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7년째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교사 시인 박일환의 청소년 시집이다. 학교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교사로서의 자기반성을 담은 시들을 수록했다. 연작 형태를 띠고 있는 「찔리십니까?」와 가나다 순으로 획일화된 학생들의 번호 매기기를 비꼰 「하파타 순」, 학교마다 내세우고 있는 교훈의 허위성을 꼬집은 「교훈 뒤집기」 같은 작품을 통해 박일환 시인은 학교가 결코 학생들에게 우호적인 공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한편 이 시집에는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은 시편들도 실려 있다. 특히 IMF 체제 이후 왜곡된 사회시스템과 붕괴된 가정,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그 밖에도 청소년기에 가장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 이성교제와 성(性)에 대한 시편들은 너무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게 접근하면서도 청소년들의 심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출판사 리뷰
청소년의 삶과 정서를 담은 ‘청소년시’
청소년들이 시를 사랑하고 즐기기를...
박성우 시인이 2010년에 처음으로 『난 빨강』(창비)이라는 제목의 청소년시집을 낸 이후 안오일, 김장근 등 몇 명의 시인들이 청소년시집을 펴냈다. ‘청소년소설’에 비해 ‘청소년시’라는 명칭이 아직 낯선 데다 출판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지는 않지만, 꾸준히 목록을 더해 가고 있는 중이다. 청소년이라는 집단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그들만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이 ‘청소년시’라는 장르의 형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어교과서를 통해 시를 접하고 배우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교과서에 실린 시들이 자신들의 생활과 동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시에 대한 친근함을 느끼기보다는 문제풀이용 텍스트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시를 사랑하고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과 정서를 시로 담아내려는 시도가 더욱 많아질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교사 생활을 하는 시인이 많으므로 그들이 이러한 작업을 담당해 준다면 ‘청소년시’라는 장르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27년째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 시인
학교와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과 교사로서의 자기반성을 담은 시
박일환 시인은 27년째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교사 시인이다. 따라서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청소년들을 접하는 동안, 자연스레 그들의 일상과 거기서 비롯되는 다양한 형태의 생각과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한 어울림과 관찰이 청소년시를 쓸 수 있도록 하는 밑받침이 되었으며, 시에 구체성과 생동감을 불어넣는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시로 형상화하는 데 큰 장점을 발휘하고 있다.
박일환 시인은 교사이면서도 학교에 대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아 보인다. 모든 제도는 그 자체로 억압을 내재하고 있으며, 학교 역시 그러한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가로부터 교육부-교육청-학교로 이어지는 위계화된 질서의 말단에 위치하는 교사는 국가가 요구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전파자 역할을 부여받는다. 아울러 통제와 질서를 우선으로 삼는 것이 학교의 오래된 전통이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그 틀을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교사 역시 상급기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통제의 대상이지만, 교사보다도 하위에 있는 학생들이 감내해야 하는 억압의 강도는 훨씬 강력하다. 그러한 학교 구조에 대한 비판이 여러 작품에 줄곧 등장한다. 어쩌면 박일환 시인은 아이들을 억압하는 주체로서의 학교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교사라는 이름으로 그러한 억압에 동참한 자로서의 자기반성을 고백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연작 형태를 띠고 있는 「찔리십니까?」와 가나다 순으로 획일화된 학생들의 번호 매기기를 비꼰 「하파타 순」, 학교마다 내세우고 있는 교훈의 허위성을 꼬집은 「교훈 뒤집기」 같은 작품을 통해 박일환 시인은 학교가 결코 학생들에게 우호적인 공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준다. 나아가 학생들이 그러한 허위에 대해 주체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것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를 보자.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하지만 우린 날개가 없잖아요
압수해 간 날개부터 돌려주고 말하세요
-「날개의 행방」 전문
꿈을 앗아간 학교와 어른들을 향한 청소년들의 항변을 대신 들려주고 있는 이 시는 청소년들이 자기 삶의 주체로 나설 수 없는 현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기성세대의 반성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표제시인 「학교는 입이 크다」에서 학교에 대해 ‘너무 커서 말이 안 통한다’라고 하는 진단 역시 맥락을 지니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시집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교사와 어른들이 함께 읽으면 좋을 텍스트이다.
한편 이 시집에는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을 담은 시편들도 실려 있다. 특히 IMF 체제 이후 왜곡된 사회시스템과 붕괴된 가정,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체르니 30번」, 「슬픈 ㄹ」 , 「김밥천국」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며, 청소년 알바의 실태를 담은 「웃기는 짬뽕」, 「좋아할 수 없는 이유」 등도 같은 맥락에 놓일 수 있는 작품이다.
