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시리즈 24권. 이탈리아의 한 농가를 무대로 하여 각각의 해마다 시와 그림으로 농가에서 벌어진 백 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세기, 백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 아래, 실제로 사람과 자연과 공간은 어떻게 존재하고 변해 왔는지, 그들의 진짜 삶은 어떠했는지를 장중하고 힘찬 시와 정교한 그림으로 보여 주는 그림책이다.
1985년과 1991년 브라티슬라바 비엔날레 황금사과상, 2008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한 인노첸티는 열다섯 점의 작은 그림과 큰 그림으로 백 년의 시간을 펼쳐 놓았고, 이 각각의 그림들에 루이스의 간결하고 상징적인 4행시가 덧붙음으로써 시와 그림으로 그려낸 ‘진짜 역사’의 풍경이 완성되었다.
출판사 리뷰
시와 그림으로 그려낸 ‘진짜 역사’의 풍경
『마지막 휴양지』에서 글과 그림의 명콤비를 이루었던 로베르토 인노첸티와 존 패트릭 루이스가 다시 한 번 뭉쳤습니다. 이번에 이들이 꾸려낸 그림책은 『그 집 이야기』. 『그 집 이야기』는 20세기, 백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 아래, 실제로 사람과 자연과 공간은 어떻게 존재하고 변해 왔는지, 그들의 진짜 삶은 어떠했는지를 장중하고 힘찬 시와 정교한 그림으로 보여 주는 그림책입니다.
독자와 평단 양편 모두를 사로잡으며 1985년과 1991년 브라티슬라바 비엔날레 황금사과상, 2008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수상한 인노첸티는 이미 세계적인 그림책 화가로 입지를 굳혔습니다만, 파시즘을 정통으로 다뤘다는 이유로 그의 책 초판이 오히려 자국인 이탈리아에서 출간되지 못하는 기현상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국의 역사를 인식하고 풀어내는 그의 작업은 계속되었고, 이 그림책에서도 인노첸티는 이탈리아의 한 농가를 무대로 하여 지난 세기 백 년의 역사를 되새깁니다. 사회의 주요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한 보통 사람의 역사, 그리고 그 사람들의 땀과 때가 묻은 공간의 역사입니다. 인노첸티는 열다섯 점의 작은 그림과 큰 그림으로 백 년의 시간을 펼쳐 놓았고, 이 각각의 그림들에 루이스의 간결하고 상징적인 4행시가 덧붙음으로써 시와 그림으로 그려낸 ‘진짜 역사’의 풍경이 완성되었습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길어 올린 사적인 이미지들의 총체
이 그림책의 무대는 어느 시골 마을의 한 농가이며, 이 농갓집은 1656년에 세워진 뒤 폐가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가 1900년 아이들의 눈에 띄게 되면서 백 년을 함께 갈 새 가족과 새 삶을 얻게 된 집입니다.
1900년에서 1990년까지, 농가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다름 아닌 집입니다. 그 집은 백 년 가운데서도 이사, 결혼, 탄생, 죽음, 전쟁, 이별 등 생의 굴곡진 변화를 담은 열다섯 해를 포착하고 각각의 해마다 시와 그림으로 농가에서 벌어진 백 년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낡은 집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돌과 물과 흙으로 이루어진 무생물인 집은 그 안에 사람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사는 사람의 기호와 습관, 내밀한 사생활의 흔적들을 머금고 함께 살아갑니다. 이러한 사적인 이미지들은 각각의 해마다 처음에 등장하는 작은 스냅숏으로 분위기를 전달한 다음, 울림이 깊은 시로 그 해의 가장 인상적인 사건을 알립니다. 그런 다음, 시원스럽게 펼쳐진 큰 그림으로 집과 사람, 자연이 어우러지는 그 해의 풍경을 섬세하게 짚어 갑니다. 그리고 여기서 집은 해마다 화면의 오른쪽에 붙박여 등장합니다.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한 형식이 반복되는 그림책입니다만, 각각의 해에 담긴 사적인 이미지들을 살펴보고, 그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삶의 얼굴을 마주하려면, 한 장 한 장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세심함과 사건과 사건을 연결 짓고 추리해 보는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결코 단순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재미를 찾아낼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예를 들면, 1915년 한여름에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 신랑과 신부는 1918년 남편의 전사 통지서를 받고 슬픔에 잠긴 부인의 그림으로 이어지며, 사전지식을 조금만 더해 본다면, 남편이 1차 대전으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926년 짚가리 위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던 아이들이 1936년엔 유니폼을 입고 어색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데, 그저 아이들의 생활이 좀 달라졌나보다 라고 짐작하기에 앞서 좀 더 호기심 많은 독자라면, 이 아이들이 입은 유니폼이 당시 파시스트 소년단(balilla)의 유니폼임을 알아내고 이탈리아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 전만 해도 가축우리로 사용되던 창고가 1929년의 포도 수확철에는 와인저장고로 용도 변경이 되어 있으며, 1901년 집을 새로 고칠 때부터 짐수레 한 귀퉁이에 등장하던 와인 병은 결혼을 할 때에도, 포도를 딸 때에도, 밀을 추수하는 날에도 항상 모습을 드러내며 이곳 사람들의 기호를 말해 줍니다. 그런가 하면 해가 가도 오른쪽에 붙박인 채 움직이지 않는 집과 대비되어, 왼쪽의 이동수단들은 변해 가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합니다. 1905년에 일가족의 이삿짐 수레가 있던 자리에 1944년엔 미군의 탱크가 자리하고 1958년엔 떠나는 아들네의 자동차가, 1967년엔 여주인의 유해를 옮기는 장례차가, 그리고 다시 1990년 그 자리엔 새로운 가족의 이삿짐 트럭이 서 있습니다.
집은 오롯이 서 있는데, 들고나는 사람들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변하거나 또는 변하지 않는 삶의 다양한 얼굴들이 보입니다.
오늘의 어른과 어린이가 어제의 삶을 이야기할 때
이처럼 그림에 머무는 시간이 길 때, 이 그림책은 더 즐겁고 풍성한 사생활의 세계를 펼쳐 보입니다. 그리고 이 사생활의 세계에 흠뻑 빠져, 어제로 오늘로 그리고 내일로 흥미로운 여행을 떠나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집은 1990년에 그려진 새 집과 닮은꼴일지도 모르지만, 또한 그러하기에 역으로 우리 집이 있는 자리에서 예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생겨났는지를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어른은 자신이 겪어 온 지난 세월의 집과 사람들을 이 그림책에 대입해 보며 자신의 삶을 통찰해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린이는 이 숨은그림찾기 같은 그림책의 실마리들을 직관적으로 파악하며 더 나아가 그림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눈이 온 날 침묵이 내려온 소리, 단단한 돌의 차가운 감촉, 향긋한 포도 내음까지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둘이 함께 경험과 상상을 나누며 어제와 오늘, 내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책 속에 들어 있는 리플릿으로, 그림책의 더 풍성한 그림 보기를 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