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최근 독일어권에서 주목받는 유르그 슈비거가 쓴 28개의 짧은 이야기를 모은 책. 가만히 누워 있는 삶에 지쳐 여행을 떠나는 카펫의 이야기, 말을 하고 웃고 몸이 자라는 인형 미스의 이야기, 질경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먹을 수 없는 소의 이야기 등 간결하면서 긴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출판사 리뷰
"팔레르모에는 숫자가 아무리 커도 금방 알아맞히는 여자 아이가 살고 있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숫자부터 사용했다. 그 애는 모든 것에 숫자를 매겼다. 숫자
1은 태어날 때 도와준 간호사고, 2는 침대, 3은 엄마, 4는 불빛과 충격, 5는 공기, 6은 축축한 피부에 느껴지는 서늘함, 7은 따뜻한 수건, 8은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오토바이 소리, 9는 자기가 우는
소리, 10은 침묵 [...] 218은 친할머니, 219는 외할머니가 되었다. 아빠의 숫자는 321이었다. 그것은 아빠가 자상하게 대해야 그렇게 되고, 나쁜 아빠의 숫자는 그것보다 훨씬 뒤에 나왔다."
- 숫자소녀 (p.41) 중에서●
작품 소개유르그 슈비거가 쓴 28개의 짧은 이야기 모음.
가만히 누워 있는 삶에 지쳐 여행을 떠나는 카펫의 이야기(카펫 p.22), 말을 하고 웃고 몸이 자라는 인형 미스와 나의 이야기 (미스 p.52), 질경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먹을 수 없는 소 (질경이와
소 p.100) 이야기, 해와 달이 심심한 나머지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 (해, 달, 인간 p.133) 등은 간결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이미 한국에 《세상이 아직 어렸을 때》와 《우리가족》으로 소개된 바 있는
유르그 슈비거는 36년생의 스위스인으로서 출판작은 얼마 되지 않지만 내어 놓는 작품마다 상당한 밀도를 보여 주고 있고 그래서 꾸준히 주목받는 작가.
성인과 어린이 모두를 위해 글을 쓰는 그는 대체로 짤막짤막한 텍스트로서 일상의 세계와 언어만의 공간, 동화 및 판타지의 경계를 사색적이며 비유적으로 넘나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기이하면서도 아름답고,
짧으면서도 여운이 긴 슈비거의 이야기들은 어느 깊은 산중 선사에서 있을 법한 선(禪)문답을 연상시키고 이솝이나 카프카가 2000년대에 다시 태어난다면 썼을 법한 그런 우화(寓話)의 분위기를 풍긴다.
슈비거의 글은 또한, 로트라우트 수산네 베르너라는 삽화가의 그림없이 혼자서 존재할 수 없는 면이 있다. 로트라우트 수산네 베르너는 슈비거의 난해한 글을 자기 식으로 유쾌하게 해석하여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그림책과 이야기책의 차이는 그림이 있고 없음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라는 유리 슐레비치의 말대로라면 《바다가 어디야?》는 그림책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원래 30여 년 전 나온 슈비거의 첫 작품 《전시품》은 오로지 성인독자만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그러나 한스-요하힘 겔베르크(Beltz&Gelberg의 편집장 Chef-Redakteur)라는
의욕적인 기획자의 노력으로 이제는 어린이도 읽는 책이 되었다. 어린이 문학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는 비할 데 없이 제한되어 있던 당시로선 이 시도는 여기저기서 당황스런 반응을 불러 일으켰는데, 어느덧 "슈비거는
갈수록 점점 더 어린이 문학에 맞는다."라고 말하는 소리까지 들리게 되었다. 이는 다시 말해 '어린이도, 어른도 읽는 책으로서의 어린이 문학'에 대한 좋은 예가 된다. 그래서 명실공히 슈비거는, 끊임없이 그 지평을
넓히고 변화하는 유기체로서의 어린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바다가 어디야?》는 한번 읽고 뿌듯하게 마지막 장을 덮으면 그만인 그런 책이 아니다. 한스-요아힘 겔베르크가 말하듯, 늘 손에 아님 손 닿는 곳에 둘 수 있으면 조금씩 기분 내키는 대로 펴 읽기 좋은
책이다. 번역문학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바다가 어디야?》의 독특한 문학형식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기분좋은 충격으로 다가갈 것이다. 내러티브와 교훈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글쓰기, 짧고 발랄하면서도
감동이 있는 슈비거의 글은 특히 텍스트보다 이미지에 익숙한 10대들에게 어필할 것이다.
