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을사늑약 60년 만에 일본과 맺은 한일협정(한일기본조약)이 다시 60년을 맞았다. 이에 박정희 정권이 ‘굴욕적’ 자세로 임한 한일회담과 그 결과 탄생한 ‘굴욕적’ 한일협정을 저지하기 위해 학생들이 전개한 투쟁의 기록을 책으로 남긴다.이 책은 수십 년간 모으고 정리한 관련 서적과 논문, 언론 보도, 사진 등의 결과물이다. 즉, 이 책의 특징은 내용 대부분을 언론 보도, 서적, 논문 등 객관적 자료를 동원하여 작성하고, 정 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일이 그 출처를 밝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책 내용 가운데 필자의 주관적 판단에서 작성된 글은 많지 않다. 사진 자료는 수십 년 동안 필자가 수집한 것으로, 오 랜 세월이 지났거나 신문 기사에서 직접 캡처해서 선명도가 떨어지는 것도 있다.이 책의 뼈대는 언론 보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필자의 부친이 남긴 ‘송상근 스크랩북’이 결 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특히 신문아카이브 서비스가 되지 않는 〈한국일보〉와, 전두환 정권 시 절 폐간된 〈대한일보〉와 〈신아일보〉 그리고 보관본이 남아 있지 않은 서울대 문리대 학보인 〈새세대〉 같은 희귀한 보도자료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송상근 스크랩북’ 덕분이 었다.이 책의 주제는 박정희 정권이 ‘굴욕적’ 자세로 임한 한일회담과 그 결과인 ‘굴욕적’ 한일협정을 저지하려는 학생들의 투쟁이다. 이를 다음과 같은 구성과 내용으로 서술했다. 제1장에서는 ‘굴욕적’ 자세로 협상에 임한 박정희는 어떤 인물이었으며 그를 상대로 투쟁을 전개한 학생들은 누구였는지를 자세히 다룬다.
출판사 리뷰
을사늑약 60년 만에 일본과 맺은 한일협정(한일기본조약)이 다시 60년을 맞았다. 이에 박정희 정권이 ‘굴욕적’ 자세로 임한 한일회담과 그 결과 탄생한 ‘굴욕적’ 한일협정을 저지하기 위해 학생들이 전개한 투쟁의 기록을 책으로 남긴다.
‘6·3 학생투쟁’이란
‘6·3 학생투쟁’이란, 학생들이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굴욕적’ 한일회담과 한일협정에 반대하여 1964년 3월 24일부터 1965년 9월 6일까지 벌인 투쟁을 말한다. 햇수로 2년간에 걸쳐 전개된 이 투쟁은, 그 기간이나 강도로 보아 18여 년의 박정희 전 집권 기간 중 가장 오랫동안 격렬 하게 전개된 ‘학생투쟁’이었다. ‘6·3 투쟁’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학생들은 단순히 한일회담과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추진한 박정희 정권의 퇴진까지 요구했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6·3 비상계엄령 선포 후의 계엄 군 재(軍裁)에 학생들을 ‘내란죄’로 회부했고, 1965년 8·26 위수령 발동 후에도 학생들을 ‘내란음모’, ‘내란선동’이라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둘째, 투쟁의 주도자가 대학생이었다는 점이다. 1960년 이승만 독재를 타도한 4·19 혁명의 경동 고등학생에 의한 2·28 민주운동이 일어나고 나서 한참 후인 4월 초에 이르러 대학생이 움직였 음에 반해, ‘6·3 투쟁’은 처음부터 대학생이 선두에 서고 고등학생이 그 뒤를 따른 투쟁이었다. 1960년 고등학생으로 4·19혁명에 참여했거나 목격했던 이들이, 1964년에 이르러 대학 4학년이 되어 후배들을 이끌었던 것이었다. ‘6·3 학생투쟁’은 한일회담과 한일협정을 반대하여 일어났으나, 근본적 성격은 쿠데타로 집권 하여 정통성이 없는 권력이 행한 부당한 행위에 대한 투쟁이었다. 그러한 투쟁의 성격이 가장 강력하게 표출되자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이 바로 1964년 6월 3일이었다.
‘6·3 학생투쟁’이 저지하려던 ‘한일협정’
1964년 3월 24일부터 시작된 ‘6·3 학생투쟁’의 직접 원인은 이른바 ‘민족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집권한 박정희 정권이 ‘민족’을 무시한 ‘굴욕적’ 자세로 한일회담에 임했기 때문이었고, 1965년 에 그런 자세로 임한 한일회담 결과 조인된 한일협정의 내용 역시 ‘굴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이하 기본조약) 제2조의 내용이다.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 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It is confirmed that all treaties or agreements concluded between the Empire of Korea and the Empire of Japan on or before August 22, 1910 are already null and void).”
