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일흔셋 개구쟁이 할아버지가 일러주는 ‘동시’ 맛있게 먹는 법동시인 권오삼의 새 동시집 『라면 맛있게 먹는 법』이 출간되었다. 1975년 등단한 권오삼은 만년에 본격적으로 창작에 몰입하여 지금까지 『똥 찾아가세요』『진짜랑 깨』 등 여러 권의 동시집을 통해 천진하고 유쾌한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해 왔다. 2012년에는 사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동시라는 외길을 걸어온 수고와 의미를 인정받아 ‘권정생창작기금’의 수혜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학은 부단한 자기 갱신의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말의 리듬과 어감을 되살려 내고,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동시의 영역을 넓혀 가는 권오삼 시인의 행보야말로 후배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턱도 없는 꿈일지언정 일단 꿈을 꾸는 게 중요하다는 치열한 도전 정신, 몇 시간이고 놀이터에 쪼그리고 앉아 아이들 삶 속으로 다가서려는 열정, 익숙함을 거부하고 낯선 것을 향해 서슴없이 손을 내미는 자세야말로 문학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본받아야 할 삶의 비기(秘器)가 아닐까?”_권정생창작기금 심사위원 박상률, 서정홍, 박혜숙
「돌탑」「물방울 열매」 등의 동시가 초등 국정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아이들에게도 아주 친숙한 동시인 권오삼의 아홉 번째 동시집은 지금까지의 작품집 가운데서도 가장 어린이의 마음 가까이 자리한 책이라 할 수 있다. 동시인 권오삼이 말하는 라면 맛있게 먹는 법, 아니 ‘동시’를 맛있게 먹는 법에 관한 비기는 과연 무엇일까.
무용(無用)의 놀이를 닮은 가락, 심각한 표정을 잊은 노래어린아이들은 다 가졌지만 다 자란 어른들은 잃어버리고 만 수많은 것들 중에 가장 큰 것은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궁금증일 것이다. 추운 날 “움집 같은 집 안에서” 나비는 무얼 하고 있는지(「나비1」), “다른 잠자리들은 /다 조용한데” 덩치 큰 잠자리 하나가 “저 혼자만 야단”인 까닭은 무엇인지(「헬리콥터」), 다른 자음들은 다 혼자서 있는데 “ㄳ ㄵ ㄶ ㅄ ㄺ ㄻ ㄼ ㄾ ㅀ”은 왜 나란히 붙어 있는지(「한글 자음들」) 등 호기심에서 출발한 상상은 때로는 엉뚱한 해답으로, 때로는 세심한 관찰이나 다정한 배려로, 때로는 즐거운 말장난으로 매듭지어진다.
아이들의 호기심은 세상 모든 사물들에 빠짐없이 붙은 ‘이름’ 앞에서 가장 다양하게 증폭된다. “매앵매앵 맴맴맴맴 /요런 매미는 보나마나 작아도 다부진 옹골 매미 //치르르르 칠칠칠칠 /요런 매미는 보나마나 비실비실 약골 매미 //찌잉 찌잉 찌이이잉 //요런 매미는 보나마나 찡찡대기만 하는 찡골 매미”(「매미」)처럼 이름은 이름의 주인인 대상이 가진 본질을 투영하기도 하고, 우리말의 특징으로 말미암아 비슷한 범주의 사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를 때 음률이 생겨 즐겁기도 하다. 또 “잔디는, 떼 /버들피리는, 호드기 /부추는, 정구지 /억새는, 으악새 /벼는, 나락 /복숭아는, 복상”(「같은 이름」)처럼 어떤 관계를 기준으로 하는 짝이 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모여라 교실」「짝짓기」「잠.잠.잠」「약」 같은 시들이 이름을 소재로 한 ‘놀이’를 담고 있다.
놀이의 특징으로는 비일상성, 자발성, 반복성 등을 꼽을 수 있지만 그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무용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놀이는 놀이 자체가 최상의 목적이 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먹고사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 무용함으로 인해 거꾸로 가장 다양한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 혁명적인 에너지를 통해 놀이는 예술이 된다.
