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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북 사건의 재구성
사계절 | 청소년 | 2014.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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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사계절 1318 문고 시리즈 96권. 다양한 장르와 독자층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동화와 청소년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정은숙 작가의 작품이다. 긴장감 있는 서사를 바탕으로 인간 본연의 양심과 이치를 면밀히 보여주는 그가 이번에는 ‘독서 동아리 화재 사건’을 바탕으로 특유의 정서를 극대화한다. 미제로 남은 3년 전 화재 사건을 중심으로 하지만, 이 작품은 사건보다 ‘사람’에 더욱 집중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작가는 화재 사건이 일어난 당시와 수사 과정, 그리고 열아홉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과 시점의 교차를 통해 하나하나 퍼즐 조각을 맞추어 가듯 촘촘하게 이야기를 풀어 보인다. 그러면서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여러 사람의 인생에 일으키는 파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일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그로 인해 사람의 태도와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는지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주변인으로 묘사되지 않으면서 나름의 연민과 개성을 획득한다는 점 또한 이 책의 미덕이다. 작가는 예상치 못한 갈등에 처한 아이들의 모습을 올곧게 담아내면서 진심 어린 응원 또한 잃지 않는다. 추리 기법의 흥미진진한 서사를 통해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상처를 치유해 가는 보편적인 주제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출판사 리뷰

3년 전 죽은 경하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우리 어른이 되기 위해서라도 이제 만나야 하지 않을까?
수능이 끝난 토요일 오후 3시, 기림중학교 은행나무 앞.”


독서 동아리 ‘정글북’의 화재 사고로 경하가 세상을 떠난 뒤, 정글북 아이들은 한순간도 마음 편히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의문의 편지를 받은 연수, 기준, 도엽, 소정, 율미는 3년 전 그날을 떠올리며 자기 안의 숨겨진 위선과 비밀, 진실 앞에 다시 마주 선다. 누가 이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걸까. 가혹한 장난을 왜 시작한 걸까. 그리고 그날, 정글북에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야기는 화재 사건이 일어난 당시와 수사 과정, 그리고 열아홉 살이 된 현재로 구성된다. 정글북 사건에 의문을 가진 엄 형사가 살아남은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아이들 각자의 이야기를 시점에 따라 차분히 서술해 나간다. 섬세한 심리 묘사와 치밀한 구성으로 한 조각 한 조각 퍼즐을 맞춰 나가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완성되는 하나의 큰 그림은 독자에게 상상 이상의 묵직한 감동을 준다. 2014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당선작.

‘사람’을 향한 흥미롭고 따뜻한 추리 소설, 『정글북 사건의 재구성』

다양한 장르와 독자층을 넘나드는 이야기로 동화와 청소년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정은숙 작가의 『정글북 사건의 재구성』이 출간되었다. 정은숙 작가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단어는 ‘추리’이지만, 그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진실’, 더 나아가 ‘인간애’에 가깝다. 긴장감 있는 서사를 바탕으로 인간 본연의 양심과 이치를 면밀히 보여주는 그가 이번에는 ‘독서 동아리 화재 사건’을 바탕으로 특유의 정서를 극대화한다. 미제로 남은 3년 전 화재 사건을 중심으로 하지만, 이 작품은 사건보다 ‘사람’에 더욱 집중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누가 범인인지, 단순히 사건을 해결하는 데 급급해하기보다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답을 찾아가며 살아남은 아이들의 삶에 바짝 다가서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날 정글북에 그런 일이 벌어진 까닭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왜’라는 질문은 연수, 기준, 도엽, 소정, 율미 각자에게 돌아가 ‘나’라는 세계를 둘러싼 모든 믿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친구를 잃고도 멀쩡히 살아가는 ‘나’, 혼자 서둘러 불길을 빠져나온 ‘나’, 죄책감과 이기심 사이에서 괴로운 ‘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위선과 비밀을 간직한 ‘나’……. 엄 형사의 조사를 통해 정글북 화재 사건이 재구성되면서 아이들 역시 자신의 지나온 삶을 재구성해 가고, 아닌 척, 못 본 척, 모르는 척 피하고 싶었던 나의 ‘진실’에 한 발 가까이 다가선다.
작가는 화재 사건이 일어난 당시와 수사 과정, 그리고 열아홉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과 시점의 교차를 통해 하나하나 퍼즐 조각을 맞추어 가듯 촘촘하게 이야기를 풀어 보인다. 그러면서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이 여러 사람의 인생에 일으키는 파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일상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그로 인해 사람의 태도와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는지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주변인으로 묘사되지 않으면서 나름의 연민과 개성을 획득한다는 점 또한 이 책의 미덕이다. 작가는 예상치 못한 갈등에 처한 아이들의 모습을 올곧게 담아내면서 진심 어린 응원 또한 잃지 않는다. 추리 기법의 흥미진진한 서사를 통해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면서도 상처를 치유해 가는 보편적인 주제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연기로 가득 찬 어둠을 뚫고, 그 끝에 보이는 새로운 빛을 찾아가는 작품 『정글북 사건의 재구성』. 청소년문학의 또 다른 가능성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 든든한 만족감과 반가움을 전해 줄 것이다.

