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카네기 메달을 수상한 영국 작가 시본 도우드의 소설. 홀리가 보기에 이 세상은 '꼰대'들로 가득 찬 짜증 나는 곳이다. 함께 지내기로 한 위탁 부모도 가식적이고 호들갑만 떠는 사람들이고, 친구들도, 학교생활도 별 재미없이 그저 그렇기만 하다. 엄마를 찾아서 어릴 적 살던 아일랜드로 돌아가기만을 바라던 홀리는 어느 날 서랍 깊숙한 곳에서 매력적인 가발을 발견한다. 가발을 쓴 홀리는 금발의 매력적인 여인으로 변신해 꼰대들의 세상을 탈출하기로 결심하는데…
소설의 키워드는 기억과 페르소나, 그리고 여행이다. 아일랜드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를 만나러 영국 남부를 가로지르는 (홀리의 페르소나인) 솔러스의 거침없는 여정은 아련하고 달콤한 어릴 적 기억과 길 위에 펼쳐진 목가적인 풍경과 여행 중 만나는 인간 군상이 날실과 씨실처럼 쉼 없이 교차하며 정교한 이야기로 엮인다.
출판사 리뷰
1. 기억된 나는 누구인가?
기억의 메커니즘에 관한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기억을 되살릴 때마다 뇌는 뻔뻔스럽게도 현재 상황에 맞춰 멋대로 기억을 재구성하고, 다시 왜곡해서 저장한다. 기억의 불완전함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과거란 현재의 내가 해석해 낸 허구이다.’ 이는 비단 기억뿐만이 아니라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전체를 관통하는 자아와 세계의 해석에 관한 기본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시본 도우드의 소설, 『나는 솔러스』에서는 이 거창한 전제를 무겁지 않게, 그렇지만 정교하게 소설 속에 녹여 냈다. 이 소설은 기억과 페르소나, 그리고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다.
2. ‘꼰대’들의 세상에서 탈출하기
런던에 사는 열네 살 소녀 홀리가 보기에 이 세상은 ‘꼰대’들로 가득 찬 곳이다. 가식적이고 호들갑을 떠는 짜증 나는 사람들. 이들의 세상과 부딪힐 때면 홀리는 머릿속에서 폭탄이 터져서 매트릭스를 팡팡 쳐 대며 분을 삭히곤 한다. 홀리가 얼마 전부터 같이 살고 있는 위탁 부모들도 마찬가지로 백 퍼센트 꼰대들이다. 그는 이들의 세계로부터 빠져나와 엄마가 살고 있는 아일랜드로 가길 꿈꾼다.
홀리는 다섯 살 때 엄마와 헤어졌다. 같이 살던 데니 아저씨의 괴롭힘으로 엄마는 서둘러 아일랜드로 떠나고 사람을 보내 홀리를 데려 오려 했는데 미처 그러기 전에 사회 복지국에서 홀리를 데려간 것이다. 이런 기억을 가진 홀리에게 바다 건너 아일랜드란 엄마와 자신의 출발점이며 푸른 풀들이 우거진 나라이다. 그곳으로 돌아가면 홀리는 댄서였던 엄마와 함께 무대 위에 오를 것이고 두 사람은 단짝이 되어 춤을 출 것이다.
어느 날 홀리는 집에서 가발을 발견한다. 창백한 금빛이지만 은은한 광택이 있는 금발의 가발. 단번에 가발에 사로잡힌 홀리가 그것을 쓰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홀리보다 다섯 살 정도는 더 많고, 끝내주게 영리하며, 멋지고 매력적인 여자. 홀리는 그 여인을 어렸을 적 엄마와 함께 보았던 아름다운 말의 이름인 ‘솔러스(Solace. 위로, 위안)’로 부르기로 한다. 그리고 홀리의 페르소나인 솔러스는, 엄마를 찾아 아일랜드로 떠나는 긴 여정을 시작한다.
3. 길 위의 솔러스
가출을 한 소녀에게 시련은 예정된 것이다. 돈은 일찌감치 떨어져서 유통기한이 다 된 샌드위치를 구걸하고, 잘 곳이 없어 처음 만난 남자에게 이끌려 갔다가 당할 뻔하기도 하며, 무방비 상태로 폭풍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꼴로 아일랜드로 갈 순 없다며 자포자기할 무렵이면 한줄기 햇살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상향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 준 클로이, 신이 마음속에 깃든 것 같은 채식주의자 트럭 기사 필, 자신이 모델 같다고 말해 준 간호사 시안....... 이런 여행의 여러 갈래길에서 솔러스는 점점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게 되고 오래 닫아 두었던 엄마에 대한 기억 서랍도 열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제껏 그려 왔던 기억과 전혀 다른 과거를 직시하게 되는 솔러스....... 과연 솔러스는 자신이 꿈에 그리던 땅을 밟을 수 있을까?