여기서 “모든 조약”이란 1910년 8월 22일의 한일합병조약과 그 이전에 국권 탈취를 목적으 로 강요한 4개의 조약을 말한다. 일본으로서는 이들 조약이 체결 당시부터 불법·무효였음을 인 정하면 이에 대해 배상해야 함은 물론 한국인에 대한 우월감마저 상실할 우려가 있어 이를 극구부인했다. 이에 일본은 ‘무효(null and void)’라는 용어를 수용하면서도 실질적 효과를 무력화 하기 위한 묘안으로 ‘이미(も はや)’라는 부사어를 덧붙여 과거사를 ‘물타기’ 했다. 그러나 ‘이미 (already)’라는 단어는 한국과 일본이 각자 다른 취지로 자국민에게 설명하기 위한 일종의 사기 였다. 즉 한국은 ‘이미 무효’가 한일병합조약 등이 불법적이었으니 체결한 날부터 무효라고 주 장했고, 일본은 조약 체결은 합법적이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날부터 무 효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기본조약 제2조는 한일협정의 가장 뼈아픈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1966년 3월 18일 자 미국 CIA의 『특별보고서』에는 “한일협상을 추진시킨 대가로” 박정희 정 권이 일본 기업으로부터 6,6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한일협상은 36 년간의 일제 폭압 책임을 묻고 그 피해를 배상받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엄청 난 돈을, 그것도 상대인 일본으로부터 받았다니 협상이 제대로 될 수 있었겠는가. 굴욕적 자세 로 졸속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탄생한 한일협정의 여러 문제점은 지금 까지도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책의 특징과 내용
이 책은 수십 년간 모으고 정리한 관련 서적과 논문, 언론 보도, 사진 등의 결과물이다. 즉, 이 책의 특징은 내용 대부분을 언론 보도, 서적, 논문 등 객관적 자료를 동원하여 작성하고, 정 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일이 그 출처를 밝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책 내용 가운데 필자의 주관적 판단에서 작성된 글은 많지 않다. 사진 자료는 수십 년 동안 필자가 수집한 것으로, 오 랜 세월이 지났거나 신문 기사에서 직접 캡처해서 선명도가 떨어지는 것도 있다. 이 책의 뼈대는 언론 보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필자의 부친이 남긴 ‘송상근 스크랩북’이 결 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특히 신문아카이브 서비스가 되지 않는 〈한국일보〉와, 전두환 정권 시 절 폐간된 〈대한일보〉와 〈신아일보〉 그리고 보관본이 남아 있지 않은 서울대 문리대 학보인 〈새세대〉 같은 희귀한 보도자료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송상근 스크랩북’ 덕분이 었다.
이 책의 주제는 박정희 정권이 ‘굴욕적’ 자세로 임한 한일회담과 그 결과인 ‘굴욕적’ 한일협정을 저지하려는 학생들의 투쟁이다. 이를 다음과 같은 구성과 내용으로 서술했다. 제1장에서는 ‘굴욕적’ 자세로 협상에 임한 박정희는 어떤 인물이었으며 그를 상대로 투쟁을 전개한 학생들은 누구였는지를 자세히 다룬다.
박정희가 꿈꾼 것은,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하고 쇼와유신으로 군부에 의해 통제받던 군국주 의(軍國主義) 일본제국과 같은 나라였다. 그는 이 꿈을 좇아 교사직을 버리고 만주군이 되었으 나, 일제가 패망하자 ‘해방 후 광복군’이 되었다. 귀국 후 국군이 되어 공산주의에 물드는 변신 의 삶을 살다가 한국전쟁을 기회로 전향했다. 그 후 박정희는 다섯 번 만에 쿠데타에 성공하 고, 네 차례의 번의(翻意)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자신의 야욕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박정희를 상대로 투쟁을 전개한 학생들은, 이미 고등학생 때 4·19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 을 타도한 경험이 있어서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이들은 박정희가 내세웠던 ‘민족적 민 주주의’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점을 깨닫고 이념 서클 등을 조직으로 맞섰다.
제2장에서는 1964년 한일회담 반대투쟁의 배경, 투쟁의 모습, 재판 경과 등을 상세히 다룬다. 1964년 3월 24일부터 6월 3일까지의 투쟁은, 한일회담 반대로 시작하여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 패와 학원 공작에 대한 비판 운동으로 옮겨갔다가 마침내 정권 퇴진·타도 운동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후의 재판 과정과 석방 운동 등을 살펴본다. 제3장에서는 학생운동 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1965년의 투쟁을 다룬다. 한일회담 재개에 따 라 2월 28일 투쟁이 다시 시작되어, 8월 26일 위수령 발동을 거쳐, 9월 6일 서울대 상대의 ‘최 루탄·군화·경찰봉에 대한 화형식’ 등에 이르기까지의 1965년 학생투쟁과 함께, 교회를 비롯한 군부, 교수 등 양심 세력의 저항과 학생들의 재판 과정 등을 상세히 다룬다. 그리고 공소장, 한일협정 관련 자료 등을 실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송철원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건국대학교 교수, 대한교과서(주) 상임고문, (주)에듀티브이 회장 등을 역임했다. 지금은 (사)현대사기록연구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