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한국만화계에는 일상과 경험을 토대로 한 ‘에세이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들과 그들의 굵직한 대표작들이 있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만리포 작가 또한 자신이 겪은 바를 재료로 만화를 그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특히 도대체 평범할 수가 없는 여자들에게 말을 건다. ‘이런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다이내믹, 어떠한 산전수전에 대하여 말이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당한 차별, ‘나답게’와 ‘좋은 사람되기’ 사이에서 쓴 안간힘. 모두가 평등하기를 바라는 한 소녀의 공명정대한 사상, 그럼에도 나에게만 허락된 따스한 손길에 터져버린 눈물. 자유롭게 펼쳐지는 이 놀라운 두 단편을 읽는 동안 깨닫게 된다. 한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보다 정확하게 그려낼수록 보편성을 띄게 된다는 것. 주저하며 드러내기를 결심한 이의 고백은 다른 사람의 삶을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을 기꺼이 선사하는 일이라는 것.
출판사 리뷰
도대체 평범할 수 없는 여자들이 겪게 될 모든 다이내믹
가장 진실한 ‘내 이야기’를 그리는 새로운 좌표
표제작 「돈덴」
“누님은 적당한 한국인이십니다.” “아냐. 나 있는 힘껏 한국인이야!”
일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인찬은 여자이자 이방인이자 연회장 아르바이트생.
멀고도 가까운 나라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 사랑, 고민을 그리다.
단편 「13살의 공산주의」
“어느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것. 그게 공산주의의 핵심이야!”
열세 살의 공산주의자 감사는 아빠의 부하직원인 황요석을 보며 불평등을 느낀다.
똥 푸는 사람은 롤렉스를 차면 안 되는 건가?
“여자란 즙 짜기 일쑤고 남자 때문에 갈팡질팡하며,
정에 휘둘리고 툭하면 도움을 요청하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하죠.
저는 즙 짜고, 도움을 요청하고, 정에 호소하고 휘둘리며 살고 싶습니다.” _대담 중에서
◆ 『미지의 세계』 만화가 이자혜와의 대담 수록
도대체 평범할 수 없는 여자들이 겪게 될 모든 다이내믹
가장 진실한 ‘내 이야기’를 그리는 새로운 좌표
표제작 「돈덴」은 주인공 인찬이 도쿄 생활중 만난 사람들에게 배운 단어를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ワ씨에게서 배운 단어 ‘센누키(병따개)’, キ씨가 가르쳐준 ‘숏파나(맨 처음)’, ク씨의 ‘후데오로시(아다 떼기)’, シ씨가 가르쳐준 ‘젠(젓가락을 세는 단위)’, ナ씨의 ‘고료쇼(양해)’, ス씨의 ‘료우가에(환전)’, ユ씨가 가르쳐준 ‘나츠바테(여름 타다)’, ア씨의 ‘우이우이시사(풋풋함)’.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등장한 단어는…
“돈덴가에시――!”
‘돈덴가에시’는 홀이나 연회장의 배치 전환 작업을 가리키는 일본 연회업계의 은어다. 애니메이터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인찬은 연회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홀로 살이를 시작한다. ‘돈덴’의 외침이 들리면 아무리 더운 날이어도 생리를 하는 날이라도 테이블과 의자를 옮기면서. 목 뒤의 타투가 제대로 가려지지 않았다는 꾸중도 종종 들으면서.
(지리상) 가깝고도 (그것 빼고는 거의 다) 먼 일본에서 여자이자 이방인이자 아르바이트 노동자인 인찬은 자신의 약자성, 타자성, 소수자성을 느끼며 “성욕만 왕성하고 미래는 뒷전이고 향상심은 이제 거의 깜부기불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종종 오키나와 사람을 보며 홀로 동질감을 느꼈다가 서운해하고, 베트남인에게 한국 정부의 학살을 사과하면서 “있는 힘껏 한국인이” 될 때도 있다. 낯선 타지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혹은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 몰라서 인찬은 끊임없이 말을 걸고, 말을 듣는다. 하지만 그런 인찬에게 돌아오는 말이 다정하고 친절한 건 아니다. “인찬씨가 하는 말을 나로서는 좀 못 알아듣겠는걸.” “인찬은 아마 이제까지 뭘 해도 용서받았을 거야.” 낯설고 불안정한 곳에서는 내가 더더욱 ‘나’로 느껴진다. 내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며 피부로 느껴야 한다. 이곳에서 자신은 보다 약하고, 소수자이자, 타자에 속한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에서 또렷이 자신을 만난 인찬은 이 시간을 만화로 그리자고 결심한다.
