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푸른도서관 시리즈 52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꽃다운 처녀 시절을 유린당한 황금주 할머니의 실제 이야기를 김은비라는 열두 살 소녀의 이야기와 엮어 액자 형식으로 쓴 장편소설이다.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가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혀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다시 한 번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되새겨 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은비네가 새로 이사 간 임대 아파트 옆집에는 귀신 할머니가 산다. 허옇게 센 쪽 찐 머리에 얼굴은 쪼글쪼글하고 목소리는 잔뜩 쉬었다. 어느 날 귀신 할머니가 은비를 불러 자신이 미국에 간 사이에 집에서 기르는 화초들에 물을 주며 돌봐 달라고 부탁하고, 은비는 잔뜩 겁을 먹는다.
그 후 할머니 집을 드나들며 은비는 이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였고 지금은 일본의 사과를 받아 내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얼마 전 남자 대학생에게 끌려가 성추행을 당할 뻔했던 은비는 인터넷에서 황금주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며 할머니의 삶과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데….
출판사 리뷰
일본과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세계의 눈, 진실을 묻다
2010년 10월, 미국 뉴저지의 팰리세이즈파크 시 도서관 앞에는 가로세로 약 1m 크기의 비석이 세워졌다. 일본군 위안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 비석에는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일본 제국주의 군대에 유린당한 20만여 명의 여성과 소녀들을 기린다’는 설명이 달려 있다. 그런데 이 작은 비석을 세상에 크게 알린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기림비의 내용이 거짓이며 일본인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명목으로 그동안 집요하게 철거를 요구해 왔다. 처음에는 재정 지원을 약속하며 팰리세이즈파크 시에 철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이번에는 일본 네티즌들이 나서서 백악관 홈페이지에 서명 운동을 시작했다. 이에 팰리세이즈파크 시 시의회 이종철 의장은 앞으로 미국의 22개 지역에 위안부 기림비를 더 세우겠다고 선언했으며, 2012년 6월 뉴욕 주 나소 카운티 현충원에는 두 번째 위안부 기림비가 세워졌다.
추악한 과거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왜곡하고 은폐하려는 일본의 시도에 맞서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2003년부터 추진되어 온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9년 만에 개관하였으며, 가수 김장훈 씨와 한국홍보전문가로 불리는 서경덕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위안부 관련 전면 광고를 실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뉴욕타임스에 실린 광고비 전액을 후원한 것으로 알려진 김장훈 씨는 “20만여 명의 여성을 성 노예로 짓밟고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모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하며, 앞으로는 지면 광고뿐 아니라 영상 광고까지 제작해 일본 정부를 압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거의 만행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끊임없이 진실을 부인하며 역사를 은폐하려는 일본의 태도는 오히려 위안부 문제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했다. 세계의 눈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또 일본은 앞으로 어떤 자세를 취할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에, 푸른책들에서 이규희 작가의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가 '푸른도서관' 시리즈 52권으로 출간되었다.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가 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혀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어린이 독자부터 어른까지 다시 한 번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되새겨 보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이 작품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꽃다운 처녀 시절을 유린당한 황금주 할머니의 실제 이야기를 김은비라는 열두 살 소녀의 이야기와 엮어 액자 형식으로 쓴 장편소설이다. 은비는 성추행을 당한 경험을 통해 위안부로 살아야 했던 할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할머니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헤아리게 된다. 독자들은 ‘용서하되 잊지 말아야 할’ 민족의 뼈아픈 과거를 들려주는 이 작품을 통해, 모래알이 다 빠져나가 텅 비어 버린 모래시계처럼 하나둘 세상을 떠나 곧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 할머니들의 삶을 가슴에 새겨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60개의 모래알로 남은 위안부 할머니, 함께 부르는 희망의 노래
1992년 1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처음 시작되어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가 벌써 1,000회를 넘겼다. 한때는 부끄러움에 숨어 살았지만, 함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와 당당하게 명예와 인권의 회복을 외치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제 역사의 산증인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우뚝 섰다. 할머니들에게는 고통스럽고 외로웠을 그 긴 시간의 외침이 비록 일본의 태도를 아직 바꾸지는 못했지만, 숨겨 두었던 치욕의 역사를 양지로 끌어내어 전 세계에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한일 관계를 넘어 전 세계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야기의 핵심이 여성의 인권에 가 닿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학생 청년에게 성추행을 당할 뻔한 은비는 그 후 꿈속에 나타나는 검은 그림자에 시달린다. 꽃 같은 스무 살에 일본 군인의 성 노예로 끌려갔던 할머니는 행복할 권리를 빼앗기고 아직까지 일본의 사과도 받지 못했다. 여기서 대학생 청년과 일본은 힘이 없는 여성의 정체성을 짓밟고 삶을 유린한 힘과 권력의 상징으로 드러난다.
