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푸른도서관 시리즈 53권. 강제 이주 정책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게 된 17만여 명의 까레이스키들의 고난과 역경, 도전과 설움을 절절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나락 같은 상황에서도 결코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까레이스키 소녀 안동화의 모습은 우리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아무 이유 없이 소련 사람들에게 붙잡혀 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까레이스키 동화네 가족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오른다. 짐짝처럼 가축 운반용 차량에 실린 까레이스키들은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40여 일을 달려 도착한 곳은 허허벌판의 우슈토베 지방. 이곳에서 까레이스키들은 오직 생존을 위해 추위와 굶주림, 늑대와 질병에 맞선다. 그리고 불굴의 의지와 타고난 성실함으로 척박한 땅을 일구어 논밭을 만들고 서서히 새로운 정착지에서 인간다운 삶을 되찾아 간다.
그러나 유럽의 이주민들이 유입되면서 정착지에는 새로운 긴장감이 감돌고, 까레이스키들의 놀라운 농사 기술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소련은 집단 농장 제도를 강요하며 위협한다. 동화는 아버지의 소식을 얻기 위해 유랑 극단을 쫓아 러시아 전역을 여행하기도 하고, 노력영웅이 되기 위해 고된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데….
출판사 리뷰
까레이스키, 그들은 누구이며 여전히 잊혀진 존재로 남아 있을까?
-『에네껜 아이들』의 문영숙 작가가 선보이는 신작
우리에게 8월 15일이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라면, 구소련 사람들에게는 ‘빅토르 최’라는 슈퍼스타의 죽음을 애도하는 날로 기억되고 있다. 구소련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전설적인 록 그룹 ‘키노’의 리더였던 빅토르 최는 '혈액형',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는데 그의 노래는 자유와 저항 정신을 담고 있어 큰 인기를 얻었다. ‘20세기 위대한 러시아 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으니 구소련 대중문화에서 그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빅토르 최는 까레이스키 아버지와 러시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까레이스키 3세였다. 1980년대 이미 구소련의 대중문화를 주도한 인물이 우리 민족이었던 것이니 ‘한류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려인이라고도 불리는 까레이스키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대를 전후하여 연해주, 우수리스크, 수찬 등 러시아 여러 곳에 자리를 잡은 우리 민족이다. 하지만 까레이스키들은 지금 현재까지도 잊혀진 채 커다란 한을 가슴에 품고 떠도는 소수 민족으로 치부되고 있다. 특히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많은 까레이스키가 국적을 잃고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었다. 현재도 까레이스키 2, 3세들은 타국에서 차별과 배척을 당하며 방랑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에네껜 아이들』(푸른책들, 2009), 『무덤 속의 그림』(문학동네어린이, 2005),『검은 바다』(문학동네어린이, 2010) 등을 펴내며 잊지 말아야 할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아동청소년 독자들에게 꾸준히 선사해 온 문영숙 작가가 이번에 신작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을 내놓았다. 문영숙 작가는 역사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일을 작가의 소명으로 여길 만큼 우리 민족의 굴곡진 근대사를 그리는 데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왔다. 게다가 『에네껜 아이들』에 실은 작가의 말을 통해 이미 까레이스키들의 아픔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은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게 된 17만여 명의 까레이스키들의 고난과 역경, 도전과 설움이 절절하게 그려지고 있다. 또한 나락 같은 상황에서도 결코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까레이스키 소녀 안동화의 모습은 우리에게 벅찬 감동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이제는 우리가 까레이스키들의 아픔을 껴안아야 할 때
소련 사람들에게 붙잡혀 간 아버지를 기다리던 동화네 가족은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오른다. 그러나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40여 일을 달려 도착한 곳은 집 한 채,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의 우슈토베 지방이었다. 추위와 기아, 늑대의 공격과 질병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동화는 친지들과 함께 척박한 땅을 일구어 논밭을 만들고 벽돌집을 짓는다. 그리고 아버지의 소식을 얻기 위해 극단을 쫓아 러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는가 하면, 노력영웅이 되기 위해 고된 노동을 견딘다. 과연 까레이스키 동화는 아버지를 만나 쓰라린 방랑을 마칠 수 있을까?