4. 독자의 즐거움
홀리가 여행의 목표로 삼은 것은 엄마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의 달콤하고 아련한 기억이다. 그리움과 아련함을 찾아 떠나는 여정 중에 홀리의 머릿속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친숙함과 낯섦이 정신없이 교차한다. 그렇지만 독자는 오로지 홀리, 혹은 솔러스의 직선 여정을 가만히 뒤따를 뿐이므로 주인공과 거리를 둔 채 감정적 소모가 크지 않은 상태로, 이 영리하고 대범한 소녀가 이번엔 대체 어떻게 난관을 헤쳐 나갈지 예상하며 친숙하고 경쾌하게 읽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홀리의 미래가 빤히 내다보이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독자가 얼핏 전능감에 빠져들게 만드는 이 깔끔하고 쾌적한 거리감이 바로 소설 구성의 트릭으로,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반전의 충격과 감동을 더욱 크게 만든다. 또한 홀리의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사춘기 소녀다운 생동감과, 대조적으로 냉소적인 홀리의 침착한 행동에서 느껴지는 리얼리티는 초록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초여름 영국 남부의 목가적인 풍경과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어우러져 한 편의 잘 만든 로드 무비를 본 듯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두 사람은 그들의 집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분과 나를 위해 마련한 방에 대해 좀 더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 둘 다 마치 동업을 하려는 사람들처럼 나와 악수를 한 다음, 내 방에서 나갔다.
두 사람이 가고 난 뒤에 미코가 와서 내 생각이 어떤지를 물었다.
“꼰대들이에요. 둘 다. 백 퍼센트.”
내가 대답했다.
“어휴, 홀리. 할 말이 그뿐이야?”
미코가 물었다.
“넵.”
“이 일을 계속 추진하고 싶은 거야, 아니야?”
“모르겠음.”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갈색 머리카락을 가발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매혹적인 은빛 금발 머리카락에 솔질을 한 다음, 앞으로 빗어 내리고, 가르마를 똑바로 탔다.
머리 손질을 끝낸 다음, 나는 솔빗을 내려놓고 또 한 번 숨을 돌렸다. 옆에 놓인 전등의 스위치를 켰다. 방의 구석에 그림자가 생겼다. 나는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 속에 그녀가 있었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여자.
그녀는 홀리 호건보다 나이가 다섯 살 더 많고, 끝내주게 영리하며, 진짜 멋지고 매력적인 여자였다.
나는 가발을 쓴 채 나 자신을 A40번 도로 위에 있는 솔러스라고 생각했다.
A40번 도로는 모험을 위한 길이었다. 가발이 저녁 햇살에 반짝였다. 나는 살랑대는 걸음걸이에, 톡톡 쏘는 말투를 지닌 매력적인 여자,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솔러스였다. 나는 노을이 물든 붉은 하늘 속으로 걸어 나가 지나가는 차를 잡아 탈 준비가 되었다. 나는 바다를 건너 아일랜드에 닿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를 만나기 위해 신선한 아침 공기를 잔뜩 마시면서 언덕 위로 걸어 올라갈 것이다. 바다 저쪽 푸른 풀들이 우거진 나라에서 행복하고 편안하게 날을 보낼 것이다. 그날 밤과 그 뒤 몇 주 동안 나는 밤마다 지도를 보면서 길을 따라갔다.
작가 소개
저자 : 시본 도우드
196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고전을 공부하고 그리니치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10여 년 동안 PEN(국제 펜클럽)에서 작가 인권 활동에 몸담았다. 투옥된 작가들의 권리 옹호를 위해 인도네시아와 과테말라 등지를 다니며 억압적인 정권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였다. 1997년부터는 영국 PEN에서 활동하며 감옥, 소년원 등의 소외 계층을 찾아가 다양한 독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04년, 옥스퍼드셔의 아동권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고, 아동 및 청소년을 위한 주목할 만한 네 편의 소설을 발표했다.『나는 솔러스』는 시본 도우드의 네 번째 소설로 2010년 비스토 북 명예상을 수상했다. 그녀의 첫 소설 『스위프트 퓨어 크라이』는 2007년 밴포드 보어즈 상과 엘리스 딜론 상을 수상했다. 두 번째 소설 『런던 아이 미스터리』는 2007년도 NASEN 특수 교육 요구 아동 도서상을 받았으며 2008년 올해의 비스토 북 상을 수상했다. 세 번째 작품인 『그래도 죽지 마』로 2009년 카네기 메달을 수상해, 사후에 카네기 메달을 수상한 첫 작가가 되었다. 이외에도 그녀가 기획한 『몬스터 콜스』도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시본 도우드는 2007년 8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시본 도우드 트러스트(www.siobhandowdtrust.com)’를 설립하여, 책 판매로부터 얻은 수익 전액을 사회적으로 소외된 아동 및 청소년에게 책을 지원하는 데 쓸 것을 유언한다. “아이가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할 수 있으면, 그 아이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