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아빠와 딸의 앙상블이 책의 주인공은 ‘하랑’이라는 이름의 여자아이와 아빠다. 하랑이라는 이름이 주는 뉘앙스처럼, 아이는 파란 눈의 인형 대신, 파란 구슬을 소중하게 여기는 꽁지머리 왈가닥 소녀이다. 사실 아빠와 딸 사이는 아빠와 아들 사이와는 다른 유대감을 가진다. 남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경쟁심 대신, 아빠와 딸은 알게 모르게 상호보완적인 매력이 있다. 어느 광고에서 시집가는 딸에게 배신이라며 눈물짓는 아빠의 모습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더욱이 하랑이의 경우, 딸이지만 아들처럼 씩씩하다. 또 아빠를 쏙 빼닮았다. 파란 구슬을 쫓을 때나 옷장 밑을 바라보는 둘의 표정은 암만 봐도 똑같다. 부전여전 아니랄까 봐 엉덩이나 씨익 웃는 표정까지 판박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빠에게 하랑이는 딸이면서 아들이기도 하다. 사랑스런 아이를 위해 무거운 옷장을 들어내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곁에서 응원하는 아이, 이 둘이 벌이는 유쾌한 해프닝은 부녀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해 준다. 이 책을 읽게 될 모든 아빠와 아이들처럼 말이다.
구슬에 담긴 아빠 마음 - 널 위해서라면 옷장 들어내는 것쯤이야!하랑이에게 파란 구슬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이다. 남들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이처럼 소중한 것이 하나씩 있다. 구슬을 신주 모시듯 하는 첫 장면에서 하랑이의 마음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구슬에는 아빠 마음도 담겨 있다. 구슬을 꺼내 주겠다고 외치는 순간, 아빠의 얼굴에 비장함이 어린다. 처음엔 옷장을 들어서 구슬을 꺼내는 일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랑이가 울기 시작하자, 아빠는 마음이 급해진다. 아이가 실망하고 속상해하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기에 아빠는 결심을 한다. 구슬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옷장을 들어서라도 찾아 주려고 하는 아빠의 사랑이 뭉클하다. 이런 든든한 사랑은 아이가 세상을 헤쳐 나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옷장 해프닝이 주는 행복한 추억 찾기구슬을 꺼내려고 아빠가 끄집어낸 옷장 물건 속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 두꺼운 겨울 이불도 있고, 아기 때 입던 옷도 있고, 또 사진첩도 있다. 아이는 어느새 구슬은 뒷전이고 새로 등장한 물건들에 관심을 보인다. 아기 때 입던 옷을 신기해하기도 하고, 아빠의 옛날 사진에 놀라워도 한다. 이처럼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소중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퍼져 나온다. 옷장을 드러낸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잃어버렸던 레고 조각이나 동전, 단추처럼 한때 소중하게 여겼던 물건들 속에 담긴 추억을 하나씩 꺼내 보며, 그때 그 시간과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들도 작가는 놓치지 않았다.
어린이책 비평가 허은순의 두 번째 그림책이 책은 동화작가이자 어린이책 비평가로 유명한 허은순이 선보이는 두 번째 그림책이다. 아동문학 사이트 ‘애기똥풀의 집’을 운영하면서 가졌던 어린이책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 그리고 지금 일하는 ‘맑은물어린이도서관’에서 만난 아이들과의 경험이 고스란히 묻어난 작품이다. 한 가지 물건에 깊이 열중하는 아이들의 특성을 잘 잡아낸 것은 물론,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아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몰입이 빠르고, 입말체에 반복 어구, 의성어·의태어가 잘 섞여 있어 읽을수록 리듬감이 넘친다. 작가 허은순의 빼어난 글 솜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임이 틀림없다.
글만큼이나 경쾌한 그림- 살아 숨쉬는 캐릭터, 과감한 구도두 인물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만큼, 그림 작가 김유대는 하랑이와 아빠 캐릭터에 많은 공을 들였다. 옛날 사진의 날렵한 모습과 달리 아빠는 배가 불룩하고 수염이 오돌토돌 나 있는 전형적인 우리 아빠들의 모습이다. 꽁지머리에 주근깨가 있는 하랑이 역시 이웃집에서 막 뛰어온 것 같다. 경쾌한 분위기를 한껏 살리는 이 두 인물의 과장된 행동들이 재미를 더한다. 더욱이 두 인물에 색을 많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발랄한 분위기는 살리면서도 붕 뜨거나 과하지 않고 안정감이 있다. 구도 역시 돋보인다. 구슬을 쫓아가는 장면이나 옷장 밑에 구슬이 들어간 장면처럼 자칫 평범하게 흘러갈 수 있을 만한 장면들이 과감한 구도로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또 마치 살아 움직이듯 굴러가는 구슬은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빠와 함께 구슬을 굴리는 마지막 장면은 깊은 여운을 주며 이야기의 완성도를 더한다.
작가 허은순의 이야기지금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믿을까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어렸을 때 말괄량이였다. 아버지는 나더러 ‘망아지 같은 계집애’라고, 엄마는 ‘선머슴아’라고 했다. 삐쩍 마른데다가 양 갈래 머리를 땋고 다니던 모습은 영락없는 삐삐였다. 정말? 정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대문이 잠겨 있어서 담장으로 올라가 뛰어내리려다 담장에 둘러쳐져 있던 꼬챙이에 하필이면 바지 끄트머리가 걸려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일. 지금도 나의 굴욕으로 기억되곤 한다. 그때 내게는 인형보다 딱지나 구슬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삐삐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나는 소심한 겁쟁이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배 목사님이 딸아이에게 구슬 찾아 준 이야기를 들려주시는데, 낯익은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삐삐였다! 삐삐는 내가 까맣게 잊었던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 놓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에서 구슬치기 대장이었던 사내아이랑 구슬 치던 일, 해가 지도록 뻥튀기 장사를 구경하다가 엄마한테 매 맞던 일…….
어릴 때의 기억은 때때로 팍팍한 인생살이에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더구나 그것이 아빠와 엄마와 함께한 기억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할 것이다. 이 책이 놀이를 잃어버린 요즘 아이들에게 삐삐와 같은 재미난 친구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아직 아이와 어떻게 놀아 주어야 할지 잘 모르는 어른들이 혹시 있다면, 더 망설이지 말자. 구슬 한 주먹만 있으면 걱정 없다. 아이들은 비싼 장난감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엄마와 함께한 시간으로 충분히 행복하다! 물질은 보상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은 결코 그럴 수 없다. 그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아빠는 제일 먼저 이불을 꺼냈어.
내가 덮고 자는 꽃무늬 이불부터
맨 아래 깔려 있던 두툼한 이불까지.
저건 너무 무거워서 우리 엄마가
아주 싫어하는 이불이야. 킥킥.
- 본문 중에서
작가 소개
저자 : 허은순
월간지 '어린이문학'을 통해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며, 오랫동안 어린이문학 사이트 ‘애기똥풀의 집’을 운영했다. 지금은 ‘맑은물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바른 우리 말 읽기책’ 시리즈 '병만이와 동만이 그리고 만만이'(전15권)를 비롯해 《까만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어요》, 《구슬이 데구루루》, 《유리 씨앗》, 《오만군데다뒤져, X를 막아라》, 《위풍당당 우리 삽사리》 등 그림책에서 읽기책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