그날, 정글북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여느 날과 다름없던 어느 가을날 오후, 기림중학교 독서 동아리 ‘정글북’ 활동을 했던 연수, 기준, 도엽, 소정, 율미에게 의문의 편지가 한 통씩 도착한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하다. 수능이 끝난 토요일 오후 3시에 기림중학교에서 다시 만나자는 것. 발신인 란에 쓰인 ‘나’를 보는 다섯 아이의 눈빛이 흔들린다.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짐작했고, 시간이 꽤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불안과 두려움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연수, 기준, 도엽, 소정, 율미는 연기로 가득 찬 어둠 속에서 출구를 찾아 헤매던 3년 전 그날을 다시 떠올린다.
그날, 정글북 아이들은 학교 축제인 ‘은행제’에 전시할 시화전 준비를 위해 동아리방에 모였다. 중3 전체가 백 명이 안 되는 시골이지만 동아리는 열 개가 넘을 만큼 밝고 활발한 분위기의 학교다. 정글북의 원년 멤버는 경하, 연수, 기준, 소정, 율미, 지유였는데 2학년 겨울방학 때 전학 간 지유의 빈자리를 도엽이 채웠다.
무슨 일이든 함께하는 건 정글북의 전통이고, 그래서 토요일인데도 불만 없이 다 같이 모였다. 시화전의 전시판을 꾸밀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나무판에 스티로폼을 붙인 뒤 지푸라기와 낙엽으로 가을 분위기를 내고, 화선지에 쓴 네 편의 시를 붙이면 완성. 10월 하순이라 기온이 쌀쌀했지만 접착제를 쓰느라 창문을 열어 놓았다. 한창 화기애애하게 전시판을 꾸미던 중 동아리방으로 불붙은 폭죽이 날아들었다. 아이들은 불을 끌 생각은커녕, 장난처럼 날아든 작은 폭죽을 무심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그저 누군가의 장난이겠거니 생각했다. 메롱 놀랐지, 하고 얼굴을 쏙 내밀 것만 같았지만 창밖에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은행나무뿐.

“불을 끌 생각도 않고 그러고 있었다고? 참 나, 이해가 안 가네. 내가 어렸을 땐 봄가을이면 이름표 옆에 불조심 리본을 하나씩 달고 다녔어. ‘불, 불, 불조심’이라고 쓰인 것도 있었고, ‘꺼진 불도 다시 보자!’도 있었지. 하얀 바탕에 빨간 글씨. 교문 앞에서 그 리본을 안 단 아이들은 잡혀서 벌을 받기도 했어. 그럴 만큼 불조심을 강조하던 시대였어. 그러고 보니 작은 성냥불이 산불로 번지는 영화를 본 기억도 나.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를 찍으려고 일부러 산불을 내지는 않았을 테니 그야말로 카메라 조작이었을 텐데, 그때는 영화가 어찌나 무섭던지 정전됐을 때 촛불만 켜도 벌벌 떨었어. 그런데 너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119 대원들을 너무 믿는 거니, 아니면 대범한 애들만 모인 거야?” - 본문 21-22쪽

