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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명작소설 1~2 세트 (전2권)
애플북스 | 청소년 | 20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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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우리 문학 읽기를 좀 더 쉽고 좀 더 친절하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한국 명작소설'의 목적이자 목표다. 문학의 참된 즐거움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제목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으나 대개는 읽지 않은 위대한 한국문학을 다시 읽어보는 일일 것이다. 애플북스는 이 권유와 공감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시대별 대표작품으로 한국문학 단편 모음집을 꾸렸다.

'시대를 읽는 한국문학'이란 콘셉트로 근대소설의 포문을 연 이인직의 '혈의 누', 계몽소설을 대표하는 이광수의 '소년의 비애', 풍자와 해학, 골계미를 추구한 김유정의 '동백꽃', 모더니즘의 절정을 보여준 이상의 '날개'에 이르기까지 각각 1900~1930년대와 1940년대로 나눠 총 21명의 작가와 작품으로 이루어진 한국문학의 큰 기둥이 되었던 대표 작품을 시대별로 모아 문학과 시대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문학 독자가 사랑했던 시대를 대표하는 로맨스, 풍자와 해학, 계몽 등 각 시대마다 독자들의 가슴을 쥐락펴락했던 인기 작품을 문학사의 이해를 돕는 설명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출판사 리뷰

문학사를 이해하는 관점, ‘시대를 읽는 한국문학’
로맨스, 풍자, 계몽 등 작가별 대표작품을 만나다!

시대와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며 문학적 상상력과 즐거움을 주는
소설 중에서 정수만을 가려 뽑은 '한국문학을 권하다 단편 모음집


우리 문학 읽기를 좀 더 쉽고 좀 더 친절하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한국 명작소설》의 목적이자 목표다. 문학의 참된 즐거움을 되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목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으나 대개는 읽지 않은 한국문학을 다시 읽어보는 일일 것이다. 애플북스는 이 권유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시대별 대표작품으로 한국문학 단편 모음집을 꾸렸다.
‘시대를 읽는 한국문학’이란 콘셉트로 근대소설의 포문을 연 이인직의 <혈의 누>, 계몽소설을 대표하는 이광수의 <소년의 비애>, 풍자와 해학, 골계미를 추구한 김유정의 <동백꽃>, 모더니즘의 절정을 보여준 이상의 <날개>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학의 큰 기둥이 되었던 대표 작품을 각각 1900~1930년대와 1940년대로 시대별로 모아 나눠, 총 21명의 작가와 작품을 최대한 원문 그대로 읽을 수 있게 구성했다. 문학 독자가 사랑했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로맨스, 풍자와 해학, 계몽 등 다양한 장르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으며 독자의 독자들의 가슴을 쥐락펴락했던 인기 작품을 문학사의 이해를 돕는 설명과 함께 만날 수 있다.
고전 중에 명작을 가려서 읽는 것은 오늘의 세계와 그 세계를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 중 하나다. 모쪼록 이 선집을 통해 독자들이 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것은 물론, 문학과 시대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간 의의 및 특징

《한국 명작소설 1, 2 세트》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대표 작품을 읽으며 문학사와 작품을 이해하는 또 다른 문학 읽기 방법을 제시하고 권하고자 한다. 최근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문인들의 작품이 실려 있어서 수능시험은 물론 논술을 대비한 참고도서 역할 또한 톡톡히 할 것이다. 전자책으로도 함께 출간되어 각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대학교의 도서관은 물론 기업 자료실에도 꼭 필요한 책이라 하겠다.

1.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을 읽으며 문학과 시대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다.
‘시대를 읽는 한국문학’이란 콘셉트로 이인직으로부터 시작해 이광수, 현진건, 채만식, 이상, 이효석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문학의 큰 기둥들의 대표 작품을 시대별로 모아 문학과 시대를 동시에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2. 여러 판본과의 비교·대조를 통해 오류를 수정하였다.
작가의 최초 발표본을 기준으로 하되 지금까지 축적된 여러 판본과의 비교대조를 통해 오류를 수정하였다.
3. 최근 표기법을 적용하여 더 쉽고 더 자연스럽게 읽힌다.
작가와 작품 고유의 표현은 최대한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작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좀 더 최근의 표기법을 적용함으로써 현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들이 더 쉽고 더 자연스럽게 작품과 만날 수 있도록 하였다.
4. 작가 소개, 연보, 작품과 그 시대를 읽는 핵심 내용을 소개하였다.
독자들이 작품을 더 쉽고, 더 즐겁고, 더 풍성하게 읽을 수 있도록 작품 자체는 물론 작가 소개, 연보, 그 작품이 발표된 시대와 그 작품을 쓴 작가에 대한 핵심적인 소개를 더해 독자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을 통해 교양을 쌓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작품 내용 소개

