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초정리 편지』, 『스프링벅』 배유안의 신작
동무와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다는 건 얼마나 깊은 행복일까?
그러나 여기 우정을 버리고 시기를 택한 소년이 있다.
정조 이산의 동무, 정후겸의 어긋난 우정과 운명
“군데군데 혜경궁 홍씨가 흘려 놓은 붓 자국은 두 소년의 참으로
아름다울 수도 있었던 우정이 어떻게 어긋났는가를 짐작하게 해 주었다.”
- ‘작가의 말’ 중
우정을 버리고 시기猜忌를 택한 한 소년의 이야기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 세자의 아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극복하고, 성군으로 자라나 탕평책으로 정국을 안정시키고, 문예 부흥 정책으로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개혁 군주. 우리는 정조를 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조의 라이벌이었던 정후겸이라는 이름은 낯설다.
사도 세자의 동생, 화완 옹주의 양자인 정후겸은 정조의 왕위 계승을 반대하던 무리의 두뇌 역할을 하던 자다. 정조를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그는, 그러나 사실 정조 이산의 어릴 적 동무였다.
『초정리 편지』때부터 꾸준히 역사 이야기를 써온 배유안은 정조와 정후겸, 두 소년의 발자국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서 발견한다. 옹주의 양자로 궁에 들어가 세손이었던 정조의 동무가 되나, 후에 그 반대편에 서 정조의 라이벌이 된 정후겸의 기이한 인생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러나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시기와 질투로 우정을 등지고 스스로를 불행으로 가닿게 한 정후겸의 내면을 본 뒤였다. 정후겸은 왜 옛 동무였던 정조의 반대편에 섰을까. 작가는 그 실타래를 쥔 채, 250여 년 전 세자와 세손이 머물던 창경궁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정후겸의 어린 시절을 마주한 우리는, 인간 정후겸을 알아간다.
역사는 정조를 선왕으로, 정후겸을 악인으로 기록했다. 그러나 작가는 역사의 승리자인 철인 같은 정조가 아니라, 끝없이 시기하고 끝없는 욕심을 부린 정후겸의 이야기를 한다. 그에게서, 감추고 싶은 나약함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출판사 리뷰
“후겸아, 나와 함께 대궐로 가서 살자.”
옹주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대궐로 들어가 산다고? 내 인생에 대단한 변화가 연거푸 일어나고 있었다. / p.33
명석하고 글공부를 좋아했던 정후겸, 그러나 몰락한 양반가의 자식이었기에 서당도 가지 못한 채 고기잡이하는 아비를 따라 강가로 가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그러던 어느 날, 후겸은 아버지를 따라 어느 높다란 기와집에 들어선다. 그곳은 영조 임금의 딸, 화안 옹주와 남편인 부마의 집이었다. 먼 친척뻘 되는 그 집에 맡겨진 후겸은 영특함을 내보이며 옹주와 부마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병약했던 부마가 죽고, 남편을 잃은 딸을 안쓰럽게 여긴 임금은 화안 옹주를 궁궐로 불러들인다. 후겸은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지만 그것도 잠시, 옹주는 후겸을 양자로 삼겠다고 한다. 가난한 어부의 아들이 왕실 가족이 되는 순간이었다.
궁으로 들어간 후겸은 그곳에서 세손이었던 정조 이산을 만난다. 비슷한 또래라 후겸과 이산은 금세 친구가 되지만 후겸은 세손의 권위에 기가 죽기도,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영특함과 재주에 있어 한 치도 이산에게 지지 않건만,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왕통이라는 핏줄은 이산을 자신과 먼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다. 그렇게 우정과 시기심을 동시에 키워나가고 있던 중, 세자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당파 간의 권력 다툼 속에 부자간의 갈등이 더해지면서 세자에 대한 임금의 불신이 깊어지고, 궁에는 세자가 왕이 되지 못할 거라는 소문이 퍼진다. 그 순간, 후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희망이었다. 가능성. 세자가 왕이 되지 못할 가능성. 세손이 세손이 아닐 가능성. 모두의 운명이 바뀔 가능성. 마치 옹주의 집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자신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것 같은 그 희망을 느낀 것이다. 동무였던 세손의 불행 앞에 후겸은 미소를 짓는다. 하늘이 또 한 번 내 편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는 동무였던 세손을 시기하고, 세손의 불행을 밟고 위로 상승할 야심을 품는다. 왕통을 가진 자를 두고 벌이는 무모한 도전 앞에 그는 순수했던 지난날과 우정을 버린다. 그러나 싸움은 패배했고, 그는 악인이 되었다.
