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다른 청소년 교양 시리즈 3권. 법학자이자 철학자, 또한 자서전 작가이기도 한 인문학자 박홍규 교수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종교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 이 책은 소설 <완득이>를 통해 바람직한 종교의 모습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 담임을 죽여 달라고 빌었던 완득이처럼 종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대화하는 느낌이 들도록 문답식으로 꾸며져 있다.
2장에서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며 종교에 대한 잘못된 서술이나 편향된 시각을 갖게 할 수 있는 대목들을 들어 교과서를 객관적이고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한다.
3장은 세계 여러 종교에 대해 얘기한다. 남아시아 종교로 힌두교와 불교, 동아시아 종교로 유교와 도교, 서아시아와 유럽의 종교로 이슬람과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해 다룬다. 4장에서는 종교가 제국주의 및 전체주의와 결탁했던 어두운 뒷모습에 대해 다룬다.
5장에서는 종교와 과학의 대립에 대해서 다룬다. 하지만 그 둘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의 문제이며 유명한 과학자들조차 종교인이었음을 얘기한다. 6장에서는 유신 시대에 정의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큰 목소리를 냈던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 그리고 만해 한용운과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에 대한 일화를 곁들였다.
출판사 리뷰
종교적 의무는 정의를 실천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타인을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톰 페인
종교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무종교인의 생각
법학자이자 철학자, 또한 자서전 작가이기도 한 전방위적 인문학자 박홍규 교수가 이번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종교에 대한 생각을 풀어냈다. 하지만 그는 종교가 없다. 그리고 종교에 대해서 삐딱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종교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러 종교의 경전을 찾아 읽고 종교의 발원지를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렇게 육십 평생 이해한 종교의 본질은 “가능한 한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여 가난하고 소박하게, 남을 지배하지 않고 함께 자유롭고 평등하며 평화롭게, 자연과 함께 자연스럽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는 스스로 평생 그렇게 살고자 노력해 왔으므로 굳이 살면서 특정 종교가 필요하지는 않았고, 여러 종교의 가르침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며 살아 왔으므로 굳이 특정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동시에 여러 종교를 믿었다고 할 수도 있다.
정려령 작가의 소설인 『완득이』는 저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종교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소설 속 주인공인 완득이는 담임 똥주를 죽여 달라고 빌기 위해 교회를 찾아가지 않았나? 하지만 완득이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종교를 스스로 믿게 되었다.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절실하게 마음으로 경험하며 종교를 갖게 된 것이다. 또한 완득이가 다니는 교회는 달동네의 허름한 건물에 불과하고, 십자가는 걸려 있지만 그 밖에는 교회 같은 느낌이 전혀 없다. 광적인 기도도, 화려한 조찬기도회도, 거창한 부흥회도, 엄청난 헌금도, 더러운 정치적 음모도, 흉측한 돈벌이 사교도, 음험한 짝짓기 결혼 흉계도 없고, 불법 체류 노동자들의 아픔을 달래 주고 그들을 숨겨 주며 그들을 돕는 일 외에 달리 의미가 없는 곳이다. 예수 시대의 교회가 바로 그러했을 것이다. 저자는 종교에서 자유와 평등, 자치와 자연, 절제와 검소, 정의와 평화를 뺀다면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본다. 그것이 붓다와 예수와 마호메트의 참된 가르침이다. 붓다와 예수, 마호메트 사후 그 후예들이 만든 전쟁사나 투쟁사는 잘못된 힘의 역사이다.
