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동등한 인간을 다시는
이런 식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
전미도서관협회 청소년을 위한 올해의 최고도서
아프리카연구협회 청소년을 위한 아프리카 관련 도서
미국 학부모협회 선정도서“백인이라 함은 겉모양으로 백인임이 분명한 자이거나 일반적으로 백인이라고 인정되는 자이다. 그러나 겉모양으로는 분명히 백인이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혼혈인이라고 인정되는 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것이 법률 문장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대자연의 풍요로움이 살아 숨 쉬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이 모호한 문장이 법률이 되었고, 이를 토대로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 정책)가 제정되었다. 총을 든 채, 아프리카 인들의 땅을 점령했던 백인들이 만든 법률이다. 이것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일상을 지배하였고, 주민들의 삶은 찢겨졌으며, 그 안에 아이들이 있었다.
어떻게 인류가 이러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20세기 차별의 기억에 대해 한국의 어린 독자들도 이러한 질문을 던지길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인종 차별을 넘어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는 광범위한 차별에 대한 질문이며, 남아프리카 공화국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곳의, 모두를 위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출판사 서평]
21세기 한국의 어느 날보노짓 후세인이라는 한 인도인이 있었다. 성공회대 연구교수였던 그는 한국인 여성과 함께 버스에 앉아 자그마한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더러운 xx!”라는 욕설이 들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양복을 입은 한국인 사내가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너 어디서 왔어, 이 냄새 나는 xx야.” 봉변은 곁에 앉은 여성에게도 이어졌다. 그녀는 종아리를 발로 차이며 “ooo야, 새까만 자식이랑 사귀니까 기분 좋으냐?”라는 욕설을 들어야 했다. 왜 그러냐고 항의했지만 사내는 그에게서 냄새가 난다며 가운뎃손가락을 올리고 “퍽 유, 퍽 유(fuck you, fuck you)!"를 외쳤다.('한겨레21' 제773호에서 발췌.)
이 상황이 극단적일 수는 있지만 위의 사내뿐 아니라 한국인의 마음에 있는 이런 얼룩은 오늘도, 여느 매체에서나 심심치 않게 묻어나온다.
20세기 아프리카 남쪽버스 안 사내의 인종 차별 속내를 20세기에 가장 노골적이며 공식적으로 드러낸 역사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었다.
“백인이라 함은 겉모양으로 백인임이 분명한 자이거나 일반적으로 백인이라고 인정되는 자이다. 그러나 겉모양으로는 분명히 백인이라고 해도, 일반적으로 혼혈인이라고 인정되는 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것이 법률 문장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대자연의 풍요로움이 살아 숨 쉬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이 모호한 문장이 법률이 되었고, 이를 토대로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 정책)가 제정되었다. 총을 든 채, 아프리카 인들의 땅을 점령했던 백인들이 만든 법률이다.
이것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일상을 지배하였고, 주민들의 삶은 찢겨졌으며, 그 안에 아이들이 있었다. 『차별의 기억』은 그 아이들이 겪은 사건으로 만든 7개의 단편 소설로 인종 차별을 증언한다.
강력한 정부의 인종 분리 정책으로 ‘컬러드’(유럽 인과 아프리카 인 사이의 혼혈)였던 아빠가 외양상 흑인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아프리카 원주민’으로 분류되어 흩어져 살게 된 제이컵('올가미' 중에서).
인종 차별 정책에 항의한 사촌 언니 에스더가 시위에 사용했던 타자기를 숨기려다 경찰에 잡혀 가는 할머니를 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던 난디('타자기' 중에서).
자신의 엄마를 ‘계집애’라고 부르며 목욕을 시켜 달라는 젊은 백인 사장의 말에도 울분을 감추어야 했던 에시('총' 중에서) 등등.
총7명의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은 본격적인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948년부터 대략 10년 정도씩의 간격을 두고 “오직 피부색과 겉모습으로 사람의 등급을 매겼던” 폭력들에 대해 고발한다. 시간의 흐름을 건너며 속절없이 당하는 이들의 흐느낌은 점차 “동등한 인간을 다시는 이런 식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라는 외침으로 뭉치고, 마침내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어 아파르트헤이트를 폐지시키고 모든 인종이 화해, 화합하는 ‘무지개 정부’를 위해 노력하는 2000년도를 마지막으로 끝맺는다.
