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가장 달콤한 보석, 과자에 담긴 프랑스 역사의 정수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이 추천하는 책
미식 천국 프랑스를 수놓는 가장 달콤한 보석, 과자
작지만 화려한 과자 안에 담긴 프랑스 역사의 정수를 음미한다 우리는 종종 한 끼 식사보다 더 큰 비용을 들여 달콤한 디저트의 유혹에 기꺼이 빠져들곤 한다. 과자와 빵,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살기 위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은 아니다. 식탁에서도 주요리가 아니라 간식 또는 후식으로 등장하는 일종의 곁들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 매끈한 촉감과 달콤한 맛, 와삭 베어 무는 소리 등으로 오감을 자극하며 행복감을 선사한다. 과자의 핵심인 단맛을 차지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세계의 지형을 흔들고 역사를 뒤바꿔 놓았다. 설탕을 놓고 오랫동안 전쟁이 벌어졌고 노예무역이 횡행했던 것이다. 일찍부터 이러한 ‘맛’의 힘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국가 차원에서 활용해 온 나라가 프랑스이다.
실제로 가 봤든 안 가 봤든 프랑스 하면 미식가의 천국, 패션과 문화의 중심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막상 프랑스의 일상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거나 풍요로운 자연과 지방 요리의 전통이 프랑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에도 ‘미식 하면 프랑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만큼 프랑스의 미식 신화가 역사 속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케가미 이치는 과자가 바로 프랑스 미식 전략의 꽃이자 핵심이라고 보고, 프랑스 역사와 과자의 긴밀한 관계를 새롭게 포착해 낸다.
■ 문화 강국, 미식의 나라 프랑스를 이끈 과자의 힘과자는 고대부터 중세 초기까지 각종 종교 의식을 통해 발전해 왔고, 절대왕정 시기에는 궁정의 연회를 화려하게 수놓으며 귀족과 외부 세력에 왕의 권력을 과시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 십자군 원정을 통해 설탕이 전해지자 프랑스 특권층은 이내 설탕의 단맛과 힘에 중독되었고, 플랜테이션을 통한 식민지 사탕수수 재배에 열을 올리며 설탕 산업의 지배권을 놓고 영국과 ‘제2의 백년전쟁’이라고 할 만한 설탕 전쟁까지 벌인다.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독일 철학이나 이탈리아의 건축, 음악 등 무엇이든 받아들여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는데,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프랑스 과자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프랑스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과의 혼인 외교를 통해 각종 과자와 아이스크림, 초콜릿을 받아들였다. 앙리 2세와 결혼한 이탈리아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를 통해 설탕 과자, 스펀지케이크, 셔벗 등이 프랑스로 전해졌고, 루이 13세의 왕비인 스페인의 마리 테레즈를 통해 초콜릿이 전해졌다. 루이 15세의 장인인 폴란드 왕 스타니슬라스 레친스키가 바바와 마들렌을 탄생에 일조했고,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의 과자 쿠글로프(구겔호프)를 먹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이렇게 각지에서 전해진 과자들이 위베르 르보, 프랑수아 바텔, 마리 앙투안 카렘 같은 위대한 파티시에들의 손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과자로 완벽하게 재탄생해 미식 신화를 주도한 것이다.
종교 개혁 이후 프랑스에서는 가톨릭과 위그노(프로테스탄트) 사이에 극심한 대립이 있었고 두 세력 사이에 전쟁까지 벌어졌다. 낭트 칙령으로 전쟁이 종식된 후에도 프랑스는 ‘가톨릭 왕국’으로 남았고, 이것은 프랑스 과자와 미식 문화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영국, 독일 등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는 대체로 간소한 식탁을 추구하고 미식을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반면, 미식을 대식이나 탐식과 다르게 보고 식탁에서 사교를 가르치는 가톨릭 국가에서는 자연스럽게 미식 문화가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찍이 사블레 부인에서부터 그리모, 브리야사바랭 등 이름난 미식가들이 등장해 프랑스의 미식 문화를 주도해 나갈 수 있었다.
근대에 들어와 세력을 잡은 부르주아 계급은 궁정 연회와 귀족의 살롱 문화를 자신들의 방식대로 이어받아 모임을 위한 작은 과자들을 발전시켰고, 정비 사업을 통해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탈바꿈한 수도 파리는 평등한 산책자들의 도시가 되면서 각종 카페와 레스토랑이 무수히 생겨났다. 철도가 놓이면서 각지의 명물 과자들도 파리로 모여들었고 유명 파티시에의 과자점들이 부르주아의 주말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과자는 식탁 문화의 꽃으로서 프랑스를 세계적인 미식 강국으로 이끌어 갔고, 유럽 도시 문화의 중심이 된 파리에서 프랑스 과자는 한층 더 다양하고 세련되게 발전해 갈 수 있었다.