수많은 완득이들을 위한 종교 교과서
이 책은 소설 『완득이』를 통해 바람직한 종교의 모습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교회에 가서 담임을 죽여 달라고 빌었던 완득이처럼 종교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대화하는 느낌이 들도록 문답식으로 꾸며져 있다. 2장에서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우리나라는 종교 과목이 따로 없다. 하지만 국사, 세계사, 윤리, 도덕 교과서에 종교에 대한 대목이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세계사 교과서에는 중국을 제외한 비서양에 대한 설명은 대단히 적고, 그마저도 잘못된 경우가 많다. 가령 인도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카스트 제도를 가진 힌두교 나라로만 설명되어 있고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또 이슬람 세계는 14억 인구에 유엔 회원국이 57개국이나 되는 최대의 단일문화권인데도 교과서에서는 철저히 무시된다. 중남미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 불교는 해탈의 종교를 단답식으로 정의해 버리는 것도 문제이다. 또한 국사 교과서에는 한국화나 토착화란 말이 자주 등장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쓰인 말이거나 종교의 본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면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보며 종교에 대한 잘못된 서술이나 편향된 시각을 갖게 할 수 있는 대목들을 들어 교과서를 객관적이고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점을 보완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3장은 세계 여러 종교에 대해 얘기한다. 현재 세계에는 기독교도가 20억 명 정도로 33퍼센트, 이슬람교도가 13억 명 정도로 20퍼센트, 힌두교도가 8억 명 정도로 13퍼센트, 불교도와 유교 등이 각각 4억 명 정도로 6퍼센트를 차지한다. 남아시아 종교로 힌두교와 불교, 동아시아 종교로 유교와 도교, 서아시아와 유럽의 종교로 이슬람과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해 다룬다. 카스트 제도로만 알려졌던 힌두교는 현세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종교임을, 불교는 세속적인 모든 굴레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의 종교임을 말한다. 유교는 군신, 부자, 부부, 형제, 친구의 관계에서 윗사람은 보호의 의무를 지고, 아랫사람은 충성과 존경의 의무를 지는 삼강오륜의 종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하 수직적인 구도의 경직된 형태로 발전했음을 아쉬워하고, 도교에서는 자연 그 자체가 바로 도이고, 무위(無爲)의 실천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부끄러움 때문에 폭력이나 공격적인 행동을 그만두게 만드는 자연스럽고 비공격적인 행동임을 말한다. 서아시아와 유럽의 종교인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는 뿌리가 같은데도 인류 전쟁사는 그들의 집안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 동안 기독교의 박해를 박으며 이산의 역사를 경험한 유대교는 민족 우월주의로 흐른 것은 문제가 된다고 짚는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분란, 침략과 전쟁에 많이 등장하는데, 원래 기본 교리의 곡해가 가장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유대교나 기독교는 일신교로서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아 경직되어 있는 반면 이슬람교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지만, 세력을 확장할 때 다른 종교인들을 수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슬람을 호전적인 종교로 보는 시선은 기독교에서 만들어 낸 이미지일 뿐이다. 어느 종교나 시간이 흘러 이용되면서 타락하고 변질되었던 것이지, 초기 종교의 모습은 늘 아픈 민중들을 어루만지는 손길이었음을 되새기게 된다.
교과서에는 없는 종교의 뒷모습
4장에서는 종교가 제국주의 및 전체주의와 결탁했던 어두운 뒷모습에 대해 다룬다. 500여 년 전 유럽은 아메리카를 침략했을 때 원주민이 유럽인 한 명을 살해하면 그 대가로 100명의 원주민을 죽인다는 법을 시행했다. 그런데 이 학살은 미신과 주술을 믿는 미개 야만인은 죽어 마땅하다고 주장하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16세기 식민지 침략 사업에 기독교는 동반자 역할을 했다. 서양인들은 남들을 침략할 때 늘 정당성을 부여하는 마법의 단어라도 되는 양 십자군 전쟁이라는 말을 써 왔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죽이면서도 새로운 십자군 전쟁이라고 했고, 9·11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이라크를 침략하면서도 새로운 십자군 전쟁이라고 했다.
유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기독교는 차별의 종교라고 할 만하다. 예수가 유대인 때문에 죽었다고 주장하며 오랫동안 유대인을 박해했다. 그리고 그 증오는 20세기에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로 나타났다. 그런데 여기서 놀랄 만한 사실은 교황청이 히틀러를 옹호했다는 점이다. 교황청은 독일의 재무장을 허용했고,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 정책을 알았으면서도 침묵했다. 저자는 그때 만약 교황이 예수의 대리인으로서 전 세계 5억 가톨릭 신도들의 어버이로서 나치스의 잔혹 행위를 규탄하고 전 세계에 호소했더라면 600만 명이 가스실에서 학살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묻는다.
