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1980년 5월 어느 날 전국소년체전 광주 합숙소,
네 아이가 바깥출입 금지령을 뚫고 탈출을 시도한다.
그런데 광주 시내에서 맞닥뜨린 건…….
국가 대표를 꿈꾸었던 명수의 달리기를 멈추게 한 5.18 민주화 운동 이야기
그해 오월, 광주의 기억을 깨우다!33년 전, 뜨거웠던 광주의 오월을 불러낸 김해원 작가의 새 장편 동화. 이 책은 연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던 1980년, 전국소년체전 전남 대표 달리기 선수로 뽑혀 광주에서 합숙 생활을 하게 된 열세 살 아이가 5.18 민주화 운동을 맞닥뜨리게 되는 내용을 다룬다.
작가 김해원은 “두렵고 아파서 피하고만 싶었”던 80년 5월 광주의 흔적을 뒤지던 중 5.18 민주화 운동으로 전국소년체전의 개최일이 연기됐다는 기사를 보고, 메달의 꿈을 안고 땀 흘려 훈련했을 한 육상 선수를 주인공으로 불러 올렸다. 실제 당시 국민학생으로, 광주에서 합숙소 생활을 했던 육상 선수를 직접 만나게 되는 행운도 있었다. 《오월의 달리기》는 그렇게 1년여 동안 발로 뛰는 꼼꼼한 취재를 거쳐 탄생했다.
이 책은 5.18 민주화 운동의 핏빛 상처를 강조하기보다, 당시를 살았던 한 아이의 삶을 보여 주는 데 힘을 쏟는다. 국가 대표가 꿈이었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경쟁자인 친구를 이기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평범하디 평범한 아이, 명수의 단란한 일상을 촘촘하게 그린다. 그러기에 명수가 5.18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겪게 되는 절망의 파장은 더 거세게 와 닿는다. 그리고 아이들로 하여금 ‘도대체 이 아이의 삶을 무너뜨린 5.18 민주화 운동은 왜 일어난 거지?’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부록 ‘동화로 역사 읽기’에 5.18 민주화 운동에 관한 정보 글과 사진을 실어, 사건의 배경부터 그 의의까지 충실하게 다루었다. ‘푸른숲 역사 동화’일곱 번째 책으로, 처음 선보이는 현대사 작품이다.
보통 아이의 눈으로 본 5.18 민주화 운동,
현실감 넘치게 표현하다!지금도 5.18 민주화 운동은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중요한 민주화 운동 사례로 초등 교과서에 실렸고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까지 등재됐지만,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5.18을 입력하면 ‘폭동이었다’라는 주장들이 꽤 눈에 띈다. 이렇듯 혼란을 주는 정보를 손쉽게 접하게 되는 아이들에게 5.18 민주화 운동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이 책은 당시를 살았던 어린이의 시선으로 5.18 민주화 운동의 현장을 그리면서 국가 폭력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스러져 갔는지 사실적으로 보여 준다.
호랑이 박 코치의 눈을 피해 과감하게 합숙소 탈출을 시도한 아이들은 광주 시내에서 공수 부대가 잔인하게 사람들을 때리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때만 해도 아이들은 멋지게만 보였던 군인들이 그럴 리 없다며“저 군인들은 우리나라 군인이 아닌갑다. 북한 김일성이가 보낸 인민군이 분명허당께.”(97쪽)라고 하며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우리나라 군인들이 우리나라 국민들을 짓밟고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군인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만화에서 보면 나쁜 로봇을 조종하는 진짜 악당들은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군인들이 악당이 아니라 나쁜 악당한테 조종당하는 것뿐이라고, 마징가 제트 속 악당 헬 박사처럼 군인들을 보낸 악당도 뭘 정복하려는 속셈일 거라고.’(111쪽) 촌철살인 입담을 펼친다.
아이들의 말처럼 1980년 광주는 진짜 악당의 조종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대부분 하루하루 먹고사는 데에만 열심인 사람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이유 없이 죽임당해야 했던 것, 이 책은 그것이 5.18 민주화 운동의 진실이자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을 마주한 아이,
그럼에도 희망의 달리기는 멈추지 않는다!5.18 민주화 항쟁으로 수천 명이 죽거나 다쳤다. 오랫동안 이 사건은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는 금기였고 그들의 망가진 삶은 제대로 치유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운 사람들의 희생은 헛된 일이었을까?
명수는 꿈을 짓밟혔고, 아버지를 잃었다. 하지만 명수는 혼자가 아니었다. 끝까지 명수를 믿고 응원해 준 합숙소 친구들, 아버지 잃은 명수 곁을 든든히 지켜준 박 코치, 광주를 지켜서 아이들이 다시 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시민군으로 나선 미스터 박 아저씨가 있었으니까. 이처럼 작가는 끔찍한 폭력이 휘몰아치는 상황 속에서도 서로 돕고 보듬었던 사람들을 비춘다. 그리고 이들이 있기에 아직 괜찮다고, 달리는 걸 멈추지 말라고 명수를 응원한다.
당시 광주에는 수많은 박 코치, 미스터 박이 있었다.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지키기 위해 서로 도우며 맞서 싸웠던 사람들이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 갔던 광주 시민들의 힘은 아직까지도 위력이 있다. 이후 민주화운동의 불씨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디딤돌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이들을 기억하는 것, 그 일에 명수의 이야기가 보탬이 되길 바란다.