하지만 현실은 끝나지 않았다. 역사는 쉽게 발전하지 않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몇몇 흑인들이 부자가 되고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의 수도 줄었지만, 현재에도 소수의 부유한 백인이 대다수의 가난한 흑인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나라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직도 앞을 알 수 없으며 보통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나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어린이, 청소년이 시련을 겪었던 이야기들이 왜 여전히 중요할까? 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과거에 발생한 문제의 근원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현재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데즈먼드 투투 대주교가 이 책의 서문에 쓴 것처럼 ‘우리의 내면에는 짐승이 존재하는데 우리 중 누구도 그런 악행을 범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p.14~15)
어떻게 인류가 이러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어떻게 하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20세기 차별의 기억에 대해 한국의 어린 독자들도 이러한 질문을 던지길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인종 차별을 넘어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는 광범위한 차별에 대한 질문이며, 남아프리카 공화국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곳의, 모두를 위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지은이 베벌리 나이두가 11살 독자에게 받았다는 한 편지의 글처럼 말이다.
“왜 우리들이 지구상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배우지 못하게 하죠? 빨리 배우면 빨리 배울수록 우리는 더욱 영리해지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 강한 의지를 배울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이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에요.”
(작가 홈페이지(http://www.beverleynaidoo.com)에서)
현재의 한국앞서 인도인에게 욕했던 사내는 모욕죄로 약식명령을 받았다. 대한민국에는 아직 인종 차별에 관한 법률이 없다. 다만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인종이나 피부색을 비롯하여 종교, 성적지향,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토록 한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적은 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세 차례 제정 시도를 하였으나 각계의 반발로 아직까지 통과하지 못한 상태이다. 『차별의 기억』에 나오는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오래된 명언에 우리의 생얼은 여전히 비춰지고 있다.
“우분투 웅구문투 응가반예 아반투Ubuntu ungumuntu ngabanye abantu.
(한 부족은 다른 부족을 통해서 하나의 부족이 된다.)”
이 말은 우리가 남을 대하는 방식대로 우리의 모습을 띠게 된다는 뜻이다.
작가 인터뷰 - 베벌리 나이두Beverley Naidoo (1943~ )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관련된 장편/단편 소설이 많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 때문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오랫동안 병든 사회였습니다. 정의는 사라지고 불평등과 독재가 가득한 사회였습니다. 오직 백인들만이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모든 것을 피부색에 따라 결정을 내렸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1880년대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주석 광산이 문을 닫고 금이 발견되었던 시기에 영국 콘월에서 이민을 왔습니다. 나의 어머니의 가족들은 러시아에서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영국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나의 조부모님들은 모두 이민 온 즉시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살아온 흑인들보다 훨씬 더 많은 권리를 누렸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편안한 집에서 사는 것, 학교에 가는 것, 공원에서 노는 것 등 흑인 아이들이 자유스럽게 할 수 없는 모든 종류의 일을 누리는 것에 대한 의문이 없었습니다. 내가 받은 교육을 통해서 나는 백인들이 우수하고 모든 면에서 최고라는 것에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잘못된 것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 나를 둘러싼 이 모든 불공평함에 극심한 분노를 느꼈습니다. 내가 그 편견 속의 일부였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입니다. 나는 그때까지 장님과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훗날 내가 글쓰기를 막 시작했을 무렵, 이러한 편견과 잘못을 파악해 고쳐나갈 수 있는 글을 쓰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⑵ 무엇 때문에 당신의 인식이 바뀌었나요?
운이 좋게도 내가 대학을 다닐 때 나의 시야를 넓혀주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1960년대 초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활동을 금지 당했고 넬슨 만델라는 체포되기 전까지 아파르트헤이트 반대의 무력 저항을 시도했습니다. 나는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운동에 참여했고, 이로 인해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21살 때 독방에서 보낸 8주간의 감옥 생활은 이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자체가 거대한 감옥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나는 어항 속에 갇힌 작은 물고기였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오랜 기간 수감되었거나 심지어 신념 때문에 죽은 많은 사람들의 막대한 헌신을 매우 잘 알게 되었습니다.
⑶ 작가님이 쓰는 내용은 사실에 기초한 것인가요?
