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 작가’라는 수식어가 이토록 어울리는 작가가 또 있을까. 1990년 등단 이후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 온 함정임 작가가 올해로 등단 35주년을 맞아 소설 『밤 인사』를 펴냈다. 2020년 출간된 소설집 『사랑을 사랑하는 것』 이후 5년 만의 신작소설이다.‘미나’와 ‘장’ 그리고 ‘윤중’, 세 인물 사이에서 반복되는 끊임없는 마주침과 엇갈림을 함정임만의 유려하고 섬세한 문장으로 엮어 낸 『밤 인사』는 “새벽의 감각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매혹적인 지도”(윤고은)이자 “가능성을 품은 우리에게” 보내는 “다정한 밤 인사”(한유주)다.“세 사람이 시차를 두고 완성하는 산책”은 마치 “별의 궤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연이 겹쳐 운명으로 가닿는 눈부신 그 과정들은 간절곶과 파리, 부르고뉴, 세트, 페르피냥, 포르부 그리고 다시 부산에 이르기까지 ‘미나’의 발걸음을 뒤따른다. “우연이 운명으로 승화하고, 엇갈린 방향들이 남긴 부산물”이 빚어낸 추억은 소설 안에서 그 어떤 것보다 눈부시게 부유한다.『밤 인사』는 새벽과 닮아 있다. 새벽은 “가능성인 동시에 어제에 대한 작별”이며 “포옹의 시간”이기도 하다. 세 인물 사이에서 공명하는 “미묘하고 고요한 충동”은 독자들로 하여금 “지나온 경로마다 수없이 존재했던 마주침이 품었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곧 무수한 산책”임을 알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주침을 소중하게 끌어안는다.

그런데, 간절곶에는 왜 간 거죠?그는 역시 3초간 입을 다물고 있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대답인 즉, 열두 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는 곳으로 그에게는 간절곶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나도 열두 시간의 조약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아침 8시가 넘어서야 조금씩 밝아 오는 하늘, 무리지어 이리저리 이동하는 음울한 먹구름, 사이사이 번쩍이며 드러났다가 이내 사라지는 태양과 하늘의 파란 빛. 세상이 어떻게 요동쳐도, 파리는 파리였다. 노트북을 덮고, 장과의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함정임
이화여대 불문과와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광장으로 가는 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 『버스, 지나가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 『사랑을 사랑하는 것』, 중장편소설 『춘하추동』, 『내 남자의 책』, 『아주 사소한 중독』 등을 펴냈으며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동아대 한국어문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며 소설 창작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