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내 비밀의 온도는 몇 도일까?”
다섯 개의 시선이 빠르게 교차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장편소설《열다섯, 비밀의 온도》는 다섯 명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빠르게 교차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다. 각 장을 이끌어가는 화자가 계속 바뀌는, 이 소설만의 독특한 이야기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손에서 한순간도 책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선사한다.
일교, 예슬, 재욱, 하은 그리고 강민이 장마다 교차하며 등장해 일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의 형식은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등장인물의 성격과 말투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문체는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첫 번째 시선_서일교
“괴물과 싸우는 동안 나도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아버지는 실직 후 술만 마시면 엄마와 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어김없이 아버지의 주먹이 날아들던 날, 참다못한 나는 아버지를 힘껏 밀쳤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용기가 없어서 집 밖으로 도망쳤다. 길거리를 방황하다가 호야와 마주쳤고, 어쩌다 보니 내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다. 호야가 사라지고 난 뒤, 이재욱하고 사소한 시비가 붙었다. 그리고 홧김에 이재욱을 때렸다. 그런데 그 순간, 공포에 떠는 그 아이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아버지를 죽도록 미워하는 나를…
두 번째 시선_심예슬
“앞으로는 절대 당하지 않을 거야. 다른 누군가를 짓밟아서라도.”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 도둑 누명을 썼다. 나는 결백했고, 억울했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반에서 왕따를 당했고, 결국 신기중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 후로 나는 힘의 논리를 맹신하게 되었다. ‘억울한 누명을 쓴 건 내가 약하고 만만해서야.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 왕따로 지목된 아이를 앞장서서 괴롭혔다. 그래야 내가 왕따가 되는 일이 없을 테니까. 다시는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느 날 호야가 불쑥, 내 곁으로 다가왔다.
세 번째 시선_이재욱
“나의 네잎클로버는 어디로 갔을까.”나는 신기중학교 2학년 2반 대표 왕따다. 별명은 ‘제육볶음’. 나는 원래 친구도 많고, 밝은 아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점점 살이 쪘고, 놀릴 거리는 더욱 풍성해졌다. 하지만 호야 덕분에 처음으로 나도 잘하는 게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어쩌면 나에게도 친구들이 생길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호야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네 번째 시선_염하은
“빛나지 않아도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나는 길거리 캐스팅으로 아이돌 연습생이 된 신기중학교 여신 염하은이다. 남들이 볼 때는 화려한 일상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초등학생 때부터 차곡차곡 아이돌 데뷔 준비를 해 온 연습생들,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연습생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비굴하고 초라한 모습을 호야에게 들키고 말았다. 호야는 내 비밀을 지켜줄까?
그리고 다섯 번째 시선_김강민
“친절이란 사악한 의도를 숨기기 위한 가면일 뿐이야.”나는 잘 안다.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은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친절은 본래의 의도를 숨기기 위한 가면일 뿐이다. 호야가 딱 그런 애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속아 넘어간다. 나는 호야의 가면을 벗겨 내고, 그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내 줄 거다. 그게 내게 주어진 임무다. 나는 누군가를 믿고, 그 믿음 때문에 상처받는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임시 담임, 조민정 선생님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왜지?
어느 날, 호야가 사라졌다. 다섯 개의 비밀을 간직한 채…
‘호야 실종 사건’을 통해 우정과 연대를 발견하는 성장소설《열다섯, 비밀의 온도》는 기간제 교사 조민정 선생님이 2학년 2반 임시 담임으로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조민정 선생님은 한호연(학교에서는 모두 호야라고 부름)이라는 학생이 한동안 학교에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반 아이 누구도 호야가 왜 학교에 오지 않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조민정 선생님은 반장 강민이와 호야네 집 가정방문을 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일교, 예슬, 재욱, 하은 그리고 강민이는 호야가 왜 학교에 오지 않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호야가 하은이에게 내 비밀을 말한 거라고. 그래서 그런 거였다. 다시 왕따로 돌아가기는 죽기보다 싫었으니까. 놀이터에서 호야와 둘이서만 나눈 이야기를 엿들은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호야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본문 중에서)
호야의 생일날 나무놀이터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 때문에 호야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호야는 아이들의 비밀을 알고 있고, 아이들은 호야가 사라진 이유를 알고 있다. 과연 그날, 나무놀이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리고 아이들이 그토록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은 무엇일까?
이 소설을 쓴 이진미 작가는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다. 개발의 소용돌이가 비껴간 수도권 변두리에 위치한 중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을 보며 작가는 《열다섯, 비밀의 온도》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수행 평가로 쓰게 한 아이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열다섯 해밖에 안 된 생이 이리도 파란만장한가 싶은 생각에 먹먹했기 때문이다. 어른들 탓에 마땅히 누려야 할 보호와 사랑을 송두리째 빼앗긴 아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신뢰와 타인의 선의를 받아들일 여유 따위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받지 못한 보호와 사랑을 아이들끼리라도 서로 주고받으며, 우정과 연대를 통해 희망을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 소설에 담았다.
“아이들이 저희끼리도 단단한 관계를 맺지 못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래도 당장의 필요에 따라 쉽게 뭉쳤다가는 곧 찢어지고 마는, 얄팍하기 그지없는 그네들의 우정은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어 른들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서로 주고받으며 팍팍한 삶을 아름답고 따스하게 꽃피우기를 감히 바랐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불쏘시개가 되어 그들의 마음에 따듯한 사랑의 불을 지피고 싶었습니다.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호야는 제가 되고 싶었지만 끝내 되지 못한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호야 실종 사건’을 통해 아이들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비밀이 차츰 드러난다. 어떤 비밀은 화가 치밀어 오르고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뜨겁다. 또 어떤 비밀은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서늘하다. 이 아이들은 각자 안고 있는 비밀과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라진 호야를 찾을 수 있을까?
《열다섯, 비밀의 온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호야는 한 번도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드러날 뿐이다. 호야는 실제 인물일 수도, 아이들의 바람일 수도, 작가가 되고 싶었던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호야 실종 사건’으로 일교, 예슬, 하은, 재욱이 서로를 이해하고, 진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청소년 독자들이 우정과 연대의 힘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내가 터득한 비결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센 척이다. 아무리 중학교가 약육강식으로 굴러간다 해도 실제로 주먹질까지 하며 싸우는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다. 여자애들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그래서 ‘센 척’에서 중요한 건 힘이나 싸움 기술이 아니라 ‘깡’이다.
‘난 무서울 게 없어. 건드리기만 해 봐. 가만 안 둘 거야!’라고 온몸으로 보여주는 거다. 이때 가장 필요한 건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기술이다. 눈으로 맞붙었을 때 먼저 눈길을 피하면 절대로 안 된다. 상대가 누구든 끝까지 쏘아보아야 한다. 거기에 커다란 목청으로 차진 욕까지 더해 주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 아무도 나를 만만히 보지 못하게 된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반장이 되기로. 그 아이가 퍼뜨린 씨앗이 엄청난 토네이도가 되어 온 학교를 휩쓸어 버리기 전에 내가 나서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왜 하필 나여야 하느냐고? 보통 사람들에겐 순진한 얼굴 뒤에 숨은 악의 정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르다. 지난 시절의 불운이 비록 내게 깊은 생채기를 남기긴 했지만, 덕분에 확실히 얻은 것도 있다. 친절함으로 눈속임을 하려 들면 남들은 다 속을지 몰라도 나에겐 어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