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내 마음은 더 아래로 흐르고 싶어 했다.
더는 내려갈 곳 없는 맨 밑바닥에 몸을 눕히고 싶어 했다.
아래로, 아래로, 물이 흐르면서 맑아지듯이
아래로, 아래로, 당산 할매 뿌리가 가늘어지면서 드디어 흙과 하나 되듯이.
1. 당산 할매에게 배우는 자연, 생명, 나눔의 조화로운 삶 이야기!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아이에게 강요한 적은 없을까. 경쟁만이 세상의 질서이고, 그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서 이겨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을까. 꿈꾸는 삶과 현실이 다르고, 배우는 것이 가치의 기준이 될 수 없는 현실에서 가치 있는 삶을 함께 꿈꾸고 그 꿈을 함께 이루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라북도 부안의 구름뫼(운산) 마을에 자리 잡은 ‘변산 공동체’, 그곳에서 사람들은 함께 땀 흘려 일하면
서 제 앞가림할 수 있고 여럿이 함께 도우면서 살 수 있는 마을을 가꾸고 있다.
《당산 할매와 나》는 대학 교수를 그만두고 농사꾼이 되어 ‘변산 공동체’를 몸소 일구고 가꾸어 온 윤구병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책이다. 변산으로 살 곳을 찾아 내려오면서 만난 당산나무(당산 할매)와의 인연과 교감을 포근하게 전해주고 있다. 언제나 찾아가면 있는 고향의 정자나무 같은 당산 할매한테서 그는 자연, 생명, 나눔의 조화로운 삶을 배운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당산 할매에게 의지하고 배우며 터득한 삶의 지혜를 담담한 독백으로 들려준다.
윤구병이 들려주는 당산 할매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자유롭고 평화로운 이야기는 화
가 이담의 아름다운 그림과 만나 깊은 울림을 더해준다. 이담은 물감으로 칠한 종이 위에 왁스를 입힌 후 긁어 내는 독특한 기법으로 당산 할매와 구름뫼 마을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사실주의 그림 속에 스며든 이담의 거친 왁스 기법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는 공동체의 삶과 이야기를 따스하게 전해준다.
2. 윤구병의 독특하고 짧은 변산 공동체 이야기윤구병은 1996년 철학교수를 그만두고 공동체 학교를 꾸려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과 글에 매진하고 있는 작가이다.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그는 《뿌리 깊은 나무》의 초대 편집장을 지낼 정도로 책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달라 철학교수로 있으면서도 어린이 책을 기획하고 펴내기도 하였다. 한국 사회의 역사와 현실을 어린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일러주는 전집형 어린이 백과사전을 만드는가 하면, 번역서가 판치던 유아 그림책에 한국 아이들의 모습과 현실을 담은 창작그림책 시대를 열었다. 그 역시 수많은 어린이 그림책 저자이다.
《어린이 마을》 《달팽이 과학동화》 《개똥이 그림책》 들을 보면 그의 사랑과 노력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어린이 동화책 세계에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고 나서 윤구병은 홀연히 산과 들과 갯벌이 있는 부
안으로 낙향, 서로 도우며 살아가고 자연 속에서 배우며 자유롭게 성장하는 울타리 ‘변산 공동체’를 일구고가꾼다.
책 가득히 펼쳐지는 것은 변산 공동체의 생활이다.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고 새것을 가지기 위해 경쟁하
는 도시의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없는, 기르며 살아가고 오래되어도 낡은 것은 없고 더욱 깊어지고 낮아지는 마을 공동체 삶이 우리 앞에 가득 펼쳐진다. 윤구병은 변산 공동체 학교가 경험하고 쌓아올린 가치와 정신을 당산 할매와 함께 아름답고 포근하게 전해준다.
3. 당산 할매가 가르쳐준 삶의 지혜윤구병은 개울가에까지 길게 그늘을 드리워주는 커다란 당산나무, 당산 할매에 얽힌 인연과 교감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산 할매는 그가 오랫동안 꿈꾸고 계획해왔던 새로운 일에 대한 후원자이자, 스승이며 위로자이다. 그에게뿐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에게 당산 할매는 나이 든 어머니이자 할머니이다.
