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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바람의아이들 | 청소년 | 201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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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반올림 시리즈 30권. 스무 살을 목전에 두고 서성이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단편 소설집이다. 여전히 앞날은 불분명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명확하지 않고, 지금 잘하고 있는지 시시때때로 불안한 상태의 아이들. 그것은 대학에 입학하든 재수를 하든 마찬가지인데, 이 점은 표제작인 「정체」가 가장 잘 보여준다.

대학생으로서 남 보기에는 모범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주인공은 도서관에 가려고 나섰던 길에 지하철 정체 때문에 뜻밖에 ‘잉여’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전공책을 무릎에 올려두고 자신이 금방 늙어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떠는 주인공. 가장 싱그럽고 활기차야 할 시기에 노인이 되는 악몽에 시달리다니.

주인공은 우연찮게 김밥 장수 아주머니의 심부름을 하면서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에서 낯선 일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문득, ‘정체’가 두 가지 뜻을 가진 낱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헤매는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출판사 리뷰

뜻밖에 찾아온 잉여의 시간,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인생에서 고등학교 졸업 즈음의 시간은 대개 극적이다.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어엿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축제이고 어찌 보면 공포니까. 황홀한 자유에 도취되거나 목적 상실로 휘청이거나. 이제껏 거의 비슷비슷한 생활을 하던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져 저마다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누구는 부모의 곁을 떠나 진짜 독립을 이루고, 누구는 진짜 사랑을 시작하고, 누구는 운전면허를 딸 것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발밑에 허공이 놓인 것처럼 꼼짝도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성장기 내내 대학 입학만을 유일무이한 목표로 삼아 달려왔던 우리나라의 고3들이라면 더더욱 잘 이해할 만한 허탈함이나 상실감에 시달리는 아이들. 이들은 어딘가로 가긴 가야 하는데, 가야 한다는 것은 잘 아는데,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임태희의 단편집 『정체』는 스무 살을 목전에 두고 서성이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십대 아이들 대부분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삶이 분명해질 것이라 기대하겠지만 사실 만 열여덟, 열아홉 살은 열여섯, 열일곱과 다를 바가 없는 나이이다. 여전히 앞날은 불분명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명확하지 않고, 지금 잘하고 있는지 시시때때로 불안한 상태. 그것은 대학에 입학하든 재수를 하든 마찬가지인데, 이 점은 표제작인 「정체」가 가장 잘 보여준다. 대학생으로서 남 보기에는 모범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주인공은 도서관에 가려고 나섰던 길에 지하철 정체 때문에 뜻밖에 ‘잉여’의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전공책을 무릎에 올려두고 자신이 금방 늙어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떠는 주인공. 가장 싱그럽고 활기차야 할 시기에 노인이 되는 악몽에 시달리다니. 그러나 가장 절정에 오른 청춘이란 그만큼 위태로운 것이기도 해서 쉽게 늙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젊음이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우연찮게 김밥 장수 아주머니의 심부름을 하면서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장소에서 낯선 일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문득, ‘정체’가 두 가지 뜻을 가진 낱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정체’는 본래의 모습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으므로-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헤매는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
주인공이 우연히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은 『정체』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모티프라고 할 만한데 「폭우」에서 보다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정체」에서 보았다시피, 열아홉 살이 되고 대학에 입학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갈 곳을 몰라 헤매고 어정쩡한 상태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수생에게는 그런 방황조차도 호강으로 느껴진다. 폭우 속 버스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상황은 재수생인 ‘나’의 현재 모습과 정확히 일치한다. 버스 안에 머물러 있기도, 폭우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기도 망설여지는 상태. 더구나 뜻하지 않게 대학생으로 오해를 받았다가 모욕감을 느낀 ‘나’는 버스에서 내리고, 폭우 속에서 자신의 대학생활에 대해 푸념하는 여학생에게 소리친다. “나는 재수생이라고!” 재수생이 누군가의 정체성의 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폭발하듯 외치는 순간, 재수생이라는 신분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누군가 재수생이 뭐 어때서, 라고 말해준다면 더더욱.