해방 이후 6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은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은 많은 이들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는 데 몸과 마음을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가 일본의 나시노키샤 출판사에서 일본어판으로도 출간되게 된 점은 희망적인 반증이 아닐 수 없다.
며칠 전 또 한 분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살아 계신 위안부 할머니는 이제 모두 60명으로 줄었다.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의 한국과 일본판 출간을 빌어, 부디 얼마 남지 않은 모래시계의 모래알이 다 떨어져 내리기 전에 단 한 분의 할머니라도 일본의 고개 숙인 사죄를 듣게 되길, 또한 다시는 인권을 짓밟는 치욕스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
군인 하나가 헐렁헐렁한 일본 옷을 내주었습니다. 조선에서부터 입고 온 옷을 모두 벗고 그 옷을 입자 나는 마치 일본 거지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옷을 갈아입자 일본 군인 하나가 군화를 신은 채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군인들은 쉴 새 없이 들어오고 또 나갔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나는 반항을 하다가 군인들에게 하도 뺨을 맞아서 고막이 터질 지경이었습니다. 나는 밤마다 울고 또 울었습니다. 다른 방에서도 나처럼 흐느껴 우는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만이 저놈들에게 복수하는 길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 날마다 고통을 이겨 나갔습니다.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습니다."
김학순이라는 내 또래 할머니가 텔레비전에 나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저렇게 텔레비전에까지 나와서 말을 하다니!"
김학순의 용기에 몸이 저절로 부르르 떨려 왔습니다. 그날 밤을 나는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김학순이 사는 곳을 알아내 찾아갔습니다.
"내 이름은 황금주입니다. 나도 일본군에게 끌려가 그놈들의 노리개 취급을 당했던 사람이지요."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돌덩이 같은 비밀을 털어놓자 그동안의 서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김학순은 일본군에게 끌려가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일본이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하자 분해서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잘했소. 잘했고말고.”
나는 김학순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처럼 숨어서 쉬쉬하며 살던 할머니들이 하나둘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후 우리는 ‘위안부 할머니’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과 단체가 생겼습니다.
작가 소개
저자 : 이규희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나 강원도 태백과 영월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균관대학교 사서교육원을 나왔습니다. 소년중앙문학상에 동화 「연꽃등」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아빠나무」 「흙으로 만든 귀」「어린 임금의 눈물」 「악플 전쟁」 등 여러 권이 있습니다. 세종아동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펜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 그리고 역사 속에서 스러져간 인물들을 동화로 그려내는 일을 마음에 담고, 틈만 나면 궁궐과 박물관을 다니며 이야깃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목차
507호가 수상하다
귀신 할머니
깜빡 속았다
위안부가 뭐지?
달라진 김은비
빈집에서
내 고향 선팽이
함흥 엄마
캄캄한 기차를 타고
어여쁜 꽃봉오리는 꺾이고
엄마가 되다
다시 위안부 할머니가 되어
하나둘 떠나는 할머니들
선팽이 가는 길
할머니의 족두리
서른다섯 개의 화분만 남기고
작가의 말