소설 쓰기는 현실에 대해 탐험하는 데 굉장히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다양한 시각에 대해서 연구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쓰기 전에 내가 창조하는 이야기와 주인공의 성격에 대해 굉장히 많은 조사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진실입니다. 그것이 『요하네스버그 가는 길』의 첫 부분에서 엄마를 찾기 위해 놀라운 여행을 했던 실제 두 소년에 관한 두 개의 기사가 같이 실렸던 이유입니다.
또한 『차별의 기억』(여기에는 시기를 달리하는 단편들이 실려 있습니다.)의 마지막 부분에는 실제 사건들이 일어난 순서대로 표기된 연대표가 있어 호기심이 많은 독자들은 각 단편들과 연대표의 사건들을 연결시킬 수 있을 겁니다.
⑷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하는 것을 즐기시나요?
나는 자료 조사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종종 증거를 따라가다 보면 탐정이 된 것같이 느껴져서 재밌습니다. 새로운 정보, 신선한 아이디어, 느낌, 다양한 시각들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일입니다. 『고난의 사슬』을 집필할 때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내에서만 조사 활동을 해야 했습니다. 마치 역사에 관한 소설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관련된 많은 소재를 몰래 빼내어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갈 수 없다』를 집필할 때는 직접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1993년 여름, 영화감독이자 친구인 Olusola Oyeleye와 많은 드라마를 만들고 강연회에 관련된 내용의 글을 썼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과 경험, 생각들을 지닌 거리의 청소년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나는 훌륭한 교육자인 Martha Mokgoko에게 가출한 아이의 엄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알렉산드라(요하네스버그 근교의 나의 주인공 Sipho가 가출했던 곳)에 있는 Speak Barefoot Teachers 모임에서 운영하는 강연회를 위한 조사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들려요? 나이지리아』를 집필할 때는 런던에서 여러 달 동안 머무르면서 난민들의 실태를 연구, 조사 활동을 했습니다.
⑸ 어떤 방법으로 소설을 쓰시나요?
처음 시작은 소재에 관련한 기사를 보고 공책에 메모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조사를 할 때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 장소를 방문하고, 사진을 찍고, 관련 기사들을 읽어 보는 등의 작업을 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줄거리를 짜봅니다. 비록 줄거리가 실제 원고를 쓸 때 조금씩 바뀔 수도 있지만 전체 이야기의 형태와 그것을 어떻게 말할지에 대한 틀을 잡는 역할로서 중요합니다. 그 이후 실제 글을 쓸 때는 그림을 그릴 때 밑그림을 그리듯 계속 여러 방향으로 밑그림을 그려 봅니다. 그리고 담당 편집자와 같이 편집을 합니다. 나는 종종 자료 조사를 하면서 얘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읽고 조언을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은 내가 쓰고자 하는 방향과 실제 쓰고 있는 이야기 사이의 간격을 재어 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모든 일은 길고 느린 과정이지만 마지막에는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게 된답니다.
⑹ 각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때때로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편지를 받기도 하고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느낀 점을 나에게 개인적으로 말하길 원하는 독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나의 글쓰기가 가장 보람찼던 경우는 11살짜리 아이에게서 불공평과 아이들에 관한 질문으로 가득 찬 장문의 편지를 받았을 때 ‘나의 글쓰기가 정말 감동적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 아이는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길』같은 책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금지되었다는 것에 대해 분개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왜 우리들이 지구상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배우지 못하게 하죠? 빨리 배우면 빨리 배울수록 우리는 더욱 영리해지고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을 강한 의지를 배울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이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에요.”
- 작가 홈페이지(http://www.beverleynaidoo.com)에서 발췌
“난 그 백인에게 우리 할아버지가 유럽에서 오셨다고 말했지. 하지만 그 사람은 증거가 있냐는 거야. 그래서 당시에는 서류를 보관하지 않았다고 대답했어. 그랬더니 그가 묻더군. ‘커피에 우유를 타면 어떻게 되나?’ 나는 대답했지. ‘색깔은 바뀌지만 그건 그대로 커피입니다.’ 그가 말하더군. ‘그래. 그건 그대로 커피인 거야. 그리고 당신도 마찬가지야.’ 그러더니 나한테 이 서류 쪼가리만 주고는 그냥 날 내보냈어.”
“언젠가, 꼬마 릴리야, 언젠가. 우리가 자유를 얻으면 그때 너랑 나랑 공원에 함께 가자꾸나.”
나는 그 ‘언제’가 도대체 언제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맥스 아저씨와 제니,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모두 믿는다면 나도 믿으려고 애써 보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