근대소설적 특성을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는 구한말을 배경으로 조선의 봉건제도를 비판하고, 신문명과 신교육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더해 자주독립과 자유 연애사상이라는 근대적 계몽 이념을 강조함으로써 조선말 독자들을 계몽하고자 한 계몽주의적 특성이 있다. 형식에 있어서는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를 사용한 점, 사건의 우연성을 탈피하고 소설적 개연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보인다는 점 등 근대소설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동물을 의인화하여 현실을 풍자한 우화소설 <금수회의록>은 인간의 도덕적 타락과 혼란을 비판하는 동물들의 연설을 통해 충효, 화친, 우애 등 전통적인 윤리적 규범과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불효·부정부패·탐관오리의 횡포·부부 윤리 등 풍속의 문란 같은 전통 윤리 및 사회와 가정의 타락에 대한 비판 외에도 ‘외국 사람에게 아첨하는 역적놈’이나 ‘무기로써 남의 나라를 위협해 빼앗는 불한당’ 등도 규탄함으로써 당시 일본 침략의 위기에 대항하는 민족의식 또한 강하게 표출하였다.
계몽주의 정신이 반영된 우리나라 근대소설의 출발 <소년의 비애>는 유교적 인습에 따른 결혼 제도의 허구성과 이러한 제도로 인해 희생되는 여성 및 신교육의 필요성 등을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서구사회의 자유연애에 기초한 남녀 간의 자유로운 사랑을 강조함으로써 조선 사회의 모든 제도가 가진 봉건성을 역으로 비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서구의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작가의 사상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운명적 비극을 예술로 승화시킨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전형 <배따라기>는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오해와 질투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형제지간마저 파멸된 한 남자가 삶의 가치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방황하는 이야기를 통해 삶의 비극적 단면과 그것의 예술적 승화라는 ‘예술 지상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실적 삶에서의 패배와 그 삶의 비극의 예술적 승화라는 주제가 두 개의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액자 구조 속에서 중층적으로 구현됨으로써 삶의 입체성과 예술의 입체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한편, 예술과 삶의 입체적 일체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단편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사실주의 소설의 백미 <운수 좋은 날>은 인력거꾼 김 첨지가 하루 동안 겪게 되는 일을 통해 가난에 허덕이던 하층 노동자의 절박한 삶과 비극적인 운명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식민지 시대의 절대적 빈곤 상황에서 일시적 운은 삶의 조건을 바꿔놓을 수 없다는 내용과 그에 대비되는 역설적 제목이나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설렁탕을 며칠간의 허탕 끝에 겨우 사 들고 돌아왔으나 아픈 아내는 이미 죽고 난 뒤였다는 내용의 강렬성 그리고 반어적 기법 등은 기교와 형식의 완성도 높은 결합을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비참한 삶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애가 돋보이는 수작 <화수분>은 주인공인 ‘화수분’과 그 일가의 가난과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극을 ‘나’라는 화자를 통해 일제의 수탈이 가속화된 상황 속에서 굶주림에 고통당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부부의 처절한 삶과 비극적 죽음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궁핍한 삶과 죽음이라는 비극을 다루고 있음에도 아기라는 생명을 살림으로써 절망이 아닌 희망, 차가운 죽음이 아닌 따뜻한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전적 요소가 강한 식민지 시대 체험문학의 걸작 <탈출기>는 1920년대 우리 민족의 비참한 삶을 묘사한 소위, 빈궁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빈궁문학 작품들이 빈궁한 삶 자체를 묘사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데 반해, 이 작품은 빈궁에 대항하는 반항적 인물을 통해 개인의 빈궁을 개인의 사정이 아닌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해명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자전적 체험을 형상화한 노동자 문학의 초석 <늘어가는 무리>는 노동 현장과 노동자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 한국 노동자 문학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작품 속에 형상화되어 있는 노동 현장과 노동자들의 삶이 관념적이거나 피상적이지 않고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늘어가는 무리>가 이처럼 현실적이고 구체적일 수 있었던 것은 작가 자신의 노동자로서의 체험, 즉 자전적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 있다.
운명을 거스른 사랑과 인간구원의 염원을 보여준 수작 <벙어리 삼룡이>는 사실주의가 주를 이루었던 당대 소설들과 달리 낭만주의적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벙어리이자 하인인 삼룡이와 아름다운 여주인인 아가씨와의 사랑은 주인아들의 질투처럼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자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낭만주의는 이러한 상황을 초월적, 이상적으로 해소하는데, 이 작품 또한 화재라는 사건을 통해 둘의 초월적 사랑을 성취하게 하는 한편, 이 사랑이 갖는 인간구원이라는 또 다른 이상을 제시하고 있다.
프로문학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자산 <낙동강>은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의 두 가지 근본적 문제인 일제 및 자본주의와 결탁한 봉건의 잔재 타파와 이를 통한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목표를 위해 좀 더 의도적인 차원에서 계급의식과 정치 투쟁의 관점에 입각해 쓰인 작품이다. 동시에 이 작품은 민족 해방이라는 최우선 과제를 위한 사회주의 계열과 민족주의 계열의 ‘암묵적 합의’라는 사상적 현실까지 반영, 제국주의 일본과 식민지 조선 사이의 민족적 대립까지 강하게 부각시킴으로써 폭넓은 세계 인식과 현실 인식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농민의 노동자화 과정을 그린 카프문학의 결정판 <과도기>는 작가 자신의 체험담이기도 한 이 작품에서 농촌이 공장이 되어가고, 농민이 노동가가 되어가는 과정을 ‘과도기’로 그리고 있다. 이 과도기의 문제가 조선 사회의 전반적인 현실이 될 것이라는 경고와 노동자들이 이런 부당한 상황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다면 일제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를 함께 전해주고 있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소외된 약자에 대한 연민 <달밤>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아픔을 겪는 황수건의 삶을 일제 강점기 우리 민중의 삶에 비유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삶의 비극성에 함몰되거나 절망적 상황으로만 치닫지는 않는데, 이는 황수건을 바라보는 서술자의 시선이 그의 순박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천진하고 낙천적인 성격에 동시에 집중하는 한편, 이를 애정과 연민이라는 감정을 통해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 남녀의 사랑을 토속적이고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 <동백꽃>의 ‘나’는 감자를 건네주는 것으로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닭싸움을 통해 그 애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점순’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순박한 소년이다. 자칫 단순할 수도 있는 사춘기 소년, 소녀의 이러한 로맨스는 농촌이라는 배경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토속어와 비속어 및 육담이나 감자, 닭싸움 등의 소재를 통해 토속적, 향토적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실제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주의 문학으로서의 위상을 얻는다.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모순을 풍자적으로 그린 대표작 <레디메이드 인생>은 1930년대 도시 공간을 배경으로 지식인의 모순을 풍자적으로 보여준 작가의 출세작이자 대표작이다. 일제강점기 초기 교육 계몽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인 주인공 P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인텔리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극도의 궁핍에 시달린다. 신문사를 찾아가 채용을 부탁해보기도 하지만 농촌 봉사활동을 하라는 사장의 ‘엉터리없는 수작’에 역사와 사회를 원망하고, 결국 P는 자기 아들을 인쇄소에 견습공으로 취직시킴으로써 희망 없는 인텔리의 삶에 저항한다.
농촌 사회의 참담한 현실을 그린 본격 농민소설 <모범 경작생>은 박영준의 데뷔 작품이자 일제의 농업진흥정책의 허구성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농촌소설 계열의 대표작이다. 박영준은 농촌의 참담한 현실과 일제의 수탈 그리고 그것에 부역하는 타락한 인간 군상을 사실적이고 풍자적으로 그린 작가이자 그에 대항하는 농민에 대한 인간애를 잃지 않았던 농민문학의 완성자이며 농촌소설의 대표적 작가라 평가할 수 있다.
어린 소녀의 눈으로 묘사한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봉건 질서에 억압되어 소극적인 순응의 삶에 길들여진 젊은 과부와 사랑손님인 남성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대상에 대한 인식이나 해석이 미숙한 화자인 옥희가 주인공이 되어 두 사람의 사랑을 관찰하게 함으로써 작가는 그 사랑의 서정성과 낭만성을 자연스럽게 확보함과 동시에 그 사랑을 불가능하게 하는 봉건 질서의 억압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황금만능주의의 세상 속에서 순수에의 가치를 지향한 작품 <백치 아다다>는 일제강점기 식민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린 1930년대, 돈의 물신화로 인한 인간의 타락과 파멸 그리고 승화를 그린 작가의 대표작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상징이자 그 자체인 돈과 시장경제 이전 인간의 극단적인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백치의 대립을 통해 돈, 곧 자본이 인간의 윤리와 사랑 그리고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지식인의 이중성을 냉정하게 비판한 지식인 소설의 전형 <김 강사와 T 교수>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심리소설로 1930년대 지식인의 속물성과 이중성, 그리고 참담한 현실을 보여준 작품이자 그것들 모두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나약한 지식인상을 보여준 소설이다. 일제강점기 현실에 대한 비판과 개혁에 대한 열망을 보여준 작가인 유진오는 소시민적 인식이라는 한계를 가진 지식인 작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지식인 문학을 정초한 작가라는 평가에 여전히 값하는 작가다.
소설과 시적 서정이 조화를 이룬 한국 단편소설의 백미 <메밀꽃 필 무렵>은 과거와 현재의 이중적 구성과 달밤, 메밀꽃, 나귀 등의 소재들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된 세련된 구조와 완성도를 통해 전달된 작품이다. 바로 이 점을 통해 소설이 단순한 이야기의 그릇이 아니라 시적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충돌할 수밖에 없는 소설과 시, 서사와 서정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또 다른 세계와 시의 또 다른 모습을 경험하게 해주는 단 하나의 작품이기도 하다.
소작농들의 현실과 저항을 사실적으로 그린 농민소설 <사하촌>은 일제강점기 사하촌 소작농들이 겪는 가혹한 수탈과 그에 대한 저항을 사실적으로 그린 김정한의 초기 대표작이다. 이 작품에는 가뭄이라는 자연적 재해와 도시민들을 위해 만든 수도용 저수지라는 제도적, 인공적 재해로 인해 극심한 흉년을 맞은 보광사 아래 소작농들의 고통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한국 최초의 심리소설이자 20세기 한국 모더니즘의 결정체 <날개>는 이상의 대표작으로 한 지식인의 소모적이고 자학적이며, 해체적이기까지 한 삶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서술한 소설이다. 근대의 도래는 한 인간을 자유롭고 합리적인 존재로 만들어주었지만, 반면 계급적성적으로 확고했던 정체성의 뿌리를 흔들고, 그 자리를 자본이 대신하게 만들기도 했다. <날개>는 바로 이 변화의 당대적 결과, 곧 정체성의 상실과 그로 인한 혼란, 그 혼란이 야기하는 더 큰 자의식의 분열을 보여준 소설이다.




