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달리고 헤엄을 치고, 웃으며 손깍지를 껴본다. 서로 겹쳐져 또 다른 색을 만들어내는 물감들을 상상하며, 꽃을 한 송이 두 송이 꺽어본다. 그리고 화환을 만든다. 삶은 놀이이다. 하얀 구름, 분홍색 코트, 생은 작은 손. 저 높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 탱고. 노래. 리듬. 삶은 언어다. 언어는 유리와 마른 나무판, 그리고 풀로 만들어져 있다. 나는 아침으로 곷다발을 먹는다...
--- 본문 중에서(p.31)
노르웨이 최고 권위의 \'브라게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생후 7개월에 노르웨이에 입양되었던 한국 출신 작가 쉰네 순 뢰에스의 장편소설이다.
정신 질환의 문턱을 넘나들다 정상적인 삶을 되찾은 17세 소녀 ‘미아’가 경험한 세 계절 동안의 외면적, 내면적 변화(가을 > 겨울 > 봄)를 그려내고 있다. 십대 소녀의 혼란스러운 감성과 불안감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기법을 택하고 있어, 무질서한 느낌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꾸밈없는 솔직함으로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듯 끝없이 펼쳐지는 주인공의 사유.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읊조리는 화자의 이야기는 언뜻 단조로운 문장의 나열로 보이지만, 티 없이 맑은 시어의 색깔을 담고 있다. 마구 샘솟는 생각과 감정, 분절된 문장들이 주인공 ‘미아’의 혼란한 정신을 대변하듯 펼쳐지며, 읽는 이들로 하여금 \'미아\'의 몰아치듯 혼란한 감정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출판사 리뷰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해가는 가을, 겨울, 봄의 여정!
소설은 가을과 겨울, 봄이라는 계절의 흐름에 맞추어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
각 계절의 분위기가 암시하듯 ‘가을’은 서서히 쇠락의 길로 빠져드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영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가을 속, 1에서 55로 나누어지는 작은 장(章)의 모든 문장들은 행갈이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며, 분량 또한 한 줄에서 네 페이지가 넘는 자유로운 형식을 취한다.
가을, 정신병원에 들어온 17세 소녀 미아는 자신이 왜 병원에 있어야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조울증 진단을 받았기 때문에 당분간 그러한 상태로 지내야 한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신병원 안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양팔에 자해를 멈추지 않는 천사 얀네, 위험한 주부 그레타, 조발성 치매 환자 맛스 등) 그리고 결국엔 화해해야 할 가족들(아버지와 새어머니, 큰 힘이 되어주는 이복 오빠 스티븐, 현명한 어머니 등), 언제나 그녀를 지켜주는 친구들(마음을 나눈 친구인 연극배우 베로니카, 흑인 남자친구 펠레 등)과의 관계를 통해 미아는 서서히 세상 밖으로 나오고 말 것이다. 새로운 비상을 꿈꾸며…….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겨울’은 춥고 어두운 계절의 특성처럼 끝도 없이 바닥으로 추락한 주인공 미아의 절망적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뒤죽박죽된 감정의 덩어리처럼 짧은 언어의 나열이 그대로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정리된 문장으로 바뀌는 일곱 개의 작은 챕터는 미아의 감정 상태가 드디어 호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한 장의 그림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겨울 부분은 전체가 한 장의 그림처럼 묘사되어 있다. 주인공이 입원해 있는 병실의 4차원적 공간을 ‘그림’이라는 사각의 2차원 프레임에 담아 그림 속 인물처럼 무기력한 상태에 처한 화자를 표현했다. 독자들은 그림 감상하듯 병실의 미아를 들여다보며 신마저 외면하고 만 최악의 상황과 마주한다.
마지막 ‘봄’에서는 서서히 생의 의지를 찾아가는 미아의 심리 상태를 순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각 문장은 충분한 행갈이를 통해 여유를 가지며, 미아의 복잡한 심리 또한 이전보다 분명해진다. 물론 중간중간 위기는 찾아오지만, 결국 아침 햇살 아래 핀 들꽃을 입가에 가져다대는 미아의 모습을 끝으로 세상과 화해하는 한 인물의 여정은 막을 내린다.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폭발 속에서도 시니컬한 유머를 발산하는 미아의 모습, 소설 속 배경처럼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을 맞이하듯 깊은 감정의 수렁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미아의 성장 속에 독자들도 결국엔 삶을 긍정하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저자 : 쉰네 순 뢰에스
한국 이름 지선(池善).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생후 7개월이 되었을 때 쌍둥이인 오빠와 함께 노르웨이로 입양되었다. 4년 동안 정신병동 간호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2002년 장편소설 『아침으로 꽃다발 먹기 A spise blomster til frokost』를 발표, 그해 노르웨이 도서상 재단이 수여하는 브라게(Brage)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요코는 홀로 Yoko er alene』(1999)가 있다. 현재 베르겐에서 의료경영과 의학경제를 전공하며 셋째 작품을 집필중이다.
역자 : 손화수
한국외국어대 영어과와 무역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98년 노르웨이로 이주해서, 현재 스칸디나비아 문학사 과정을 이수중이다. 옮긴 작품으로는『Til Musikken(음악 속으로)』『Sirkelens Ende(순환의 종말)』『Ærlighetsminuttet(정직의 시간)』『Naive, Super(나이브, 수퍼)』등이 있으며, 곧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