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어느 날 가난한 날품팔이꾼이 그날도 품을 팔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산 모퉁이에서 키가 장대만한 무시무시한 도깨비를 만난다. 도깨비는 품판 돈 서 푼이 있는 것을 알고 그러는지, 서 푼만 꿔달라고 한다. 착한 총각은 거절하지 못하고 도깨비에게 서 푼을 빌려 준다.
다음 날, 저녁이 되자, 도깨비는 총각의 누추한 초가에 와서 돈 서 푼을 갚고 사라진다. 한데 이 정신없고 능청스런 도깨비가 날이면 날마다 돈을 갚으러 온다. 이야기 내내 도깨비는 한결같다. 변하는 것은 사람이다. 우리 겨레는 이런 도깨비 이야기 속에 도깨비 돈벼락을 통해서나마 넉넉해졌으면 하는 정직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간절한 바람을 솔직하게 담았다.
결국 이 순진한 도깨비의 엉뚱한 앙갚음 속에는 돈 좀 있게 되니, 순진한 도깨비를 저버리는 사람의 영악함을 잊지 않고 넌지시 경계하는 우리 백성들의 마음씀이 잘 담겨 있다. 옛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낸 서정오 작가의 글과 우리 민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은 홍영우 작가의 그림이 잘 어우러져 있다.
출판사 리뷰
〈온 겨레 어린이가 함께 보는 옛 이야기〉시리즈로
'겨레의 고전'으로 백년은 남을 만한 우리 옛 이야기 그림책을 담습니다
보리는 우리 겨레의 슬기와 정서를 가장 잘 담아낸 이야깃거리 열 가지를 공들여 가려 뽑아 〈온 겨레 어린이가 함께 보는 옛 이야기〉시리즈를 꾸립니다. 오랜 세월 우리 겨레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온
도깨비와 호랑이 이야기부터, 가난한 백성의 편에 설 줄 아는 부자와 원님 이야기, 다른 세상에 대한 백성의 간절한 바람이 실린 영웅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민중성이 돋보이는 재미난 옛 이야기를 서정오와 홍영우, 두
대가들의 매운 손끝으로 버무려 한 그릇에 차곡차곡 담습니다.
백성의 삶과 백성의 뜻이 온전히 담긴 옛 이야기. 그 값어치는 어떤 유산과 견주어도 처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양 없는 문화 유산은 이어 주고 이어 받는 이가 없다면 아무리 소중하고 귀한 것이라도 우리
곁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 문학, 들려주는 문학이 점점 사라져가는 지금, 옛 이야기를 가장 훌륭한 예술 형태를 빌어 책꼴에 담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먼저 산 사람들의 '삶과
생각, 슬기와 용기, 웃음과 눈물'을 즐겁게 배우고 깨치는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요.
앞으로 백 년을 대물려도 좋을 우리 겨레 옛 이야기 그림책의 '본보기', 〈온 겨레 어린이가 함께 보는 옛 이야기〉가 서정오 선생님의 글과 홍영우 선생님의 그림으로 한 권 한 권 내보이겠습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차가운 머리로 가르치는 '지식'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으로 가르치는 '진실'이다. (....) 옛 이야기는 들려주는 것만으로 이미 훌륭한 교육이다. 들려주고 들으면서 마음이
가까워지고, 이야기 속에 담긴 생각을 곱씹어 보면서 삶 속의 진실과 슬기를 더듬을 수 있다. 넓고 깊은 꿈을 마음껏 펼칠 수도 있다. 옛 이야기를 좋아하고,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아이가 나쁜 짓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서정오(《옛 이야기 들려 주기》에서)
우리 그림책 역사를 다시 쓰는 대가들의 공동 작업
그림책 역사를 살펴보면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과 클레멘트 허드, 쓰쓰이 요리코와 하야시 아키코, 요르크 슈타이너와 요르크 뮐러 들처럼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공동 작업을 통해 서로의 성취를 넘어 놀랄만한
성과를 꾸준히 내놓고 있는 예가 꽤 있습니다. 하지만 창작 그림책 역사가 길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이제, 옛 이야기 문체 혁명을 이룬 서정오 선생님과 우리 민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홍영우 선생님이 만나 우리 창작 그림책의 새 장을 열어갑니다. 서정오 선생님은 귀에 착착 붙는 말맛으로 온전한 옛
이야기의 본모습을 되살려놓았습니다. 선생님의 옛 이야기 속에는 재미와 교훈 그 두 축이 모두 튼튼하게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짜여진 형식미도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은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영우 선생님은 우리 정서가 듬뿍 묻어나는 조선화로 이야기의 숨은 뜻을 거슬리지 않게 짚어냈습니다. 어떤 구도로 무엇을 그리든 어느 것 하나 어려운 것, 거칠 것이 없습니다. 유연한 필치로 화폭을 장악해
나가는 힘을 보고 있자면 대가의 솜씨를 절로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 견주어 우열을 가를 수 없을 만큼 글과 그림은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둘은 결코 맞서지 않습니다. 제 설 자리를 정확히 아는 글과 그림은 외려 서로의 설 자리를 더 넓혀주면서
조화롭게 동행합니다. 눈과 귀가 함께 즐거운 책읽기, 흔치 않은 행운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서정오, 홍영우가 같이 만들어가는 〈온 겨레 어린이가 함께 보는 옛 이야기〉 시리즈입니다.
도깨비 덕에 부자된 농사꾼과 순진한 도깨비가 펼치는 한판 겨루기
마을 어귀 산 모퉁이를 털레털레 돌아오는데 툭, 하고 뭣이 나타났네? 키는 훌쩍 큰 것이 털은 숭숭숭 하고, 온몸은 불그죽죽, 빗자루 몽당이마냥 풀어헤친 머리에, 두 눈은 부리부리한 놈이 글쎄 제 날
언제 봤다고 능청스럽게 돈 서 푼 꿔달라네. 아, 가만 보니 이놈 도깨빌세. 요 능청스런 도깨비가 품판 돈 서 푼을 꾸어가더니, 날이면 날마다 갚으러 옵니다.
이야기 내내 도깨비는 한결같습니다. 변해 가는 것은 사람입니다. 우리 겨레는 이런 도깨비 이야기 속에, 도깨비 돈벼락을 통해서나마 넉넉해졌으면 하는 정직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간절한 바람을 솔직하게
담았습니다. 귀찮은 도깨비를 어찌 떼어낼까 궁리하다가 순진한 도깨비를 골려먹다 못해 더 큰 부를 얻고야 마는 농사꾼의 꾀를 언뜻 칭찬하는 듯도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 있다보면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결국 제가
당하고도 당한 줄 모르는 어수룩한 도깨비 쪽으로 마음이 기울지요. 결국 이 순진한 도깨비의 엉뚱한 앙갚음 이야기 속에는, 돈 좀 있게 되니 순진한 도깨비를 저버리는 사람의 영악함을 잊지 않고 넌지시 경계하는 우리
백성들의 마음씀이 잘 담겨 있습니다.
그림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반복과 대립, 점층의 원칙에 기대 단순한 얼개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서정오 선생님의 담백한 글과 홍영우 선생님의 통찰력 있는 해석과 재구성이 돋보이는 그림이 잘 어우러져,
다면적이고 중층적인 우리 도깨비의 진면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