■ 달콤한 과자에 얽힌 비화들과 위대한 문학 속 과자 이야기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혁명 시기에 굶주린 민중들을 향해 “빵이 없으면 과자(브리오슈)를 먹으면 될 것 아니오?”라고 해서 공분을 샀다는 이야기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과자의 나라답게 프랑스 역사에는 이렇게 과자와 관계된 은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루이 14세의 총희 몽테스팡은 당시 인기 있던 통통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 설탕과자나 사탕 같은 과자를 먹으며 살을 찌워 왕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자녀를 일곱이나 두었다고 한다. 한편, 루이 15세의 왕비 마리 레슈친스카는 볼로방이라는 파이 만두로 총희 퐁파두르에게 향해 있는 왕의 관심을 되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막상 퐁파두르는 냉증과 불감증 때문에 왕을 만족시키기 위해 아침마다 향료를 잔뜩 넣은 초콜릿 음료를 먹어야 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다양한 과자들의 탄생에 얽힌 비화들도 곳곳에 등장한다. 파리 브레스트는 19세기에 파리 북서부 롱괴이 마을의 제과점에서 탄생했는데, 파리와 브레스트를 잇는 자전거 대회가 제과점을 통과하는 코스인 것을 기념해 자전거 바퀴 모양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타르트 타탱은 솔로뉴 지방에서 레스토랑이 딸린 호텔을 운영하던 자매가 만든 것으로, 바빠서 정신이 없던 언니가 사과 타르트를 굽는데 반죽을 깜빡하고 사과만 구운 것을 동생이 기지를 발휘해 위에 반죽을 부어 구운 다음 접시에 담을 때 뒤집어 담았다. 퀴르농스키라는 미식가가 우연히 들러 이것을 먹고 극찬하면서 파리에 알려졌다고 한다. 마들렌의 탄생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폴란드 왕 스타니슬라스 레친스키의 연회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유력하다. 연회장의 주방에서 다툼이 일어나 파티시에가 일을 내팽개치는 바람에 파이와 과일 타르트를 모두 망치게 되었는데, 어린 하인 마들렌 폴미에가 할머니에게 배운 간단한 과자를 재빨리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프랑스 과자는 모파상, 플로베르, 에밀 졸라, 프루스트 등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에서 다양한 함의를 품고 등장한다. 예컨대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에 나오는 웨딩케이크는 도시적인 장식을 조잡하게 흉내 낸 모양이 결혼 후 욕구 불만에 빠진 엠마의 모습을 상징하고, 3층으로 구성된 케이크는 엠마의 인생에 나타나는 세 번의 중요한 축하연을 상징한다. 또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과자들, 특히 마들렌과 홍차는 주인공의 추억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편 『삼총사』를 쓴 소설가 뒤마는 마지막 작품으로 750쪽에 달하는 『요리대사전』을 썼으며, 자신의 작품들이 모두 잊혀도 이것만은 끝까지 남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고 한다.
이처럼 책에는 굵직굵직한 역사의 주요 사건들 외에도 다른 역사책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이야기,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를 돋우는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 눈길과 마음길을 모두 사로잡는 맛있는 역사책 『과자로 맛보는 와삭바삭 프랑스 역사』는 역사학자 이케가미 이치가 도쿄대에서 인기리에 강의한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엮어 성인 독자부터 청소년까지 폭넓게 아우를 수 있는 교양 문화사이다. 이케가미 ㅤ이치는 마녀, 놀이, 동물 등 흥미롭고 대중적인 소재를 통해 유럽 중세사를 독특한 시각으로 연구하고 해석해 왔기 때문에 이 책에서도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식이 노련하다. 과자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저자의 애정이 매 쪽 물씬 묻어나며, 화려하고도 사랑스러운 그림이 더해져 책장을 그냥 넘길 수 없게끔 독자를 사로잡는다. 과자를 싫어하는 사람만큼이나 이 책을 좋아하지 않을 독자도 찾기 힘들 것이다. 유명한 요리사이자 미문으로 정평이 난 작가 박찬일 씨의 추천글은 한 편의 훌륭한 칼럼이라고 할 만큼 유익하고 흥미로워 책 내용을 다시금 찬찬히 곱씹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