라인뛰다
발목을
삐다
싱싱한 복숭아뼈에
쓰디쓴 먹구름이 끼고
천둥번개가 치고
눈에서 소나기가 내린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의 60초를 견뎌 내면
햇볕이 들고
쓴 물이 빠지고
눈의 물이 그친다
놀란 발목을
절룩절룩
다독인다
_「삠」 전문
신민규의 동시 속 아이들은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다. “이따가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 어제 TV 봤어? / 배고프다 점심시간 언제 오나/ 나 지우개 좀 빌려 줘” 선생님 속이야 어떻든 이 말 저 말 한 솥을 와글와글 끓이고(「비빔말」), 성적표를 받은 날엔 우연히 주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엄마에게 가서 나중에 자식 낳으면 성적으로 혼내지 말라는 잔소리를 해 주고 돌아온다(「타임머신」). 이어폰 속 “악동뮤지션, 걸스데이, 엑소, 나얼, 마마무”와 “트와이스”를 좀더 넓은 헤드폰으로 이사 보내 주고 싶고(「이어폰 식구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이 목이 들어가고, 콜라를 마시다 흘리고, 콜라에 또 머리카락이 들러붙고, 화장실 문지방에 새끼발가락까지 찧은 하루를 “9년 살면서 이런 시련은 처음이었어” 하고 정리한다(「시련」). 뛰다 발목을 삔 순간에도 주저앉지 않는다. 싱싱한 복숭아뼈에 쓰디쓴 먹구름이 끼고 눈에서 소나기가 쏟아지는 고통의 60초를 견뎌 내고 놀란 발목을 다독일 줄 안다. 경쾌하고 아이답지만 어른보다 더 어른스럽게, 자기 앞의 시간을 살아 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인 것이다.
나는 초2 나인 아홉 살이지
순진한 척 알 건 아는 나이지
산타 할아버지 정체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 휴대폰 비번은 7537
아는 것도 알아 갈 것도 많은 나인데
아무것도 할 수 없네 나에게 왜 이래
뭘 하든 넌 아직 어려 안 돼 노노
나도 맛을 알아 아메리카노
_「초2병」 부분
오래전에 어린이 시절을 지나온 어른인 시인이, 엄청난 변화 속에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에 걸맞은 말과 리듬으로 시를 쓰기란 각고의 노력 없인 불가능하며,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존재하는 세대적 현격이란 근원적으로 넘어서기 어려운 일이지만 신민규 시인은 이상하리만치 그것을 잘 해낸다. 동시대 아이들의 감수성에 밀착된 그의 동시에 독자들은 환호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어 주기를 바라면서 씁니다. 책장을 넘기다가 쓱 훑어봐도 순식간에 읽히고 빠져드는 그런 시요. 찾아가는 동시가 아닌 찾아오게 만드는 동시를 쓰고 싶어요.”(신민규, 『동시마중』 2017년 3.4월호)
고물고물 조잘조잘 글자 사이를 뛰노는 윤정주의 일러스트『Z교시』의 그림은 화가 윤정주의 붓끝에서 탄생했다. 따뜻하고 유머 넘치는 그의 작은 사람들, 작은 동물들, 기호, 글자, 숫자, 도형, 사물들은 종이 위 글자 사이사이를 통통 다니며 시를 읽는 아이들의 마음과 함께 논다. 작은 그것들은 어쩌면 그린 것이 아니라 그저 화가의 마음 안에서 밖으로 스스로 나온 것 같다. 그만큼 생기발랄하고 자연스러우며 의연한 존재들,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그러함을 전하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