  작가 소개

저자 : 계용묵
1904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다. 유년시절에 할아버지인 계창전 밑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의 한학을 배운다. 1914년 삼봉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뒤 1919년 졸업한 후 서당에서 공부를 지속한다. 1918년에는 안정옥과 결혼한다. 1921년 조부 몰래 상경해 중동학교에 입학한다. 이때 만난 김억을 통해 염상섭, 남궁벽, 김동인 등과 교유하며 문학에 뜻을 두게 된다. 하지만 조부가 신학문을 반대해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낙향하게 된다. 1922년 4월 다시 조부 몰래 상경해서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6월에 강제로 낙향하게 된다. 17∼18세에 이미 ≪조선일보≫에 논문, 감상문, 시 등을 발표하면서 스스로를 과대평가해, 선배들을 누르고 올라서겠다는 욕심에 5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문학 공부를 하게 된다. 이때 이광수가 주재한 ≪조선문단≫으로 ‘최서해, 한설야, 채만식, 임영채, 박화성’ 등이 당선되어 문단에서 대우를 받은 것에 고무된다. 그리하여 1925년 ≪조선문단≫ 제8호에 ‘자아청년(自我靑年)’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상환>을 발표하며 등단한다. 하지만 작품 평이 마음에 들지 않아, 1927년 <최 서방>을 통해 ≪조선문단≫에 재당선된다. 하지만 최서해에 의해 원고가 당선된 것을 알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1928년 3월 일본 도쿄로 건너가 동양대학 동양학과에서 공부하고 야간에는 정칙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 1929년에는 장녀 정원이 출생한다. 1931년 집안이 파산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다. 1932년 차녀 도원이 출생한다. 1935년에는 정비석, 석인해, 전몽수, 김우철, 장기제, 장환, 채정근, 허윤석 등과 함께 동인지 ≪해조(海潮)≫의 발간을 협의했으나 무산되었다. 1938년 5월 조선일보 출판부에 입사했고, ≪매일신문≫에 친일 수필인 <일장기의 당당한 위풍>(1942)을 발표한다. 1943년 8월 일본 천황 불경죄로 구속되었다가 10월에 석방된다. 12월에 방송국에 다시 취직했지만, 일인과의 차별 대우로 사흘 만에 퇴직한다. 징용을 피해 출판 업무를 보다가 ≪조선 전설집≫을 편집해 수만 부를 판매한다. 시골로 낙향했다 해방 이후 상경해서, 1945년 정비석과 함께 종합지 ≪대조(大潮)≫를 창간한다. 1948년 4월에는 김억과 함께 ‘수선사(首善社)’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세운다. 또한 1951년 1·4 후퇴 당시 피난을 갔던 제주도에서 월간 ≪신문화≫를 창간해 3호까지 출간한다. 1954년 서울로 환도하고, 1961년 ≪현대문학≫에 <설수집(屑穗集)>을 연재하던 중 장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1986년 은관문화훈장을 추서받는다. <최 서방>(1927), <인두지주>(1928), <백치 아다다>(1935), <별을 헨다>(1949) 등 40여 편에 이르는 과작의 소설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인본주의적 관점을 밑바탕에 깔고 있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등 소외된 약자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연민이 드러난다. 대표작인 <백치 아다다>(1935)는 벙어리 여성 ‘아다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물욕에 물든 사회의 불합리를 지적하면서, 불구적 조건과 물질적 탐욕으로 인해 비극적 인생을 마감해야 했던 수난당하는 여성상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따뜻한 연민을 통해 삶의 비애와 질곡을 담담하게 포착하면서, 물욕에 젖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대한 회의와 질문을 던진 휴머니스트로 평가된다. 첫 창작집 ≪병풍에 그린 닭이≫(1943)를 일제 말기에 출간하면서 창작에 대한 욕심과 겸손을 강조하며 부끄러움과 반가움을 토로한다. 해방 후 출간하는 두 번째 단편집 ≪백치 아다다≫(1946)에서는 검열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임과 동시에 38선 이북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한다. 세 번째 창작집 ≪별을 헨다≫(1949)에서는 해방 이후 창작된 작품들만을 모아 묶어 내면서 작품 창작의 배경을 토로한다. 수필집으로 ≪상아탑≫(1955)이 있으며, 세계 명작 소개집인 ≪여자의 생태≫(1958)를 출간한다.

