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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시간
사계절 | 청소년 | 2010.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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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열아홉 살 소년과 여교사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
그리고 이별의 문법


1968년『독일어 시간』독일 출판계를 뒤흔들었던 지크프리트 렌츠의 2008년도 작이다. 발트해 연안의 한 작은 도시, 사람들이 여전히 베니 굿맨과 레이 찰스의 음악을 듣고, 골목에서는 거리의 악사가 배럴오르간을 끌고 다니고, 유로화 대신 마르크화를 사용하는 그 시절. 이곳에서 고등학교 13학년 학생과 영어 선생님 사이에 사랑이 싹튼다. 들켜서도 발설해서도 안 될 금단의 사랑이다.

소설은 교사와 학생, 성장 중인 사람과 성장한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것은 아니다. 금지된 사랑은 \'순수하고 애절한 사랑\'을 묘사하기 위해 빌려온 모티브일 뿐이다. 절절한 사연을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게 그려 나가고,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순결한 에로틱\'의 감성을 지크프리트 렌츠는 『침묵의 시간』에서 보여준다.

  출판사 리뷰

『독일어 시간』의 작가 지크프리트 렌츠, 연애 소설로 다시 돌아오다

지크프리트 렌츠(Siegfried Lenz)의 신작『침묵의 시간』(Schweigeminute)이‘사계절1318 문고’예순한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독일어 시간』,『 아르네가 남긴 것』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렌츠는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 등과 함께 전후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힌다. 이 책은 그가 여든의 나이에 쓴 연애 소설로, 독일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여교사 슈텔라와 열아홉 살 소년 크리스티안의 짧지만 강렬한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격조 있는 문
체로 그려내고 있다.
2008년『침묵의 시간』이 첫 출간되었을 때, 독일 문단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술렁였다.
누구보다 당황한 건 렌츠를‘한물간’작가라고 폄하했던 비평가들이었다. 그들은 거장이 빚어낸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의 유명한 문학 비평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침묵의 시간』을 두고“렌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했다. 라니츠키는 렌츠가‘전통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편견 없이 받아들인 뒤 자신의 내부에서 엄격하게 재창조하는 보기 드문 작가라고 평가하면서, 렌츠 특유의 절제된 문장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작품 안에서 스스로 움직이며 풍경을 만들고, 독자들은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을 수 있다고 극찬했다.

지난여름, 영어선생님이 내게 가르쳐준 건 이별의 문법이었다

이야기는 독일의 한 고등학교 추모식장에서 시작된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교사들과 학생들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한 여성의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 속 여성은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젊은 여교사 슈텔라 페테르젠. 묵념을 하는 추모객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고개를 든 채 영정을 바라보는 한 소년이 있다. 이 학교의 최고학년인 크리스티안이다. 크리스티안은 영정 속 슈텔라 선생님의 미소를 바라보며 그녀와 함께한 지난여름을 떠올린다.
크리스티안은 여름방학 동안 채석꾼인 아버지의 일을 돕느라 여념이 없다. 하루 종일 바지선에서 물속에 가라앉은 오래된 바윗돌을 끌어올리거나, 짬이 날 때면 휴양지를 찾은 관광객들을 유람선에 태우고 관광 안내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티안은 친구들과 휴가를 보내기 위해 그곳을 찾은 슈텔라 선생님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든다. 슈텔라 역시 이제 막 소년의 티를 벗은 그에게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이상의 호감을 느낀다.
두 사람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빠져든다. 그러나 순수한 열정만으로 가득한 크리스티안과는 달리 슈텔라는 이내 현실적인 난관에 부딪히고 만다. 무엇보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가야 할 크리스티안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그녀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녀는 크리스티안과 확실한 선을 긋기로 마음먹지만, 그럴수록 크리스티안은 저돌적으로 다가온다.
크리스티안은 자신을 점점 멀리하는 슈텔라를 보며 조바심을 낸다. 또 그녀의 옛 연인이었던 남자에 대한 질투심도 느낀다. 결국 크리스티안은 그녀와 처음으로 사랑을 나눴던 작은 외딴섬 오두막에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미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이 둘의 사랑을 지속시켜줄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그러나 크리스티안의 바람과는 달리 이별은 너무나도 빨리 찾아오고 만다. 유람선을 타고 섬 이곳저곳을 돌던 슈텔라가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배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는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선생님, 날 봐요.”
선생님이 눈을 떴다. 영문을 모르는 것 같은, 어디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나는 선생님 얼굴을 계속 쓰다듬었다. 선생님의 눈빛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찾고, 무언가를 묻는 눈빛이었다. 기억의 바닥을 헤매며 무언가를 찾는 것이 분명했다.
“크리스티안.”
선생님의 입술이 달싹거리는 순간, 나는 분명하진 않지만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네, 선생님.”
그러고는 덧붙였다.
“이제 내가 안전하게 보호해 드릴게요.”- 본문 127쪽

