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낯설고 새로운 청소년소설
열다섯 살 소년이 커다란 개를 칼로 찔러 죽였다. 그것도 대낮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년의 이름은 올리버. 할머니가 들려주던 기사와 공주 이야기를 현실과 혼동하는, ‘모자라다’고 놀림 받는 백인 소년이다. 그리고 엄마가 죽어갈 때조차 한국 땅에 발을 들이지 않은 아빠에 대한 원망을 가득 안고 어쩔 수 없이 아빠가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오게 된 소녀 수현이 있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이 둘이 케이프타운의 커다란 교회 지하실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망고 공주와 기사 올리버』는 제목부터 우리나라 소설이 아닐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갖게 한다. 그만큼 우리한텐 낯설기 때문이다.
국경과 인종, 나이를 초월한 기이한 세 사람의 만남과 우정, 모험
수현은 케이프타운의 커다란 교회의 어학 스쿨에 재학 중이다. 우연히 교회의 구석진 지하실을 발견하고 그곳에 들어간다. 올리버에게 이 교회는 ‘하얀 성’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처럼 ‘지하 세계에는 거인과 괴물이 살고’ 기사는 ‘공주의 사랑을 얻기 위해 용감히 싸워야’ 하지만, 솔직히 올리버는 거인이 두렵다. 그러나 지하실로 들어가는 수현을 발견하고, 올리버는 이를 저지하고자 거인과 마주칠 것을 불사하고 지하실로 들어간다. 올리버는 망고처럼 노랗고 뽀얀 수현을 ‘망고 공주’라 부른다. 그런데 이곳에 놀랍게도 거인이 나타난다. 바로 흑인 타보다. 타보는 이십 년 전에 사라진 친구를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방랑자이다. 끊임없이 수현을 망고 공주라 부르고 타보를 거인이라 부르고, 자신을 기사라 생각하는 대책 없는 소년 올리버와 타보의 호의를 무시하고 집요하게 따지고 까칠하게 반응하는 수현, 그리고 누더기 옷에 거지같은 차림이지만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라는 노래를 입에 달고 사는 천하태평 흑인 타보. “수억 광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줄만 알았던 사람들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우연처럼 만나 빅뱅까지는 아니더라도 리틀 뱅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세 사람이 ‘지하실’이라는 바깥 세상과는 차단된 은밀한 공간을 공유하면서 작품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낭만과 환상성을 가진 이야기 구조 속에 생생하게 다가오는 남아공의 현실
동화 속 세계 같은 낭만적 기사담이자 까칠한 소녀의 성장기, 친구를 찾아 나서는 모험담이라고 생각하며 읽다 보면 대반전이 기다린다. 작가는 놀랍게도 비현실적인 동화 같은 구조 속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치열한 사회 현실을 교묘하게 담아낸다. 이십 년 전 사라진 타보의 친구 요한은 남아공의 차별적 인종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앞장선 흑인운동가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구체적인 시간 언급이 없다. “십여 년 전, 마침내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는 문장으로 1994년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를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자연스레 지금 이 작품이 전개되는 시기는 2천 년대 초다. 올리버가 거인을 무서워하고, 타보를 거인이라 생각하는 것도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 있다. 만델라 대통령이 당선되기 직전까지 인종간의 대립은 극에 달했고, 90년대 초 흑인폭동 당시 백인마을에 침입한 흑인들 때문에 어린 꼬마 올리버는 그들의 발에 채여 높은 곳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 기억이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올리버의 의식세계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흑인운동가 요한이 사라지는 장면, 올리버가 겪은 흑인 폭동 등을 전면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또 아직도 여전한 백인과 흑인 사이의 경계심, 차별 등을 무심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담아낸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을 고했음에도 요한을 여전히 교회 지하실에 감금하고 있는 파란 눈 목사는 대표적 백인우월주의자이다.
세상 속으로 한 걸음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트리를 세우는 등 교회 밖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분주한데 정작 올리버와 수현, 타보는 지하실에 갇히고 만다. 지하실 문은 밖에서 걸쇠로 걸어 잠그게 되어 있는데 올리버의 실수로 걸쇠가 쇠고리에 걸려 버린 것이다.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애를 쓰다 감옥처럼 밀폐되고, 미로처럼 복잡한 지하 공간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요한을 만나게 되고, 이들 셋은 이제 요한을 구출하기 위해 힘을 합친다. 셋이 목숨을 건 하룻밤을 함께하면서 이들은 각자 자신에게 모자란 부분이 서로 연대하는 속에 조금씩 채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올리버는 지하세계와 거인을 조금은 덜 무서워하게 되고, 수현은 아버지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을까 궁금해 한다.
흡인력 있는 문장과 세 사람의 시선이 교차 편집되는 탄탄한 구성 속에 국경과 인종,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과 모험이 펼쳐지는『망고 공주와 기사 올리버』는 2008년 6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은『열일곱 살의 털』과 최종심에서 겨뤘던 작품이다. 올리버, 수현, 타보는 서로 너무나 다른 존재들이자,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약자’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연대’함으로써 만들어내는 힘은 강하다. 당시 심사를 맡았고, 뒤표지에 글을 써준 소설가 김중혁의 말처럼 “문장은 간결하고 이야기는 풍성”한 이 작품이 우리 청소년문학이 좀더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하는 데 한몫 하리라 본다.
『망고 공주와 기사 올리버』는 엎드려 읽어야 할 책이다. 어린 시절 엎드려 읽던 책들, 흥미진진한 모험의 세계로 우리를 데리고 갔던 책들, 읽다 보면 침을 꼴깍 삼키게 만들었던 책들, 다 읽은 다음엔 몸을 뒤집어 드러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나만의 모험을 꿈꾸게 했던 책들, 그런 책들의 매력이 이 책엔 고스란히 살아 있다-김중혁(소설가)
작가 소개
저자 : 김수경
대학을 졸업한 뒤 소설을 쓰면서 어린이책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동화 작가들의 모임인 ‘우리누리’에서 다양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쓴 책으로는 <수학이 진짜 웃긴다고요?>, <로봇 반란을 막아라!>, <리틀 부자가 꼭 알아야 할 경제 이야기>, <발명이 궁금할 때 에디슨에게 물어봐!>, <세계 리더를 꿈꾸는 어린이들의 생각 수첩>, <단순한 생각이 만들어 낸 과학 발명 100가지> 등이 있습니다.
목차
프롤로그 파란 방
1부 지하실 협정
2부 지하 세계
3부 탈출
에필로그 파란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