저자 : 김동인
김동인(金東仁, 1900~1951)은 1919년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 동인지 《창조》를 창간하고 「약한 자의 슬픔」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배따라기」(1921)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하는 한편, 이광수(李光洙)의 계몽주의적 경향에 맞서 사실주의적 수법을 사용하고 1920년대 중반 유행하던 신경향파 문학에 맞서 예술지상주의를 표방하며 순수문학 운동을 벌였다. 김동인은 이광수 비판에의 집착, 여성 문인에 대한 혐오, 극단적인 미의식, 작가 우위적 창작 태도, 친일 행적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작중 인물의 호칭에 있어 이전까지 사용되지 않았던 ‘그’를 도입하고, 용언에서 과거시제인 ‘였다’를 써 문장에서 시간관념을 명백히 하고, 짧고 명쾌한 간결체를 구사해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전형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 : 김유정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은 1935년 단편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에,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올랐다. 등단하던 해에 「금 따는 콩밭」, 「떡」, 「산골」, 「만무방」, 「봄ㆍ봄」 등을 발표했다. 1936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은 이어져 그해에 「봄과 따라지」, 「동백꽃」 등을, 다음 해에 「땡볕」, 「따라지」 등을 발표했다. 1937년 지병의 악화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불과 2년 남짓한 짧은 작가 생활 동안 30편 내외의 단편과 1편의 미완성 장편, 그리고 1편의 번역 소설을 남겼다. 실감나는 농촌 소설의 면모를 보여주는 그의 소설에서는 우직하고 순박한 주인공,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의 구사 등 탁월한 언어감각을 엿볼 수 있다.

저자 : 김정한
요산(樂山) 김정한(金廷漢)은 1908년 음력 9월 26일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현재 부산광역시 금정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집안에서 세운 서당에 나가 한학을 배웠고, 1919년 열두 살이 되자 범어사에서 운영하는 명정학교(明正學校)에 입학했다. 입학 직후 그는 3·1운동에 참여했는데,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식민지시대 항일 노선을 유지했던 대표적인 사찰로 꼽힌다. 1923년 열여섯 살 때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로 진학했으나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학비를 탕진한 까닭에 유학 생활은 1년 6개월 만에 마감할 수밖에 없었고, 1924년 9월 동래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게 되었다. 동래고보 재학 중 동맹휴학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이 시기에 민족적인 울분을 표출하는 방법으로 문학에 눈을 떴다고 한다. 1928년 3월 동래고보를 졸업하고, 9월 울산 대현공립보통학교의 교원으로 부임했으나, 교원 생활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같은 해 11월 일본인 교사와 한국인 교사의 차별 대우에 분개해 조선인교원연맹 결성을 추진하다가 피검되었고, 이를 계기로 교사직을 그만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그의 나이 스물 하나였다. 따라서 스물 즈음까지 그의 의식을 거칠게나마 정리한다면, 굳건한 민족의식으로 무장해 자신의 세계를 지탱해 나갔다고 파악할 수 있겠다.김정한이 애초 관심을 보인 문학 장르는 시였다. 예컨대 경상남도 양산에는 그의 외가와 왕고모 댁이 있었고, 1927년 스무 살에 양산의 조분금(趙分今) 씨와 결혼했는데, 이곳을 취해 <수라도>를 비롯한 여러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해 나간 것은 몇십 년이 지난 후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는 소설에 뜻이 없었기 때문에 양산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사건들을 문학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대신 이때 몰두했던 것은 시 창작이었다. 1928년에는 목원(牧園) 혹은 김정한(金汀翰)이라는 이름으로 <불교>와 <조선일보>에 시·시조를 투고했으며, 1929년 10월부터 1930년까지는 목원생(牧園生), 김목원(金牧園), 김추색(金秋色)이라는 명의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조선시단>, <대조> 등에 다수의 시를 발표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1931년을 기점으로 해 그는 소설 분야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11월 무렵 <구제사업>이라는 단편소설을 써서 잡지에 투고했으나 일제의 검열로 결국 게재될 수 없었다고 훗날 술회했던 데서 이러한 사실이 드러난다.시 창작으로 출발했던 김정한이 소설 분야로 나아간 까닭은 계급 사상의 영향과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계급/계층의 대립 구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에는 시 장르보다는 소설 장르가 적합하다. 다시 말한다면, 각각의 계급/계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사건을 구성하고, 이로써 현실의 갈등을 긴박하게 제시하는 데 맞춤한 장르가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가 계급 사상에 빠져들었던 것은 일본 유학 때다. 1929년 2월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930년 4월 와세다대 부속 제일고등학원 문과 문학부에 입학했다. 이 시절 그는 독서회에 가입해 사회과학 서적들을 탐독하는 한편, 이찬, 안막, 이원조 등과 교류하며 계급 사상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1931년 11월 결성된 동지사(同志社)에 발기인으로 참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김정한이 품었던 계급 사상의 열도는 대단했다. 재일 조선인 예술 연구 단체인 동지사는 계급의식으로 뭉친 단체였다. 일본 유학을 그만두게 된 계기도 계급 사상과 관련이 있다. 1932년 3학년 여름방학 때 귀향한 후 농민 조직 활성화를 위해 사업을 펼치다가 경찰에 피검되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9월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던 것이다. 같은 해 12월 그의 처녀작 <그물(?)>이 <문학건설>에 발표되었다.학업을 중단한 후 김정한은 다시 교사가 되어, 1933년 9월부터 남해공립보통학교에서 근무했고, 1939년 5월에는 남해군 남명심상소학교로 발령받아 1940년 3월까지 교직을 이어나갔다. 그가 소설가로 등단한 것은 교직 생활을 펼쳐나가면서였다. 1936년 단편소설 <사하촌(寺下村)>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거머쥐었던 것. 비참한 농촌의 현실을 실감나게 형상화한 한편, 이에 편승하는 타락한 불교계의 한 단면을 폭로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농촌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현실에 자각해 나간다는 관점은 다른 작가들과 크게 변별되는 요소였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고초를 겪기도 했다. <사하촌>이 사찰을 비방하는 소설이라고 하여 그는 장학사의 조사를 받았으며, 귀향했을 때는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때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1940년 교직을 그만두고 난 후 김정한은 <동아일보> 동래지국을 맡아 8개월여 간 운영도 해보고, 경남 면포조합에 서기로 취직해 사무도 보다가 드디어 해방을 맞이했다.해방 정국에서 김정한은 좌익 계열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벌여나갔다. 1945년 경남인민위원회 문화부에서 활동했고,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회원으로 이름도 올렸으며, 1946년 2월 조선문학가동맹 부산지부장에 이어 부산예술연맹위원회 회장에 피선된 전력이 이에 해당한다. 이때의 활동으로 인해 김정한은 두 번이나 옥고를 치렀다. 1946년 4월 미 군정은 이러한 활동을 ‘정부 행세’로 규정해 노백용(盧百容), 김동산(金東山) 등과 함께 그를 검거했으며,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한국 정부는 사상 문제로 그를 체포했던 것이다. 그가 김동산으로부터 ‘요산(樂山)’이라는 아호를 받은 것은 1950년 8월 감옥 안에서였다. 아호 요산에는 ‘오래도록 지조를 지키며 살아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후 김정한이 보여준 삶의 궤적을 보면, 아호 ‘요산’처럼 살아나갔음을 확인하게 된다. 민주화를 향한 방향으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나아갔기 때문이다.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이후 통일운동을 역설하고, 민주화운동을 옹호하는 등 수차례 강연을 했다가 1961년 군사 쿠데타를 만나 쫓겨 다녔고, 예순일곱 살이었던 1974년에는 개헌 촉구 서명에 나섰으며, 1985년 5·18민주혁명 기념사업 범국민운동 추진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1987년 6월에는 개헌 촉구 33인 시국선언에 동참했고, 9월 민족문학작가회의 초대 회장으로 뽑힌 바도 있다.마지막까지 아호 요산에 담긴 의미를 지켜 나갔던 김정한은 1996년 11월 28일 타계했다. 살아서 그가 꿋꿋하게 이어온 삶의 궤적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저자 : 나도향
본명은 경손(慶孫), 필명은 빈(彬), 도향(稻香)은 호이다. 서울에서 출생했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문학에 뜻을 품고 일본 유학을 계획했지만 이루지 못했다. 나도향은 1922년 1월에 낭만주의 동인지 『백조』의 창간 동인으로서 한국 낭만주의의 문을 연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낭만주의는 시 장르가 강세였기 때문에 낭만주의 소설가로서 나도향은 더욱 희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나도향의 낭만주의 소설은 감상적이지 않다. 비애나 한이 넘치는 작품일지라도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 보면 그 감정이 개인적 감상으로 퇴행하지 않는다. 그 눈물과 아픔 속에는 모순된 외부세계를 향한 화살이 은폐되어 있기 때문이다.짧은 문단 활동에도 불구하고 나도향은 「벙어리 삼룡이」 「뽕」 「의사의 고백」 「계집 하인」 「물레방아」 「꿈」 「한강변의 일엽편주」 「피묻은 몇 장의 편지」 등 수준 높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는데, 아쉽게도 폐결핵으로 24세에 요절하였다.