일시정지, 그리고 다시 출발!
「폭우」에서 뒷이야기를 예상할 수 있듯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고 나면, 누군가에게 털어놓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나면 언제나 한발 나아갈 힘을 얻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가라앉기 쉬운 십대들에게 타인과 만나고 소통하는 일은 중요하다. 「낙원」에서 주인공이 이름도 모르는 같은 학원 수강생과 ‘낙원동’을 찾아 헤매고 다니면서 경험이나 생각의 공유에 대해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 의미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 함께 걷는 일의 즐거움을 아는 것은 가장 중요한 수확이기도 하다.
수능을 치른 주인공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면서 친구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미아」도 인간관계에 대한 허기를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나’는 친한 정도도 다르고, 호감의 정도도 다른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몇 명의 친구가 남게 될까? 그 의문은 불안함에서 오는 것이지만 어쩌면 기대감이기도 하다. 어쩌면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수능이 끝나고 졸업을 하기 전인 잉여의 시간, 열아홉 살의 청춘은 좁은 방 안을 오랫동안 서성이다 마침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내고, 메일을 쓴다.
「미아」에서 그려진 인간관계가 한 개인의 사색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승화」에서는 물리적인 충돌에서 관계가 시작된다. 수시 합격을 해둔 상태로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에게 일상은 매일매일 해야 하는 숙제에 가깝다. 문제는 가게 주인의 조카 민혜가 일을 해보고 싶다며 찾아오면서부터다. 정반대 성격을 가진 주인공과 민혜가 조금씩 조금씩 부대끼다가 빵 하고 터지는 순간, 드라이아이스가 바닥에 쏟아지고 ‘나’는 손바닥을 덴다. 그리고 둘 사이에 놓인 감정은 스르르 사라진다. 드라이아이스를 물에 담가 기화시키는 것처럼. 가게 안이 승화된 드라이아이스로 가득해지고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묘하게도 눈앞이 명확해지고 모든 것을 알 것 같다. 열아홉 살이란 어쩌면 안개 속에서 길을 보는 나이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진행 중인 나이.
사실, 만으로 열여덟, 열아홉 살 무렵은 성인의 영역에 속하는 시간이다. 이 연령대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일반 소설도 부지기수로 많지만 『정체』는 청소년소설의 문제의식으로 이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빛나던 한때로 회상되거나 그땐 어렸었지, 하는 관조의 대상이 되는 대신, 주인공들은 ‘현재진행형’으로 영원히 적응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고, 아무것도 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내고, 쉽게 늙어버릴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정체’라는 단어가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듯이 열아홉 즈음의 청춘도 마찬가지다. 문득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방향을 찾다가 애초부터 지도는 자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청춘의 진짜 정체인 셈이다. 일시 정지, 그리고 출발! 다섯 편의 단편소설은 저마다 두 음절로 된 제목들을 지니고 있는데, 이 제목들은 단편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압축해서 제시해주는 동시에, 『정체』라는 작품집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뭐라 규정될 수 없이 흐릿하고 불안한 청춘의 모습은 이들 제목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의미를 얻게 되는 것이다. 무작정 반항하거나 과하게 일탈하는 인물들을 그린 청소년소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진지하게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인물은 독보적이고 특별하다. 그리하여 『정체』는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은 물론,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 채 대학 입시에 매달려 있는 아이들의 삶에 정확하게 가 닿을, 질문 같은 책이다.

  작가 소개

저자 : 임태희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에서 아동학을 전공했다. 착하고 지혜롭고 밝은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철저히 혼자가 되어서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 기분이 좋을 땐 요리를 산더미처럼 해놓고, 기운이 넘칠 땐 자원봉사를 나간다. 마음이 심란할 때에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거나 통기타를 친다. 지은 책으로 『쥐를 잡자』『길은 뜨겁다』『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등이 있다.

  목차

낙원
미아
승화
정체
폭우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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