당산 할매는 놀며, 일하며, 배우며 더불어 살아가길 원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주변으로 자연스레 모았다.
있는 듯 없는 듯 편안함을 선물하기도 하고, 더디더디 자라다 말다 하는 댕댕이덩굴과 함께 살아가기도 한다.
때로는 뛰노는 아이들의 비를 가려주는 든든한 우산이 되어주기도 하고, 상처를 아물게 해주는 자연 치료법을 일러주기도 한다. 문득 바라본 당산 할매의 젖꼭지는 스스로 제 앞가림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스스로의 아픔을 치유해가며 모든 것을 보듬어 안아주는 당산 할매는 요란스레 살아가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할매 앞에서 절집 큰절을 한 번 또 한 번 또또 한 번 올리면서 사람들은 말없이 가르쳐주는 자연의 가르침
을 가슴속 깊이 새긴다. 당산 할매의 너른 품에서 배우고 살아온 사람들은 서로 도우면서 살지 누구에게 기대어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씩씩하고, 자유롭고 떳떳하다.
“당산 할매는 우리한테 많은 걸 가르쳐 주었어요.
해님, 달님, 별님, 바람님, 비님, 땅님, 나무님, 풀님……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밤낮으로 일하는 이분들이 없으면
우리는 하루도 살 수 없어요. 이분들이 지켜 주어서 우리가 사는 거예요.
우리가 오래된 나무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오래된 나무가 우리를 대대로 보호해 왔다는 걸 잊어서는 안 돼요.”
- 《당산 할매와 나》 55쪽
4.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깊은 울림을 주는 철학 동화《당산 할매와 나》는 화가 이담의 그림과 만나 변산 공동체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펼쳐 보인다. 20년 가까이 왁스 페인트를 불에 녹여 종이에 바른 다음 철필로 긁어내기를 거듭하며 그림을 그려온 화가 이담,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허리를 비틀며 올라간 나무둥치와 뻗어나간 가지의 수많은 옹이, 거기에 달린 셀 수 없이 많은 잎사귀, 곁으로 흐르는 냇가로 스며든 실뿌리 들에서 느낀 세월의 흔적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조각가가 되고 싶었던 작가 이담은 회화를 통한 평면 작업이 왠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독특한
자신만의 화법을 만들어냈다. 평면에 기존의 재료로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하는 데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왁스를 발견하고 그것을 긁어내는 동안 평면과 입체 작업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물감으로 칠한 종이 위에 왁스를 입힌 후 긁어 내면 오래된 벽면의 느낌과도 같은 전혀 다른 질감을 자연
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는데, 《당산 할매와 나》는 그의 이런 기법을 통해 탄생한 작품이다. 이담은 할매의 아름다움과 당산 할매와 더불어 살아간 많은 새와 동물들, 계절 따라 진 꽃들과 풀들, 그리고 마치 언젠가는 있었다가 한순간 사라져버린 것 같은 마을과 사람들의 모습을 아련히 녹여내 그림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5. 작가 노경실이 본 《당산 할매와 나》《당산 할매와 나》는 우리 인생의 사계를 들려준다. 늙는다고 말할 수 없고 나이가 너무 들어 죽어간다고 말하면 더욱 어색한 자연의 순환을 보여준다.
당산 할매는 아이들의 발자국, 아픈 자의 눈물, 서러운 자의 탄식 소리, 배고픈 자의 기침방울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도망치다 잠시 쉬기 위해 뛰어드는 자의 절은 땀 냄새도 거절하지 않는다.
작가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당산 할매의 그늘 아래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깨치길
바란다. 말로 해서 오히려 속되어버리고, 가르치려다가 오히려 오해와 비난받는 걸 잘 알기에 늙고, 늙고, 늙어서 이제는 죽을 수도 없는 우리의 할매에게서 배우길 바란다.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역사책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더 이상 긴 이야기는 필요 없으므로. 대신 아이들에게 참된 삶 속의 주인공이 되어보자고 속삭인다.
그 주인공은 함께 잘살려는 사람들의 공동의 역사책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간절히 들려준다.
- 노경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