학교 안의 소소한 일상과 청소년 특유의 발랄한 모습,
청소년들의 고민과 심리를 반영한 청소년시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시들이 현실 비판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토리 교실」, 「선생님은 순진해」, 「새들의 교실」, 「무릎담요」, 「책보다 거울」 같은 시들은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과 거기서 비롯되는 청소년 특유의 발랄한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청소년기에 가장 많은 고민을 안겨주는 이성교제와 성(性)에 대한 시편들은 너무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게 접근하면서도 청소년들의 심리를 잘 반영하고 있다. 「좋아하는 마음」, 「나도 변태일까?」, 「조건반사」, 「돌직구」 같은 시편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밖에도 이 시집에는 집에서 부모와 겪는 갈등(「하필이면」), 친구들과의 관계(「의리에 대해」), 외모에 대한 고민(「바오밥나무」, 「키 작은 향나무」),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뇌(「어느 날의 일기」) 등 청소년들이 대면하는 모습들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시집에서 주목해 보고 싶은 시는 맨 마지막에 실린 「열일곱 나의 친구에게」이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워야 할 시기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단체로 수장시킨 세월호 참사는 비극이라는 말로는 감당이 안 되는 크나큰 슬픔을 몰고 온 사건이자 우리 사회의 부패와 허약함을 그대로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시인은 차가운 바다 속에서 숨져간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체제에 순응하게끔 만든 기성세대를 대신해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참회의 마음을 전달하고 있다. 슬픔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끝내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시인의 언어가 어린 넋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시집 뒤편에는 해설 대신 시인이 직접 쓴 「내가 청소년시를 쓰는 이유」가 실려 있다. 청소년시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갈무리한 내용으로, 일부 대목을 소개한다.
“2010년에 박성우 시인이 쓴 『난 빨강』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만나게 됐습니다. ‘우리 10대들을 위한 첫 번째 청소년시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청소년들을 가장 많이 만나고 청소년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있던 교사 시인이 아니라 일반 시인이 먼저 청소년들을 위한 시를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겁니다. 교사이자 시인으로서 일종의 직무유기를 하고 있었다는 자책감이 들면서 이제부터라도 청소년들을 위한 시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청소년 가운데 가장 불쌍한 청소년들에 해당한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경쟁 만능의 사회가 쳐놓은 그물에 갇힌 청소년들의 찢긴 날개를 어루만져주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학교도 사회도 청소년들에게는 포근한 공간이 되어 주지 못하며, 오히려 억압의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 안에서 주어진 답안만을 외우도록 강요당한 청소년들의 비극성이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른과 교사들의 반성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며, 이제라도 청소년들에게 말할 자유와 공간을 과감하게 열어주어야 합니다.”
“청소년들이 직접 쓴 시를 묶어서 낸 책들도 여러 권 세상에 나와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스스로 말하게 하고, 그런 결과물을 서로 돌려가며 읽게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의미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성인이 쓴 청소년시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고 여기는 건, 그런 작업과 동시에 청소년들의 마음과 생활을 들여다보고 그걸 시로 표현해 주는 어른들도 있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도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다시 보게 해줄 수도 있고, 조금 더 정제된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시라는 언어예술의 힘을 전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쓴 청소년시들이 청소년들의 삶을 얼마나 제대로 표현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뛰어난 문학성을 갖추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아마도 부족한 점이 많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다양한 측면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보려고 했다는 점만은 밝혀 두고 싶습니다. 그래서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도 있고, 학교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는 작품도 섞여 있습니다. 앞서도 말한 것처럼 시는 그 틀이 무한히 넓으며, 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도 무척 다양합니다. 감동이나 위로를 받을 수 있는가 하면, 말놀이를 통한 재미와 즐거움을 얻기도 하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건 자신이 받아들이고 느낀 만큼만 얻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영 재미없으면 그냥 집어던지면 되고요.”
작가 소개
저자 : 박일환
1992년 전태일문학상 단편소설 부문을 수상했으며, 1997년 《내일을 여는 작가》에 시를 추천받았다. 시집 《푸른 삼각뿔》, 《끊어진 현》, 《지는 싸움》, 청소년시집 《학교는 입이 크다》, 동시집 《엄마한테 빗자루로 맞은 날》, 청소년소설 《바다로 간 별들》 , 교육 산문집 《나는 바보 선생입니다》와 《미친 국어사전》 등 여러 권의 우리말 관련 책을 펴냈다. 1987년에 장훈여상과 장훈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여 삼선중, 오류중, 구일중, 오남중, 개웅중을 거쳐 영남중에서 교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목차
제1부 어린 염소의 등극
어린 염소의 등극
조건반사
새들의 교실
강아지풀
별은 숨어 있는 게 아니다
독도의 꿈
자이로드롭
체르니 30번
슬픈 ㄹ
나도 변태일까?
달리는 자전거
꼭지가 돌다
괜찮은 인간
의리에 대해
후유증
털어놓지 못한 비밀
제2부 선생님은 순진해
도토리 교실
종례 시간
선생님은 순진해
공책
좋아하는 마음
말은 청산유수
우울한 지구에 대한 보고서
UFO
삼선슬리퍼
간사한 마음
비엔나소시지
미친 년
무릎담요
컴사를 날려라
어느 날의 일기
제3부 학교는 입이 크다
찔리십니까?
찔리시냐고요?
찔리실 겁니다
학교 담을 넘다가 걸렸다
웃기는 짬뽕
학교는 입이 크다
교훈 뒤집기
하파타 순
정답이 뭘까요?
운명교향곡
하필이면
배울 學
고3열차
좋아할 수 없는 이유
가여운 술래
제4부 날개의 행방
바오밥나무
화산 지대
의자는 의자다
운동장에서
바둑의 도(道)
날개의 행방
잠자는 공주가 부러운 날
돌직구
키 작은 향나무
가물치 덕
대통령감
김밥천국
책보다 거울
이상한 자매
열일곱 나의 친구에게
시인의 말 _ 내가 청소년시를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