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맛깔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감동적인 동시집『아무도 모르는 일』(청개구리 출간)은 1991년에 등단하여 몇 권의 창작 동화집을 펴낸 동화작가 정진숙의 첫 번째 동시집이다. 동화작가이지만 예전부터 동시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던 작가는 동시와 동화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이야기 동시’를 선보인다. 자신이 가진 동화작가라는 장점을 이야기 동시 만들기에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토마토 오이 가지 감자/같은 밭에 같이 심어져/같은 구름 먹고/같은 거름 먹고/꽃도 같이 피웠는데//―봐라! 봐라!/―어때? 어때?/―좋지? 좋지?//토마토 오이 가지가/꽃 뒤에서/열매 꺼내 놓고 자랑한다.//그러거나 말거나/빈손 들고도/하얗게 웃던 감자//―내나 봐, 네 것도 내나 봐./졸리고 졸리더니/봐라,/땅속에 숨겨 두었던 감자들/덩글덩글 꺼내 놓는다.
―「봐라」전문
위 동시의 줄거리는 이렇다. 토마토, 오이, 가지, 감자를 같은 밭에 심었는데, 토마토, 오이, 가지가 열매를 먼저 맺어 감자에게 자랑한다. 자기들처럼 열매가 있으면 어서 내놔 보라며 비웃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때 감자는 말없이 땅속에 숨겨 두었던 주먹 같은 감자들을 떡하니 내놓았다. 마치 식물에 관한 짧은 동화처럼 느껴지는 재미있는 동시다. 처음 읽었을 때는 식물에 관한 작품이란 생각만 들지만, 곱씹어 읊어 보면 마치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의인화 동화를 떠올리게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 동시일지라도 시적인 아름다움이 없다면 동시라 볼 수 없다. 이야기와 시적 표현이 함께 아우러진 게 바로 이 동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의 공통적 특징이다. 이런 점이 각각의 동시 속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게, 아름답게 뒷받침해 주어 더욱 도드라지게 해준다.
시로 읽는 자연 이야기정진숙 동시인은 자연과 우리 둘레의 사물에서 소재를 구해 와 시의 집을 짓는 데 아주 능숙하다. 시의 집을 지을 때 이야기 담기와 의미 찾기에 누구보다 많은 힘을 기울인 노력 덕분이다.
특히 자연에 대한 관심이 많은 그이기에 『아무도 모르는 일』에 수록된 시의 대부분이 자연에 관한 것이다.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읽어 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작가는 자연물을 그대로 보여 주기보다는 거기에 재미난 이야기를 엮고, 아름다운 시적 표현으로 감싼 다음, 새로운 의미까지 담아 내었다. 지금까지 봐 오던 자연이 아닌 새로운 자연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연 이야기를 이렇게 동시로 새롭게 엮을 수도 있다는 것은 정진숙 시인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래 시를 맛보자.
살아서는 절대/무릎 꿇지 않겠다는 백로//
먹이 먹을 때도/꼿꼿이 서서/힘들게 힘들게//
잠잘 때도/뻣뻣이 서서/다리 아프게 아프게//
비바람 칠 때도/버티고 서서/어렵게 어렵게//
언제 어디서도/무릎 굽히지 않더니//
동글동글/알 낳고는/생각 바뀌었나 봐.//
너희를 위해 못할 게 뭐 있겠니?/털썩 무릎 꿇어/알 품는다.
―「무릎 꿇은 백로」전문
위 시를 읽어 본 아이에게 백로는 더 이상 새의 한 종류가 아니다. 이 시를 읽으면 ‘어머니’란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아, 새라고 다 그냥 새는 아니겠구나. 어미새가 있으면 아기새도 있을 테고…….’
아이는 처음엔 이런 단순한 사고에 머물지만, 더욱더 확장되어 동물과 곤충의 생태도 꼼꼼히 들여다보면 사람 살아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는, 모두 지구 위의 한 식구라는 생각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과학만으로는 맛깔난 답을 구할 수 없는 일들이 무척이나 많다. 이러한‘아무도 모르는 일’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귀를 귀울여 드디어 그들의 표정과 마음을 읽게 된 작가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모르는 일’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라고.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만 가진다면,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 누구라도 다 알 수 있는 일이라고.
운문의 서정성과 산문의 서사성이 맛깔나게 버무러져 있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 짤막한 동화처럼 술술 잘 읽혀 ‘시’라고 하면 머리를 내젓고 마는 아이들과, 억지로 읽히는 데 지친 학부모와 선생님에게도 반가운 소식이 되길 기대해 본다.


눈이 크고 얼굴이 까만/나영이 엄마는/필리핀 사람이고,//
알림장 못 읽는/준희 엄마는/베트남에서 왔고,//
김치 못 먹어 쩔쩔매는/영호 아저씨 각시는/몽골에서 시집와//
길에서 마주쳐도/시장에서 만나도/말이 안 통해/그냥 웃고만 지나간다.//
이러다가/우리 동네 사람들 속에/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그래도 할머닌/걱정 말래.//
아까시나무도/달맞이꽃도/개망초도/다 다른/먼 곳에서 왔지만/해마다 어울려 꽃피운다고.
―「걱정 마」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