슈텔라는 병원에서 의식 불명 상태로 여러 날을 보낸다. 크리스티안은 그런 그녀가 깨어날 때까지 옆에 있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둘만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리라 결심한다. 하지만 슈텔라는 크리스티안을 위해 말 한마디 남기지 않은 채 숨을 거두고 만다. 그녀가 남긴 건 미처 부치지못한 편지 한 통뿐이다. 크리스티안은 편지를 읽으며 지난여름, 짧지만 강렬했던 시간을 영원히 둘만의‘비밀’로 남겨두기로 한다. 결국 그‘비밀’이 자신을 성장시키리라 믿으면서.
다음은 추모객들 차례였다. 사람들이 꽃을 집어 물 위로 던졌다. 대부분 꽃다발째였다. 우리 체육선생님과 다른 선생님 둘만 다발을 풀어 한 송이씩 뱃전 옆의 바다에 떨어뜨렸다. 떨어진 꽃들을 지나가던 물살이 부드럽게 받들었다. 살랑살랑 좌우로 흔들리며 물살을 타고 가는 꽃들에서 한줄기 빛이 새어 나오는 듯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저기 떠가는 꽃들이 내 젊음의 영원한 비극으로 기억되는 동시에, 상실의 아픔을 보듬는 크나큰 위안이 되리라는 것을. - 본문 148쪽

오랜만에 제대로 된 명작을 읽는 즐거움

『침묵의 시간』은 한 소년이 청년으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인 동시에 완전무결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크리스티안과 슈텔라가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인 그들은 마치 섬광 같은 끌림으로 서로에게 다가간다. 물론 이 강렬한 사랑 이야기가 단순히 맹목적인 욕망의 비극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렌츠는 소설 곳곳에 음악이나 영화, 그리고 두 사람이 나누는 조지 오웰의『동물 농장』에 관한 대화 등을 통해 전후 독일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침묵의 시간』은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역사라는 관념 틀에서는 잡히지 않는 사적인 삶의 구체성과 숭고함을 개인의‘사랑’을 통해 이야기한다. 욕망은 육체적인 것이며 극히 사적인 것이다. 크리스티안과 슈텔라의 욕망은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역사의 비극적인 명제에 포섭되지 않는 각 개인들 삶의 개별적인 진실성을 이야기한다. 작품은 크리스티안이 눈먼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의 결말을 스스로 봉인했듯이 그렇게 인간의 삶은 계속되고, 또 지켜져야 한다고 말한다.
여교사와 남학생의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침묵의 시간』은 청소년소설의 전통적인 범주에서 살짝 빗겨나 보인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1318문고’에서 선보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그 어느 문학작품보다 간결하고도 강렬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교사와 학생, 성장 중인 사람과 성장한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식의 유치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금지된 사랑은‘순수하고 애절한 사랑’을 묘사하기 위해 빌려온 모티프일 뿐이다. -‘옮긴이의 말’중에서
어쩌면 요즘 청소년들에게 사랑이란, 패스트푸드처럼 빠르게 얻을 수 있고 유행 지난 휴대전화처럼 대수롭지 않게 갈아치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침묵의 시간』은 이제 막 사랑의 감정에 눈 떠가는 청소년들에게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게 만드는 책이 될 것이다. 또한 외국 문학을 즐겨 읽는 성인 독자들에게도 오랜만에 거장의 신작을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작가 소개

저자 : 지크프리트 렌츠 (Siegfried Lenz)
하인리히 뵐, 귄터 그라스 등과 함께 전후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렌츠는 1926년 북부 독일의 마주렌 지방에서 태어났다. 김나지움에 다니던 17세 때 2차대전에 징집되어 해군으로 참전했으나 패망해가는 독일군의 실상에 환멸을 느끼고 탈영을 감행하다가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 생활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서독으로 귀환하여 함부르크 대학에서 영문학ㆍ철학ㆍ문학을 공부하고 『디벨트』(Die Welt)지의 문화ㆍ정치부 기자를 거쳐 문예란 책임 편집위원을 지냈다.

렌츠는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도스토예프스키, 포크너, 헤밍웨이의 영향 아래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51년에 첫 장편소설 『창공의 보라매』로 작가적 명성을 얻은 뒤 주로 극한 상황에 처한 고독한 인간의 운명, 사회 상황에 대한 개인의 적응 문제, 권력과 대립된 인간 문제 등 보기 드물게 폭넓은 사회 상황을 담은 작품을 발표해 왔다. 1968년에 발표한 『독일어 시간』은 권력과 예술의 갈등을 그린 소설로, 출간되자마자 독일 출판계를 뒤흔들었다.

렌츠는 비단 소설뿐 아니라 희곡과 방송극 영역에서도 문학적 성공을 거두었고, 그런 성과를 바탕으로 레싱 문학상, 브레멘 문학상,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상, 동독 문학상, 게오르크 마켄젠 문학상, 괴테 상 등을 수상했다. 국내에 소개된 작품으로는 『독일어 시간』을 비롯해 『아르네가 남긴 것』『줄라이켄 사람들』등이 있다.

역자 : 박종대
성균관대학교 독문학과와 같은 대학을 졸업했고, 독일 쾰른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동안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아르네가 남긴 것』『너의 용기만큼 큰 산』『바타비아호의 소년, 얀』『목 매달린 여우의 숲』『이야기 파는 남자』『귀향』같은 문학 작품과 『청소년을 위한 교양』『위대한 패배자』『로마 문학 기행』등의 인문교양서를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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