정후겸은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에서는 ‘본래 어려서부터 기괴하고 망측한 독물毒物’로, 대사헌 이계가 정조에게 올린 글에서는 ‘요망스럽고 반역적인 심보를 가진, 타고난 몹쓸 종자’로 기록된 채 후세에 잊히고 만다.
창경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소년의 무모한 도전과 욕망, 그리고 뼈아픈 회한
그러나 이 책은 우정이 중요하다는 식의 단순한 교훈을 주지 않는다. 당파 분쟁이 왕위 계승에도 절대적 영향을 미치던 혼란스러웠던 시기, 늘 위태롭고 술렁이던 조정과 왕실. 작가는 그 혼란 속에 놓인 한 소년의 처지를 생각한다.
누구보다 명민했던 아이, 제 자신이 믿을 수 없는 신분 상승을 겪었기에 겁 없이 더 큰 상승을 꿈꿀 수 있었던 아이,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제 것이 아니었기에 늘 불안했던 아이. 아이의 앞에는 늘 저보다 높은 곳에 있는 동무가 하나 있다. 그 동무는 저 같은 그늘도, 외로움도 없어 뵌다. 그저 반짝일 뿐이다. 아이에게 동무는 우정이자 동시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질투를 이겨내지 못한 아이는 결국 자신을 시기와 야심으로 채운다.
작가는 세밀하게 정후겸의 내면을 파고들어, 그에게 감추어진 번민과 욕심, 질투를 끄집어낸다. 꺼내어 보니,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 조금씩은 숨겨져 있던 나약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질투, 욕망, 아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 정후겸에게 고스란히 담겨져 있던 것이다. 제 모습을 보는 듯한 동질감과 부끄러움에 독자는 글을 읽는 내내 ‘독물’이자 ‘몹쓸 종자’인 정후겸을 어루만지게 된다. 선하고 완벽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와 같은 우리와 같은 그를 보듬어 안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더 강한 빛을 추구하다가 음지로 흘러가 버린 정후겸의 삶이 아닌, 한줄기 따스함을 요하는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돌이켜 보게 된다.
역사 속 인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작가,
승자와 성인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가. 배유안의 신작 『창경궁 동무』
세종 대왕의 한글 창제의 과정을 그린『초정리 편지』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받은 배유안은 역사의식과 이야기의 재미를 모두 놓치지 않는 작가로 유명하다. 신작 『창경궁 동무』에서도 작가는 당시의 붕당 정치와 사도 세자의 죽음 등 역사적 사실들을 정후겸과 정조 이산의 우정과 갈등을 이야기 하는 속에서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역사 소설은 자칫 고루한 옛이야기로만 느껴질 수 있는 역사를 이야기로 풀어내 사실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러나 역사 소설의 장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야기로 전환된 역사는 경직된 기록에서 벗어나 과거의 인물들을 재창조해 내고 그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 숨 쉬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창경궁 동무』은 이 장점들을 훌륭히 살린 책이다. 더구나 패배의 그늘 속에 머물렀던 인물을 끄집어내 평이했던 우리의 시선을 비틀어 버린 점은 기존의 역사 소설과 구별되는 이 소설만의 매력이다.
작가 소개
저자 : 배유안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지냈고, 현재는 동화와 소설을 쓰고 있다. 2005년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초정리 편지]로 ‘역사의식과 이야기의 재미가 함께 어우러진 역작’, ‘역사 동화를 한 차원 도약시켰다’는 심사위원들의 격찬을 받으며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받았다. 우리 역사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길어 올려 감동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작가는, 조선의 천재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아름다운 그림 이야기를 [10대를 위한 바람의 화원]을 통해 풀어냈다. 지은 책으로 [화룡소의 비구름]과 청소년 소설 [스프링벅] 등이 있다.
목차
지은이의 글
사도 세자의 아들
화완 옹주의 양자
여덟 살의 왕세손
우정과 질투
세자와 옹주
세자는 왕이 되지 못할 것이다
소문들
아버지와 아들
아비를 살려 주옵소서
죄인의 아들
제왕 교육
패배자
사도 세자의 아들, 개혁 군주 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