당시 일본과 적대 관계였던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은 까레이스키가 일본의 첩자 노릇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고 민족 탄압의 일환으로 17만여 명의 까레이스키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이주는 약 2만 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진행되었다. 하지만 까레이스키들은 민족 특유의 근면과 성실함, 인내와 끈기로 벼농사가 불가능했던 중앙아시아의 불모지를 옥토로 바꿔 놓았다. 생활이 안정되자 다양한 분야와 지역으로의 사회 진출도 늘어났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은 까레이스키의 위상을 한껏 높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모국을 향한 그리움도 커져 갔다. 그렇게 까레이스키와 그 후손들의 안타까운 방랑이 끝을 맺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위성 국가들은 다른 민족을 차별하고 박해했다. 까레이스키들은 국적을 잃었고, 모국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어느 품으로도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고 한류 열풍으로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들었지만, 까레이스키의 후손들은 제대로 병원 치료도 받지 못하고 취직도 할 수 없으며 영양실조의 괴로움과 잊히고 버림받았다는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67주년 광복절을 맞은 지금, 문영숙 작가는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을 통해 우리가 까레이스키의 후손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고 껴안아 주어야 할 때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또한 이들이 누구이며 어떤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지 때로는 적나라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보여 준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우리 역사의 숨겨진 부분, 잊지 말아야 할 과거를 선사한다. 그리고 전쟁과 광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잃어서는 안 될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의식을 되새기게 만든다.
나는 엄마를 바짝 그러안고 엄마 입에 쌀물을 흘려 넣었다. 엄마의 치마는 불그스름한 핏물이 젖어 있었다. 엄마의 치마를 스칠 때마다 서걱서걱 소리가 났다. 핏물로 얼룩진 치마가 얼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나는 엄마의 발아래로 흐르는 피를 닦지도 못하고 엉엉 울기만 했다. 엄마의 차디찬 몸이 얼까 봐 자꾸만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칼바람이 사정없이 가치 안으로 쳐들어왔다. 땔감이 충분치 않아 새벽엔 솥에 피운 불씨마저 꺼져 버렸다. 함흥댁은 열이 펄펄 끓는 아기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밤새 기침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잠결에 너무 추워 나도 모르게 엄마 품으로 파고들 때였다. 순간 느낌이 섬뜩했다. 엄마는 마치 얼음덩이처럼 차디찼다. 얼른 엄마의 가슴에 얼굴을 댔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머릿결이 곤두선 채 비명을 질렀다.
“얼어 죽으라는 것보다 더 기가 막히오. 차라리 기차 안이 낫소. 얼음 구덩이에 내려놓고 죽으라는 것이지. 이런 곳에서 어떻게 한겨울 추위를 이겨 내겠소? 당장 어디에 짐을 부릴 곳도 없소. 지친 몸을 의지할 곳도 없으니 오늘 저녁도 못 넘기고 모두 얼어 죽을 거요.”
홍장군도 할아버지를 거들었다.
“죽어 묻힐 구덩이라도 찾아가야 하오. 황량한 이 칼바람에 얼마나 견디겠습니까? 마누가 있나 바위가 있나, 사방팔방 바람막이는커녕 아무것도 없으니 눈집이라도 지어야지요. 이대로 서 있다가는 동태처럼 얼어요.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않소. 저기 보이는 언덕까지 가서 언덕 밑에 눈집을 지읍시다. 그래야 바람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어요. 자, 어서 움직입시다.”
스탈린이 죽은 지 3년이 흐른 어느 날, 내무인민위원이 찾아와 이주를 당할 때 빼앗아 갔던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의 공민증을 돌려주었다. 까레이스키들의 유형 기간은 이미 1948년에 끝났기 때문에 공민증을 돌려준다고 했다. 유형 기간이 끝나고도 8년이나 지난 1956년에서야 공민증을 되돌려 받으며 우리는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 기가 막혔다.
“그럼 왜 이제서 이걸 돌려줍니까? 1948년에 돌려줬더라면 연해주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유형 기간이 끝난 건 고사하고 벌써 이주를 당한 지 햇수로 20여 년이나 흘렀어요. 지금은 아이들도 태어나 학교에 다니고 있고 이제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는데, 왜 이제서 이걸……!”
작가 소개
저자 : 문영숙
1953년 충남 서산 출생. 2004년 제2회 '푸른문학상'과 2005년 제6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12년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잊지 말아야 할 우리 민족의 역사를 어린 독자들에게 알리는 소설을 주로 쓰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청소년 역사소설 《에네껜 아이들》,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독립운동가 최재형》, 《글뤽 아우프: 독일로 간 광부》, 장편동화 《무덤 속의 그림》, 《검은 바다》, 《궁녀 학이》, 《색동저고리》, 《아기가 된 할아버지》, 《개성빵》, 《벽란도의 비밀청자》 등이 있다. 장편소설 《꽃제비 영대》는 영어와 독일어로도 출간되었다.
목차
프롤로그
1. 붉은 명령서
2. 아버지
3. 시베리아 횡단 열차
4. 엉뚱한 기차간
5. 소년 밀정
6. 칼바람
7. 엄마
8. 얼어 죽은 사람들
9. 반항자
10. 우슈토베
11. 카자흐 사람
12. 늑대의 습격
13. 할아버지
14. 무덤의 언덕
15. 씨앗 도둑
16. 적성이민족
17. 민혁 오빠를 만나다
18. 노력영웅
19. 누명
20. 시베리아 수용소
21. 종이 한 장으로 돌아온 아버지
에필로그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