아이들이 다시 찾아드는 동시의 원점아동문학평론가 원종찬은 해설에서 권오삼의 동시가 기반한 시 세계를 ‘아이들이 다시 찾아드는 동시의 원점’이라 말했다. “언제나 어린이와 마주하고 있었”던 “동요 황금기”에 비해 현재의 동시는 “정작 어린이의 요구를 지나치는 안일함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위기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는 동시인 권오삼이 20세기와 21세기의 한국 동시단을 관통하면서 양쪽 모두에 남긴 뚜렷한 자취에 주목한다.
“전환기에 처하여 흔히 원로 문학인은 자기 세대의식을 넘지 못하고 창작의 긴장을 잃어버린 채 문단의 ‘얼굴마담’에 그치는 수가 적지 않다. 젊은 아동문학인이라 할지라도 익숙한 것에 매달리다 보면 동시대와 호흡하지 못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권오삼 시인은 달랐다. 새 세기에 들어와서 더욱 왕성한 활동력을 자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젊은 평단의 입에 오르내리며 발랄한 문학적 성취를 이뤄 내고 있다. 정말이지 보기 드문 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_원종찬
진정한 친구의 필요충분조건과자 봉지 중에서
제일 얄미운
봉지는
배불뚝이 과자 봉지
뜯어 보면
에계계
과자는 요만큼
배만 불룩
_「배불뚝이 과자 봉지」 전문
엄마가 나보고 공부만 하라고 한다면
나도 오늘부터 내가 좋아하는
쇠고기, 돼지고기만 먹을 거야
햄만 먹을 거야
닭볶음만 먹을 거야
돈가스만 먹을 거야
(중략)
비만 어린이가 되어
세계 어린이비만대회에 나갈 거야!
거기서 일등 할 거야!
오늘 엄마에게 대든
3학년 김지은 어린이
‘용감한 어린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_「용감한 어린이」
시인은 겉은 번지르르한데 열어 보면 속은 맹탕인 배불뚝이 과자 봉지를 향해 함께 목소리를 높여 분개해 주고, 하고 싶은 것은 놔두고 공부만 하라는 엄마에게 돈가스, 햄, 닭볶음만 먹어서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일등을 해 주겠다고 당차게 선포한 김지은 어린이에게 용감한 어린이의 ‘자격’을 인정해 준다. 낮잠, 밤잠, 늦잠, 단잠…… 이 수많은 잠 가운데서 “제일 맛 좋은 잠은 /공부 시간에 선생님 몰래 /깜빡깜빡 조는 도둑잠”(「잠.잠.잠」)이라는 것을 알아주는 친구라면 손바닥을 마주치며 깔깔 웃고 싶다. 60살 정도 나이 차는 가뿐히 뛰어넘는 진실한 친구의 ‘자격’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감각적인 색채와 귀여운 캐릭터가 주는 행복한 기분화가 윤지회는 이번 책에서 의인화된 캐릭터를 다양하게 사용하고 세련된 패턴들을 적절히 배치하며 그의 장기를 유감없이 펼쳤다. 그림 속 등장인물들을 유심히 보면 모두가 골똘히 자기의 감정에 골몰하는 풍경이다. 벗김을 당하는 양파도, 제비꽃 앞에 앉은 고양이도, 귀지를 산처럼 쓸어 놓은 귀이개도, 모기 사냥을 떠나는 아이도 저마다 진지하다. 그 한없이 귀엽고 올망졸망한 모습은 읽는 이를 단번에 무장해제시킨다. 라면과 노란 냄비처럼 하나하나의 시와 그림이 서로에게 단짝이다.
노란 양은 냄비에다가
파르르 라면 끓인 뒤
냄비 뚜껑 안쪽에다
건더기를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집어
후후 입김 불며
후루룩후루룩
먹으면 된다.
소리 내어
먹을수록
더 맛있
다.
_「라면 맛있게 먹는 법」 전문
라면을 맛있게 먹는 대단한 비결 같은 것은 없었다. 라면은 원래 맛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양념은 ‘후루룩후루룩’ 군침 넘어가는 ‘소리’와 면발처럼 늘어진 글자들이 상징하는 ‘재미’다. 첫 행의 글자에 젓가락을 척 걸어 넣고 싶은 마음을 누를 수 없다. 권오삼 동시집 『라면 맛있게 먹는 법』을 통해 ‘원래’ 맛있는 라면 맛과 같은 동시의 ‘당기는 맛’을 어린이 독자들과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