[이 책의 내용]
나주 촌놈, 전남 대표 다크호스가 되다! 전국소년체전 전남 대표 선수를 뽑는 경기에 출전한 나주 사평국민학교 오 학년생 명수. 난다 긴다 하는 달리기 선수들 사이에서 이등을 차지해 대표 선수 자격을 얻는다. 첫 출전에 이등이라니, 명수는 어깨가 으쓱하다. ‘다크호스’라는 별명도 얻었다. 할머니도, 엄마도 명수를 자랑스러워 한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랬냐이.”하고 말 뿐이다. 명수는 다크호스의 힘을 보여 주겠다 결심한다.
그리고 그토록 고대하던 합숙소 입소 날, 대표 선발전에서 명수를 누르고 일등을 차지했던 정태와 딱 마주친다. 그런데 걸핏하면 정태는 명수에게 시비다. 명수는 기필코 정태를 이겨 보이겠다고 결심한다.
명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정태처럼 자기도 국가대표가 된다고 말하지 못한 게 속상했다. 명수는 반성문을 쓰면서 마지막 줄에 적었다. 다시는 규칙을 어기지 않을 것이며, 이번 소년체전에 나가 메달을 따서 국가 대표가 되겠다고. 명수는 달리기 선수가 되는 걸 못마땅해하는 아버지도 국가 대표가 되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뿌듯해졌다. 56쪽
지옥 훈련장에서 탈출해 맞닥뜨린 건?매일매일 고된 훈련의 연속이다. 명수는 악을 쓰며 연습에 전력하지만, 정태의 벽은 높기만 하다. 어느 날, 명수는 훈련장인 무등경기장으로 가던 길에 리어카와 부딪혀 엎어져 있는 아버지를 본다. 불편한 다리로 시계 수리 도구들을 주섬주섬 줍는 아버지가 창피한 명수는 애써 못 본 체한다. 명수는 국가 대표가 되겠다는 아들이나, 나중에 시계방 내서 번듯하게 살겠다고 하는 아버지나, 이루지 못할 꿈만 꾸는 것 같다는 생각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그런데 고되기만 하던 합숙소 생활에 뜻밖의 이벤트가 생긴다. 한방 친구인 진규가 합숙소를 탈출할 계획을 짠 것! 하지만 재밌는 구경거리로 가득할 줄 알았던 광주 시내는 대학생 시위대와 군인들, 그리고 매캐한 최루탄 냄새로 가득하다.
“대학생들이 또 데모허는갑네. 워째 매캐헌 냄새가 난다 혔더니…….”
“데모가 뭐다요?”
성일이는 모여 있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긍께 대학생들이 나라가 잘못됐다고 시내에 돌아댕기믄서 막 경찰들하고 싸우고 그라는 거제. 허라는 공부들은 안 허고들…….”82~83쪽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합숙소 육호 방 사총사는 호기심에 멋모르고 시위대를 따라갔다가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한다. 군인들이 대학생들을 곤봉으로 마구 때리고, 지켜보던 아저씨까지 발길질해댔던 것이다. 이를 본 아이들은 잔뜩 겁에 질려 도망친다. 그리고 몸을 피하기 위해 어느 건물 당구장에 들어갔다가 더욱 끔찍한 광경을 맞닥뜨린다. 군인이 그곳에 숨어 들어온 시위대 학생의 머리를 내리쳐 시뻘건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말리려고 한마디 한 아저씨들을 군홧발로 차고, 곤봉으로 후려치는 것을.
곧, 전국소년체전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리고 아버지 친구가 합숙소로 찾아와 눈시울을 붉히며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명수야……. 아부지가 돌아가셨다.”
명수는 박 코치의 갈라진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아저씨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명수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얼른 손등으로 훔쳤다.
“비슷헌 사람을 잘못 본 걸 수도 있잖어라! 아재, 군인들이 길을 막았담서요. 우리 아버지도 못 왔을 텐디. 아재!” 126쪽
육호 방 사총사의 마지막 작전명수는 박 코치와 아저씨를 따라 아버지가 잠들어 있다는 곳으로 간다. 흰 천이 넘실거리는 커다란 방 한곳에 아버지가 있었다. 울부짖고 통곡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명수는 울다 지쳐 쓰러진다. 깨어 보니 합숙소. 명수는 집에 가서 아버지의 죽음을 알려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박 코치는 집에 가겠다는 명수 말에 펄펄 뛴다. 그때 명수 소식을 듣고 온 진규와 정태. 다시 모인 사총사는 마지막 작전을 짠다. 박 코치와 군인들 눈을 피해 나주로 명수 아버지 죽음을 알리러 가는 작전을.
“시외에 군인들이 쫙 깔렸다는디……. 비도 올 것 같은디……. 느그들헌티 길 안내를 시켜서…….”
“음마, 야 좀 봐라. 우리가 니 꼬붕이여? 시켜서 허게. 이건 순전히 자발적인 것이랑께. 성일이가 그랬잖냐. 우정이 깜깜헌 밤을 밝힌다.” 144쪽
명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정태처럼 자기도 국가대표가 된다고 말하지 못한 게 속상했다. 명수는 반성문을 쓰면서 마지막 줄에 적었다. 다시는 규칙을 어기지 않을 것이며, 이번 소년체전에 나가 메달을 따서 국가 대표가 되겠다고. 명수는 달리기 선수가 되는 걸 못마땅해하는 아버지도 국가 대표가 되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뿌듯해졌다.
“대학생들이 또 데모허는갑네. 워째 매캐헌 냄새가 난다 혔더니…….”
“데모가 뭐다요?”
성일이는 모여 있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긍께 대학생들이 나라가 잘못됐다고 시내에 돌아댕기믄서 막 경찰들하고 싸우고 그라는 거제. 허라는 공부들은 안 허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