저자 : 안국선
소설가. 호는 천강이며, 1878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1895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게이오 대학을 거쳐 도쿄 전문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1899년에 귀국했다. 귀국 후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진도로 유배되었다. 그는 1907년 3월 유배에서 풀려난 뒤 돈명의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대한협회 등 사회단체의 일원으로서 애국 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의 문필 활동은 주로 1907년에서 1908년 사이에 이루어진다. 그는 교단에서 정치·경제를 가르치면서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 《외교통의》 《정치원론》 《연설법방》을 썼다. 또 〈야뢰〉 〈대한협회보〉 〈기호흥학회월보〉 등에 논설을 발표하였다. 이 시기에 발표한 《금수회의록》은 동물을 내세워 당시 현실을 비판하고 국권 수호와 자주 의식을 고취함으로써, 치안이 방해된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최초의 판매 금지 소설이 되었다. 1911년 경상북도 청도 군수로 임명되어 1913년까지 재직하고, 서울로 올라와 대동전문학교에서 강의했으며, 1915년 단편 소설집 《공진회》를 펴낸다. 이 소설집에는 〈기생〉 〈인력거꾼〉 〈시골 노인 이야기〉와 같은 세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낙향 후에 금광과 미두 사업에 실패하고 1926년 지병으로 죽는다.

저자 : 유진오
190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4년 경성제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1929년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하고, 1932년 보성전문학교 강사가 되었다. 1927년 「복수」 「스리」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김 강사와 T 교수」 『화상보』를 통해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줌으로써 식민지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1930년대 후반 평단으로부터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대한민국의 헌법을 1948년에 기초하였고, 그 다음 해에 「헌법해의」를 발행하였다. 1951년에 한일회담 대표가 되었고, 1952년부터 1965년까지 고려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다. 1960년대 후반에는 신민당 총재, 또한 국회의원으로서 야당 정치가 활동을 하였다. 1987년에 별세하였다.

저자 : 이광수
소설가, 작가, 시인, 문학평론가.평안북도 정주 출생. 호는 춘원春園. 한국근대문학의 선구자이다. 계몽주의•민족주의 문학가 및 사상가로서 한국 근대 정신사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05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신학문을 접하며 홍명희•최남선 등과 사귀었고,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에 심취했다. 1919년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하이로 탈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했다. 1921년 단신으로 상하이에서 귀국, 선천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가 불기소처분으로 풀려난 뒤에는 변절자로 비난받기도 했다.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친일 행위를 했으며, 해방 이후 친일파로 지목되어 비난을 받았다. 한국전쟁중 인민군에게 납북되어 그해 10월 북한에서 병사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무정』,『사랑』, 『흙』, 『유정』, 『단종애사』 등이 있다.

저자 : 이상
이상(李箱, 1910-1937)의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으로 ‘이상’이라는 필명은 1932년 「건축무한육면각체」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사용했다. 1934년 구인회의 김기림, 박태원 등과 교우하며 문단과 교우를 맺었으며 이태준의 주선으로 <조선중앙일보>에 연작시 「오감도」를 연재하였으나 난해함에 항의하는 독자들의 반발로 중단되었다. 이상의 문학에는 억압되고 좌절된 욕구를 가진 무력한 자아의 불안과 공포 및 탈출 시도, 그리고 무의식의 개념을 도입한 자기 분열과 비합리적인 내면세계가 그려져 있어 흔히 난해한 초현실주의적인 작가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기존 문학의 형태를 해체하여 이전까지는 없었던 전혀 새로운 의식과 언어로 구축한 작품 세계는 시대를 초월하여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저자 : 이인직
호는 국초(菊初). 1862년 경기도 음죽군 거문리에서 태어났다. 1900년 대한제국 정부의 관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 동경정치학교에 입학한 후 일본 여성과 결혼하고, 1930년 미야코 신문 견습생으로 근무하며 일본어 소설 '과부의 꿈'을 발표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 육군성 소속 한국어 통역으로 발탁되어 종군했다.친일단체 일진회의 기관지 국민신보의 발간을 주도하고, 만세보 주필로 활동하면서 1906년 만세보에 '혈의 누', '귀의 성'을 연재했다. 이듬해 재정난에 빠진 만세보를 인수하여 대한신문으로 개제하고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08년 원각사에서 '은세계'를 창극 형식을 공연하였으며, <귀의 성>을 중앙서관에서, <치악산>을 유일서관에서 발간하였다.이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이완용의 밀사 자격으로 일본을 내왕하였다. 1911년 경학원의 사성(司成)으로 임명되고 경학원잡지의 편찬과 발행을 맡았다. 1913년 '혈의 누' 하편에 해당하는 '모란봉'을 매일신보에 연재하다 중단했다. 1916년 55세에 생을 마쳐, 천리교 예식으로 화장되었다.

저자 : 이태준
호는 상허尙虛.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휘문고보 4학년 때 동맹 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1925년 도쿄에서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해 입선했다. 1927년 도쿄 조치대 예과를 중퇴한 후 귀국했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 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구인회에 참가했으며,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심리를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1940년경 일제의 압력으로 친일 활동에 동원되었고, 1941년 모던 일본사가 주관하는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1943년 절필 후 낙향했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다. 해방 공간에서 좌익 작가 단체에 가입해 주도적으로 활동, 1946년 <해방 전후>로 제1회 해방문학상을 수상하고 그해 여름에 월북했다. 6·25 전쟁 중엔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와 종군 활동을 했다. 1956년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숙청당한 이후 정확한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한국 전쟁 이전까지 《까마귀》《이태준 단편선집》《이태준 단편집》《해방 전후》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화관》《청춘 무성》《사상의 월야》 등 장편 13권을 출간했다.

