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하루에 베 세 필을 짜는 재주 있는 처녀가 바라는 신랑감은 오직 자신처럼 재주 있는 남자. 이에 처녀의 아버지가 재주 있는 신랑감을 찾는다고 동네방네 방을 붙이자, 하루아침에 집 한 채를 거뜬히 짓는 총각, 하루아침에 벼룩 석 섬을 잡아 꿰는 총각 등 온갖 재주를 가진 총각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재주 있는 처녀는 그들의 작은 실수를 찾아내고 퇴짜를 놓는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찾아오는 이가 없자, 시집가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겠다며 산꼭대기 바위 위에서 뛰어내리려 한다.
진정한 재주, 즉 배우자를 스스로 고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처녀를 통해, 아이들에게 결혼의 조건, 더 나아가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옛이야기다.
출판사 리뷰
지난여름 천억 원대 재산가가 데릴사위를 공개 모집하여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이는 학벌, 집안, 외모 등 외적 조건을 기준으로 배우자를 맺어 주는 결혼정보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요즘,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재주 있는 처녀》는 아이들에게 결혼과 배우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다.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결혼이 너무 먼 얘기라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의 부모가 이미 결혼이란 제도 안에 있고, 아이의 존재 또한 그 안에서 탄생했다는 점에서 보면 어릴 적부터 결혼이 무엇이고, 평생 함께할 동반자란 어떤 의미이며, 더 나아가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상
《재주 있는 처녀》는 여자 주인공이 직접 신랑감을 찾는다는 점에서 다른 옛이야기와 다르다. 옛이야기에서 신랑감에 대한 결정권은 대개 여자의 아버지에게 있고, 정작 혼인 당사자인 여자는 이야기 속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재주 있는 처녀는 좋은 신랑감을 찾아 시집가라는 아버지의 말에, “저처럼 큰 재주 있는 신랑이 아니면 절대 시집 안 가요!”라며 자신의 의견을 뚜렷이 밝힌다. 또 큰 재주를 가졌다며 처녀를 찾아온 남자들에게 말만 듣고 어떻게 믿느냐며 재주를 보여 줄 것을 야무지게 요구하고, 선보인 재주를 보고도 실수는 없는지 요리조리 꼼꼼히 따져 본다. 어디 그뿐인가? 실수한 부분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지적하며 “내 신랑감으론 어림없다.”고 딱지를 놓는다. 이렇듯 재주 있는 총각들도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게 만드는 자신감과 거기서 우러나오는 당당한 표정은, 다른 이야기에 나오는 참하고 고운 여성상과 차별되는 매력을 내뿜는다. 반면 처녀의 아버지는 이야기의 주변 인물에 그친다. 재주 있는 총각한테 시집가겠다는 딸의 말에 온 고을을 샅샅이 뒤지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딸을 찾아온 총각들의 말만 믿고 당장에 딸을 시집을 보내려고 하는 등 주체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가 골라 주는 얼굴도 모르는 신랑과 백년가약을 맺어야 했던, 수없이 많은 ‘딸’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하지만 그 전달 방법은 유쾌하고 통쾌해서 우리 아이들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진짜 ‘재주’는 무엇일까?
기와집에 살며 하루아침에 뚝딱 베를 세 필이나 짜 내는 재주를 지닌 처녀는, 그야말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배우자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능력 있는 처녀가 생각하는 ‘재주 있는 총각’은 어떤 사람일까?
하루아침에 집 한 채를 거뜬히 짓는 재주를 가진 총각은 겉모습에만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처녀는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포도동 날아갈 듯 멋지게 지어진 기와집에 문기둥이 거꾸로 달린 것을 눈치 챈다. 또 석 섬이나 되는 벼룩의 코에 코뚜레를 뚫어 꿰어 놓는 재주를 가진 총각은 하찮은 미물을 소중하게 다루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주 섬세하고 정교함을 필요로 하는 고난도 재주지만, 벼룩 한 마리가 코 대신 목이 꿰인 것이 처녀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성숙한 총각들이 재주 있는 처녀의 눈 밖에 나는 것은 당연하다.
재주 있는 처녀가 마침내 제 짝을 찾게 되는 때는 ‘재주 있는 총각’을 만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난 뒤이다. 상심하여 산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처녀를 보고, 한 떠꺼머리총각이 순식간에 대나무로 소쿠리를 짜서 처녀를 받아 낸 것이다. 이 총각이 다른 총각들과 다른 점은 아무 조건 없이 처녀를 도와주었고, 성숙된 내면세계를 지녔다는 것이다.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을 관조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정신세계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이 총각이야말로 성숙한 신붓감인 재주 있는 처녀에게 딱 맞는 배필이다.
처녀의 가장 큰 재주는 무엇보다 백년해로 할 동반자를 볼 줄 아는 혜안을 겸비하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마침내 제 짝으로 삼은 것이다. 재주 있는 처녀처럼,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몇 개 국어를 구사하고, 대기업에 입사하는 ‘재주’ 말고 좋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재주’를 갖춘 아이로 키우기 위해 옛이야기의 도움을 받는 것은 어떨까?
현대적 감각의 옷을 입은 옛이야기
이 책은 대개의 옛이야기와 달리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진보적 여성상을 다룬 만큼 그림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냈다. 《가시내》, 《사씨남정기》 등에서 신선한 동양화 풍의 그림을 선보인 일러스트레이터 이수진은, 예스러운 분위기를 내면서도 현대적인 이미지를 주기 위해 판화 기법에 투명 필름을 이용하였다. 또한 절제된 색으로 인물을 단순하고도 깔끔하게 묘사하여 해학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구사하였다. 과감하고 깔끔한 구도와 절제된 색, 그리고 새로운 그림 기법은 아이들에게 그림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어린이책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김향금의 글은, 하루아침에 무언가를 해내는 과장된 재주, 그리고 재주 있는 처녀의 당당한 성정에 드러나는 해학을 잘 표현해 냈다. “아름드리나무를 우지끈뚝딱 베어설랑 톱으로 쓱싹쓱싹” 잘라 기와집을 만드는 우락부락 힘센 총각의 재주에, “내 신랑감으론 어림없어요.”라고 딱지를 놓는 처녀의 대찬 한마디는,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