두번째 단편의 주인공은 공산주의자. 게다가 자신을 공산주의자라 말하는 주인공의 나이는 13살, 초등학교 6학년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조선족 이모를 욕한 같은 반 남학생과 치고받고 싸운다. 하지만 싸운 학생의 부모에게서 ‘깽값’을 받아내기도 한다. 이 박감사라는 이름의 주인공에게 공산주의는 다음과 같다.
“어느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것. 그게 공산주의의 핵심이야!”
부유한 집에서 모자를 것 없이 살고 있는 감사가 예의주시하는 인물은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황요석, 황실장.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고, 상사의 딸이라는 이유로 배려하는 황실장이 감사는 다소 못마땅하다. 자신은 평등을 지향하는 공산주의자니 화를 내어달라 하지만 요석은 시답잖은 이야길 하는 상사의 딸에게 맞춰주는 것이 갑질처럼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감사는 요석에게 아빠의 비밀을 말해주고 비밀을 알게 된 요석 또한 감사에게 사장이자 아버지의 비밀을 알려주는데… “내가 감사를 대등하게 생각하니까 말하는 거야. 넌 이해할 거라 생각하니까.” 감사의 공산주의는 여전할 수 있을까.
***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시대, 물음표로 가득한 세상.
매일매일 조금씩 부수고 부숴지며 진동해나가는 여자가 찍은 마침표.
『혼자를 기르는 법』의 김정연 작가, 『미지의 세계』의 이자혜 작가, 『먹는 존재』의 들개이빨 작가 등 한국만화계에는 일상과 경험을 토대로 한 ‘에세이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들과 그들의 굵직한 대표작들이 있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만리포 작가 또한 자신이 겪은 바를 재료로 만화를 그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특히 도대체 평범할 수가 없는 여자들에게 말을 건다. ‘이런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다이내믹, 어떠한 산전수전에 대하여 말이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당한 차별, ‘나답게’와 ‘좋은 사람되기’ 사이에서 쓴 안간힘. 모두가 평등하기를 바라는 한 소녀의 공명정대한 사상, 그럼에도 나에게만 허락된 따스한 손길에 터져버린 눈물. 자유롭게 펼쳐지는 이 놀라운 두 단편을 읽는 동안 깨닫게 된다. 한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보다 정확하게 그려낼수록 보편성을 띄게 된다는 것. 주저하며 드러내기를 결심한 이의 고백은 다른 사람의 삶을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을 기꺼이 선사하는 일이라는 것.
만리포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각 단편 뒤에 실린 작품 후기이자 에세이, 그리고 이자혜 만화가와의 대담이 수록되어 만리포라는 새로운 인물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연회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는 풀이 덜 먹은 사람의 아집으로, 만약 진상 손님이 거하게 시비를 건다면 그 앞에서 바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아주마 하고 벼르기도 했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한 내가 빌면 빌수록 화려한 공격이 될 것 같았다”라는 생각을 했다는 작가의 후기에선 무모하고 과격하지만 간직하고 싶은 용기가 느껴진다. 이어 대담에서 이자혜 만화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만리포 작가는 자신의 삶과 경험을 재료로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 대해 담담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작품에 대해 말하지만 그것은 각 단편을 그리게 된 설명이나 ‘이유’가 아닌, 만리포라는 사람의 ‘축적’의 결과다. “저는 「돈덴」에서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처세를 하며 사는 사람을 그렸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인간관계에 전력으로 임하는 행동거지를 관철하겠다. 그런 마음으로 ‘완전한 여자’가 되고 싶다고 썼습니다.”
작가는 「13살의 공산주의」의 후기에서 이야기를 물음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고,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고 말한다. 시대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너’와 ‘나’, 우리의 관계는 충돌하고 부딪히며 마모되며 눌어붙는다. 판단하기 어렵고 속물적으로 변해가기 쉬운 세상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동안의 이야기들을 기꺼이 그리기로 결심한 사람이 있다. 흔들리고 진동하며 그가 간신히 찍은 마침표를 연결해보자. 새로운 지형도가 떠오를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만리포
만화를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지낸다.
목차
돈덴 005
13살의 공산주의 079
대담 with 이자혜 만화가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