종교가 정치권력과 결탁하고 금권과 결탁하는 일을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원래 불교는 전쟁이나 폭력을 절대 지지하지 않는데도, 수나라 문제는 전투에서 이긴 장소마다 절을 지어 승려들의 협력을 얻었고, 병사들에게 영혼이 돌봄을 받게 될 거라는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해 위령제를 지내도록 명령했다. 지금도 스리랑카 신할리족의 불교 지도자들은 승가와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합리화하여 소수 타밀족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다.
종교, 처음의 모습을 살펴보다
5장에서는 종교와 과학의 대립에 대해서 다룬다. 하지만 그 둘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의 문제이며 유명한 과학자들조차 종교인이었음을 얘기한다. 흔히 암흑기라고 생각하는 중세에도 수많은 대학이 생겼고, 신학보다 법학과 의학이 더 인기 있는 학문이었다. 데카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근대 과학자들 또한 종교에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종교를 과학과 대립하는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근본주의자들이다. 6장에서는 종교와 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는 인권과 복지가 후퇴했고, 평화가 흔들렸다. 도덕수준을 알려 주는 위증죄, 사기죄, 성범죄 등의 범죄율도 높다. 종교가 강하다는 게 도덕수준이 높다는 말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지금의 현실은 ‘땅밟기 기도’ 같은 근본주의자들이 늘어나고,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리고 경쟁의 논리에 빠져 있는 종교인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이에 반대되는 사례로 유신 시대에 정의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큰 목소리를 냈던 김수환 추기경과 지학순 주교, 그리고 만해 한용운과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에 대한 일화를 곁들인다.
저자는 종교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고 본다. 그러나 그 바뀌어야 할 종교란 사실 각 종교가 처음 시작할 때 주장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경제, 사회, 정치와 관련을 맺으며 스스로 기본 가르침에 벗어나 다른 누군가를 짓밟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박홍규 교수는 종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들에게 종교의 알몸을 보여 주고자 한다. 그리고 최초의 기원에 뿌리내리고서 현대의 여러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종교가 그 최초의 기원에 집중한다면 어느 한쪽의 편파적인 논리가 아니라 세계의 공동 윤리로서 아우러질 수 있다고 말이다.
작가 소개
저자 : 박홍규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저술가이자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이다. 인문·예술의 부활을 꿈꾸는 르네상스맨으로 현재 영남대학교 교양 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자전거 타기와 걷기를 사랑하며, 자유·자연·자치의 삶을 실천하고자 늘 노력한다. 그동안 쓴 책으로 <니체는 틀렸다>, <자유란 무엇인가>, <함석헌과 간디>, <내 친구 톨스토이>, <가거라 아들아 용감하게;루쉰의 외침을 듣다>,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라만차의 돈키호테>, <독학자 반 고흐가 사랑한 책>, <독서독인>, <까보고 뒤집어보는 종교>, <이반 일리히>,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메트로폴리탄 게릴라>, <야만의 시대를 그린 화가 고야>, <아나키즘 이야기>, <플라톤 다시 보기>,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 등이 있다. 함께 쓴 책으로는 <거꾸로 생각해봐! 세상도 나도 바뀔 수 있어>, <세상을 바꾼 창조자들>, <청년 인생 공부> 등이 있다.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목차
들어가는 말 6
1장 완득아, 넌 교회에 왜 가니? 12
2장 교과서 속 종교, 그대로 믿어도 좋을까? 42
3장 세계의 종교, 어떻게 다를까? 64
남아시아의 종교 -힌두교와 불교 71
동아시아의 종교 -유교와 도교 102
서아시아와 유럽의 종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114
4장 종교, 시치미 뚝 떼고 침략과 전쟁을 옹호하다 142
5장 과학과 종교는 불편한 관계일까? 164
6장 종교는 현실과는 상관없을까? 176
나가는 말 188
참고문헌 195
교과 연계표 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