독일 원서는 현지에서〈2000년 가장 아름다운 책 50권 die 50 sch nsten B cher des 2000〉에 선정되었다. 2°(청-먹) 인쇄한 본문과 강렬한 바다색 바탕의 표지는 시원스런
느낌을 준다. 그림과 텍스트가 조화를 이루는 조판도 그러하다. 우리문고 판형 안에서 원서가 가진 아름다움을 존중하며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본문 소개카펫(p.22) 의자 넷에 식탁 하나. 그 밑에 카펫이 깔려 있었다. 카펫은 별로 할 일은 없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날마다 반듯하게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누워서 몇 년을 살았다. 어느 일요일 아침,
그는 갑자기 모든 것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의자와 식탁을 두고 기차역으로 가서 차표를 달라고 했다.
창구 직원이 물었다.
어디로 갈 겁니까?
로마로요. 카펫이 말했다.
창구 직원이 화물열차 표를 하나 끊어 주었다. 그게 값도 더 저렴하고 카펫에게도 잘 어울린다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카펫을 화물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또 다른 고래(p.37) 길이가 25미터에, 코끼리 열여섯 마리만큼 체격이 커서 슬픔이 자리할 곳이 넉넉하게 많은 고래 두 마리가 그렇게 하고 가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 모든 일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이 안 보이는 넓고 넓은 바다에서 일어났다.
로레(p.46) 함부르크에 로레라는 여자 아이가 살았다. 로레는 비가 오는 어느 날 오후, 피아노 레슨 가방을 든 채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다리 위에 있었다. 생각을 집중하기 위해 로레는 움직이지 않았다. 비에 젖은
난간에 기댄 채 이렇게 생각했다. 늦은 오후 시간, 난 피아노를 배우러 가는 길에 여기 이렇게 가방을 맨 채 함부르크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다리 위에 서 있다. 내 이름은 로레고, 난 이것저것 깊은 생각에 잠긴
소녀다. 로레는 다시 발걸음을 떼어놓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나중에 피아노 선생님을 만난 로레는 이렇게 말했다.
비가 내리면 몸은 젖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름은 젖지 않아요.
미스(p.63)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나도 너처럼 날씬해질 거야.
그럼 왜 먹는데?
안 먹으면 죽으니까.
죽고 싶지 않아?
응, 싫어.
왜?
왜냐하면 사는 게 더 좋으니까.
전에 한번 죽어 봤어?
아니.
그런데, 뭐.
사람은 태어나서 딱 한 번만 죽어.
사는 것도 딱 한 번만 살고?
응. 너무 조금이다, 딱 한 번이라는 것. 미스가 말했다.
저자 소개작가
유르그 슈비거(Jurg Schubiger)1936년 생 스위스 작가. 젊은 시절 프랑스와 코르시카에서 목수, 정원사, 미장이 등의 다양한 일을 했고, 대학에서 독문학, 심리학, 철학을 전공했다. 그 후 편집자와 출판업자로도 일했다. 지금은
취리히에서 상담 치료사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과작(寡作)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하나 하나의 작품이 모두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독문학도로서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해석을 시도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경력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작품 곳곳에서는 카프카의 흔적이 엿보인다. 즉, 일상의 공간을 은유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품으로 《전시품》《그 개의 이름은 하늘》《집과 논나, 테신에서의 유년기》《
원치 않았던 녹색》《우리가족》 등이 있고, 1996년 《세상이 아직 어렸을 때》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린이
로트라우트 수산네 베르너(Rotraut Susanne Berner)1948년 독일 스투트가르트에서 태어났다. 뮌헨에서 그래픽을 공부했다. 현재 하이델베르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겸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1983년 권위 있는 〈첼레스티노 피아티 일러스트레이션상〉을
수상했고, 독일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중에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수학귀신》《세상이 아직 어렸을 때》《우리가족》등의 책에서 그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옮긴이
유혜자스위스 취리히대학에서 경제학과 독일어를 전공했다. 한남대학교 외국어교육원에서 독일어 강의를 했으며 현재는 독일 문학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좀머 씨 이야기》《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오이대왕》 등 150여 권이 있다.
작가 소개
저자 : 유르크 슈비거
193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독문학, 심리학, 철학을 공부하고 많은 어린이책에 글을 썼다. <세상이 아직 어렸을 때>로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했다.
목차
방랑자 ... 9
폰테토로 간 엄지손가락은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 18
소녀와 지루함 ... 19
카펫 ... 22
바다에 갔다 ... 24
...
해, 달, 인간 ...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