저자 : 이효석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은 1928년 《조선지광》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작은 경향문학의 성격이 짙어 ‘동반자 작가’로 불렸다. 첫 창작집 『노령근해』를 통해 자신의 프롤레타리아 이념을 추구하는 문학적 지향성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한 1932년 무렵부터는 순수문학을 추구하여 향토적, 이국적, 성적 모티프를 중심으로 한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쳤다. 1933년부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여 이 해에 「돈(豚)」 「수탉」 등을 발표하였다. 이후 1936년 「산」 「분녀」 「들」 「메밀꽃 필 무렵」 「석류」, 1937년 「성찬」 「개살구」, 1938년 「장미 병들다」 「해바라기」, 1939년 「황제」 「여수」 등의 단편을 발표하며 대표적인 단편소설 작가로서 입지를 굳혀 갔다. 『화분』(1939), 『벽공무한』(1940) 등의 장편도 발표했는데, 일본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일어로 장편소설 『녹색의 탑』(1940)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을 쓰기도 했다.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지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이효석문학관이 건립되어 있다.

저자 : 주요섭
190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나 숭실중학교 3년 때 아버지를 따라 일본 도쿄로 가서 아오야마 학원 중학부에 편입했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귀국하여 지하신문을 발간하다가 출판법 위반으로 10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1927년 상하이 후장대학을 졸업했고,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그 뒤 신동아 주간, 중국 푸렌 대학 교수, 경희대학교 교수,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위원장 등을 두루 맡았습니다. 1921년 매일신보에 단편 <깨어진 항아리>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1930년에는 장편 〈구름을 잡으려고〉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이어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어른들의 사랑을 그린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발표하였습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젊은 과부와 사랑손님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통해 봉건적 사회에서 개방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시대와 인간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회 고발적인 작품들도 많으나 인간의 내면세계와 삶의 의미를 묘사한 작품들이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작품으로 《아네모네의 마담》《봉천역 식당》《인력거꾼》《눈은 눈으로》 《대학교수와 모리배》《추운 밤》《입을 열어 말하라》《세 죽음》《잡초》 등이 있습니다.

저자 : 채만식
채만식(蔡萬植, 1902~1950)은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세 길로」로 문학계에 등장하였다. 기자로 근무하며 창작 활동을 병행했던 그의 작품에는 당대의 현실과 이에 대한 비판의식이 주를 이룬다.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 농민의 빈곤, 도시 노동자의 몰락이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단편 「레디메이드 인생」(1934)은 독특한 풍자 작가로서의 채만식을 엿보게 하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 세계는 동반자 문학에서 강렬한 풍자적 리얼리즘으로 변모하였다. 「여인 전기」라는 친일 성향의 작품을 썼던 그는 해방 이후 발표한 자전소설 「민족의 죄인」에서 자신의 친일 행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인물의 내면을 상세히 묘사했다.

저자 : 최서해
함북 성진 출생. 본명은 최학송(崔鶴松).1918년 어머니와 간도로 들어가 유랑생활 및 농노생활을 함. 1924년 《조선문단》에 단편 〈고국〉으로 등단. 신경향파 문학의 기수. ‘빈궁의 문학’이라는 1920년대 ‘단자적’ 영역을 만듦.작품으로 〈탈출기〉 〈홍염〉 〈서막〉 〈갈등〉 〈무명초〉 〈큰물 진 뒤〉 〈박돌의 죽음〉 외 다수가 있다.

저자 : 한설야
1900년 8월 3일 함흥 지역 한씨 집성촌인 함경남도 함흥군 주서면 하구리 503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한직연은 청주 한씨 안양공파 31대손이며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의 문하생이다. 1915년 경성제일고보에 입학했고, 1918년 함흥고보로 전학했다. 1919년 함흥법전에 진학했지만 같은 해 동맹휴교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제명당한다. 1920년부터 1년 남짓 베이징의 이즈(益智)영어학교에서 사회과학을 수학했으며, 중국 육군성 조선인 관리의 집에서 가정교사 노릇을 했다.1921년 귀국한 후 북청 학습강습소에서 교사 생활을 했고, 시 <부벽누에셔>를 ≪매일신보≫에 발표했다. 정식으로 등단할 때까지 10여 편의 창작시, 번역시, 소개문, 추도문 등을 발표했다.1923년 도쿄의 니혼대학에서 수업을 들으며 사회과학 공부와 문학작품 습작에 열중하던 중 관동대지진이 나자 대학을 휴학하고 가을에 귀국했다. 1924년 북청에 있는 대성중학교에서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북청자전거운동회사건’을 계기로 북청을 떠나게 된다.1925년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그날 밤>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한다. 1926년 봄에 부친이 타계하자, 중국 동북 지방의 대표적인 탄광 지대인 푸순(撫順)으로 이주한다. 이 시기에도 문학평론이나 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데 전념하며 창작을 지속했다.1927년 1월에 귀국한 후 카프에 가입한다. 가입과 동시에 아나키즘 논쟁에 적극적으로 나서 김화산을 강력 비판한다. 제3전선파의 이북만과도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이후에도 여러 편의 문예학 및 사회과학 원론들을 발표한다. 1928년 문예운동의 방향 전환과 관련하여 박영희 등의 카프 지도부를 비판하는 <문예운동의 실천적 근거>를 발표한다. 이후 카프 내의 논쟁에서 패배한 후 낙향하여 ≪조선일보≫ 지국을 경영한다. 이 논쟁을 통해 한설야는 계급문학과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의 옹호자라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1929년 여름에는 압록강과 백두산 일대의 국경 지방을 여행하기도 한다. 1930년 경성에 올라와 조선지광사에 입사하고, ≪신계단≫, ≪대조≫, ≪조선지광≫ 등의 편집에 관여한다. 1933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고, 간도에 특파돼 공산당의 경찰서 습격 사건인 ‘팔도구 습격 사건’을 취재하기도 한다. 1934년 신건설사 사건(카프 제2차 사건) 때 체포되어 전주 감옥에서 영어 생활을 한다. 1935년 12월 집행유예로 석방되어 함흥으로 귀향한 후, 동명극장과 인쇄소를 동시에 경영한다. 1940년 6월경에 베이징을 두 번째로 방문한다. 1943년 유언비어 유포 혐의를 받고 문석준과 함께 징역형을 선고받아 투옥된다. 1944년 5월 감옥에서 병보석으로 풀려나 자전적 장편소설 ≪해바라기≫를 집필하던 중 해방을 맞는다.1945년 9월 이기영 등과 함께 ‘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결성하고, 12월 10일 분열된 문학계의 통합 논의를 위해 상경하여 아서원 좌담회와 봉황각 좌담회에 참여한다. 서울에 조선문학동맹이 결성되는 것을 보고 12월 말에 북한으로 귀환한다.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함경도 대표로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을 만나고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조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당시 문인 중에서 가장 발빠르게 김일성 형상화에 착수했다. 1947년 7월부터 9월까지 소련을 여행하고, 이 경험을 토대로 이듬해 ≪쏘련 여행기≫를 발간했다. 1949년 4월 ‘평화 옹호세계대회’ 참석차 파리를 방문하여, 세계적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1951년 어머니가 타계했고, 1953년 임화를 중심으로 한 월북 문인의 숙청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1940년대 후반부터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교육문화상 등을 역임했다. 1960년 ≪력사≫로 인민상을 수상했고, 한설야 선집이 15권 계획으로 출간되기 시작했다.1962년 김창만 등이 주축이 된 김일성 세력은 한설야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12월 10일 당 4기 4차 전원회의에서 숙청이 결정되었다. 1963년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자강도 시중군의 협동농장으로 쫓겨났다가 1976년 별세했다.

