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꼼꼼히 살피고 그에 대한 애정을 시로 천착해온 조성순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을 펴냈다. 『닿을 듯 말 듯 입시울가배야운 소리』에는 사물과 사물, 사람과 자연, 주체와 객체의 구별을 무너뜨리고 그것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67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조성순 시집 『닿을 듯 말 듯 입시울가배야운 소리』에는 말들의 보이지 않는 경계에서 태어난 새로운 언어로 쓰여진 작품들이 담겨 있다. 그 시편들은 딱딱하게 응고된 사물로 가득한 언어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와 생명을 모색하는 참다운 시의 언어, 존재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시인은 운명적으로 끊임없이 언어를 배반해야 한다. 보이는 것은 허상이기 때문에, 세상의 사물들은 언어에 의해 굳어져 있기 때문에, 시인은 언어를 해체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언어를 싹 틔우려 한다. 굳어져 버린 사물과 사물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둘을 하나로 이어주는 새로운 언어, 그것이 『닿을 듯 말 듯 입시울가배야운 소리』가 보여주는 시세계인 것이다.
출판사 리뷰
“자유와 생명을 모색하는 참다운 시의 언어, 존재의 언어!”
“고통과 슬픔, 폭력과 소외, 부조리를 극복해내는 시세계!”
상처받은 자아를 치유하는 그리움의 시편들
조성순 시인은 타향이었던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된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언어의 날카로움은 시인의 귀향과 함께 원초적 삶의 근원 속에서 점차 사그라들고 따뜻하게 감싸는 그리움의 노래로 메아리친다. 시인은 험한 세상과 부딪치며 입은 상처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고향집으로 돌아왔다고 알린다.
세상에 상처받고/ 의지가지없이/ 무너져가는 몸으로/ 고향집에 왔다.// 누군가 보내준/ 수선화 뿌리를 심어놓고/ 봄을 기다리고 있다.// 한 송이는 필 테지.
―「어떤 봄」
멀리 들녘이 바라보이고 텃밭의 채소와 안뜰의 꽃밭이 내려다보이는 조그마한 봉당이 있는 고향집은 시인에게 자연과 하나 되어 원초적 삶을 영위하는 ‘존재의 집’이다. 옛 기억이 오롯이 스며있는 고향집은 그리움이 샘솟는 원천이며, 그 그리움을 통해 상처받은 자아가 치유되는 공간인 것이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이끄는 시세계
한국전쟁 때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수행되었던 장사리상륙작전에서 희생된 어느 학도병의 책가방에서 영어책과 수학책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을 다룬 「학도병의 책가방」은 역사의 갈등과 참혹함을 넘어서는 근원적 부조리를 보여준다.
1950년 9월 14일 새벽/ 장사리 상륙작전/ 양동작전의 일환으로/ 하루 뒤 있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감행한 전투// 어느 학도의용군의 배낭에서/ 안현필의 영어실력기초/ 박한식의 수학의 삼위일체가/ 발견되었다.// 그는 전사했다.// 시란 무엇인가?// 바람을 등에 업은 파도가/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학도병의 책가방」
치열한 전투와 어린 학도병의 전사. 생사가 걸린 전투 중에도 배낭에 넣어두었던 “안현필의 영어실력기초”와 “박한식의 수학의 삼위일체”. 이 무자비한 세계의 폭력과 기괴하고도 우스꽝스런 부조리와 마주한 시인에게 으르렁거리는 파도는 “시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시란 그저 무력한 것일 따름인가?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한줄기 실낱같은 빛을 찾아내고 그것을 돛으로 삼아 삶을 이행하여 나아갈 길은 없는가?
조성순의 시는,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세계의 부조리와 맞서 싸우며 존재의 의미를 재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시인에게 시는 ‘전투의 소리’이다. 그것은 폭력을 초극할 수 있는 힘과 의지이자 정열의 언어인 것이다.
세상의 사물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시인의 삶
조성순 시인은 고통과 슬픔, 폭력과 소외, 부조리로 얼룩진 척박한 현실에서 생명의 언어, 존재의 언어를 싹틔워낸다. 그 언어는 천 길 낭떠러지 끝에서 어떤 두려움도 없이 활짝 웃으며 하늘거리는 패랭이꽃 같은 언어이다.
조성순 시인은 뭇 사물에 대한 우애와 연민을 통해 만유의 저변에 흐르는 통일성을 감지하고, 그것을 자극하고 증폭함으로써 미증유의 지평을 열어간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삶을 표현해낸 조성순 시집 『닿을 듯 말 듯 입시울가배야운 소리』는 우리에게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그 길로 나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조성순
경북 예천군 감천에서 나고 자랐다.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1989년 이광웅 김진경 도종환 안도현 등과 교육문예창작회를 창립했다. 2004년 『녹색평론』에 시 「애기복수초」 외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8년 「산월수제비」로 문학나무 신인상, 2011년 「늑대와 풍란」으로 제12회 교단문예상을 수상했다. 시집 『목침』 『가자미식해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나는 걸었다』 『왼손을 위하여』 등을 펴냈다.
목차
1부 가문 날의 토막 일기
어떤 봄 / 말똥굴레 / 고향 말 / 손님 / 가문 날의 토막 일기 / 2021년 가을 / 가을볕과 나 / 급하지 않다 / 두 번째 봄 / 입추 / 떠나는 자와 남은 자 / 잠 못 이루는 밤 / 저녁 무렵 / 썽그런 / 약 / 뉴스
2부 불빛
입춘 즈음 / 섭섭히 헤어지다 / 누님 / 귀향 / 어떤 농부 / 고양이 / 가지냉국 / 곤줄박이네 집 / 감자 / 그녀의 나팔꽃 / 무섬소사 / 설거지를 하며 / 아버지의 꽃밭 / 둥근달 / 불빛 / 카바이트 불
3부 칸나
방학과 개학 / 섭리 / 복상 한 알 / 아침 인사 / 기쁜 날 / 행복한 날 / 즐거운 날 / 봉정사 영산암 / 방 / 물푸레나무 그릇 / 오줌 바지 / 우수 / 청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슬픔을 삽니다 / 사슴 가족 / 칸나 / 검은 콩국수
4부 귀밑 느티나무
버림받은 개 / 녹지 않는 눈 / 불발탄 / 명상 / 우쉬굴리 / 안치에 가고 싶다 / 작별 / 미륵 / 귀밑 느티나무 / 배진섭 / 너븐숭이 아기동백 / 패랭이꽃 / 간양록 / 동백 결사 / 시간의 숨 / 손가락 총 / 학도병의 책가방 / 입시울가배야운소리
해설 경계의 언어-최성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