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달려라, 큐피!”하얀 털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빨리, 호랑이처럼 용맹하게.
비실비실 꼬마 개가 용감한 개로 자라난 진취적 성장담이자
겁쟁이 개에서 마을의 대장으로 우뚝 선 호쾌한 영웅담이자
동시에 개들의 세상, 동물의 세상을 가감 없이 그린 동물 모험담.
인간의 오랜 친구이자 어린이의 특별한 친구인 개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옆의 동물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귀한 동화.
■ 쿵, 투다다닥! 달도 없는 캄캄한 밤,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한 개가 방 안에서 쫓겨난다.
개의 이름은 큐피,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안방에서 지내던 개다.
“컹컹컹!” 꾸짖듯 짖어대는 동네 개들, 시커먼 아가리를 쩍 벌린 위압적인 개집, ‘찌찌찍!’ 째질 듯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적, 난생처음 대하는 낯선 환경에 큐피의 어깨는 한없이 움츠러든다. 자꾸 숨고만 싶고 어떻게든 도망치고만 싶다. 서러워서, 두려워서, 소리 죽여 ‘깨에-개앵’ 울던 큐피는 결국 쓰러지고, 큐피의 머릿속에는 행복했던 시간들이 아른아른 떠오른다. 어렴풋한 엄마 얼굴, 주인집 딸, 밥을 챙겨 주던 아저씨, 아주머니…….
한참 뒤 깨어난 큐피에게 마당의 똥개 바둑이는 선심 쓰듯 개의 삶에 대해 일장연설을 한다. 이제 방 안에서 자라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으니 앞으로 한 마리의 개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그 삶 또한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니 열심히 노력하라고.
저 지저분한 똥개가 자기처럼 방 안에서 살던 개라니? 게다가 다시는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니……. 큐피는 깊이 절망한다.
그래도 다음날엔 새로운 기운이 솟는 법, 아침이 되자 제법 기운을 되찾은 큐피는 호기롭게 바둑이를 따라 나서고, 그러나 이번에도 동네 개들에게 물어 뜯겨 만신창이가 되고 만다. 싸움에 필요한 어떤 지식도, 기술도 없으니 당연히 사방에서 덮쳐 오는 사나운 이빨과 발톱에 고스란히 당하고 만 것이다.
그때부터 큐피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큐피는 물어뜯기, 할퀴기, 때리기, 누르기, 발차기 같은 싸움의 기본 기술을 비롯하여 순찰하기, 집 지키기 같은 생활 요령까지 개가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배워 나간다. 놀랍게도 큐피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깨친다. 번뜩이는 눈빛과 단호한 몸짓으로 주위를 호령하는 듯한 자세를 갖춘 큐피에게서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드디어 결전의 그날, 큐피는 새로 온 흰둥이를 괴롭히는 쫑의 패거리와 붙는다.
앞발을 들고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는 큐피 앞에 쫑 패거리들은 허겁지겁 도망치기 바쁘다.
■ 위엄 있게 당당히 개들 사이를 누비는 큐피불과 넉 달 전에 아늑한 잠자리에서 쫓겨나 공포에 떨던 어린 개,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 개가 지금 동네 개들의 새로운 지도자가 되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닥뜨린 현실에 한없이 무너져 내렸지만 굳은 의지로 그 시련을 이기고 눈부신 성장을 이뤄 낸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약하고 겁 많은 아이에게 힘을 주는 한 편의 성장 이야기이자 동시에 절치부심 연마하여 스승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지니게 되는 무협 영웅담으로도 재미있게 읽힌다. 동네의 무법자 개를 물리치는 씩씩한 모습은 바로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라 할 것이다.
그 과정은 한편의 무협지처럼 호방하고 경쾌하며, 드물게 만나는 어린이용 활극을 읽는 듯 신선하다. 그래서 무방비로 내동댕이쳐진 큐피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응원하다가 담담히 떨치고 일어난 큐피에게 절로 박수를 보내게 된다.
또한 이 이야기는 동물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게 해 주는 동물 모험담이기도 하다. 인간과 개의 이야기가 아니라 철저히 개들의 세상을 다룬. 그 세상에는 선악이나 가치판단 대신 주어진 운명과 본능에 따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명이 존재할 뿐이다. 절망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그 치열한 생명력을 대하다 보면 왠지 숙연해지기도 한다.
묘하게도 그 개들의 세상은 인간의 세상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면서 우리 옆에서 인간의 친구로 살아가는 동물에게로 전과는 다른 시선을 돌리게 한다. 동물로 태어나 사람의 친구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람과 동물이 ‘더불어 산다’는 것은 어때야 할까?
■ 깊은 사색과 정성으로 드러낸 다채로운 감수성 우리나라 대표 일러스트레이터로 손꼽히며, 다양한 그림 세계를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림 작가 한병호는 특히 공을 들인 석판화로 큐피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그 변화무쌍한 이야기를 실감나게 묘사한다.
캄캄한 밤의 어둠 속에 흔들리는 나무에서는 갑자기 던져진 어린 개의 두려움이 그대로 읽히고, 직선과 곡선과 뾰족뾰족 추상적인 기호들에서는 나락으로 떨어진 큐피의 절망과 희망이 마음을 파고든다. 번뜩이는 눈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사나운 장면은 매섭게, 힘차게 뛰어가는 장면은 경쾌하게, 그림이 이야기를 확장시키며 상상력을 뻗어나가게 한다. 특히 색 구현에 제한이 있는 석판화임에도 초록, 노랑, 빨강, 하늘색 등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맑으면서도 화려하게 다양한 색상을 펼쳐 보인다.
큐피는 작가의 어린 시절 둘도 없는 친구로, 여기 나온 이야기는 거의 큐피와 함께 생활하며 직접 겪은 이야기를 써내려간 것이다. 실제로 스피츠는 겁이 많기도 하지만 아주 활발하고 용감하며 민첩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함께 밥 먹고 함께 잠자고 함께 뛰어놀던 어린 날의 친구에게 바치는 책인 동시에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책이며, 나아가 우리에게 동물을 이해하고 사랑하자고 호소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