저자 : 현진건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은 1920년 《개벽》에 단편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나, 이듬해 발표한 「빈처」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백조》의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김동인, 염상섭과 더불어 한국 근대문학 초기에 단편소설 양식을 개척하고 사실주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단편으로는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 좋은 날」(1924), 「불」(1925), 「B사감과 러브레터」(1925), 「사립정신병원장」(1926), 「고향」(1926) 등이 있고, 『타락자』(1922), 『지새는 안개』(1925), 『조선의 얼골』(1926), 『현진건 단편선』(1941) 등의 단편집과 『적도』(1939), 『무영탑』(1941) 등의 장편소설이 있다.

저자 : 박영준
만우(晩牛) 박영준(朴榮濬)은 1911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났다. 1934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고, 23세라는 약관의 나이로 장편 ≪일 년≫이 ≪신동아≫ 현상모집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단편 <모범경작생>이 ≪조선일보≫에, 콩트 <새우젓>이 ≪신동아≫에 각각 당선됨으로써, 다른 작가들에 비해 비교적 화려한 등단을 했다. 이후 43년 동안, 일관된 작가 생활을 통해 200여 편의 단편과 일곱 편의 중편 그리고 열일곱 편의 장편을 생산해 냈다.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6년에 지병으로 타계했다.박영준의 작품은 공간 배경의 변화로 크게 일별할 수 있다. 해방 전에는 거의 모든 소설들이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데 비해, 해방 후에는 도시의 삶과 풍속으로 그 탐구 대상이 대부분 바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모는 주제 의식의 변화와도 긴밀히 연관된다. 초기 작품들이 가난한 농민들에 대한 단단한 유대감을 토대로 일제 및 지주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그리고 있다면, 후기작들은 전쟁에 대한 증언, 소시민들의 윤리적 일탈과 회복, 그리고 심미적 의식을 가진 소시민의 일상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로는 기독교 의식을 침윤시킨 작품들을 창작하는데, 이는 그가 집착해 마지않은 윤리적 지향이 심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분류 기준을 토대로 박영준의 문학 세계를 범주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먼저 초기 농민 소설은 ≪일 년≫, <모범경작생>(이상 1934), <어머니>, <생호래비>(이상 1935), <목화씨 뿌릴 때>(1936), <쥐구녕>(1937) 등이 대표적이다. 초기 농민 소설은 일제의 수탈 정책에 의해 피폐해지고 몰락해가는 한국 농촌의 정경과 정서를 박진하고 질박한 문체 속에 담아내었다. 그것은 당시 계몽적 농촌 운동에 사상적 바탕을 둔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 같은 지식인 소설과는 궤를 달리하는 사실주의 계열의 성격이었는데, 그것은 김유정의 소설적 성과와 함께 매우 소중한 문학사적 성과로 기록되고 있다.해방 후 전쟁소설에는 <빨치산>, <암야(暗夜)>(이상 1952), <김장군>, <용초도 근해(龍草島近海)>(이상 1953), <피의 능선>(1955), <궁극의 위치>(1960) 등을 대표적으로 예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도시를 배경으로 한 세태소설에는 <청춘병실>(1955), <푸른 치마>(1956), <태풍지대>(1957), <불안지대>(1958), <오늘의 신화>(1960) 등이 있다. 그리고 심미적 의식을 가진 소시민들의 일상을 소재로 한 계열에는 <고호(古?)>(1954), <체취>(1955), <정형수술>(1956), <어떤 노화가>(1957), <유실>(1958), <그늘 밑에서>(1960) 등이 있다.박영준은 그동안 가난하고 불행한 농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대표화되어 주로 ‘농촌 작가’라고 불려왔다. “나는 가난 속에서 태어나고 가난 속에서 자랐다. 내가 아는 사람도 가난한 이들뿐이다. 그 속에서 나온 내 소설이 가난이 아닐 수 없다”는 그의 말에서 그러한 작가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여기에는 목사이자 독립 운동가였던 아버지의 정신적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해방 후 그는 일종의 반전(反戰) 의식과 함께 인간의 윤리 의식과 양심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으로서의 윤리 의식이 마비된 현대인의 타락상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지향을 보인다. 일관된 작가 의식과 인간의 근원적 윤리를 끝까지 지켜내려 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가적 위상은 남다르다 할 것이다.