다섯 아이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는 동안 엄 형사가 반복한 물음이 바로 이것이었다. 대체 왜 아무도 불을 끌 생각을 안 했느냐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불이 점점 번지는데 아이들은 왜 그리 태평했을까. 어쩌면 ‘불행’, ‘사고’, ‘사건’ 같은 단어는 열여섯 인생에 아직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러나 장난처럼 날아든 폭죽은 걷잡을 수 없이 큰불로 번졌고, 경하가 죽었다.
친구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연수, 기준, 도엽, 소정, 율미는 차례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엄 형사는 제법 부드러운 말투로 아이들을 대하면서도 특유의 촉을 놓지 않았다. ‘범인’이 누구인지 찾아내기 위해 엄 형사는 치열하게 질문을 해댔고, 그러는 동안 아이들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점점 커졌다.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끝없는 자기 검열이 필요했고, 그것은 결국 ‘혹시’라는 물음과 함께 서로를 향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자유로울 수 없는 건 율미와 소정의 관계였다. 엄 형사는 폭죽이 날아든 당시 동아리방에 없었던 율미에게 특히 많은 관심을 보였다. 소정이 P읍에 전학 오기 전까지 율미는 이 마을 하나뿐인 ‘공주’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건 아니지만 구김 없이 밝은 성격에 공부 잘하고 글도 잘 써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P읍에 사는 모든 이가 율미를 아꼈다. 그러나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 실력, 부모의 든든한 경제력, 귀티 나는 미모, 겸손한 성품 등 태생적으로 모든 조건이 우월한 소정이 전학 오면서 P읍의 공주는 둘이 되었다. 율미와 소정은 주변의 우려를 보기 좋게 날리듯 사이좋게 지냈지만 언젠가부터 서로를 멀리했다. 게다가 은행제 시화전을 준비하면서 둘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학교 선생님들에게 들었더니 소정이가 오기 전까지 율미가 학년 톱이었다고 하셨어. 게다가 율미는 승부욕도 있는 아이라더군. 그런 아이가 갑자기 나타난 소정이에게 톱 자리를 내준 거야. 맞지? 이번 시화전 때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비슷한 시를 썼어. 그렇지만 소정이가 자신이 먼저 시를 썼다고 항의했고 결국 소정이의 시가 뽑혔어. 율미 입장에선 자기가 쓴 시를 못 내게 됐는데 억울하지 않았을까?”
엄 형사의 질문이 곤혹스러워 기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소정 때문은 아니라고 했지만 율미의 속내까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날 율미의 얼굴은 어두웠다. 연수도 힐끔거리며 율미를 살폈고, 도엽이도 농담을 뱉으면서 율미를 의식하는 눈치였다. - 본문 91~92쪽
하지만 경하의 죽음 앞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게 비단 율미와 소정뿐이랴. 연수와 기준과 도엽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혼자만의 비밀을 품고 있었다.
연수는 경하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였지만 마냥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둘은 별것 아닌 일로 자주 다퉜다. 불이 난 그날도 연수는 ‘생쇼’만 하고 불을 못 끈다고 놀려대는 경하와 도엽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럼 어디 직접 해 봐, 불 속에서 고생 좀 해 보라고’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러나 연수가 경하에게 품은 악의는 거기까지였다. 정말로 거기서 끝이었는데, 경하는 목숨을 잃었다.
기준은 소화기를 가지러 나오면서 교실 문을 닫을까 말까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닫고 나왔다. 소화기로 금방 불을 끌 거라 생각했고, 선생님 모르게 아이들끼리 알아서 처리하려는 생각이었다. 동아리 리더인 기준에게는 선생님이 제일 신경 쓰였다. 가뿐하게 소화기를 집어 들고 교실로 향하던 기준은 불현듯 나무판에 붙인 스티로폼이 떠올랐다. 이 정도 소화기로는 어림없음을 직감한 순간, 기준은 더 이상 걸음을 내디딜 수 없었다. 그저 공포에 질려 얼어붙어 서 있었다.
공포에 질려 있기는 도엽도 마찬가지였다. 한순간 교실에 가득 찬 연기로 숨도 쉬기 힘들었다. 사실 도엽에게 불은 전혀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중국집 주방에는 언제나 높디높은 불길이 치솟았으니까. 그런데 우스울 정도로 볼품없던 작은 불꽃이 순식간에 번져 교실을 덮치자 도엽은 너무도 두려워졌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기를 쓰고 교실을 빠져나와 숨을 내쉬고 정신 차릴 즈음, 도엽의 머릿속이 쿵 울렸다. 발목을 다쳐 목발 없이 걷지 못하는 경하가 교실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챈 것이다.

