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할머니와 그 가족이 할머니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안정적인 대안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야기. 이 작품이 보다 진지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안나와 할머니의 우정을 통해 치매의 슬픔을 인간에 대한 성찰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자신의 병을 한사코 숨기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노화의 과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나 어릴 적 겪었던 동생과의 사별을 그토록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과정 등이 노년과 인생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볼만한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사랑하는 일이다. 아직까지 치매에 대한 적절한 치료 방법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치매 노인을 다룬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기는 힘든 노릇이다. 다만 <구멍 난 기억>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흔히 한 핏줄을 타고났다거나 의식주를 함께하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진정 가족을 가족으로 묶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기억이다. 어느 한때 한곳에 모여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기억, 서로가 서로에게 더할 바 없는 기쁨이 되었던 기억, 그리고 나도 알지 못하는 나의 시간을 이야기해주는 어른들의 기억…… 그래서 보통 한 가족의 기원이 되었던 노인들은 그 가족의 기억 창고 노릇도 하기 마련이다. 엄마나 아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주는 조부모들의 흐뭇함이나 그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놀라움 같은 것들은 얼마나 익숙한 풍경인지,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므로 차츰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들을 바라보는 심정이란 착잡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할머니를 몹시 사랑했던 손녀에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구멍난 기억』의 안나는 유난히 할머니를 따른다. 언제나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엄마아빠에 비해 할머니는 바쁘지 않아 좋고, 할머니하고는 ‘뭐든지 얘기하고 아무 얘기나 할’ 수 있다.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만들어 먹는 설탕 과자의 맛이란! 이런 할머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느 날, 할머니가 이상해졌다. 머리를 엉망으로 풀어헤치고 무서운 표정을 한 채 안나를 못 알아보는 게 아닌가. 이내 정신을 차린 할머니가 오늘 있었던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자 안나는 그렇게 한다. 할머니가 엉뚱한 단어를 사용하거나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는 일이 생겨도 일이 그렇게 심각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할머니의 머릿속에 치즈의 구멍처럼 구멍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안나는 할머니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함께 옛날 노래를 부르는 뇌 운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기억에 구멍이 날 때마다 할머니는 리디라는 아이를 찾고, 안나는 엄마에게서 할머니가 어렸을 때 리디라는 동생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리디는 다섯 살에 집 앞 연못에 빠져죽었다고. 그럼 할머니는 어릴 때의 기억 속에서 헤매고 있는 걸까?
치매, 노년과 인생에 대해 던져진 까다로운 질문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던 날, 할머니가 오빠의 여자 친구 록산을 리디로 착각해 소동이 벌어지자 가족들 모두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병원에서 검사 받길 권하는 엄마와 그저 ‘노화’라는 병에 걸렸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할머니. 그러나 문제는 점점 심각해진다. 급기야 할머니가 사라져 온 가족이 찾아 헤매는데 할머니가 발견된 곳은 어렸을 때 살던 집 앞이다. 바로 리디가 물에 빠졌던 곳. 병원에서는 할머니가 앞으로 점점 더 기억을 잃게 될 거라고,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아파트 사람들이 모두 대피할 만큼 큰 사고를 친 뒤 결국 안나의 곁을 떠나 요양 기관으로 가게 된다.
『구멍 난 기억』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할머니와 그 가족이 할머니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안정적인 대안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이야기다. 프랑스 작품이지만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정이 30만을 넘어서는 우리에게도 절실한 문제인 셈.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족이 겪는 어려움은 물론 말할 수 없이 큰 것이겠지만『구멍 난 기억』이 보다 진지한 작품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안나와 할머니의 우정을 통해 치매의 슬픔을 인간에 대한 성찰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자신의 병을 한사코 숨기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노화의 과정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나 어릴 적 겪었던 동생과의 사별을 그토록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과정 등이 노년과 인생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볼만한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노년을 보낼 것인가가 당사자인 노인들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이듯, 가족 내의 노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숙제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안나가 할머니의 병을 이해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가슴 아픈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사랑하는 일이다. 아직까지 치매에 대한 적절한 치료 방법이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치매 노인을 다룬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기는 힘든 노릇. 다만『구멍 난 기억』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파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할머니는 안 계셨다. 내가 창문도 열어 두고, 문도 닫지 않아 집 안은 북극처럼 추웠다. 양탄자는 반쯤 눈으로 덮여 있었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치 않았다. 나는 덜덜 떨며 난로 가까이 다가가서 눈을 감았다. 할머니는 이제 곧 오실 거야. 잠깐 뭘 사러 가신 것뿐이야. 그다지 믿기진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믿으려고 애썼다. 할머니가 나한테 애기하지 않고 떠나는 법은 없었으니까. 그건 전혀 할머니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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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저자 : 자비에 로랑 쁘띠
1956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나 철학을 전공하였다.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교장을 지냈으며, 책 읽기를 좋아했다. 책에 대한 열정으로 1994년 두 편의 추리 소설을 써서 출간하였다. 1996년과 2009년에 《흑단 같은 콜로르벨》과 《제레미, 오늘도 무사히》로 프랑스의 아동·청소년 문학상인 소르시에르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가 되었다. 그동안 쓴 책으로《바보 같은 내 심장》 《구멍 난 기억》 《153일의 겨울》 《마에스트로》 《센베노, 아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