저자 : 조명희
포석(抱石) 조명희(趙明熙)는 1894년 8월10일 충북 진천군 진천읍 벽암리에서, 선비이며 학자인 아버지 조병행과 연일 정씨 어머니 사이에서 4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난다. 자(字)는 경덕(景德), 호적명은 명희(明熙), 애칭은 칠석이었다. 네 살 때 부친인 조병행이 죽고 난 후, 조명희는 둘째 형 조경희 집에 머물며 어머니로부터 한글을 배우고, 서당에서 한자를 배우기도 했다. 진천소학교에 다니며 열네 살에 충북 서산에 사는 여흥 민씨 집안의 딸인 민식(閔植)과 혼인을 하게 된다. 1914년 한여름, 서울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반이었던 조명희는 북경사관학교로 떠나려다가 평양에서 둘째형 경희에게 잡혀 집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이 시기에 다양한 신소설을 읽었고, <홍루몽>, <삼국지> 등 많은 중국 소설도 접하게 된다. 특히 ≪매일신보≫에 연재되던 민우보 역의 ≪희무정(噫無情, 레미제라블)≫에 빠져 지냈으며, 이광수의 ≪무정≫ 등 근대 소설과 ≪태서문예신보≫, ≪창조≫, ≪삼광(三光)≫ 등 근대 잡지를 접하게 되면서 ‘문예’에 눈뜨게 된다. 1919년 3월 초, 3·1 만세 운동을 하다가 유치장에 갇히고 난 후, 조명희는 5년간의 고향 생활에서 벗어나 일본 도쿄로 가 도요대학 인도철학윤리학과에 입학한다. 경제적 사정과 언어 소통, 문화 차이의 어려움을 겪으며, 학비 문제로 고생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도 괴테를 읽고 타고르와 하이네를 읊었다. 친하게 지내던 극작가 김우진과 함께, 1920년 봄 도쿄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근대극 연극 단체인 ‘극예술협회’를 창설한다. 1921년 여름에는 유학생과 노동자들의 모임인 동우회의 전국 순회 연극단의 공연 작품으로 조명희가 쓴 <김영일의 사>가 채택되어 크게 호평을 받았다. 이 연극 대본은 한국 근대 문학 최초의 창작 희곡으로 가난한 도쿄 유학생의 비극적 삶을 그린 조명희 자신의 자전적 작품이다. 친구들과 연극 운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조명희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3년 반 만에 식민지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귀국 다음 해에 상경해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고, 노적(蘆笛)이라는 아명으로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출간하게 된다. 일본에 가기 전 고향집에서 썼던 시들과 도쿄 유학 시절의 시들을 모은 이 시집은 근대 문학 사상 개인 창작 근대 시집으로서는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 이학인의 ≪무궁화≫에 이어 세 번째에 해당한다. 1925년 8월에 KAPF-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에서 지도자적인 역할을 한 조명희는 ≪개벽≫에 <땅속으로>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 새로운 문인 생활을 시작하고 1927년 7월 ≪조선지광≫에 단편 <낙동강>을 발표하면서 프로문학을 대표하는 선구적 작가가 된다. <낙동강>은 낙동강 어부의 손자이며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박성운(농업학교 졸업, 군청 농업 조수)이 3·1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에 갇히더니, 출옥한 이후에는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로 변화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조명희의 경성 생활은 일제 식민 통치 속의 숨 막히는 압박감과 불안감, 헤어날 길 없는 가난으로 점철되었다. 1928년 8월 조명희는 일제 경찰의 탄압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며 소련으로 망명하게 된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는 이전의 서정시와는 다른 분위기의 산문시 <짓밟힌 고려>를 ‘조생’이란 필명으로 세상에 발표하게 된다. 이 시는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 의지를 담고 민족 해방과 계급 투쟁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후 조명희는 조선인 육성촌에서 조선어 교사로 있으면서 문예를 지도하며, 동화극 <봄 나라>, 동요 <눈싸움>, <샘물>과 같은 작품들을 쓰게 된다. 1930년 동료 교사인 황명희와 재혼하고, 우수리스크로 이사해 조선사범전문학교에서 조선어문학을 강의하게 된다. 당시에 그가 쓴 시, 소설, 정론, 평론 등의 작품들은 소비에트 조선 문학의 방향성을 보여 주었다.1934년에는 작가 파제예프 추천으로 소련작가동맹 맹원으로 가입했으며, 연해주의 한국신문 ≪선봉≫의 문예면 편집을 자문하게 된다. 이듬해 하바롭스크로 이사한 후 조선사범대학의 교수로 재직한다. ≪선봉≫ 신문에 문예란을 만들고, 자신의 한글 및 문학 교육을 받아 창작된 한글 문학 작품들을 모은 ≪로력자의 조국≫을 출간하기도 했다. 당시 조명희는 블라디보스토크나 우수리스크 인근 연해주 또는 빨치산스크 등지에서 많은 제자들을 문학가로 길러 냈다.1937년 장편소설 ≪만주 빨치산≫ 집필 도중 소련 내무인민위원회 기관원에 연행되고, 가족은 스탈린의 ‘고려인 시베리아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하게 된다. ≪만주 빨치산≫의 내용은 중국 동북 지방에서 조국(조선)의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애국지사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듬해에 소련 당국으로부터 일제의 첩자라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고 하바롭스크 현지 주르사 감옥에서 처형당한다. 1956년 스탈린 사후 흐루시초프 정권 때, 소련 극동군관구 군법회의는 1938년 4월 15일의 결정을 파기, 무혐의로 처리하고 조명희를 복권시켰다. 1959년 12월 10일에 조명희문학유산위원회에서 편찬한 ≪조명희 선집≫이 소련과학원 동방도서출판사에서 양장본으로 출간되었다.1988년 한국 정부가 월북납북작가 작품을 해금 조치함으로써, 조명희에 대한 문학적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 : 전영택
1894년 평양성에서 태어났다. 6세 때부터 한문을 익혔으며 11세 때부터 보동학교, 대성학교에서 수학했다. 19세 때부터 일본 동경의 청산학원에서 공부하여 고등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으로 진학하여 문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1919년, 26세 때 김동인, 주요한 등과 함께 문예지 「창조」를 발간했으며, 동경 유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창조」를 중심으로 하여 '혜선의 사'를 시작으로 여러 편의 단편 및 중편소설을 발표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화수분'은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되었다. 1927년 목사가 되어 각종 목회 활동에 주력하였으며, 감리교신학교 교수와 「기독신문」의 주간을 지냈다. 이후 국립맹아학교 교장, 중앙신학교 교수, 「한국복음신문」등의 주간을 역임하였으며, 1968년 7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며 종교적 색채를 작품 속에 담아냈다.

저자 : 송영
송영은 본명은 무현(武鉉)으로 1903년 5월 24일 서울 서대문 오궁골에서 태어났다. 송동양, 수양산인, 앵봉산인, 석파 등 필명을 사용했다. 배재고보 재학 당시 3·1 운동을 체험한 뒤로 학교를 중퇴하고 사회운동에 투신했다. 1922년 이적효, 이호, 최승일, 김영팔 등과 프롤레타리아 문예 단체인 염군사를 조직했으며 기관지 ≪염군≫을 기획했다. 1923년 무렵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경험의 폭을 넓히고 귀국했다. 1925년 7월 ≪개벽≫ 현상 공모에 <늘어가는 무리>가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이후 1935년까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에 참여, 아동 문예 운동과 연극 운동, 소설 창작에 힘썼다. 카프가 해산한 뒤 1937년에는 동양극장 문예부원으로 활동하며 대중극 대본을 창작했다. 해방 이후 월북해 1946년 작가동맹상무위원을 시작으로 조선연극인동맹위원장, 2∼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영화 촬영소 소장 등 요직을 거쳤다. 대표작으로는 소설 <용광로>, <석공조합대표> 등과 희곡 <호신술>, <황금산>, <역사>, <백두산은 어디서나 보인다> 등이 있다. 정신 질환을 앓다가 1978년, 7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목차

1권
혈의 누_이인직
금수회의록_안국선
소년의 비애_이광수
배따라기_김동인
운수 좋은 날_현진건
화수분_전영택
탈출기_최서해
늘어가는 무리_송영
벙어리 삼룡이_나도향
낙동강_조명희
과도기_한설야

2권
달밤_이태준
동백꽃_김유정
레디메이드 인생_채만식
모범 경작생_박영준
사랑손님과 어머니_주요섭
백치 아다다_계용묵
김 강사와 T 교수_유진오
메밀꽃 필 무렵_이효석
사하촌_김정한
날개_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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