“폭죽이 들어왔을 때 도엽이는 무슨 생각을 했니? 이상하지 않았어?”
이상한 일이 한두 가진가? 어디선가 폭죽이 날아왔고, 그 시시한 폭죽 때문에 불이 났고, 또 그 때문에 경하가 죽었다. 이상한 일투성인데 그중에 또 뭐가 이상하다고 묻는 거지?
“그날 운동장에서는 사회인 야구 시합이 열렸어요. 구교사 신교사 합해서 오십여 명의 학생들이 축제 준비 때문에 학교에 나왔고요. 그중에 사이코패스가 있으면 어떡하죠? 그중에 연쇄 살인범이 있으면 어떡하죠? 내 눈엔 다 이상하고 모두 범인 같아요. 그런데요, 범인 잡는 건 형사님이 해야 할 일이잖아요. 나한테 꼬치꼬치 물을 게 아니라 당장 범인 잡으라고요.”
덩치에 맞지 않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도엽은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엄 형사는 뒤쫓아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도엽과 엄 형사의 마지막이었다. - 본문 102~103쪽

결국 정글북 화재 사건은 범인을 찾아내지 못한 채로 수사가 일단락되었다. 이는 정글북 아이들과 엄 형사가 다시 만날 일이 없다는 의미였고, 아이들 서로에게도 ‘마지막’을 뜻했다. 연수, 기준, 도엽, 소정, 율미 누구 할 것 없이 아이들 모두가 겁에 잔뜩 질린 채, 서로에게서 멀어지려고 애썼다.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하는 공감과 위로마저 감히 용기 낼 수 없는 열여섯……. 정글북 아이들은 그저 한시라도 빨리 화재 사건으로부터, 말 못할 비밀과 위선과 자책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정글북 아이들은 스무 살을 한 해 앞둔 ‘열아홉’이 되었다. 도엽은 산골 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농사를 배우며 지낸다. 학교를 때려치우고 치킨집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토바이의 매력에 흠뻑 빠진 연수와 달리 기준은 그저 그런 성적으로 고만고만한 대학교를 생각하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국제고에서 미국 대학입학시험을 준비 중인 소정은 ‘우등한’ 생활을 계속해 나가고, 율미는 학교에 병결 신청을 하고 이모가 사는 자그마한 섬에 내려가 지내고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서서히 그날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지던 어느 날, 정글북 아이들 앞으로 ‘나’라는 이름의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나’는 누구일까? 아니, 그게 누구든 아이들에겐 이제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더는 미루고, 감출 수 없는 하나의 사실,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정글북 아이들은 저마다 오래도록 숨겨온 진실을 하나씩 품고, 편지에 적힌 그곳으로 향한다. 추연수, 백기준, 진소정, 이도엽, 최율미, 신경하. 진심으로 그립고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나’를 찾기 위해.

어디까지 걸어왔고 어디로 나아가는지, 삶의 좌표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살아가는 동안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중 대부분은 ‘기억’과 관련해 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불행과 불안의 나날, 악몽과도 같은 사건,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일들……. 우리는 그러한 기억들을 무의식 속에 구겨 넣고 잊기 위해 애를 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본능적으로 인간은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데에 능통해서 잊고자 한 것들 대부분은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완전히 사라지는 기억이라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별일 없이 살아가다 문득, 어느 순간에 어떤 소식을 듣고 누군가가 떠오르거나 지난날의 장면이 뇌리를 스치기도 한다. 한순간 마음이 먹먹해져 발걸음을 멈추게 되고, 불현듯 전화를 걸어 그리운 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기억은, 어떻게든 우리 안에 살아남아 일상의 순간순간 예고 없이 우리를 공격해 온다.
결국 그러한 기억들은 자기 자신을 향한 하나의 메시지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이자, 비겁해지고 움츠러드는 마음을 다잡는 양심의 바로미터인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정글북 사건의 재구성』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찬 ‘십대의 시간’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책 속에 등장하는 정글북 화재 사건은 비극적인 현실을 비추는 듯 보이고, 아이들은 그때 그 기억으로부터 달아나려고 끝없이 뒷걸음친다. 그러나 아이들은 기억과 진실 앞에 용기 있게 마주 서면서 ‘나’라는 존재를 다시 믿어 나간다. 3년이 지나 다시 함께 모인 정글북 아이들의 모습에 더없이 진한 울림이 전해져 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 미래는 없는 것처럼, 정글북 아이들이 겪어 나간 모든 순간은 존재가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경험의 연속이다. 그 경험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삶의 좌표를 새로이 들여다보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비겁하게는 살지 말자고,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자고 말이다.

“불을 끌 생각도 않고 그러고 있었다고? 참 나, 이해가 안 가네. 내가 어렸을 땐 봄가을이면 이름표 옆에 불조심 리본을 하나씩 달고 다녔어. ‘불, 불, 불조심’이라고 쓰인 것도 있었고, ‘꺼진 불도 다시 보자!’도 있었지. 하얀 바탕에 빨간 글씨. 교문 앞에서 그 리본을 안 단 아이들은 잡혀서 벌을 받기도 했어. 그럴 만큼 불조심을 강조하던 시대였어. 그러고 보니 작은 성냥불이 산불로 번지는 영화를 본 기억도 나.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를 찍으려고 일부러 산불을 내지는 않았을 테니 그야말로 카메라 조작이었을 텐데, 그때는 영화가 어찌나 무섭던지 정전됐을 때 촛불만 켜도 벌벌 떨었어. 그런데 너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119 대원들을 너무 믿는 거니, 아니면 대범한 애들만 모인 거야?”

“학교 선생님들에게 들었더니 소정이가 오기 전까지 율미가 학년 톱이었다고 하셨어. 게다가 율미는 승부욕도 있는 아이라더군. 그런 아이가 갑자기 나타난 소정이에게 톱 자리를 내준 거야. 맞지? 이번 시화전 때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비슷한 시를 썼어. 그렇지만 소정이가 자신이 먼저 시를 썼다고 항의했고 결국 소정이의 시가 뽑혔어. 율미 입장에선 자기가 쓴 시를 못 내게 됐는데 억울하지 않았을까?”
엄 형사의 질문이 곤혹스러워 기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소정 때문은 아니라고 했지만 율미의 속내까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날 율미의 얼굴은 어두웠다. 연수도 힐끔거리며 율미를 살폈고, 도엽이도 농담을 뱉으면서 율미를 의식하는 눈치였다.

“폭죽이 들어왔을 때 도엽이는 무슨 생각을 했니? 이상하지 않았어?”
이상한 일이 한두 가진가? 어디선가 폭죽이 날아왔고, 그 시시한 폭죽 때문에 불이 났고, 또 그 때문에 경하가 죽었다. 이상한 일투성인데 그중에 또 뭐가 이상하다고 묻는 거지?
“그날 운동장에서는 사회인 야구 시합이 열렸어요. 구교사 신교사 합해서 오십여 명의 학생들이 축제 준비 때문에 학교에 나왔고요. 그중에 사이코패스가 있으면 어떡하죠? 그중에 연쇄 살인범이 있으면 어떡하죠? 내 눈엔 다 이상하고 모두 범인 같아요. 그런데요, 범인 잡는 건 형사님이 해야 할 일이잖아요. 나한테 꼬치꼬치 물을 게 아니라 당장 범인 잡으라고요.”
덩치에 맞지 않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도엽은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엄 형사는 뒤쫓아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도엽과 엄 형사의 마지막이었다.

  작가 소개

저자 : 정은숙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동화 「슈퍼맨과 스파이더맨이 싸운다면」으로 제4회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07년 동화 「빰빠라밤! 우리 동네 스타 탄생」으로 제1회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정글북 사건의 재구성』, 청소년소설집 『정범기 추락 사건』 『용기 없는 일주일』, 동화 『명탐견 오드리』 『댕기머리 탐정 김영서』 등이 있다.

  목차

1부

2부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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